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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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김유정. 그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아버지 김춘식과 청송 심씨 성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 2남 6녀 중 차남(일곱째)으로 태어났다. 출생은 강원도 춘천이지만 유아기 시절 서울 종로로 이사하게 된다.

서울 종로로 이사 후 그의 나이 일곱살에 어머니를, 아홉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된다. 어릴 적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부재가 컸는지 김유정은 모성 결핍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이로 인해 한때 말더듬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시절로 인해 그는 언어적인 콤플렉스가 있었다.

김유정의 아버지인 김춘식의 죽음 이후 그의 형은 난봉꾼과 효자가 되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런 형을 보며 김유정은 형에 대한 미움과 원망, 애처로운 감정 등 양가감정을 느꼈다.

형 뿐만이 아니라, 그의 누이도 김유정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김유정의 누이는 그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는가 하면, 또 다른 날은 주눅들어 있는 모습을 보여 누이에게도 형과 동일한 양가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후 서울에 위치한 재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하게 된다.

1930년 4월 6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으나 당대 명창 박녹주(5살 연상)의 공연을 우연히 본 후 그녀에게 반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열렬히 구애하느라 학교 결석이 잦아 두 달 만에 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앞서 언급했던 모성 결핍으로 인해 그는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박녹주와 같은 이성 혹은 연인에게 집착했다. 애정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협박이나 혈서로 나타낼 정도로 말이다.

결국 열렬한 구애 끝에도 박녹주와의 사랑에 실패했다. 박녹주에 이어 그가 사랑한 두 번째 여자는 박봉자이다. 박봉자가 실린 잡지를 보던 중 자신의 어머니와 너무나도 닮은 그녀의 기사 사진만 보고 김유정은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기사가 실린 해 결혼을 하였고, 그는 두 번째 사랑도 홀로 끝을 내어야 했다.

반복된 실연과 학교 제적이라는 상처를 안고 고향인 춘천으로 귀향한 김유정은 학교가 없는 실레마을에 야학당인 금병의숙을 지어 야학과 농촌계몽운동, 문맹퇴치운동등 다양한 활동을 약 2년간 진행하며 1930년대 궁핍한 농촌 현실을 몸소 체험하고 느끼게 된다.

이는 그의 작품 속 현실적인 시골의 모습과 향토적인 분위기, 희화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 좋은 양분이 되었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농촌과 도시의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신명에 빠지게 된다. 1933년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 뒤,

1935년 그의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新春文藝)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고, 다른 글인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김유정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이 시작되었다.

추가적으로 신춘문예 당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그의 친한 친구가 된 이상李箱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입봉 이후 바로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김유정은 등단 이후 폐결핵과 치질을 앓게 되었고 지병들이 악화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글쓰기의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는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이 운영한 과수원집 토방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휘문고등보통학교 동창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필승前. 3. 18)를 끝으로 3월 29일 새벽 달빛 속에 하얗게 핀 배꽃을 바라보며 삶을 마감한다.

김유정이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은 탁월한 언어 감각에 의한 독특한 체취로 오늘까지도 그 재미, 그 감동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김유정이야말로 소설의 언어에서나 내용은 물론 진술 방식에서 우리 문학사에 다시없는 진정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음을 의미한다.


연보

연도 내용
표1-1. 김유정 생애
1908년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에서 부친 김춘식(金春植) 모친 청송(靑松) 심씨의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차남으로 출생
1917년 1919년 봄까지 3년 동안 한문 공부와 붓글씨를 익힘. 김유정 작품에 나타나는 동양 고전지식은 이때 익힘.
1920년 재동공립보통학교(齋洞公立普通學校)에 입학
1923년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를 검정(檢定)으로 입학
1928년 인간문화재 박녹주(朴綠珠) 공연을 처음 관람후 사랑에 빠짐
1930년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交) 문과에 입학, 제명처분 당함. 고향 상경.늑막염 재발. 안회남의 권고로 소설을 씀.
1931년 4월 20일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법과에 다시 입학 후 자퇴함. 야학당(夜學堂) 설립.
1932년 야학당을 금병의숙(錦屛義塾)으로 넓히고 간이학교로 인가받음. 6월 15일 처녀작 단편 <심청>을 탈고.
1933년 서울 상경. 폐결핵 발병진단. <산골 나그네> 탈고, 안회남의 주선으로 제1선지 3월호에 발표, 8월 6일 <총각과 맹꽁이>를 탈고, 신여성 9월호에 발표.
1934년 누님 사직동 집 처분. 8월 16일 <정분> 탈고. 9월 10일 <만무방> 탈고. 12월 10일<애기> 탈고. <노다지><소낙비>를 12월에 탈고,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소낙비>1등 당선.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노다지>가작 입선.
1936년 단편 <심청>, <봄과 따라지>, <가을>, <두꺼비>, <봄밤>, <이런 음악회>, <동백꽃>, <야앵>, <옥토끼> 발표됨. 미완의 장편소설 <생의 반려>는 중앙 8,9월호에 연재됨.

