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교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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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까치교의 우화 분류 제7회 대한민국연극제참가작품 金相烈(김상열) 作(작).演出(연출) 극단 : 현대극장

등장인물

명구 / 봉필 / 달래 / 영숙 / 명구 모 / 윤 노인 / 이장 / 원사장 / 공비서 / 남자 / 주모 / 어부.A / 어부.B / 동네사람들 남,녀 4-5명 

(바람소리에 막이 오르면 칠흙같이 어둔 해변가. 바람소리 점차 커지고 호리존트 전체로 표현되는 바다가 용솟음치기 시작하며 번개 천둥이 가미된다. 비바람으로 변하는 아비규환의 형상. 무대는 지옥의 소음과 같은 천재지변이 극한 상황이 점차 고조되며 밧줄을 잡아 끄는 두줄의 사람들이 노출된다. 그들은 무대의 상하수 밖으로 연결된 부동의 밧줄에 개미들 처럼 매어달린 두줄의 사람들이 서로 엇갈리기도 하고 넘어지고 구르고 한다. 그들의 동작은 표류하는 배를 끌어올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천둥소리와 같은 팀파니가 그들의 외침과도 같은 노래를 때려서 반주한다.)

[합창]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친다. 태풍이 불어온다니까 배를 건저라 배 부숴진다. 끌어라, 당기라니까 배부숴진다. 땡기라니까 땡겨! 땡겨! 
[여자] (대사) 배에 물이 찼어유! 
[합창] 끌리면 안돼 주저 앉으면 안돼. 땡기라니까 배 부숴진다. 태풍이다. 태풍이여! 배부숴진다 땡기라니까 땡겨 땡겨! 
[남자] (대사) 배 밑창이 뚫어졌네 박살이 났어! 
[합창] (고조되는 반복) 땡기라니까! 땡겨! 땡겨! 끌리면 안된다. 주저앉으면 안돼! 

(날이 밝아지면 텅빈 해변에 윤 노인만이 있다. 텅빈 폐허의 모습)

[소리] (스피커) 면사무소에서 알려드리겠읍니다. 산내면과 오창면에서 발생한 괴질은 오늘 오전 군보건소에거 검진을 한결과 수인성 장티브스로 밝혀졌읍니다. 

따라서 군보건소에서는 비상방역반을 편성함과 아울러 인접면인 우리 까치마을에서도 전염병 예방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요망했읍니다. 그리고 고열에 구토. 설사증세가 있을때는 즉시 면사무소나 군보건소에 신고하여 주심은 물론 날음식과 냉수는 절대먹지 말것이며 상한음식이나 불결한 음식은 땅에 파묻거나 소각시킬것을 당부드립니다. 장티브스 환자의 확산상태를 예의 주시하면서 군당국에서는 예방접종과 연막소독을 각 마을단위로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이상 면사무소에서 알려드렸읍니다.

(스피커의 소음이 줄이 끊어지듯 탁 사라지면 다시 어촌의 뜨거운 소리들이 되살아나며 마치 해풍에 날려 떨어지는 한개의 연과 같이 제대복에 가방을 든 명구가 나타난다. 정막속에 묻힌 고향의 분위기가 몹시 서운한듯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겨우 윤노인이 있는 곳까지 터벅거리며 걸어온다)

[명구] 영감님 --- ! 
[윤노인] (귀가 어둡다) --- 
[명구] 영감님 --- ! 
[윤노인] (겨우 올려다 본다) --- ? 
[명구] 저에유. 명구 --- 
[윤노인] 누구? 
[명구] 탱자나무집 명구 --- 
[윤노인] 그려 --- 자세봉께 그렇구먼 --- 어쩐일인가? 
[명구] 제대를 했구먼유 --- 

[윤노인] 군대를 갔었든가? [명구] 입대할때 어촌계에서 송별회꺼정 해주시지 않았남유 --- [윤노인] 나이가 먹응께 기억이 아지랭이여 --- [명구] 절 받으시쇼 --- (가방과 모자를 벗어놓고 절할자세로 선다) [윤노인] 땡볕에서 뭔 절인가 내싸둬 --- [명구] 그랑게 아녀유 영감님이고향에와 첫번뵙는 어른인디 --- (명구 모래사장에 엎드려 큰절을 한다) [윤노인] 돌아와서 반갑기는 허구만 때가 안좋을때 와뿌럿어 --- [명구] 워째 동네가 상여집같이 썰렁하대유? [윤노인] 태풍에 장마가 달포가더니 미친년 눈 까뒤짚듯이 이내 가믐들어 한달째여 --- [명구] 농사 피해가 컷갔네유 [윤노인] 농사는 이미 작살난지 오래고 풍랑에 배절단나 고깃배들이 말짱 짚신처럼 떠있어 --- 옥수수는 벌레먹어 전수쭉쟁이고 감자알이 가믐에 쫄아 콩알만해야 --- 뭔수를 내야지 안그라믄 모두 거적쓰고 갯벌에서 자게생겼다.

[명구] 고장난 배는 수리하믄 될거 아녀유? [윤노인] 너두 오다가 못봤냐? 까치다리가 장마에 떠낼려가 기계배 발동기 옮길 찻길도 끊어졌어야 --- 군청에서 사람들이 두어번 왔다갔다 하더니 예산이 없다던가 금년엔 힘들디야 --- [명구] (일어나며) 집에 가봐야 쓰것내유 --- [윤노인] 느그엄니 몸이 않좋타 [명구] 예? [윤노인] 얼굴이 뉘래갖고 해소 기침 소리만 내는디 뭔속병인지 한약좀 써야것드라 --- 다 돈드는 일이니께 지랄이제 --- [명구] 지난번 휴가때는 짱짱하셨는디 --- [윤노인] 곰삭은 늙은이 조석이 다른것이여 거기다 달래가 속을 안썩혔냐 --- [명구] 달래가유? [윤노인] 속사정은 몰라두 행실이 지랄같은 개비여 --- [명구] 고것이 뭔 지랄을 했대유?

[윤노인] 내싸둬라 --- 괜시리 설건드리믄 동네 시끄럽게 돼겠구먼 --- [명구] 그람 또 뵙겠구먼유 --- (한쪽으로 움직일때 낮술이 얼근히 취한 봉필이가 나타난다) [봉필] 어매? 이게누구여? [명구] 잘있었냐? [봉필] 가만있어 --- 그라니게 벌써 제대할때가 되였는가? [명구] 왜 빨리나와서 섭섭하냐? [봉필] 너 말뚝박았다는 소문있었는디 너 보병이제? [명구] 공병 --- [봉필] 앗따 주특기 삼삼하게 받았네 병장제대여? [명구] 하사 --- [봉필] 제대말년 끝발 날렸겠는디 --- [명구] 어째 대낮부터 술이랴? [봉필] 응 --- 딱 이홉 하나여 --- 요즘 이홉하나에두 팍팍가야 --- [명구] 속버려 ---

[봉필] 속가면 겉으로 살제뭐 --- 날음식 못먹고 냉수먹지 말라는디 쐐주밖에 먹을 것이 더 있것냐. 하여튼 제대 축하허네. 저녁에 한잔 꺽어야 쓰것구먼 --- [명구] 동네분위기가 제대파티하게 생겨먹덜 않았는디 --- [봉필] 분위기야 만들면 될거아녀. 어차피 나두 여기 오래있덜 않을것이니께. [명구] 건 뭔소리래? [봉필] 너두 내성질 알제? 큰놈은 큰물에가서 놀아야 되는거 아녀? 내가 환장하겠는거 참고 지금까지 있는것이다. [명구] 어딜 가겠다는 것이여? [봉필] 서울서 개인택시 끄는놈이 있는디 즉시 올라오라고 지가 더 지랄이여야! 의리하나는 있는놈이라 서울차 타면 내인생은 완전히 세탁하는거여. 오라는 데는 많고 --- [명구] 서울두 생각같지 않다더라 --- [봉필] 그야 능력 나름이제 --- 눈치빠르고 말발있으면 서울 가서두 깡소주만 먹것냐.

[명구] 술깨서 얘기해야 되것구먼 --- [봉필] 술깰때가 있남 --- 요즘 은 연속상연이여야! [명구] 동네는 전수죽엇는디 너하나 살아있는것 같구먼 --- (명구 사라진다) [봉필] (명구가 사라진 쪽에대고 크게) 너두 제대복 벗으면 생각이 달라질것이다 --- 앗따 일반하사 제대면서 뭔힘을 그렇게 목에 준디야! (암전)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밤 멀리 바다가 보이는 명구의집 마당, 작은 
평상위에 병색이 완연한 명구모와 금방식사를 끝낸 명구가 착잡하게 앉아있다. 

한쪽에선 모기불이 피어오르고 가뭄을 말해주듯 풀벌레 소리가 유난스럽다. 명구모의 기침소리가 밤공기를 간간히 흔들어 깬다.)

[명구] 동네가 완전히 팥죽이 되버렷구먼유 --- 

[모] 니가 들으면 심사가 틀릴지 몰라두 너 돌아왔어두 하나두 반갑들 않다 --- [명구] 어째 자꾸 그랫싸유 엄니 --- [모] 집구석이라게 네기둥밖에 없어, 병아리새끼꺼정 전부 죽어 나갔응게 --- 차라리 군대에간 니놈속은 펀했을 것이다.

[명구] 군대란게 햇수가 차야 옷벗는 곳인디 낸들 어쩌것슈 아까 보니께 우리 
배두 밑창이 나갔드만유 

[페이지] 011

[모] 땅이구 배구 남줘서 부리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태풍부는디 배를 갯벌에 
끄잡어 올리덜 않고 닻만 달랑 떨구어놓구서 술만 퍼먹으니 괜찮을성 싶어 --- 

니가 없응께 그 꼴이 된기어! 흙먼지 폭삭폭삭나는 밭고랑에 나가보면 복창이 터져서 환장할것이다.

[명구] 지깐 가뭄이 일년 열두달 가것슈 --- 

[모] 먹을 물도 없어 난리가 아니냐?

[명구] 그렇다면 물줄기를 찾아내야 되지 않것남유! 
[모] 짠 갯물을 퍼먹자는 것이여? 
[명구] 복주산에 가뭄타지 않는 샘터가 있지 않남유? 
[모] 여기서 거기가 어디라고 물줄기를 끌어온다냐?물지게 지구오다 전수 
말라버릴 것이다. 
[명구] 그라니께 뭔 대책을 세워야지요. 
[모] 쓰잘데 없는 소리 하덜 말어. 물얻자고 산중턱까지 오르다가 전수 지쳐서 
자빠질 것이니께. 
[명구] 그리니께 물을 퍼나르지 말고 물줄기를 끌어온다는 말씀이어유. 
[모] 돈드는 얘긴 하덜 말어.동네 사람들한티 몰매 맞을것잉께! 
[명구] 봉필이는 기세좋게 낮술먹구 다닙디다. 
[모] 오살놈이 즈그아버지 산 개값에 팔아넘기고 갈지자 걸움걷고 안다니냐 

--- [페이지] 012

[명구] 어떤 산을 팔앗대유? 
[모] 서낭당 모셔놓은 복주산 싸그리 안팔았냐 --- 눈깔이 뒤짚힌기여. 이동네 
정신 옳게 박힌놈 하나나 있간디 --- 

[명구] 그람 서낭당은 어쩐대유?

[모] 서울 사람이 와서 도자로 싹 밀어버리고 뭔가를 짓는다드라 --- 그라니께 
복주산에서 물 끌어들인다는 것두 헛일이다. 알것냐? 
[명구] 그놈 미친놈일세 --- 

[모] 그놈 미친지 오래여 --- 백구두에 색안경끼고 대처놈 행세하는꼴

베리가틀려 못보것다 

[명구] 동네 어른들은 그놈 미친짓할때 뭣하고 있었대유?

[모] 봉필이놈 지랄염병하는 농간에 술얻어먹고 놀음방 쫑아다니며 남녀노소 
할것없이 전수 놀아 났응께 --- 

[명구] 서낭당은 봉필이 개인소유가 아니잖남유?

[모] 이장앞세워 연판장 돌리며 개거품 흘리고 다니더니만 성사가 됐는갑드라 
느그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택두 없는 일이었제 --- 

[명구] 그래서 매매가 끝낫당가유?

[모] 도장찍고 어쩌구히서 서울사람 앞으로 다 넘어갓다드라 

[페이지] 013 서낭당 팔아넘기고 나서부터 태풍에 장마에 가믐이오덜안았냐! 온전한게

하나두 없는것이여 --- 

[명구] 서낭당을 팔다니 참말은 뭔소린지 이해하덜 못하것네 그래 얼마나

받았대유 

[모] 봉필이놈 봉창속으로 들어간돈 얼만지 어떻게 알것냐?

[명구] 그만 상 치우고 주무시요 엄니, 전염병 돈다구 면소에서 방송합디다 

[모] 기왕에 병든 몸인디 뭔병이 또 들어오것냐 --- [명구] 엄니는 헐압이니께 안정하고 맘편히 먹으면 낫는 병이어유 [모] 지랄 --- 서낭당 기둥뿌리를 삶어먹어두 안될것이다.

