경성제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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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경성제국대학 혹은 게이조 제국대학(일본어: 京城帝國大學, 영어: Keijō Imperial University)은 경성부에 있었던 대학으로, 일제 강점기 때 민간인들의 민립대학설립운동을 막으려고 1924년에 일본 제국의 6번째 제국대학으로 설립되었다. 일본 제국의 패망과 함께 한국이 광복된 후 경성대학으로 전환되었다가, 미 군정에 의해 폐교되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설립과정에서 경성제국대학의 시설들을 활용하였다.

연혁

날짜 내용
1923년 12월 제국대학교사 준공
1924년 5월 제1기 신입생 입학
1926년 5월 본과 개설(법문학/의학)
1929년 4월 1기 졸업생 배출
1938년 4월 이공학부 증설
1945년 8월 경성대학 자치위원회 설립
1945년 10월 경성대학으로 개칭
1946년 8월 학제 폐지
1946년 9월 국립 서울대학교에 통합

설립

일제 강점기 초기 조선에서는 대학교육의 기회가 전무했지만,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는 높은 상황이었다. 1910년대 말부터 민족주의진영에서는 대학설립을 통한 민족운동의 수준을 높이기로 하고, 조선총독부와 일본내각에 조선교육령의 개정과 대학설립인가를 요청하였다. 이러한 요청에 대해 일본내각에서는 1918년에 제정된 대학령에 의해 조선에도 대학을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고, 조선총독부에서도 ‘임시교육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학설립에 대해 민족주의진영과 협의하겠다고 발표했다.

1922년 개정교육령이 제정되어 대학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조항이 신설되었고, 이에 따라 민립대학설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이 전국적인 모금책을 두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자 이에 당황한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각은 서둘러 ‘임시교육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민립대학설립운동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1923년 조선에 관립대학을 설립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1924년 1월에 예과교사가 완공되었으며, 같은달 11일에는 신입생 모집요강을 발표했다. 조선제국대학은 1924년 4월 1일 개교할 예정이었으나, 대학과 관련된 법제 문제와 명칭 문제로 인해 2달 가량 연기되었다. 일본의 법제국에서 조선제국대학이 제국대학령에 의해 내각 관할의 대학인지, 조선교육령에 의해 조선총독부 관할의 대학인지에 대한 이견이 있었으며, 이것이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각과의 갈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둘의 마찰은 4월 중순까지 계속되다 4월 말 제국대학령에 의해 조선제국대학을 설립하되, 조선총독부가 관할하는 것으로 조정되었다.

운영

제국대학령에 의하면 제국대학에 입학할 자는 구제고등학교 졸업자로 한정되었다. 당시 일본에는 8개의 구제고등학교가 있었으며, 고등학교 입학자 대부분은 일본내 제국대학들에 진학할 수 있었다. 반면에 조선에서 제국대학이 설립될 때는 고등학교를 설립하는 선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2년제 예과(豫科)가 설치된 것이다.

예과는 고등학교와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제국대학 학부에 입학할 때는 선발고사를 거쳐서 입학한 반면, 예과에서 본과(학부)로 진학할 때는 별도의 시험을 거치지 않았다. 또, 고등학교가 3년제 였던 반면 예과는 2년제였다. 고등학교와 대학예과의 이러한 차이는 경성제국대학 설립 준비 당시부터 기획된 것이었으며, 이는 일본의 제국대학보다 조선의 제국대학을 한단계 낮게 설정한 것과 같은 의미였다.

예과는 문과와 이과를 분리하여 모집하였다. 이과 수료자는 전원 의학부로 진학한 반면, 문과의 경우는 학생선발에서부터 법학계와 문학계로 나누어 학생을 선발했다. 그러나 문학계 학생들 조차 법학부 지행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예외적인 비율로 허용되는 전과제도를 이용해 법학부로 진학하거나 아예 대학입시에 다시 응시해 문과 법학계로 재입학하는 경우도 종종있었다. 한동안 문과에서 지망학부를 구별하지 않고 예과생을 모집하여 학부 진학시에 희망학과를 선택하게 하는 제도를 시행하기도 했지만, 문과생들의 편중된 법학부 지망 현상이 지속되자 기존의 제도로 환원하였다. 한편, 전과제도로 인해 문학계에서 학생 결손이 일어나는 경우 일종의 편입인 선과(選科)를 운영하였다. 이 선과를 통해 여자가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성제국대학의 학부는 설립당시에는 법문학부와 의학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기존의 전문학교만으로는 고급인력을 충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의학분야의 대학수준의 학부 설립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그런데 법문학부는 분야가 상이한 법학부와 철학·사학·문학과의 문학부가 병존하는 형태로, 대학 설립의 비용을 고려한 것이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학부 구성은 당시 조선 사회의 직업 구조가 반영된 것이었다. 당시의 조선에는 고급인력을 수용할만한 근대적 경제부문의 폭이 좁았기 때문에 조선인 학생들은 관료로 진출할 기회가 비교적 많은 법학에 대한 강한 지향성을 보였고, 중등교육기관이 확대되면서 중등교원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동시에 대응하고자 법학부와 문학부가 병존하는 법문학부가 설치된 것이다. 1926년부터 학부 진학이 시작되었지만, 학부 교사는 1927년에 완공될 예정으로 있었다. 때문에 대학본부는 경기도립상업학교에 자리잡았고, 법문학부는 목조 가건물에 자리를 잡았다. 의학부 의화학 교실과 병리해부학 교실은 공사를 서둘러 진행해 학부 진학 직전에 완공할 수 있었다.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비롯한 경성제국대학의 1년 경상비용(운영비용)은 50만원 선이었으며, 이는 조선의 모든 전문학교의 경상비를 다 합친 것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한편, 농학부나 이학부, 공학부의 설치가 예정되어 있기는 했지만, 비용상의 이유로 계속 설치가 유보되고 있었다. 이후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고 조선에서의 군수공업이 발전해 기술인력이 필요해지자, 1938년에 이공학부의 설치가 확정되었다. 1940년 예과에 이공학부 진학을 위한 학급이 가설되었고, 1943년 이공학부가 가설되었다.