수필<오월의 산골짜기>,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 <전차가 희극을 낳아>, <길>등을 5월에서 8월 사이에 발표. <행복을 등진 정열>은 여성지 10월호에, <밤이 조금만 짤렀드면>은 조광지 11월호에 발표. 단편소설 <정조>는 조광지 10월호에, <슬픈이야기>는 여성지 12월호에 발표. 박봉자 만남.

1937년 서간문 <문단에 올리는 말씀>조선문학 1월호에 게재. 2월 매형 유세준의 집에 옮겨와 요양 치료함. 소설 <따라지>, <땡볕>, <연기> 발표. 서간문<병상의 생각> 발표. 3월 18일 <필승전>으로 되어 있는 마지막 편지를 안회남에게 보냄. 3월 29일 오전 6시 30분 사망함.
1938년 단편집 동백꽃(三文社) 발간됨.
1939년 사후 발표된 소설로 <두포전> 소년1∼5월호, <형>광업조선 11월호, <애기>문장12월호 발표.

작품이력

  • 소설
    • 산골 나그네(1933.3), 총각과 맹꽁이(1933.9), 소낙비(1935.1.29.~2.4), 금따는 콩밭(1935.3), 노다지(1935.3.2.~9), 금(1935.3), 떡(1935.6), 산골(1935.7), 만무방(1935.7.19.~30), 솥(1935.9.3.~14), 홍길동전(1935.10), 봄.봄(1935.12), 아내(1935.12), 심청(1936.1), 봄과 따라지(1936.1), 가을(1936.1), 두꺼비(1936.3), 봄밤(1936.4), 이런음악회(1936.4), 동백꽃(1936.5),야앵(1936.7), 옥토끼(1936.7), 생의 반려(1936.8~9), 정조(1936.10), 슬픈이야기(1936.12), 따라지(1937.2), 땡볕(1937.2), 연기(1937.3), 정분(1937.5), 두포전(1939.1~5), 형(1939.11), 애기(1939.12)
  • 수필
    • 닙히푸르러 가시든님이(1935.3.6.), 조선(朝鮮)의 집시(1935.10.22.~29), 나와 귀뚜람이(1935.11), 오월(五月)의 산골작이(1936.5), 어떠한 부인을 마지할까(1936.5), 전차(電車)가 희극(喜劇)을 낳어(1936.6), 길(1936.8), 행복(幸福)을 등진 정열(情熱)(1936.10), 밤이 조금만 잘럿드면(1936.11), 강원도(江原道) 여성(1937.1), 병상영춘기(病床迎春記)(1937.1.29.~2.2), 네가 봄이런가(1937.4)
  • 설문응답
    • 우리의 정조(情調)(1936.12)
  • 서간
    • 문단(文壇)에 올리는 말슴(1937.1), 병상(病床)의 생각(1937.3), 강노향전(姜鷺鄕前)(1937.5), 박태원전(朴泰遠前)(1937.5), 필승전(前)(1963.1)
  • 번역동화
    • 귀여운 소녀(少女)(1937.4.16.~21)
  • 번역소설
    • 잃어버린 보석(寶石)(1937.6~11)

작품세계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생활 양식을, 냉철하고 이지적인 진지성보다는 연민을 수반한 웃음을 통해 희화적이고 해학적으로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만무방(1935.7.19.~30) 에서는 그 특유의 해학성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착취 체제에 내재하는 모순을 겨냥하고 있다.