[명구] 달래는 저녁상 삐쭉 내밀고 어디루 없어져 버렷네유 

[모] 잡것 저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히여 --- [명구] 뭔일이 일엇남유!

[모] 일이 있었는 것이 아니라 뭔일이 다 끝나쁘렸다. 
[명구] 그게 뭔일이래유? 
[모] 제대하고 막 돌아온 놈 앞에서 이갈리는 소리부터 히야쓰것냐? 
[명구] 속이 그렇게 물컹한 애는 아닌디 --- 

[모] 뭉컬하덜 못하구 너무 딱딱해서 깨졌는갑다! 육실헐년 --- [페이지] 014

(명구 상을 들어주려 한다.) 내싸둬 (일어나 상을 들고 안채로 들어간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찬것보니께 오래 가믈것이다 --- 배 절단내고 곡식태워

죽이고 그래두 부족히서 사람까지 전부 말라죽일란갑다 --- 좌우당간에 뭔 
판가름이나야 될것이여 --- 뭔 요절이 나두래도 --- 

(명구 참담하게 평상에 벌렁누워 하늘을 우러러본다. 싸릿문 밖에서 달래가

가만히 들어와선다) 
[명구] 누구여? 
[달래] 모기물려유 들어가 자유 --- 

[명구] 어째 물방개마냥 벵벵 돌기만하냐 뭔얘기좀 하거라 --- [달래] 헐 얘기 없시유 --- [명구] 어째 엄니 속을 썩혔냐 나 없는 동안에 --- [달래] --- [명구] 뭔일을 저지른 기여?

[달래] 아녀유! 
[명구] 바람피웠냐? 
[페이지] 015 
[달래] 아니래니께유 --- 

[명구] 나이먹은 지지배가 연애한건 죄가 아녀 --- [달래] 어째 자꾸 그랫싼대유 [명구]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엄니가 복창을 치시니께 그렇치!

[달래] 복창친다구 뭔일이 해결되남유 

[명구] 뭔일이 일어나두 크게 일어났구먼 --- [달래] --- [명구] 바깥세상은 바뀌고 쌩쌩하게 돌아가는디 어째 우리들만 사는게

이지경이란 말이냐? 참 세상두 공평하덜 못히여 --- 제대 특명받고 뻐스타는데 
발끝에서 바람소리가 나더라 콧노래가 나오고 --- 그래두 집에오면 뭔가 
한것지게 일이 벌어질것같았는디, 까치 다리가 끊어진곳에서 부터 어깨힘이 
빠지고 입속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하대 --- 생선 썩는 냄새허고 곡식타는 냄새 

--- 고향 문턱에 도착하니께 지랄같이 준욱이 들어버린기여 --- 봉필이놈 말같이 말뚝이나 박고 장기근무나 했으면 의복 걱정에 [페이지] 016 삼시새끼 걱정은 없을텐디 --- 그래도 후배놈들은 고향간다고 주보에서 깡맥주

사다놓고 박수치며 노래불러 주데 --- 다같은 고향이건만 내고향은 언제와봐도 
상여집 같은곳이여 --- 

[달래] 오빠 --- !?

[명구] (정색하며) 우리가 뭔죄가 있는것이냐? 엄니말들으면 어버지두 
냉수같이 맑게 살다 가셨다는디 --- 

[달래] 제대했응깨 --- 건강하게 돌아왔으닝게 --- 그만하면 다행이여유 --- [명구] 사지멀쩡허구 살아서 숨쉰다구 그게 사는것이 아녀 --- 헌디--- 뭔가

비비고 의지할데가 있어야제 --- 

[달래] 사람은 저부 제복은 티고 난다고 안해유 [명구] 그람 이게 우리덜이 타고난 것이냐? 그렇탐 참으로 지랄같은 팔자다. 요즘세상은 지팔자도 고쳐가며 산다는 디 --- [달래] 엄니가 오빠오길 얼마나 기댜렸는지 알어유?

[명구] 상여집에 송장하나 더들어온거나 다른게 뭐 있겄냐? 
[달래] 산목숨에 거미줄이야 치것슈 --- 

[페이지] 017

[명구] 넌 뭔 희망이 있냐? 
[달래] 희망은 개뿔이 있것슈 --- 

[명구] 그래두 깜양에 뭔 의지할데가 있는갑다 말투가 --- [달래] 타고난 팔잔데유 뭘 --- [밖에서] (소리) 명구 있는가?

[명구] 누구여? 
[봉필] 나 봉필이여 --- 

(봉필이 거나하게 취해서 소주와 안주 봉투를 안고 들어온다) 제대 파티를

해야제 --- 

(달래가 안으로 들어간다)

[명구] 주야로 술이구먼 ---? 
[봉필] 오늘같은날 안마시면 되것는가? 
[명구] 취했는디 ---? 
[봉필] 맥주하고 짬뽕하니께 그게 지랄같어 --- 

[명구] 돈이 좀 도는갑네 --- [봉필] 술값은 있응게 --- 자 어서 들어!

[명구] 복주산 팔았다믄서? 
[페이지] 018 
[봉필] 앗다 소식 빠르네 --- 

[명구] 서낭당까지 팔앗다믄서?

[봉필] 동네 위해서 내가 희생한거여 --- 

[명구] 그게 뭔소리여?

[봉필] 자네두 알지만 복주산이란게 농사도 안되고 과수원도 안되고 쓰잘데 
없는 땅이아녀--- 더구나 서낭당은 거들떠 보는 사람도 없어 산짐승들 놀이터가 
되버렸쟎남 --- 

[명구] 그래두 유일하게 물줄기가 있는 산이 아녀?

[봉필] 참새 오줌맹이루 졸졸 나오는 것두 물이랑가? 
[명구] 샘터를 파서 넓히고 집수장을 만들면 하루에 2톤 이상은 모일것이 
아닌가? 
[봉필] 이사람아! 고작 2톤물 가지고 동네 사람들 양치질 하자는 것이여. 
[명구] 우선 식수는 해결 할 수 있지 않은가? 
[봉필] 고였다치면 물이 무슨 야구공이라고 산중턱에서밑으로 던질 것이여? 
[명구] 파이프로 연결하면 될 것이다. 
[봉필] 자네 지금 뭔소리하고 있는 기여? 그 파이프 값이 얼마나 들 것인지 
계산이나 해 보고 하는 얘기여? 거기서 동네까지 장장 5리는 될 것인디! 
[명구] 한가구에서 조금씩 염출하면 될 수도 있어. P.V.C로 송수관을 연 

[페이지] 019 결 한다치면 많은 돈은 아닐 것이네.

[봉필] 벌써 도장찍고 문서넘기고 끝난 얘기여 --- 

[명구] 어째 그걸 자네혼자 결정했는가?

[봉필] 내산을 내가 파는디 내가 결정하지 않음 누가 결정하겠는가? 
[명구] 복주산은 그렇다치고 서낭당은 동네의 공유물인것이여! 
[봉필] 동네 유지들이 전부 허락했구먼 --- 내가 그만한 양심도 없이 일을 
처리하겠는감 --- 

[명구] 뭔가 석연치 않은디 --- [봉필] 자네 성질을 아니께 내가 찾아온것이여 --- [명구] 그래서 이술 사온것이여?

[봉필] 앗따 되게 깐깐하네 --- 서울 양반이 서낭당 자리에다 호텔을 짓는디야 

--- [명구] 호텔하구 우리가 뭔 관계가 있는가?

[봉필] 어매 공병출신이 어째 고록콤 막혓당가? 호텔이 서려면 길이딱어지게 
될것이고 길이 딱여지게 되려면 자연히 까치교가 철근 콘크리트로 세워진다 
이말씀이여, 우리동네는 가만히 

[페이지] 020 앉아서 계란 노른자 반숙으로 먹는셈이 아닌가 --- [명구] 그래서 자네가 희생을 했다는 것이여?

[봉필] 어허 왜 눌깔을 올빼미마냥 똥그랗게 뜨고 그랴? --- 밤에보니께 
징하네 --- 썩은 서낭당 팔아서 동네 호사시키겠다는디 어째 인상이랴? 참말로 
섭섭해 질라고 그러네 --- 

[명구] (술잔을 내던진다) 나 자네술 안먹겠네 --- [봉필] 안먹으면 안먹엇지 왜 아까운 술을 버려? 참말로 성질한번 개떡같네 --- [명구] 쓸개빠진 놈들 --- [봉필] 놈들? 그라믄 그놈들속에 나도 들어가는가?

[명구] 그래 자네가 주범이여! 
[봉필] 주범? 엄마---? 내가 살인을 했어? 도둑질을 했어? 잘못하면 나 
꼼짝없이 영창가겠네 

[명구] 살인이나 도둑질보다 더 나쁜짓을 한것이여 [봉필] 자네속이 허한데가 깡소주 먹으니께 속이 뒤틀리는게 아녀 어쩠까? 활명수하나 사다줄까 ---?

[페이지] 021 
[명구] 필요없어! 
[봉필] 그럼 쥐포하나 먹을라나 --- ? 
[명구] 돈 움켜줬으니께 이제 서울루 튀겠다는거여 --- ? 
[봉필] 튀긴 메뚜긴가 어디루 튀어? 
[명구] 동네가 쑥밭이 됐는듸 자네혼자 살것다고 산팔고 서낭당 팔어? 고것이 
배운놈이 할 짓이여? 
[봉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정말 괘씸해서 못 참겠네. 자네 나 괄시해서 
좋은거 하나두 없구먼. 
[명구] 마을의 줏대를 팔아서 떼돈번놈 뒷꿈치도 안쳐다 볼것이다. 
[봉필] 이것보더라고 옛날의 봉필이가 아녀 --- 너 오늘밤 큰 실수했다 --- 

면사무소 병사계도 나보구 형님, 형님 쫑아 다니는 사람이여 --- 달래만 아니믄

넌 벌써 마빡두바늘 확 찢어졌을것이다. 
[명구] 달래? 
[봉필] 달래 입장봐서 참는것이다 

[명구] 뭐여?

[봉필] (나가며 안채에 대고) 달래 나 갈란다 --- (나간다) 제에미, 

쓰잘데없이 삼천이백원 썼네 --- [페이지] 022

[명구] 달래 너 이리좀 나오니라 --- 

[달래] (나온다) --- [명구] 너 봉필이하고 어떤 사이여?

[달래] --- 

[명구] (크게) 싸게 얘기히여봐 어떤 사이냐니께?

[달래] 아무 사이두 아녀유 --- 

[명구] 그놈이 아까 니 뒤통수 쳐다보는 눈꽁댕이가 베베 꼬엿던디?

[달래] 아녀유 --- 

[명구] 몸조심히여 지지배는 앗차 한번 실수하면 신세 조지는 거여! 알것냐?

[달래] (대답이 없이 시무룩하다) 
(암전) 
[페이지] 023 
[장] 제 2 장 

(서장과 같은 장소. 윤노인이 같은곳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고 그곁에 명구가 앉아서 암담하게

휘말려오는 해변의 파도를 바라보고있다. 마른 미역과 해초들이 해변에서 유령의 
사지처럼 뒹글어다닌다. 스피커에서 소음이 다시 되살아난다) 
[소리] (스피커) 면사무소에서 주민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겠읍니다. 산내면과 
오창면에서 발생한 수인성 장티브스는 우리 까치마을의 인접부락인 매봉면에까지 
전염되었읍니다. 

이에 따라 군보건소에서는 오늘 오전부터 연막소독과 예방 접종을 실시하고

있읍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없이 보건소 방역반원들이 실시하고 
있는 예방접종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외출전후와 식사전후에는 손발을 
깨끗히 씻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십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불필요한 외출을 
삼가토록 권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면사무소에서 알려드렸읍니다.

[페이지] 024 
(흰까운에 마스크를 쓴 방역반원 한사람이 연막소독기를 등에 메고 해변의 
이곳저곳에 뿌리고 다니다. 해변은 일순간에 하얀 안개속에 묻힌다) 
[명구] 영감님 주사를 맞으셔야겠는데유 --- 

[윤노인] 주사 맞는다고 죽을놈이 산당가 --- [명구] 그래두 예방이니께유 --- [윤노인] 워째 하루종일 바다만 쳐다보구 앉았는가?

[명구] 죽을놈이 살 방법이 없는가 해서유 

[윤노인] 뭔 판가름이 나긴 나야 할것인디 --- [명구] 옛말에도 목마른 놈이 샘물 판다는디, 어째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목이

마르면서 있는 샘도 써먹덜 못한데유? 
[윤노인] 앗따! 누가 이 판국에 돈을 내놓겠는가? 더구나 복주산은 새주인한테 
허락받지 않구는 삽질하나 할 수 없는 판국이여! 
[명구] 파이프 연결해 물 줄기 끌어 오는 거야 어떻겠시우? 
[윤노인] 곧바루 도자가 들어와 서낭당이구 샘터구 싹싹 밀어버리고 뭔가를 
짓는다는듸 파이프가 남아나겄어? 
[명구] 그렇다면 까치다리는 어째서 그냥 끊어진채 내팽개처 버렸대유? 
[윤노인] 그것두 돈드는 일 아닌가! 이 사람아! 
[명구] 어째 동네 사람들마다 돈! 돈! 한데유. 사람나구 돈났지, 
[페이지] 025 

돈나구 사람났어유? 누군가 발벗구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께 서로 못믿어

돈내는 것두 눈치보구 있는 것 입니다. 
[윤노인] 욕먹는일 누가 앞장서서 나서것는가? 
[명구] 그렇다구 가만히 앉아서 죽을 것 입니까? 
[윤노인] 한이넘치고 분통이 터지면 일밖에 할것이 없는것이여 

[명구] 억울하지도 않는 갑네유?