개설학부 및 학과

  • 대학예과
    • 예과
      • 문과
      • 이과
  • 학부(본과)
    • 의학부
    • 법문학부
      • 법학과
      • 정치학과(개설취소)
      • 철학과
      • 사학과
      • 문학과
        • 국어국문학 (현재의 일어일문학)
        • 조선어조선문학 (현재의 국어국문학)
        • 영어영문학
        • 외국어외국문학
    • 이공학부
      • 물리학
      • 화학
      • 토목공학
      • 기계공학
      • 전기공학
      • 응용화학
      • 채광야금

폐교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익일 조선인 교직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경성대학 자치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교문 앞에 붙은 경성제국대학 명판의 '제국'을 지우고 경성대학으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이후 각 전문학교에 근무하던 명망있는 조선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은 법문학부 18회, 의학부 17회, 이공학부의 3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배출하였으며, 이들 졸업생 가운데 한국인은 모두 810여 명이었다. 그 뒤 1946년 9월에 국립 서울대학교가 발족되면서 서울대학교에 통합되었다.

주요 인물

교수진

설립 당시 경성제국대학의 교수진은 일본 본토에서 건너왔거나 조선에서 기존 전문학교들에서 근무하던 이들이었다. 법학부 교수진은 대개 일본에서 왔는데, 대학 예과 설립 당시 곧 개설될 학부에서 가르칠 교수진 양성을 위해 동경제국대학 출신자들을 구미로 유학보내 2-3년간의 학업을 마친 뒤 학부 개설과 함께 부임하게 하였다. 의학부 교수진은 대개 조선 현지 전문학교에서 근무하던 이들이 겸임으로 시작해서 전임으로 옮겨왔다. 또한 영어회화를 담당하는 영국인 교수 (영어영문학 담당 블라이스)도 있었다.

역대 조선인 교수
이름 학과 기간 출신학교
윤일선 의학부 1928년 3월 30일 ~ 1929년 4월 18일 교토제국대학 의학부
고영순 의학부 1928년 12월 24일 ~ 1928년 12월 26일 오사카의과대학 의학부
윤태동 예과 1934년 7월 25일 ~ 1934년 11월 17일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김종원 이공학부 1945년 7월 17일 ~ 1945년 10월 16일 도쿄제국대학 지질학

졸업생

유명 졸업생
이름 생년 전공 입학/졸업 직업
김종열 1900년 법문학부 법학 ~ 1930년 정치인
민복기 1913년 법문학부 법학 1933년 ~ 1937년 대법원장
유진오 1906년 법문학부 법학 1925년 ~ 1929년 정치인
이효석 1907년 법문학부 영문학 ~1930년 소설가
홍진기 1917년 법문학부 법학 1936년 ~ 1940년 판사

네트워크 그래프

경성제국대학캡처.JPG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경성제국대학 게이조제국대학 A는 B의 다른 명칭이다.
경성제국대학 미군정 A는 B가 폐교시키다.
경성제국대학 서울대학교 A는 B와 통합된다.
윤일선 경성제국대학 A는 B의 교수 출신이다.
고영순 경성제국대학 A는 B의 교수 출신이다.
김종열 경성제국대학 A는 B의 학생 출신이다.
민복기 경성제국대학 A는 B의 학생 출신이다.
유진오 경성제국대학 A는 B의 학생 출신이다.
이효석 경성제국대학 A는 B의 학생 출신이다.
홍진기 경성제국대학 A는 B의 학생 출신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위키백과 경성제국대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성제국대학

두산백과 경성제국대학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경성제국대학

신동아 “경성제대 입시 대소동”, 전봉관(2005년 12월 호)

작성자 및 기여자

최초작성자 : 김가영

수정 : 한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