형인 응칠과 아우인 응오는 서로 성격의 차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취득ᆞ분배 양식에 내재하는 모순에 대립하고 있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은 계급 투쟁적 해결의 경직성을 드러내지 않고, 결말에 이르러 ‘내 걸 훔쳐야 할 운명’의 상황적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의 피폐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반적인 김유정의 문학 세계는 해학적이다. 김유정 소설의 주요 대상은 농촌 현실과 거기서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이다. 「동백꽃」, 「봄ᆞ봄」, 「산골」 같은 작품에서는 경쾌한 해학성이 전면에 두드러진다.

즉 사회제도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순박하고 어리석은 농촌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원리에 대한 애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편 「소낙비」, 만무방(1935.7.19.~30) ,「총각과 맹꽁이」 같은 작품에서는 농촌 생활을 소재로 사회적 모순을 그려낸다. 즉 농촌 사회의 현실 파악이라는 시각이 훨씬 강화되고 있다.

이들 작품에도 김유정 문학의 특징인 해학성이 드러나고는 있으나 해학 충동의 경쾌함을 지닌 계열의 소설과는 다소 궤를 달리한다.

김유정은 강원도 지방의 토속어를 바탕으로 뛰어난 해학과 풍자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우리 농촌의 암울한 현실을 정치하게 묘사했다. 그의 소설 속에 보이는 ‘질펀한’ 웃음 밑에는 땅에 붙박혀 살아가는 농민들의 울음이 깔려 있다.

특별한 문학적 장치나 의도적인 서사도 없이 이리 저리 쫓기는 농민들의 실상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속에서 보이는 김유정의 풍자와 해학은 단순한 웃음으로 치부될 수만은 없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 ‘따라지’ 인생이었던 농민에게 그 현실을 부정하는 방법은 결국 풍자와 해학 뿐이다.

이는 조선시대 탈춤의 대사가 신분 제도를 풍자했던 것처럼 현실 부정의 웃음에 해당한다. 김유정에 있어서 민중이란 가난하고 바보스러운 농민이거나 뻔뻔하고 영악스러운 도시 빈민이다.

그들은 맹꽁이, 따라지, 머슴, 이농민, 유랑농민, 만무방, 들병이, 혹은 품팔이, 실업자, 걸인, 술집 여급 등이다. 이런 사람들이 항상 착하고 성실하기를 바랄 수 없듯이

그들에 관한 이야기 역시 진지한 현실 인식을 가진 작가라면 허황하게 미화시키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그의 민중 의식은 민중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는 데 그 미덕이 있다.

그는 민중을 과대평가하거나 감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그들의 온갖 약점을 그대로 시인하고 숨김없이 노출시킨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음으로 그들의 생각과 느낌에 깊은 공감을 갖고 그들 자신의 처지에서 그들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김유정이 자기 작품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의 궁핍상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당대 현실에 대한 일정한 비판 의식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판 정신이 그의 특이한 민중 의식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차창작물 목록

영화

1. 소낙비(영화), 개봉: 1958

2. 봄봄(영화), 개봉:1969

3. 산골 나그네(영화), 개봉: 1978.11.17.

4. 땡볕(영화), 개봉: 1985.08.01.

5. 떡(영화), 개봉: 1988.09.01

6. 소낙비(영화), 개봉: 1995.10.14.

7.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영화) , 개봉: 2014.08.21

8. 봄봄(영화), 개봉: 2014

단편드라마

1. 산골나그네(드라마), 방송일: 1982.04.17.

2. 봄봄(드라마), 방송일: 2008

김유정 기념물

김유정의 사상과 문학을 기리는 곳

김유정문학촌1.PNG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기념사업회.jpg

김유정기념사업회

네트워크 그래프 및 RDF

표1-1. RDF 표
주어 목적어 서술어
김유정 치질 발병했다.
김유정문학촌 김유정 기념한다.
김유정 박녹주 만났다.
김유정 제동보통공립학교 재학했다.
김유정 금병의숙 설립했다.
김유정 소낙비 저술했다.
김유정 해학성 추구했다.
김유정 신춘문예 입상했다.
김유정 향토적 추구한다.
김유정 농촌계몽운동 참여했다.
김유정 문맹퇴치운동 참여했다.
김유정 폐결핵 발병했다.
김유정 연희전문학교 재학했다.
김유정 안회남 만났다.
김유정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했다.
김유정 구인회 활동했다.

참고문헌

김종회. (2016). 김유정 소설의 문화산업적 활용 방안 고찰. 비평문학, (62), 59-76.

최주영 김주영 소설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2005 서울 p.2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유정

김유정의 문학산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