[윤노인] 뭐여? 
[명구]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는것이 억울하지 않느냔 말씀이유. 
[윤노인] 억울한거 느낄새두 없었구먼 물위에 떠도는 지푸락지매양 일하구 
먹구 일하구 자구 그렇게 사는 것이니께 --- 

[명구] 어째 화들을 낼지 모른대유 우리동내 사람들은 --- ?

[윤노인] 워따가 화를 내어? 
[명구] 그냥 욕이라두 해야될게 아니것슈? 
[윤노인] 화내면 속병나니께 --- 

[명구] 허기사 그러네유 -- [윤노인] 팔뚝에 날파리 붙었어 [명구] (손바닥으로 탁친다) 서낭당을 어째 공모히서 팔앗데유--- [윤노인] 동네 잘살게 된다니께 모두 끌려 다닌것이어 [페이지] 026

[명구] 서울 사람들이 잘살게 해준답디까유? 
[윤노인] 그게 내 얘길쎄. 
[명구] 옛날을 패대기 치는 게 장땡은 아녀유 

[윤노인] 글쎄! 그게 내 얘기야! 누구하나 서낭당 손질하고 보살피는 놈이

있었는가? 일년열두달 내싸두니께 돼지우리깐 맹이루 된거 아니것어 --- 

[명구] 그건 젊은 우리들 잘못 이네유 (이때 윤노인의 딸 영숙이 샛밥을

머리에 이고 나타난다) 
[영숙] 아버니 샛밥 가져왔구먼유 

[윤노인] 하는일은 없는디 끼니는 자꾸 찾아오는구먼 [명구] 영숙이 --- [영숙] 제대히서 돌아왔단 얘긴 들엇시유 [명구] 하나두 변하지 않았네 --- [영숙] 명구씬 더 건강해진것 같네유 [윤노인] 자네두 한술 뜰라나 --- [명구] 생각 없구먼유 [영숙] 이제부턴 뭘 하신대유?

[명구] 어디부터 손을대야 할지 막막하구먼 --- 

[페이지] 027

[영숙] 편지두번 받구두 답장못했어유 --- 

[명구] 고향에 와 보니께 편지쓰는게 한량들 글장난이란걸 알게되었어.

[영숙] 가믐이 심해유 

[명구] 날씨 탓할건 없구먼 사람들 맘에 가믐이 들었응게 그게 문제여 --- 모두 거적을 쓰고 자고 있는거 같다니께 --- [영숙] 군대갔다 오더니 말수가 늘었네유 [명구] 객지에서 보구 배운게 있으니게 --- [영숙] 군대갔다와서 성질 고약해진 사람두 있대 --- [명구] 뭣히여?

[영숙] 그냥 놀아유 --- 

[명구] 야학이나 하라구 편지에 안했어?

[영숙] 누가 애들 공부시킬라구 하남유 --- 

[명구] 되는일이 없구먼 [영숙] 왜 땡볕에 앉아 있대유?

[명구] 군대에서 붙은 군살을 빼구 있구먼 

[영숙] 그러다 병나유 --- [명구] 이뻐졌네 --- [페이지] 028

[영숙] 명태가 동태구 동태가 북어라대유 --- 

[명구] 그게아녀 --- [영숙] 밑두끝두 없이 뭔소리래유?

[윤노인] 명구가 제대하고 와서 열병이 나는 게비여 

[영숙] 파리나 쫓으면서 잡서유 --- [명구] 옛날처럼 물가에 나와 축구시합할놈두 없갔제 --- ? (이때 이장을

선두로 봉필이와 원사장 그리고 비서가 뒤따른다) 
[이장] 서울서 원사장님이 내려오셧구먼유 

[명구] 원사장?

[영숙] 봉필씨한티 복주산이랑 서낭당을 산 사람이어유 

[봉필] 사장님 이쪽으루 오십시요 [원사장] 안녕들 하십니까 --- ?

[이장] 찻길두 끊겼는데 워떻게 오셨대유 --- 

[봉필] 사장님이 몸소 두발로 걸어서 않오셨남유 [원사장] (비서에게) 자네 잘기억해둬 이쪽에서부터 저쪽으로 직선도로를

내는거야 그리구 저쪽 해변쪽으로 간이 휴게소를 세운다 이거야 --- 

[비서] 알겠읍니다. 사장님!

[페이지] 029 
[원사장] 저쪽으론 탈의장하구 오락시설을 설치하구말야 --- 

[비서] (메모하며) 오락시설 --- [봉필] 모래좋고 물맑으니께 해수욕장으론 명사십리 다음아닌감유 [이장] 사장님 공사는 언제쯤이나 --- [원사장] 설계도가 나오는 대로 곧 공사에 착수하게 돌것입니다.

[명구] 여기 해수욕장은 안되것구먼유 

[원사장] 아니 이친군 누구야?

[봉필] 사장님 신경쓰실거 없읍니다. 날씨가 더운게 미친놈들이 많아서유 

[명구] 언제구 서낭당은 되돌려 줘야하니께 그렇게 알믄 돼유!

[봉필] 저놈 진짜루 병원에 보내야 되것네 --- 어째서 줄창 쫑아다니며 
깽판이랴 깽판은 --- ? (암전) 
[페이지] 030 
[장] 제 3 장 

(전장과 같은 장소의 밤. 원사장과 이장, 윤노인 봉필을 비롯해서 공비서 그리고 동네사람들이 뫄여있고

한쪽에 명구가 외롭게 영숙과 함께 서있다) 
[이장] 이렇게 여러분들을 나오시라고 한것은 다름이 아니고 
공사다망하신중에도 우리 가치마을을 위해서 서울서 내려오신 원형석 사장님을 
모시고 피차 허심탄회하게 동네 발전을 위하야 의견을 나눠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다 싶이 원사장님은 우리 까치마을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헌신적 협조를 해주시는 분으로서 간략하게 사업추진 내용을 직접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닝께 그렇게들 알고 들어 주셨으면 감사허것네요. 그럼 원형석 
사장님을 소개하것구먼유 (원사장이 사람들 앞으로 나온다) 
[봉필] 자 --- 박수를 치쇼 박수 --- 

(사람들 박수를 친다)

[페이지] 031 
[원사장] 방금 이장님으로부터 과분한 찬사의 말씀을 해주셔서 부족한 
저로서는 몸둘바를 모르겟읍니다. 
[봉필] 참. 사람한번 겸손하네 --- 

[원사장] 물론 저는 사업가로서 마땅히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만

오래전부터 사회로부터 얻은 이윤은 마땅히 사회에 전부 환원되어야 된다고 굳게 
믿어온 사람중의 하나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지역사회개발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져오던차 이번에

군청과 면사무소의 간곡한 부탁에 의해 이 오지의 까치마을을 위하여 내 사업의 
이윤을 아낌없이 기여할 수 있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봉필] 보더라고 --- 아낌없이랴 얼마나 표현이 따뜻하여 --- 에이 참, 말씀 
잘하시네 --- 

[원사장] 이 까치마을은 오랫동안 낡은 인습과 구태의연한 개척정신으로

인하여 타지역보다 낙후되어 왔던것도 사실입니다. 
[봉필] 앗따 쪽집개여 --- 

[페이지] 032

[원사장] 이마을의 살길은 두가지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우선 하나는 이지역을 
관광지로 개조하여 타지역의 자본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는것이며 둘째는 관광호텔 
및 관광부대시설의 운영으로 까치마을의 노동력을 고급인력으로 고용함은 물론 
이에따른 소득을 중대코자 하는것입니다. 
[봉필] 에헤! 어째 박수들 안치고 말뚝처럼 앉아있디야 --- (박수) 약해! 

더크게! (크게 박수)

[원사장] 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교통 통신시설의 확충과 
주민여러분들의 자발적인 자립정신입니다. 

우선 일단계 사업으로 여러분들의 숙원인 읍내와의 거리와 시간의 단축을 위해

까치교의 착공입니다. 
[이장] 네? 까치교를요? (사람들 웅성거린다.) 
[명구] 한가지 이의가 있구먼유? 
[원사장] 말씀하시죠 --- 

[봉필] 아이고 --- 골치야 --- [명구] 만약 까치마을의 해변가를 해수욕장으로 개선을 하신다면 양식장과

고깃배는 어떻게 처리할것이며 생선 건조장은 어떻게 하시겠는것인지유? 결국 
어촌인 우리마을이 어업을 포기해야 된다 요말씀이 아니신지유? 
[페이지] 033 
[원사장] 지금 젊은이가 아주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셨읍니다. 
[봉필] 저눔이 태권초단은 땃거든 --- 

[원사장] 허나 이러분들의 어업에 의한 소득은 어선의 수리비와 연료비

노동력에 비하여 분명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더구나 요즘과 
같은 태풍에 의해 전체 보유 어선의 팔십프로가 파손이 된 상태에서 그 
보수비까지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이 어협이나 
군청에서 받는 융자금까지 합치면 앞으로 여러분들이 감당해야될 부채는 
엄청납니다. 
[명구] 그렇다면 방파제와 어선장비에 투자를 하시는것이 우리마을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허는디유 

[원사장] 그것은 밑빠진 독에 불붓는 격이나 다름이 없읍니다. 더구나 근자와

같은 천재지변의 반복으로 조업 능력과 주민의 사기는 어느때보다 심각한 상태에 
있읍니다. 
[봉필] 주민들이 사기를 쳤다는 애긴감? 
[이장] 어허 자네는 좀 잠자코 있어 --- 

[명구] 이곳이 국내유수의 관광지가 되면 주인은 누가 되는 것인가유?

[원사장] 지금 뭐라고 말씀 하셨읍니까? 
[페이지] 034 
[명구] 결국 우리는 종이나 심부름꾼이고 도회지 돈많은 사람들이 주인이 
될게아니냐 이런 말씀입니다. 그리구 언젠가는 타지역사람들의 등쌀에 우린 
고향에서 쫑겨나게 될것이고 --- 

[봉필] 하여간 저눔은 생각하는 것마다 싸가지가 없다니께 --- [명구] 복주산에 관광호텔이 서는 대신 우리는 서낭당을 잃게되였읍니다.

[원사장] 지금 말씀 하신 젊은이는 지금도 서낭당의 가치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읍니다. 
[명구] 자꾸 어렵게 물으시느데, 내 말씀은 기왕에 동네를 지켜온 복주산과 
서낭당을 사셨다면 새로운 공장이나 목장, 과수원을 세운다면 몰라도 외지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와 먹구 노는 호텔같은 것이 서는 것은 마땅치 못하단 
말씀입니다. 
[원사장] 여러분들의 고향은 가난입니다. 그리고 질병과 고통 뿐 입니다. 

맹목적인 고향에 대한 애착은 아주 위험합니다. 더구나 서낭당터는 바로

여러분에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고, 무작정 앉아서 기다리는 의타심만 
길러 주었읍니다. 의타심은 바로 까치마을의 고질 적인 가난의 원흉이었읍니다. 
[봉필] 박수 --- 

(사람들 원사장에 공감하여 웃는다)

[명구] (크게) 전부들 들어 보시요. 이제 철근 콘크리트 까치교를 통하여 우리 
마을에 무엇이 들어 올 것인지는 뻔한 이치 입니다. 
[페이지] 035 

여러분을 호텔 식당에서 설겆이나 할것이고 해수욕장 탈의장에 앉아

도시사람들 냄새나는 속옷이나 지키고 앉아 있을것이닝께 --- 보더라고 내말이 
거짓말인가 호텔과 식당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찌꺼기로 양식장은 망가지게 될 
것이고 동네 아이들은 도시사람들 구두나 딱고 있을것이니께! 거짓말이면 내 
열손구락에 장을 지질것이요! 어째들 정신을 못차린당가요! 

지금 웃음이 나올것이여?

[이장] 그렇다면 이사람아 명구자네가 우리마을이 잘살수 있는 묘수를 
짜내보란 말여 어째서 주둥이만 나블거리고 있당가 사람 환장하게 --- 

[어부들] 그려 이장님 말씀이 맞어!

[봉필] (선듯 나서며) 여러분들 제말씀좀 들어보소. 사람이나 동네나 잘되는 
기회는 늘상 있는것이 아닌것입니다. 

메뚜기도 한철이고 매미도 한계절인것요. 제발로 걸어들어온 복비가지

차버릴것은 없는것이닝께 --- 생각들 해보시요 우리가 바라는것은 잘먹구 잘사는 
것이지 허리띠 졸라메고 사낭당에 절하는 것은 아니지 않것읍니까? 
[일동] 옳소! 
[페이지] 036 
[봉필] 우리마을을 위해서 자선사업을 하시것다는디 어째서 고록콤 말이 
많테유? 배웠다는 눔이 저지경이니께 우리마을이 이꼴이 되것이 아니것오? 
[명구] 아것보더라고 --- ! 
[봉필] 그려 보고 있다. 이 싸가지가 반됫박도 안되는 놈아 --- 

[명구] 싸가지를 가마니로 지고있는놈아 그건 자선사업아 아니고 투자라고

하는것이여 알것냐? 투자란것이 뭣인지 알것냐? 일언이 페지허구 돈놓고 
돈먹자는 속셈인것이여 이거적을 두겹으로 쓸놈아 --- 까치교는 우리들이 놓을 
수 있는것이다. 내가 군청에 알아봤더니 마을단위로 모래가마니와 노동력을 
투입하면 목재값은 곧장 융자 해주겠다고 하더라 

[어부들] 나무 다라는 홍수지면 또 떠내려가지 않것남 --- [명구] 얼마던지 튼튼히 세울수 있을것이구먼유 [봉필] 여러분 들어보시요. 우리동네가 관광지가 된다 가정하면 전기들어오고

전화연결되고 읍내 뻐스와 화물츄럭들이 동네앞아당까지 들어올것입니다. 어째서 
그걸마다 한데유? 애들은 뻐스타고 읍내학교까지 통학하게 될것이고 기름때 

[페이지] 037 묻히고 발동선 수리안해도 지금보담 훨씬 수입이 좋을것이니께 --- 여러분들

그걸 마다 하시것오? 
[이장] 봉필이말이 백번 맞어 --- 

[봉필] 내가 이래두 웅변대회나가서 장려상 받은놈이여 --- [공비서] 자그럼 오늘 공청회는 이것으로 끝마치겠읍니다. 사장님께서 원로에

피곤하시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다시 자리를 바련하겠읍니다. 특별히 오늘 
사장님께서 동네 어른 여러분들의 깊은 배려에 사은하는 뜻으로 면사무소 옆 
명일옥에 간단한 음식과 약주를 준비했으니 한사람도 빠짐없이 참가해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이장] 자 모두 원사장님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뜻으로 명일옥으로 가더라고 

--- [봉필] 사장님이 자리를 뜨시네유. 박수 ---!

(원사장을 필두로 모두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텅빈 밤바다를 배경으로 
명구와 영숙이만 남아있다. 망막한 어둠속에서 파도소리만 황량하게 되풀이되고 
멀리 수평선상에서 들려오는 상선의 뱃고동소리가 해풍을 타고 

[페이지] 038 엷게 들려온다)

[영숙] 그만 들어가셔유 --- 

[명구] --- [영숙] 뭐하자구 먹히지두 않는 말대꾸를 한대유 --- [명구] --- [영숙] 살잘것다구 그라는디 내싸두지 쫑아댕기며 시비할것 뭐있어유 [명구] 미역허구 생선만 썩는게 아니구 성질머리들이 전부 썩은 것이여 --- [영숙] 모기 뜯겨유 --- !

[명구] (고함) 모두가 배내병신들이라니께 --- ! 
[영숙] (설움) 병신동네에선 병신행실 하는 수밖에 더 있슈? 
[명구] 뭐여? 
[영숙] 어째 성질이 고록콤 유별나데유! 
[명구] 내가 오록콤 물러설줄 아남 전부 작살을 내고 말것이니께 

[영숙] 어매 살인나것네 --- [명구] (시들은 미역을 움켜쥐고) 요록콤 시들어 죽을성 싶은감? 어림반푼어치두 없는 소리를 하덜말어!

[페이지] 039 
[영숙] 누가 뭐랬간디 혼자 성내고 야단이애유 --- 

[명구] 영숙이두 마찬가지여 그래두 여기선 배운 여잔디 어째서 꿀먹은

벙어리매양 서낭당 팔리고 고깃배 쫑겨나게 생겼는디 가만 있었디야? 
[영숙] 지지배가 뭔힘이 있어유 --- 

[명구] 그래서 달래년 봉필이놈하고 붙었는디 박수치고 있었구먼?

[영숙] 누가 박수를 쳤대유? 
[명구] 두둘겨 패서라두 말렷어야 될것이 아녀! 
[영숙] 봉필이 성깔 알면서 그래유? 
[명구] 문제는 모두 저쳐뻐린것이여 --- ! 
[영숙] 명구씨두 이내 지쳐버릴것인디 뭘그래유! 
[명구] 지금 성질 돋구고 있는것이여? 
[영숙] 워째 말끝마다 꼬트리잡고 늘어진대유? 
[명구] 모두 볼상사나우니께 싸게 들어가 버리라구 --- 

[영숙] 안들어가유!

[명구] 쓰잘데 없는 참견말고 없어져 버리라니께! 
[영숙] 내가 참견 안하믄 누가 하것슈 --- 

[페이지] 040

[명구] 뭐여? 
[영숙] 내가 눈에 안보였으면 속이 시원하것시유 정말? 
[명구] 뭐라구 --- ? 
[영숙] 군대갔다오면 눈에 보이는것이 없는것이어유? 내가 바닷물에라도 빠져 
뒤졌으면 좋것시유! 
[명구] 누가 죽으랴? --- 

[영숙] 뭣이 그렇게 혼자서 잘낫대유, 참견하는 쪽쪽 망신만 당하믄서 --- [명구] 망신이 아녀 이를갈고 있는것이여!

[영숙]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고 안해유? 
[명구] 남의일에 상관하덜 말어 

[영숙] 혼자서 실컷 모기뜯기고 앉아있어유 그람! (움직인다)

[명구] 누가 겁나남 --- 

[영숙] 물귀신이 나올틴디 겁안나유 --- [명구] 그라니께 후라쉬는 주고 가라고!

[영숙] (되돌아와) 여기 있어유 --- 

[명구] --- [페이지] 041

[영숙] 여기 있다니께유 --- ! 
[명구] 자기가 직접 비쳐주면 손목아지 분질러지나? 
[영숙] 내손목아지 만져보기나 한것같네유 --- 

[명구] 뭐여?

[영숙] 그렇게 쉽게 분질러질 손목아지 같아유 

[명구] 아이고 --- 꼭 모기다리 반해가지구 --- [영숙] 이런 모기다리 봤시유? 봤시유? 봤시유?

[명구] (영숙의 손목을 움켜잡고) 아이고 한번에 뚝소리 나것구먼 --- 

[영숙] 참나무 부지갱이 보담 강할것이네유 --- [명구] 고무로 만든 참나무도 있남 (손목을 슬그러미 놓는다)

[영숙] 못 꺽것지유? 
[명구] 이제 동네사람들이 돈 냄새를 맡았으닝께 사죽을 못 쓰고 덤빌것이구먼 
봉필이 놈이 노린것이 바로 그것이며 제땅 팔아먹기 위해서 동네 사람들 맘에 
불을 지르는 것이여 이제 보더라구 전부 원사장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 
다닐테니께 

[영숙] 동네가 발전죈다는디 누가 반대하것시유?

[명구] 어째 그걸 자꾸 발전이라구 말한디야? 땅값오른다고 그 이득이 전부 
우리한테 오느것이 아녀 그 사람들 싸게 땅을 사서 땅값올리고 다시 팔자는 
속셈인디 돈 많은 사람들 등살에 우리같은건 하루 아침에 거적을 쓸 것이니께 
보더라구 --- 

[페이지] 042

[영숙] 그럼 땅을 안팔면 될꺼 아녀유. 
[명구] 웃돈 준다는디 누가 마다하겠어 전부 봉필이놈처럼 쓸개 빼주는 꼴이 
될틴디 --- 

[영숙] 어쩌면 좋것시유 그람?

[명구] 그라니께 삽들고 나서서 일을 해야되는 거여 우선 까치교부터 놓고 
읍내에서 자꾸 자동차나 재료를 끌어 들여야 되는 거란 말여 

[영숙] 그것이 하루 아침에 되것시유.

[명구] 제에미! 어둡고 안보이니께 그것이 끝장인가 싶지만 날은 언제고 새는 
법이여! 
[영숙] (고함) 병나유. 소리지르지 말어유! 
[명구] (울음과 절규) 병아리두 알껍질 깨고 나오는것인디 --- 사람이 
못할것이 뭐 있는가? 제에미! 굶어서 죽을놈은 없는것이여! 살자고 작심허고 
서로가 똥창내보이고 손잡으면 되는거 아니것어? 제에미! (명구의 소리는 
밤바다에 공허하게 펴져 나간다) 
[영숙] (흐느낌으로) 그렇게 혼자서 비척거리지 말고 모기다리만한 
내손목아지라도 잡아유! 잡으면 될거 아녀유 --- 워째 혼자서 비척댄대유! 

병신처럼 왜 혼자 그래유! (박혔던 뚝과 같이 영숙의 울음은 어린애처럼

밤바다에 울려 퍼진다. 암전) 
[페이지] 043 
[장] 제 4 장 

(바다가 멀리 내다 보이는 허름한 술집. 두무더기의 술상이 양쪽에 벌어졌고 한쪽은 원사장과 공비서 은밀하게 얘기를

주고 받는다.) 
[원사장] 그 젊은 놈 때문에 깨름직한데 --- 

[공비서] 야 니가 자꾸 말을 더듬으니까 그렇찮어 [원사장] 엉뚱한 질문을 자꾸 하는데 어떻게 하니?

[공비서] 에라 임마 그래갖구 무슨 돈을 번다구 그래 --- 

[원사장] 아따 식은 땀나서 혼났네 --- [공비서] 동네 사람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어 그러니까 빨리빨리 챙겨서

날라야 돼. 
[원사장] 땅 매입하겠다는 쪽에서 서낭당까지 없애달라는거 너두 알쟎아 임마. 
[공비서] 그러니까 봉필이놈 자꾸 겁줘서 지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야 
된다이거야. 
[원사장] 등신같은놈, 왜 이번 건수는 이렇게 까다롭니? 
[공비서] 그대신 떨어지는 콩가루가 많찮아. 
[원사장] 계약금으로 준 어음 들통나기전에 손 털어야 된다. 
[공비서] 쉬! 사람들이 온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 들어온다) 
[원사장] 아주 맹랑한 젊은이때문에 한참 섭섭했읍니다. 
[이장] 원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깐것이 뛰어야 벼룩이제 별거 있것남유? 
[공비서] 사장님의 갸륵한 호의를 그런식으로 받는다면 정말 다시 

[페이지] 044 생각해야 될것같읍니다.

[봉필] 앗따 황소 볼기짝에 쇠파리하나 앉은것인디 어째 그렇게 상심하신대유. 

그놈이 본시 학교때부터 사사건건이 쌍지팽이 짚고 나서는 성질이라서 그라제 --- 뒤끝은 없는 놈이니께 절대 걱정하덜 마십시요.

[원사장] 괜히 순진한 동네사람들 충동질해서 서낭당을 지켜야겠다 뭐다하고 
떠들면 다된밥에 재뿌리는 격이란 말입니다. 
[이장] 그녀석이 성깔은 있어 --- 

[봉필] 누군 성깔 없나유. 점잖은 분들이 계시니께 참았제. 안그랬으면 이단

옆치기로 대갈팍을 팍 갯벌에 박아 뻐리는건디 아이고 성질 참느라고 어금니가 
다 떨리데 --- 

[원사장] 어쨌던 순탄하게 진행되던 사업에 반대하는 여론이 생겼다는건 쉽게

웃어 넘길일이 아닙니다. 
[이장] 제깐놈이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것이 아니것읍니까요. 헌디 갸가 
은근히 질기디가 있어. 죽은 지 아버지 닮아서 --- 

[봉필] 에헤 이장님 쓰잘데 없은 말씀 하시에유.

[이장] 연판장 갖구 쉽게 될일이 아니니께 하는 말이 아닌 감. 
[봉필] 건 뭔 말씀이래유? 
[이장] 복주산은 봉필이 자네산이라 쉽게 매매가 되았지만 서낭당은 마 

[페이지] 0450 을에 공동 재산이 아닌가 이 사람아 --- [봉필] 그래서 연판장에 이백원짜리 목도장을 파서 콱콱찍는거 아닌가요 --- [이장] 흥분하덜말고 잘새겨들어 --- 그게 뭔말인고하니 서낭당은 군청에

등록이 되있는 재산이여! 
[공비서] 쉽게 말하면로 지방 문화재라 이거구먼 --- 

[이장] 그라니께 연판장갖구 될일이 아니라 군수나 도지사 허가가 있어야

허믈던지 밀던지 할수 있다는 말이여! 
[봉필] 건 뭔소리 소리래유 일 다꾸려놨는데? 
[이장] --- (다른 술판 손림들 어울려 나간다) 
[봉필] 어째 말이 없어? 
[원사장] 군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된다 이말씀입니까? 
[이장] 네! 
[공비서] 서낭당이 지방문화재란 애긴 처음 듣는데요? 
[원사장] 가만있어 일리는 있는 애기야 --- 

[이장] 가왕에 이렇게 된것인디 호텔인가 뭔가를 쬐끔 삐딱하게 서낭당

건디리지 않고 옆으로 세우면 안되는 것읍니까? 
[봉필] 앗따 호텔이 무슨 예비군 모장감유 비딱하게 옆으로 세우게 --- 

[페이지] 046

[이장] 솔직히 말씀드리면 군청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우니 도청 문화공보실 
가보라고 하대유 

[공비서] 그렇다면 철거허가가 나올 리가 없겠구먼 --- [봉필] 아이고 아장님두 어째 그 연판장을 뭔 연애편지라고 여태끼고 있어대유 --- 도청 빽줄 잡을랴믄 솔찮히 힘들텐디--- [이장] (취기가 올라) 방법은 --- [원사장] 우리의 사업계획을 처움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게 아닐까요?

[봉필] 어매 --- 부드럽게 나가다가 징한말씀하시네유 우덜이 처리할팅께 
사장님은 염려 마시라니께유 --- 

[공비서] 이장님 조금전에 방법이라고 말씀 하신것은 --- ?

[이장] 벼락을 맞던지, 홍수에 떠밀려가 버리던지, 산불에 타버리던지 하면 
간단한것이여 --- 

[원사장] 천재지변에 의한 손실이다 이거로군 --- [공비서] 합법적인 철거라 --- !?

[이장] 만약에 명구놈이 이사실을 알면 꼬투리 잡히는 것이여! 
[원사장] 이런 사태가 있을것 같애서 일차 중도금까지만 치는 것입니다. 
[페이지] 047 
[이장] 봉필이 자네가 머리좀 잘 써야 되겄네 --- 

[봉필] 사장님 제가 받을 잔금을 반이나 남았읍니다. --- [공비서] 그건 사낭당터까지 완전히 양도가 됐을 경우가 아니겠읍니까?

[봉필] 겨우 똥뒷깐만한 땅인디 --- 

[공비서] 그자리가 바로 호텔의 중심, 베란다가 되는 위치거든요.

[봉필] 어째 돼지우리깐 같은것이 홍수가나두 부서지덜 않어 --- 하여간 
옛날사람들 두엄깐하나 짓는대두 어지간히 깐깐하게 지으니께 --- 

[원사장] 호텔없이 해수욕장만 개장하는것두 구색이 맞지 않는일이고 --- [봉필] 그깐거 방파제 옆에다 보록구로 쭉길게 여인숙 같은거 지어두 수입은

솔찮을텐디 --- 

[공비서] 우리 피차 싼술먹구 취하지 맙시다 --- [봉필] 분화잰가 뭔가 하는 소리에 술끼가 뒤통수 위까지 확 올라오네 [공비서] 아까 사장님께서 천재지변이라고 말씀 하셨잖읍니까 --- [이장] 봉필이가 정신차려야 쓰것어 --- [봉필] 어째서 내터에 있는집 내맘대루 못헌디야 --- [원사장] 매매계약하고 동네에 연판장 돌릴때 뭔가 조치가 있었어야 [페이지] 048 되는 게 아니였을까요 ---!

[이장] 역시 시골사람이라 아둔한게유 --- 

[공비서] 저희 회사의 운영방침이 불합리하게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사장] (일어나며) 서울레 갔다가 아틀후에 다시 들어오겠읍니다. 
[공비서] 현명한 뒷처리 부탁드립니다. 땅문서는 저희쪽으로 이미 명의가 
넘어왔으니까 --- 

[봉필] (취기가 오른다) 그라니께 잔금은 --- ?

[공비서] 취했구먼 이친구 --- 

(원사장과 공비서 바다 반대편 쪽으로 사라진다. 달래가 술집의 뒷쪽에서 나와

술집안을 기웃거리다 봉필이가 있는것을 확인하고 저만치 선창의 시멘트 
말뚝위에앉는다) 
[주모] 술값은 어치게 되는 것이라요? 
[이장] 원사장님 앞으로 올리라니께 그라네. 
[주모] 어째 먹는 쪽쪽 외상이라요? 
[이장] 어허 서울 양반들이 치사하게스리 술값 떼어먹을성 싶은가 

[주모] 그동안 먹은 외상술값이 많으니께 안그라요?

[이장] 현찰로 싹 갚아 버릴것이니께 

[주모] 아이고매 이러다가 꼼짝없이 사기당하는거 아닌지 모르것네 [이장] 엇따 원 주둥이를 고록콤 놀린당가 --- (봉필이에게) 이 사람아, 자네 돈보따리 날라가게 생겼어 [페이지] 049

[봉필] (노래) 보일듯이 --- 보일듯이 --- 보이지않는 --- 따옥. 따옥 --- 

[이장] 따옥이가 아니라 서낭당 이 사람아 --- [봉필] 특주먹으면 원판 술빨이 너무걸어 --- [이장] (봉필을 일으켜 팔짱을 끼면서) 밤이 깊었는디 나가자고 --- (이장과

봉필 술집 밖으로 나와 선창에 선다. 파도 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자 그럼 나는 
이쪽으로 가것네 --- 

[봉필] (비척거리며) 이장님 빠이! 빠이!

[이장] (사라지며) 어허! 헛다리 짚어 개굴창에 빠지것구먼 --- 

[봉필] 내가 어떤놈인디 헛다리 짚어 개굴창에 빠져유 --- [이장] 하여튼 조심허랑께 --- (사라진다)

[봉필] (적막속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헛다리 짚어 개굴창 --- !? 헛다리 짚어 
개굴창이라 --- !? 뭔가 내용이 들어있네 --- (달래가 쭈구리고 앉아 부동의 
자세로 봉필을 응시하고 있다. 봉필 비척거리며 걷다가 선창끝 부분에서 
처량하게 앉아있는 달래를 발견한다) 어매 --- 이게 누구랴? 
[페이지] 050 
[달래] --- 

[봉필] 언제부터 거기 쪼글트리고 있었는가?

[달래] --- 

[봉필] 워째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고 있디야?

[달래] 뭣담시 오빠하고 싸웠대유 --- ? 
[봉필] 명구 그놈 못쓰것대 --- 

[달래] 오빠가 눈치채믄 큰일이여유 -- [봉필] 그눔이 장차 매부 처남사이가 될틴디 --- [달래] 나인자 오빠한테 맞아 죽게 생겼어유!

[봉필] 그럼 우리집으로 왔쁘러! 
[달래] 어치케 혼례두 안허구 같이 산대유 동네 망신스럽게 --- 

[봉필] 그럼 두더니매양 땅속에 들어가 살것이여?

[달래] 언제 서울 데려 갈것이어유? 
[봉필] 서낭당 매매가 끝나고 서울사람들헌티 잔금 받아야제 

[달래] 그놈의 잔금인가 뭔가는 워째 매일 내일 내일 한대유!

[봉필] 칼자루 쥔놈은 저쪽인디 어떻게 할것이여 --- ? 
[페이지] 051 
[달래] 이동네서 애나믄 나 몰매맞어 죽을것이어유 --- 

[봉필] 누군 여기서 살고싶어서 사는가. 어째서 참기름 냄새맡는 강아지처럼

자꾸 보챈디야 --- ! 
[달래] 뱃속의 애는 커가는디 하루 하루가 편컷시유? 
[봉필] 봇따리고 싸질머지고있다가 잔금 받으면 냅다 튀면 되는것인디 뭔 
걱정이랴? 
[달래] 어짜자구 엠한사람 못된짓히서 요록콤 고생을 시킨대유 --- 

[봉필] 어매 --- 싸가지 없이 말하는것보소 --- 못된짓하다니? 그것이 나혼자

좋아서 헌짓이여 --- ? 

특주가 탁 깨버리네 --- [달래] 그람 나좋으라고 한짓이여유?

[봉필] 에헤 --- 여자가 입구질게 그런거 따지는것이 아니다! 
[달래] 뭔남자가 일을 저질렀으면 뒷수습을 책임져야 할것이 아녀유! 워째 
꽂감빼먹은 할망구매양으루 깜깜 소식이래유? 
[봉필] 그라니께 서울가서 살림한번 쩍지께 차리자는것이 아녀! 내가 사랑없이 
육체적으로만 여자 건드리는 남잔지 아남 --- ? 
[페이지] 052 
[달래] 고속뻐스타면 네시간이라는디 어째 서울 가는것이 달나라 가는것보다 
더 어려워유? 
[봉필] 술먹은거 아깝게 다 깨버리네 --- 

[달래] 좌우당간 수일내 결판내덜 못허믄 농약이라두 먹구 죽어

버릴것이니께유 --- 

[봉필] 농약 잘못 먹으면 괜히 병신만 되는기여. 엠헌놈 영창가고 --- [달래] 사랑. 사랑하는 사람이 어째 겁이 고록콤 많테유?

[봉필] 앗따! 무슨 해변의 아나운선가 그렇게 말이 많게 --- ? 
[달래] 여기만 떠날수 있다믄 뭔짓이든 하것슈! 
[봉필] 정말이여? 
[달래] 도둑질말고는 다 허것시유 정말! 
[봉필] 서낭당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져야 내가 떠날것이니께 --- 

[달래] 뭔소리래유!

[봉필] (고함) 서낭당이 없어져야 잔금을 받을 수 있다니께 그러네 --- ! 
[달래] 불이래두 싸지르면 될거 아녀유? 
[봉필] (가만히 달래를 보다가) 뭐여 --- ? 
[페이지] 053 
[달래] 그래야 하루 빨리 여길 떠날것이 아녀유! 
[봉필] 나두 여기 떠나구 싶은 맘은 백두산같어, 자꾸 보채덜 말어 

[달래] 그람 자작 서낭당을 없애믄 될거아녀유!

[봉필] 쉬! 조용히 히여 --- (암전) 
[페이지] 054 
[장] 제 5 장 

(복주산 중턱에 외롭게 서있는 서낭당

우거진 송림사이에 고색창연한 모습이 멀리 내려다 보이는 바다색깔과 
어울리는 구색을 갖추고 있다. 

매미와 산새소리 ; 초라한 행색의 토박이 윤노인이 서낭당앞에서 간절하게

치성을 올리고 있다) 
[윤노인] 성황님께 비옵니다. 

가난하고 병들어가는 우리 까치마을에 재앙을 걷어가 주옵시고 부디 자손만대

부귀영화 가사만성 다복을 내려 주옵소서 성황님께 소원 비니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성황님께 비옵니다. 

가난한 우리마을 풍년 풍어해주시고 못된 액운 떼어다가 남해바다에 띄우시고

수백시름 걷어다가 복주산에 묻어주옵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성황님께 
비옵니다. 
(축원이 끝나고 두손을 합장하여 머리끝에서 허리까지 깊히 깊히 치성할때 
명구가 들어온다.) 
[페이지] 055 
[명구] (어색하게) 영감님 --- 

[윤노인] 네가 여긴 어치게 왔냐?

[명구] 막상 없어진다고 하니께 자꾸 마지막으로 눈여겨 보고 싶대유. 
[윤노인] 앗때 그놈 천지개벽하것네 --- 

[명구] 눈 꽁댕이두 쳐다보니도 않던것이지만 --- 없어진다고 하니께 웬지

정이 가네유 --- 

[윤노인] 서낭당 팔아먹구 동네가 잘 될성 싶으냐 [명구] 영감님은 워째 가만히 계셨시유 [윤노인] 봉필이놈 농간예 이장이고 동네 사람들이고 전부 놀아나는디 늙은

낸들 어쩌것는가? 
[명구] 그래두 어르신네들 책임이 크구만유 

[윤노인] 살기가 어려워서 그랬다는 것두 말짱 거짓말이여. 세상을 공짜루

쉽게 살려구 하니께 이꼴이 된것이다. 제사 지내는 것두 지성이고 열성인것이여 
맘들이 거칠고 메말라가니께 제지내는 것두 귀찮아진 것이구먼 --- 

그저 떼돈벌어 벼락부자 되자는 심뽀가 늘어가는디 여기와서 소원빌 병신이

어디 있겄나. 
[명구] 옛날에 말씀입니다. 여기서 소원을 빌면 그것이 성취가 되였나요. 
[윤노인] 목욕제개하고 제지내는 사람은 결과를 따지는 것이 아니여. 소원빌면 
그것으로 끝장이여 --- 

제지네는 사람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냐 --- 동네가 파산이 나고 쑥대밭이

돼야도 누구하나 시키는 사람없어도 모두 여기 모여 삼일 낮밤을 빌고 또 
빌었다. 그러니께 서로가 맘은 하나로 묶어지지 않았것냐 --- 

[페이지] 056

[명구] 그란디 언제부터 제지내는 것이 없어졌대유? 
[윤노인] 해가 갈수록 젊은것들은 늙은이 알기를 썩은 조기 대갱이 처럼 
아니께 미신이다. 뭣이다하고 네놈처럼 늙은이 얘길 귓전으로 흘려보내니께 
서낭당이 똥칫간처럼 되버렸고 끝내는 썩은 오징어 맹이루 싼값에 팔리지 않았냐 

--- 벼락이 소낙비처럼 줄줄이 쏟아질것이다.

[명구] 지말씀은 옛날 여기서 제를 지낼때같이 사람들 맘이 하나로 엮어질 
수가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감님 --- 모래처럼 사각거리덜 말고 

[윤노인] 서낭당이 개값에 팔렸는디 어떻게 인심이 되살아 나것는가.

[명구] 아직은 서낭당이 있으닝께 다시 한번 제를 지내면 안되것시유. 
[윤노인] 누가 돈을 준다고 하기전에 언놈이 여기에 낮짝을 내밀것냐? 
[명구] 지 생각에는 이 서낭당에서부터 뭔가 실마리를 풀어야 되것다는 
말씀입니다. 옛날처럼 --- 

[윤노인] 옛날에는 --- 느그 아버지 살아있을때만 혀도 --- 오월단오, 칠월칠석, 대보름, 추석날엔 --- 온 동리사람들이 전부 한뭉치가 되어 여길

올라왔었제 --- 서낭제 지내고 북향소지 올린뒤에 수육제물 나눠먹고 방앗깐집 
마당에다 허연 채얄처놓고서 동네 굿을 하였는디 --- 

(풍악소리가 작게 되살아난다) 사물패는 농약치고 아이들은 벅구돌리고

기집들은 소고치며 황용, 청용 앞세우고 서로얼려 신명나게 싸움허고 --- 그때는 
온동네가 하나였다. 

처녀총각, 홀애비, 청산과부꺼정 어울려 한패가 되엇으닝께 --- 그런때가

있었는디 --- 

[페이지] 057

[명구] 용놀이가 있었나유 우리동네에 --- ? 
[윤노인] 청용, 황용 두마리를 비단천에 색칠허고 명주실에 물들여 용비늘 
새기여서 처녀총각 두패되어 용싸움을 하였는디 --- 일년 재앙 막는다고 
남녀노소가 전부 용꼬리 잡고 맴돌았제 --- 온동네가 하나가 되어 똘똘뭉쳐 
놀았으닝께 --- 성황님이 기뻐 하고 용왕님이 기뻐했제 --- 

[명구] 용춤이라 --- !?

[윤노인] 그리여. 모두가 한패가 돼서 똘똘 뭉친것이여. 옛날에는. 
(암전) 
[페이지] 058 
[장] 제 6 장 

(부서진 까치교, 원목과 판자로 세워진 다리가 꺽어지고 뒤틀려 있다. 명구와

영숙 삽과 괭이를 들고 부서진 나무토막들을 걷어내고 있다) 
[영숙] 뭔동네 인심이 이렇탕가유 --- 누구하나 눈꽁땡이로 쳐다보는 사람이 
없구먼유 

[명구] 봉필이놈이 설치고 다니니께 전부 겁이나서 그란거여 --- [영숙] 동네에 사람두 많은디 워째 봉필씨 하나를 못당한대유?

[명구] 돈앞에 조조장사가 있것어 --- 시멘트 다리가서면 집집마다 돈뭉치가 
떨어질지 알고들 봉필이놈 꽁무니만 눈치보고 따라 다니는거여. 
[영숙] 누군가 뒤에서 끄나풀 잡고 조종하는 것이 아녀유? 
[명구] 허파에 바람들어간 이장인가 삼장인가 하는 작자의 흉계여 서울사람들 
헌티 돈 몇푼 받았다는 소문이 있대 --- 

[영숙] 돈이믄 쓸개두 빼주것구먼유 --- [명구] 쓸개가 아니라 머리까지 짤라준것이구먼 --- [페이지] 059

(명구와 영숙 리어카 위에 빈가마니에 모래를 담어 싣는다. 봉필을 선두로 
이장과 동네 사람들이 몰려 나온다.) 
[이장] 이 사람아 자네 공사를 중지해야 쓰것이 --- 

[명구] 아무도 명령할 사람 없시유.

[이장] 오늘 청년회와 어촌계에서 걸정을 했네. 
[명구] 뭔 결정을 했는 가요? 
[이장] 우리 동네에 번영회를 조직하기루 --- 

[명구] 누가 뭐라구 합디까요?

[봉필] 자네를 회장으로 추천을 했단말여 --- 

[명구] 회장?

[이장] 단 한가지 조건이 있네, 자네가 하고 있는 이 모래가마니 공사를 중지 
한다는 조건일세. 
[명구] 번영회를 만들어 원사장인가 투사장인가 하는 사람 사업을 협조하라는 
것이것쥬? 
[봉필] 이왕이면 조직적으로 우리 동네를 개척하자는 것이여. 
[명구] 조직적으로 동네를 팔아먹자는 것이겠구먼. 
[봉필] 너는 어째 말을 꽤배기 맹이루 베베 틀어서 하냐 

[명구] 동네 번영회가 아니라 원사장 환영회로구먼 --- [이장] 이 사람아 어차피 결정난 일이여 전부 허가받고 하는 사업인디 우리가

어쩌겠나. 
[명구] 차라리 이 마을에 공장을 세운다면 참것시유 --- 있는 사람들의 돈은 
꼭 메뚜기 같아서 한번 쏟아져 들어오면 나둥에 풀 한포기 남기지 않고 말짱 
걷어가는 것이라고 하대 

[페이지] 060 유. 도시사람이 와서 노는 장소가 된다면 우린 필시 여길 쫑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땅값은 올리려구 우릴 가만히 놔두것슈 낭중에 그걸 뭔 수로 
막는당리유? 
[이장] 이것봐 세상은 변하고 있구먼 우리동네만 낮잠을 자고 있었는지도 
몰라. 낡은 배를 끌고 언제죽을지 모르는 바닷에 나가 생사를 거는것 보다 좋은 
시설과 위생적인 건물에서 소득을 올리고 사는것도 나쁠 것은 없는 것이여. 
[명구] 나중에 후회하느니 지금 배고픈 거 참고 지키자는 것입니다. 허가 
받어서 국유지를 매입했다고 하지만 주민들이 반대하면 당국에서도 다시 고려를 
할 것이구먼유. 이런때 연판장 돌리는 것이 번영회도 동네 지키는데 앞장서야 
하는것이구먼유 

[이장] 이미 측량이 다끝나지 않았는가.

[명구] 이땅에 주인은 우리여유 --- 우리가 반대하는디 누가 우리 생계를 걷어 
가것슈. 주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정부의 시책이라고 하드만유 --- 

[봉필] 우린 이미 결정을 해쁘렸다. 그랑께 이제 번영회에 들어와서 니가

앞장을 서라. 회장되는것두 쉬운것이 아니다. 내가 강력하게 추천했으니께 

[명구] 난 사절하겠네 --- [봉필] 동네를 생각해야 한다. 이놈아 어째 너만 생각하느냐.

[명구] 나혼자 건너다리려구 까치교 놓고 있는 것인지 아남. 
[페이지] 061 
[이장] 청년 회원들이 모래 가마니 전부 철거하기루 했응께 그렇게 알어 

[명구] 뭐여?

[봉필] 번영회의 결정사항이니께 합법적인 철거여 --- 

[명구] 모래 가마니에 손만대봐 전부 손목아지를 분질러 놓을태니께.

[봉필] 청년회 사람들은 공일인감 --- 

[명구] 해볼테면 해봐 --- [이장] 이것봐 자네담시 원사장님의 사업을 지연시키면 곤란하단 말여. 그러쟎아도 몹씨 불쾌하게 생각하고 계시는디 --- 군청에다 고발하면 자네는

당장에 쇠고랑이여 --- 

[명구] 그라니께 우리 모두 함께 --- 동네의 의견으로 반대하자는 거

아닙니까. 
[봉필] 이 동네에서 자네 한사람 빼고 모두 찬성하는디 어쩌것는가? 

민주주의는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학교때 안배웠는가 --- [명구] 이것은 꼭 나침판 없는 배 같구면 --- 선장두 없구 --- [봉필] 선장이 없다니 이장님 들으시면 섭섭하게 그게 뭔소린가--- [이장] 이떻게 하겠는가? 우리 번영회에 회장으로 나서지 않겠는가?

[명구] 그만 두겠다고 말씀드렸잖남유. 
[이장] 할 수 없구먼 --- (청년들에게) 모래 가마니 철거해 버리게. 
[명구] (덤비며) 안되여! 
[페이지] 062 
(동네 청년들 명구를 넘어트린다. 그리고 리어카위의 모래가마니를 
썰아버린다. 
[이장] 저쪽에 가서 쌓놓은 것두 전부 썰아버리게, --- (청년들 몰려나간다.) 
[봉필] 필시 이런꼴을 당할 줄 알았다 --- 세상은 변하고 있는것이여. 
[명구] 우리는 안변해도 되는 것이다. 사람이 변하면 안되는 것이여, 알것냐? 
(봉필과 이장이 나간다. 명구 땅에 엎드려 흐느껴 운다) 
[영숙] (갑자기) 일어나유! 일어나라니께유! 
[명구] --- 

[영숙]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명구씨 따라서 일을 했지만 이제야 알것시유 [명구] 모두가 미친것이여!

[영숙] 땅바닥에 앞드려 있으면 뭐해유.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유 --- 

지면 안돼유 --- 동네 사람들 맘이 변한 것이니께 변하것이니께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끝까지 버리는 것이어유! 일어나라니께유. 
[명구]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찌 줏대까지 없어졌디야 --- 

[영숙] 삽들고 다시 시작하라니께유!

[명구] 아녀 이미 마음들이 돌처럼 굳어져 버린거여 --- 

[영숙] 그럼 이대로 물러가것슈?

[명구] 이제 할수 있는일은 한가지 밖에 없구먼 --- 

[영숙] 그것이 뭐인대유?

[페이지] 063 
[명구] 마음을 잡아 언는 것이여 --- 

[영숙] 마음이 무슨 곶감인가유 엮게 --- [명구]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할 수 있는것은 고집이 아니라

방법이 필요한기여 --- 

[영숙] 뭔 방법이 있것시유?

[명구] 영숙이 아버지가 얘기 햇던 용춤 --- 

[영숙] 용춤?

[명구] 우덜이 너무 성급했는지도 몰라 --- 

[영숙] 뭔소리래유?

[명구] 우리가 먼저해야 할것은 다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려 
놓는것이 아니것어 

[영숙] 한번 뒤틀린 사람들 마음을 어떻게 되돌린대유 [명구] 흩어진 마음들, 상처받은 마음들, 지쳐버린 마음을 한줄에 엮기 위해선

옛날의 굿판이 필요한것이여. 용춤이 머리에 떠오른 순간 난 그걸 깨달은 
것이여. 
[영숙] 사람이 죽어두 눈하나 깝짝하덜 않는 사람들 아녀유! 
[명구] 그러니께 쇠처럼 굳어버린 마음들을 물처럼 녹히구 그리구 그 물같은 
마음들이 한곳으로 흐르게끔 골을파고 물고를 터주는게 더 시급하다는 말이제 

[영숙] 난 뭘서린지 모르것네유!

[페이지] 064 
[명구] 물이 고이면 넘쳐서 흐르는 것이니께 물줄기를 다스리는 비법을 
생각하면 되는것이여! 
[영숙] 고것이 용춤과 뭔 관계가 있대유? 
[명구] 우리는 소리를 잊었구, 가락을 잊었구, 장단을 잊었어 --- 

우리마을에서 언제부터인가 용춤이 없어지면서 부터 사람들이 메말라가고

거칠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니께, 잊어버렸던 용춤을 통해서 거칠고 메마를 
사람들의 마음이 독아지 깨지듯 왕창 깨질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겄어! 
[영숙] 엉뚱한 생각아녀유? 
[명구] 흥과가락은 죽지않는것이니께 되살려 낼수가 있는것이여!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엮는 것이여! 하나, 둘, 셋 엮어진 힘은 점점 
강해질것이고 하나로 엮어진 힘이 시멘트나 쇳덩이보다 쎄다는걸 알게되면 
사람들은 그 힘을 믿을수 있을꺼여. 그려! 용춤을 다시 해보는 것이여. 용춤! 
[영숙] 모래 가마니는 어쩌구유? 
[명구] 그려! 이제 자신이 생겼구먼. 뭔가 매듭이 풀린것 같너니만 이제야 그 
끝을 찾았네 --- 영숙이 날 도와주지 않것어? 
[영숙] 내가 뭘해야 된대유? 
[페이지] 065 
[명구] 옛날 용춤에 사용했다는 황용과 청용의 모습을 찾아내는것이여! 사람의 
마음이란 소리를 듣고도동하는것이고 참새새끼 나는걸 보구두 깨우치는 것이니께 

--- [영숙] 참말로 용이 비상천 하겠네유! (암전)

[페이지] 066 
[장] 제 7 장 

(어느 특정한 장소, 한쪽에는 윤노인이 희미한 불빛아래서 주문을 외듯 용춤의 유래를 얘기하고

반대쪽에선 역시 작은 불빛 속에서 용의 얼굴과 몸체를 꾸미기 시작한다) 
[윤노인] 황용은 풍년을 기약하고 청용은 마을의 번영을 기약하는 황용 청용 
쌍용의 춤이라 --- 복주산 기슭 멍석바위아래 두용이 내려와 까치마을 굽어보매 
흉년귀신과 괴질귀신이 맞붙어 놀지를 않았것나 --- 두용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까치내를 훌쩍 넘어 까치마을 해변에 비래하여 두 잡귀를 내쫑는데 그 
놀이거동이 이러했것다 --- (타악기의 요란한 반주 무대후면 사막뒤에서 땅에 
넙죽 엎드려 있던 황용 청용 두마리가 머리를 하늘로 향하며 치솟아 오른다) 

황용은 우로 돌고 청용은 좌로 돌고, 꼬리와 꼬리를 맞붙듯이 맴돌아 노니는디 --- 가락장단 흥겨웁고 사물소리 유량한디 엉키고 설키며 을르며 돌아가는

춤사위가 얼수 절수 흥이 나것다! --- 

[페이지] 067

(두마리의 용이 심비스런 조명속에 맞물고 돌아가는 유연하며 흥이 솟는 
춤춘다) 흉년귀신은 물어뜯고 괴질귀신은 걷어차고 쌍용춤이 가관인디 까치마을 
남녀노소 이깨춤이 절로난다. 청용은 하늘에서 황용은 바다에서 해마다 노래하니 
마을이 번성하고 자손만대 부귀영화 이것이 용놀이의 유래가 아니것나 --- 

(용춤은 끝나고 조명이 현실 분위기를 돌아오면 윤노인과 쌍용은 사라지고

명구의 집마당에서 용의 형체를 만드는 평상위의 명구와 영숙이 모습이 
나타난다. 풀벌레 소리가 되살아나고 어두운 싸릿문 밖에서 달래가 고양아 
걸음으로 걸어 들어온다) 
[영숙] 달래야 --- !? 
[달래] --- 

[명구] 모두가 어려운 판국인디 살 궁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 원망할

것은 없는 것이고. 참고 견디는 것이여. 
[영숙] 명구씨 --- ? 
[명구] 너는 뭣 때문에 여수처럼 집안팎을 들락거리고 있다냐? 
[달래] --- 

[영숙] 뭔말을 그렇게 한대유!

[명구] 개굴창에 빠졌다치고 서로 손 맞잡아야 하는 거여. 
[페이지] 068 
[달래] 나두 악착같이 살것시유 --- 

[명구] 남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여. 남을 --- [달래] 그래서 이래구 댕기는 거예유.

[명구] 기껏 볼필이 놈 쫑아 다니는게 남 생각하는 것이냐? 니가 정신이 옳게 
백힌 계집애라면 벌써 청산햇을 것이다. 
[달래] 용대가리 껴앉고 앉았으믄 누가 밥먹여 준대유! 
[명구] 그람 밥얻어 처먹을라고 봉필이눔하고 붙었냐? 
[달래] 굶어서 부황나는것 보담 세끼밥 얻어먹고 편히 사는게 낫구먼유 --- 

[영숙] 달래야 --- !

[달래] 봉필씨 욕할꺼 하나두 없슈. 오빤 --- 

[명구] 잘하면 매부덕에 나도 출세좀 허것다 --- [달래] 머리 굴리고 수완부리느건 오빠보담 천배는 나유!

[명구] 옛날 같았으면 너 같은거 양잿물 먹어두 여러덩이 먹었을 것이다. 
[달래] 내가 왜죽어유. 살자구 태여 났는디 --- 

[명구] 너는 생각허는것이 싹수가 뉘런 년이여 --- [달래] 오빠 싹수는 강낭콩처럼 파란지 아슈?

[페이지] 069 
(명구 달래의 따귀를 때린다) 
[명구] 싸가지 없는것아. 싸게 없어져 쁘러! 
[달래] 왜 때려유? 왜때려유? 나락두 있는 사람헌티 시집가서 호의 호식 허믄 
안돼유? 삶은감자에 강냉이 밥먹고 부황나서 거위침 올라와 용트림허두 누구하나 
깡밥 던져주는 사람 없대유! 
[명구] 그라니께 봉필이 헌티 시집가서 삼시세끼 돼지 비게만 처먹고 
살란말이다! 
[달래] 나갈것이구먼유! 당장에 나갈것이유! 용대가리 끼고 혼자서 잘 살 
것이구먼 -- (방으로 들어간다) 
[명구] 용, 용 허덜말어! 내혼자 팔자 고치자고 이러는 것이 아녀, 온 동네에 
봉필이 놈허고 어같은것들이 있으니께 희망이 없는것이다. 용대가리가 우리덜 
밥맥여 주지는 않는다. 
(명구 모. 싸립문 앞에 와 있다) (달래 보따리 싸서 나온다.) (크게) 그렇치만 
온동네 사람들이 용꼬리 잡고 모두 함께 맴돌면 제미럴! 어떤 구멍이 둠필 
것이다. 알것냐? 뭔가 구멍이 뚫펴야 되지 않것냐 이것아! 
[명구] 어어 떠나거라 참말로 눈꼽만치도 미련없응께 

[달래] 난 그딴거 몰라유 (달래 울면서 뛰쳐 나간다.)

[페이지] 070 
[모] 어쩐 일이여? 어쩐 일이여? 달래야! 달래야! 
[명구] (고함) 내싸둬유! 내싸두라니께유! 
[모] 달래야. 달래야 (부르며 쫑아 나간다.) 
(암전) 
[페이지] 071 
[장] 제 8 장 

(바다가 보이는 하술한 술집. 먼저 강변과 같이 두세군데의 술상에 동네 유지들과 어부들이 시끄럽게 술잔을

기우리고 있다) 
[이장] 일언이 폐지허고 다리공사가 시작된다 이거여 --- 

[어부] 인자좀 숨통이 터지것구먼 [봉필] 시끄러. 시끄러. 시끄러! 내가 알기쉽게 욧점을 얘기하것네. 까치교가

완공이 된다. 만약에 이렇게 가정을 한다치면 읍내로 통하는 길이 배가 
가까워져! 그동안 낭구토막으로 대충 얼기설기 했기때문에 탈탈거리는 
경운기한대가 들어오기가 힘들었고 그라니께 물건값이 비싼건 사실이였어. 

여우오줌맹이루 보슬비만 쫴께와도 다리가 새집모양 부서져 처녀들까지 허벅지

내놓고 건너 다녔어. 그건 새발에 피여! 이놈의 동네에 네발달린 자동차는 
얼신도 안하니께 마빡까지게 힘들여 잡은 생선 조합에 내놓기도전에 전부 
썩어쁘렸어 --- 

이런차에 내가 --- 이 박봉필이가 작심허고 나선것이여! 내가 골에 라면

껍질만 들었다고 복주산 팔고 서낭당 내놨것는가? 
[페이지] 072 
[어부 B] 고생이 많았구먼 --- 

[봉필] 명구놈은 나보구 쓸개빠졌다고 했는디, 고놈은 심장에다 산소용접한

놈이여 --- 나도 골팍 썩히고 고민하고나서 결단을 내린것이여 인간 박봉필의 
양심하나는 밀가루 같이 하얀놈이여 --- 

[명구] (들어서면서) 밀가루 같은지 석탄같은지는 두고보면 알일이여!

[봉필] (마주보다가) 나 쟈보면 물렁뼈마다 신경통이도지니께 얘기여기서 
끝낼랍니다. 
[명구] 왜 개똥철학좀 더 떠벌이지 그려? 
[봉필] 나도 인자 인간같지 않은놈허구는 상대하지 않것어 

[명구] 싼술놓고 앉아서 순진한 사람들 선동하고 있구먼 --- [봉필] 그려 너혼자 장구치고 북치고 다하거라 난 술이나 먹을란다 [명구] 얘기 잘했구먼 장구치고 북치려구 여기 찾아왔네 [이장] 괜히 술좌석 파토내지 말여 --- [명구] 여러분들 약주드시는데 무례하게 뛰어들어 죄송합니다.

[봉필] 저눔이 알것은 알면서 저지랄이여 --- 

[명구] 제가 여기 찾아온것은 여러분들의 술좌석 흥미 깰라고 온것도 [페이지] 073 아니고 모래가마니 지고 까치다리 놓자고 온것도 아닙니다.

[봉필] 저눔은 늘 욧점을 간추리덜 못히여 --- 

[명구] 우리가 지금 잊어버리고 있는것이 있읍니다. 그건 까치다리나

복주산이나 서낭당 아닙니다. 그렇다고 절단난 고깃배를 얘기하는것두 아녀유! 

가믐때문에 망친 농사얘기도 아녀유!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왔응께 요모양 요꼴이란 말입니다. 
[봉필] 고록케 찾기 힘들면 읍내 지서에가서 분실 신고하여 --- 

[명구] 우리 까치마을에는 아주 귀중한 놀이가 있었읍니다. 노인들께서는 알고

계시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용춤놀이가 없어 졌읍니다. 
[봉필] 응 나왔으니께 산삼 웅담까지 나가것네 --- 

[명구] 옛날 어른들은 동네에 재앙이 들면 용탈을 메고 해변에 춤을추며

잡귀들을 쫑았읍니다. 
[이장] 그라니께 다시 용탈을 쓰고 놀자는 얘기여? 
[봉필] (박수) 그려 노는 거라면 좋다! 처움으로 호흡맞는 얘기허네 --- 

[페이지] 074

[명구] 지말씀은 술먹구 풍악올리구 놀자는 얘기가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될수 있는 잔치를 벌여 서로가 막혔던 맘구석을 피차 통하고 그래서 그 
힘으로 뭔가 하나를 이룰 구심점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어부 A] 이사람아 자네 돌아두 멧돌짝처럼 한참 돌았네. 지금 어느땐디 
용탈메고 놀자는것이여 먹구살기두 피곤헌디 뭔 신바람이 난다고 풍악을 
울리것는가? 
[명구] 노는것이 아니고 자립협동할수 있는 흥돋이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어부 B] 모래가마니 혼자서 지고 다니더니만 뭐가 자꾸 헷갈리는가? 엑끼 
아사람아! 누울자리보구 다리뻗으로구 했다는디 지금이 어떤지경인디 용탈을 
메고 뛰어 --- 

[봉필] 읍네 성일병원에두 정신과가 있나 모르것네 --- 쟈 입원시켜야지

안되것다 --- 

[명구] 강제루 할생각은 없으닝께 내일저녁에 건조장 해변에서 풍악소리가

나면 뜻있는 사람들만 나오십시요. 나 혼자라도 용춤을 출것이니께. 
[이장] 앗따 가믐에 굿판 구경하게 생겼네 --- 

[페이지] 075

[명구] (고함) 우리에게 필요한건 돈이나까치교가 아니라 썩어서 꼭지조차 
보이지 않는 옳바른 정신을 찾아내는것이여유! 
[봉필] 이눔아, 니 정신머리부터 세탁을 히여! 
(이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서낭당이 불에탄다 --- 

[일동] --- [소리] 서낭당이 타고 있어유! 서낭당이 불길에 쌓였어유!

[이장] 뭐여 서낭당이 탄다구 --- ? 
(일동 술집 제방밖으로 몰려나간다. 멀리 산중턱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해변가까지 얼룩저 펴져온다) 
[어부 A] 어매 서낭당이 터고 있슈! 
[일동] 서낭당이 타네 --- 서낭당이 터고 있네 --- (술집안에서 봉필이 혼자 
태연히 술잔을 기우리고 있다. 암전) 
[페이지] 076 
[장] 제 9 장 

(어두운 명구의 토담집 방

한쪽에 명구모가 꺼칠한 얼굴로 누워있고 명구와 달래가 임종을 하고 있다. 

방밖 마당의 평상주위에 윤노인, 영숙, 이장, 봉필, 그리고 몇명의 동네사람들이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다. 

극성스런 매미 소리와 파도소리가 슬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명구] 엄니 --- !? 
[모] 달래야! 
[달래] 엄니 말씀하셔유 

[모] 달래는 어디 있냐?

[명구] 엄니 ---!? 
[모] 갈때가 --- 된것이니께 --- 

[명구] 엄니 --- 제발 눈을 뜨셔유!

[모] 삼베는 장농 밑바닥에 있응께 --- 그걸루 수의짓고 --- 

[명구] 워째 그런 말씀을 하셔유 --- [모] 살구지골 콩밭에는 농약두번 --- 더 뿌려야 헌다 --- [페이지] 077

[명구] 엄니 ---!? 
[모] 배밑창을 고쳐야 안쓰것냐 --- 쌀뒤지 밑창에 비니루봉지에 싸서 비녀랑 
금가락지 깔아났응께 --- 

[명구] 쓰잘데없는 걱정말구 맘편히 잡서유 --- [모] 때가 된것이구먼 --- 명구 색씨 얻을때꺼정은 살성싶었는디 --- [명구] 연락을 했으니께 읍에서 의사가 올 것이구먼유 --- [모] 다된 목숨인디 돈 쓰덜말어 --- 느그 아버지 곁에 묻으면 된다.

[명구] 물 드릴까유 엄니 --- ? 
[모] (고개를 겨우 끄덕인다) --- 

(명구가 어머니 입에 숫갈로 냉수를 떠 넣어준다.) 느그아버지 있는데 가는 것이니께 --- (마지막 강렬한 생명이 반짝 촛불처럼 타오른다) 농사가 잘되얏으면 --- 술담그고 떡쪄서 느그아버지 제사나 지내드리는건데 --- 섬에서 발동선타고 시집온께 --- 그해가 열여섯이였제 --- 느그아버지

씨름판에서 황소타오고--- 밭에는 옥식기가 터지게 익었더구만 --- 내내 여기서 
산것이다 --- 장고때리고 오색깃발 날리고 고깃배 수무척이 새벽에 나가더니만 
삼일낮밤 

[페이지] 078 태풍 불고나서 우리배만 안돌아 온것이다 --- 갯벌에 나가 열흘을 머리풀고

울었다. 해산달이 다된 산모가 말여 --- 열하루째 느그 아버지 시체가 파도에 
밀려와 제방끝에 걸렸고 --- 다음달에 달래를 난것이제 --- 

(마치 진혼곡인양 멀리서 새납소리가 되살아난다. 명구모 입을 벌린 그자세로

영민의 저쪽으로 사라진다. 파도와 매미소리 명구 가만히 메마르고 찌든 노모의 
육신을 울움을 삼키며 오래도록 내려다본다) 
[명구] (속으로) 엄니 ---! 
(명구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다. 사람들이 명구를 쳐다본다) 
[명구] 돌아가셨구먼유 --- 

[일동] (침묵) --- [명구] (조금크게) 돌아가셨구먼유 엄니가 --- [일동] (침묵) --- [명구] (더욱크게) 돌아가셨구먼유 ---!

[윤노인] 느그아버지따라 좋은데로 갈 것이다 --- 

[명구] 죽어서 좋은데루 가면 뭐한담니까 예? 대답들 해보시더라구요? 모두가 죽어서 좋은데 갈려구 모두 송장처럼

순번기다리고 있는것인 감유? 
[페이지] 079 

병들어 죽어 좋은데 가는 희망때문에 모두 말뚝처럼 가만히들 있는것인감유?

[봉필] 명구씨 ---!? 
[명구] 그래서 서낭당까지 전부 태워 없애버린감유? 개새끼 닭새끼까지 
끼리끼리 몰려다니는디 워째 우리동네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사각거린대유. 산내끼처럼 똘똘뭉치면 안될일이 뭐가 있것시유! 
[봉필] 명구 --- (봉투를 내놓으며) 이거 얼마 안되지만 장례비에 보태쓰게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허덜 말구, --- 

[명구] (조용히 들어와 봉필이 곁에선다) 달래는 어디 있냐?

[봉필] --- ? 
[명구] 달래가 지금 어데있냐구 묻고 있잖어? 
[봉필] 몰라 --- 

[명구] 몰라 --- 순진한 지지배 어디다 빼돌렸어?

[봉필] 난 몰라 --- 

[명구] (멱살을 잡아 올리며)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것이여!

[봉필] 난 모른다는디 워째 이려? 
(지치고 흐트러진 행색의 달래가 작은 봇따리를 끼고 술집으로 들어온다.) 
[달래] 나 여기 있시유 --- 

(울컥) 나 여기 있테니께유!

[페이지] 080 
[명구] 어디를 쏘다니고 있는 거여? 
[달래] 나두 모르것슈 --- 

[명구] 엄니가 돌아가셨다.

[달래] 엄니가? 
[명구] 그려, 서낭당이 이내 타버리고 눈을 감은 것이여. 
[달래] 엄니! 엄니! 달래가 여기 왔어유. 
[명구] 엄니는 돌아가신 거여. 끝까지 널 부르시다가 --- 

[달래] 엄니! 갈곳이 없었구먼유 망악한게 아무것두 보이지 않았슈. 서울에

가는 버스가 왔는디 발이 떨어지덜 않어 할수가 없었시유 엄니가 자꾸 등짝을 
잡아 땡기는 것 같았어유 
뻐스가 괴물처럼 무섭게 보이대유 --- 뻐스를 타믄 다신 고향에 돌아오지 
못할것 같았어유 --- 뻐스가 무섭대유 --- 뻐스는 그냥 떠나 버리고 말았구먼유 

[달래] 걸어서 다시 돌아왔구먼유 --- 부서진 까치고를 걷느는디 오빠랑

영숙이가 쌓아논 모래가마니가 보이대유 몇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는 것 
같았데니께요 --- 오빠가 제대하고 까치내를 건너올때도 필경 그랫을 것이구먼유 

--- 자수하기로 결심했으니께유 [명구] 뭔 소리냐?

[달래] 오빠 --- 

[명구] 그게 뭔소리여 [달래] 죄를 졌으면 벌을 받아야 마땅한것이 아니것슈 지가 서낭당에 불을

질렀구먼유 

[페이지] 081

[명구] 달래야! 
[달래] 오빠 --- 오빠손을 한번 잡아보면 안되것슈? 
[명구] --- 

[달래] 소원이어유 마지막으로 오빠 손목을 잡아보고 싶구먼유 --- (달래 명구의 양손을 가만히 맞잡는다) 까치다리 놓는거 포기하지 말어유 오빠 --- 언젠가는 내가 돌아올티니께--- 다리는 꼭 있어야 되것어유 [명구] 달래야 --- [달래] 읍내 지서에가서 자수하것구먼유 --- 슬퍼하덜 말아유 난 아무렇지두

않으닝께 --- 정말이여유 --- 속이 아주 편하다니께유 활명수 먹은것맹이루 아주 
편하고 시원해유 --- 

[달래] 아무도 원망하지 않어유 나 --- 오빠두 봉필씨두 모두 착한

사람들이니께유 --- 내가 나쁜년이었어유 

[명구] 그려 --- 어서 가거라 --- 그깐것 --- 사형은 아닐것인게 살아만

있다가 돌아오면 되는것이여 모두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께 맹장맹이루 묵고 
아프고 때묻고 골치아프고 --- 곪은것은 니가 태워버렸다고 생각하면 되느것이여 

--- 낡은것은 언제나 새것에 앗어지게 되 있는 것이다. 요록콤 아픔을 주면서

말여 --- 니가 큰일을 한것이여 --- (크게) 모두 모두가! 요록콤 아프게 
되았으니 말여 

[달래] 봉필씨 여기 떠니지 말고 날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것이어유 (달래

서서히 나간다 그리고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마치 상쾌하게 소풍을 떠나듯이 
멀리사라진다. 명구와 봉필이 만이 오래도록 마주보고 있다) (암전) 
[페이지] 082 
[장] 제 10 장 

(해변가 원사장과 공비서)

[원사장] 어떻게 됫어? 
[공비서] 내가 하는일 언제 뒤틀리는것 봤어 

[원사장] 토지 등기는 그 사람들 한테 넘겼지?

[공비서] 서울 올라가서 잔금받으면 되. 오늘 오후에 현장 확인하러 전무라는 
사람이 내려온다더라 

[원사장] 꼬리 밟히기 전에 속도를 내야되겠다.

[공비서] 동네사람들한테는 중장비들이 곧 도착하여 까치교의 공사가 
시작된다고 했으니까 염려없어 

[원사장] 몸 사려야되 요즘 이상한 녀석이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더라 [공비서] 왜이렇게 겁이많어 임마. 이게 전부 간에다 소다집어넣고 해야하는

일이야 알것냐? 
[원사장] 온다 --- 

[봉필] 아이고 사장님 여기 계셨구만이라우 [원사장] 그동안 수고가 많았소 [봉필] 그래서 이 박봉필이가 모든건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다 요록콤

말씀드리지 않았남유 

[공비서] 사장님 보기보담 아주 결단력이 있는 친구같습니다.

[봉필] 썩어두 준치라는디 

[원사장] 공사는 곧 착수하게 될것이오 [봉필] 인자 지가 할일은 전부 끝났으니께 --- 잔금을 주셨으면 --- [공비서] 잔금이라 --- [봉필] 전 약속을 지켰으니께 [공비서] 대충 이정도에서 피차 정리하는게 어때?

[봉필] 그게 무슨 말씀이래유 토지 명의까지 전수 넘겨드렸는디 

[원사장] 그러니까 이정도에서 끝내자는게 아냐 [봉필] 끝내자니? 그람 내가 받을 잔금은 [공비서] 이사람 똑똑한지 알았더니 앞뒤가 꽉막혔구먼 [원사장] 이정도면 우리뜻을 알아들어야지 젊은 사람이 --- [봉필] 그람 잔금을 안주시겠다는 말씀이어라우?

[페이지] 083 
[공비서] 인제 알아 듣는구먼 

[봉필] 그게 뭔 소리래요 야? 그게 뭔소리여유!

[공비서] 자네 쇠고랑 차고싶어 은팔찌 --- 

[봉필] 워째 지가 쇠고랑을 찬대요?

[원사장] (웃음) 자넨 지금 방화범으로 수배중이란걸 알아야되 

[봉필] 방화범?

[공비서] 감옥에 가고싶어? 앞길이 구만리같은 사람이 --- 

[봉필] 뭐여?

[공비서] 임마 정신차려! 네가 달래를 시켜 서낭당에 불을 지르게 했쟎어. 

그걸 뭐라고하는지 알어 방화를 ( )했다는거야 [원사장] 우리가 고발을 해줄까?

[봉필] 그럼 ---? 
[공비서] 그러니까 잔금이다 뭐다하고 유행가 부르지말고 가만히있어 

[봉필] 안되야 안되 --- 이 놈들아 --- 내돈내놔 --- 아니 내땅내놔 --- 내땅

내놓으라니께 이 도둑놈들아 내땅내놔! 
[원사장] 이자식이 아직두 정신 덜들덩구먼 

[봉필] (덤비며) 내땅내놔 이놈들아!

(원사장과 공비서 숙달된 솜시로 볼필을 때리기 사작한다 봉필이 기진하여 
넘어진다. 동네사람들 하나둘씩 들어온다 명구가 뛰어들어온다. 원사장, 공비서 
도망친다) 
[명구] 도대체 이것이 어치게 된일이여 (봉필을 부축) 니가 어쩐일로 이꼴이 
됐다냐? 봉필아! 
[주모] (뛰어들어오며) 서울 사람 어디 갔어유 --- 우리집 술값은 어치게 되는 
것이라우 --- 외상 술값은 누가 갚는것이어유 

[명구] 봉필아 어치게 된것인지 얘기 해보라니께 --- [엿장사] 서울 사람들 어디갔읍니까?

[일동] --- ? 
[엿장사] 서울 사람들 어데 있냐고 묻고있지 않습니까? 
[이장] 모르것읍니다. 
[엿장사] 그사람들 사기꾼으로 전국에 지명수배되고 있는 인물들 

[페이지] 084 입니다 (엿장사, 원사장과 공비서가 사라진 쪽으로 뛰어나간다)

[윤노인] 워째 모두 장승맹이루 서 있디야? 

워째 모두 죽은 나무처럼 서들 있디야?

(크게) 워째 모두 말뚝이랴! 

봉필아! 얘기좀 혀봐!

[봉필] 난 모르것시유! 난 모르것시우! 
[어부] 까치교 공사는 어떻게 되는 것이여? 
[봉필] 나두 모르곳시유. 나두 도깨비한태 홀린것 같어유 나두 몰라유. 나두 
몰르것시유 

[윤노인] 결국 서낭당만 태워 먹었구 달래만 끌려간 것이다!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여! 누구의 죄란말여! 이장! 자네 얘기해봐! 
[이장] 동네 잘살자구 헌것인디 --- 

[윤노인] 너나없이 분별이 없었던 것이다

전수 허깨비에 씌었던 것이여! 

불타버린 서낭당은 어치게 할것이냐?

(주민들을 돌아본다) 어째 전부 벙어리랴? 

돈바람에 말들도 잘하더니만 어째 전부 돌팍처럼 굳었디야! 얘기혀봐! 송충이가 뽕잎을 탐낸것이다. 그래서 광탄이 일어난것이여! 드릴까요? 서낭당

방화사건은 현지 경찰에서 수사를 계속 할것입니다. 
[원사장] --- ? 
[남자] 자 오늘중으로 서울에 도착해야 합니다. 어서 나갑시다. (원사장과 
공비서 남자에게 떠밀려 나간다) 
[봉필] 이게 뭔일이래유 --- ? 
[남자] 당신이 받은 계약금도 부도난 어음이여요 정신 차리라구요. 
[페이지] 085 
(남자와 원사장 공비서 밖으로 사라진다. 봉필이 혼자서 멍하니 술좌석에 앉아 
있다 갈매기 소리가 잠시 들려온다) 
[봉필] 이것이 뭔일이랴 --- ? 이게 뭔일이랴! 
[윤노인] 워째 모두 장승맹이루 서 있디야? 

워째 모두 죽은 나무처럼 서들 있디야?

(크게) 워째 모두 말뚝이랴! 봉필아! 얘기좀 혀봐! 
[봉필] 난 모르것시유! 난 모르것시우! 
[어부] 까치교 공사는 어떻게 되는 것이여? 
[봉필] 나두 모르곳시유. 나두 도깨비한태 홀린것 같어유 나두 몰라유. 나두 
모르것시유 도대체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여! 누구의 죄랸말여! 이장! 자네 얘기 
해봐! 
[이장] 동네 잘살자구 헌것인디 --- 

[윤노인] 너나없이 분별이 없었전 것이여

전수 허깨비에 씌었던 것이여! 

불 타버린 서낭당은 어치게 할 것이냐?

(주민들을 돌아본다) 어째 전부 벙어리랴? 

돈바람에 말들도 잘하더니만 어째 전부 돌팍처럼 굳었디야! 얘기혀봐! 송충이가 뽕잎을 탐낸것이비. 그래서 광란이 일어난 것이여! 그라니께 웃으운 것이어유 알것시유? 울것도 없고 섭섭할거 쥐뿔도

없는것이니께 
쩍지게 하품하고 일어나 눈꼽띠고 세수하면 되는 것입니다. 맑은 정신으루 
다시 시작허믄 되는 것이어유 

[페이지] 086 서낭당은 탓어도 복주산은 그대로 있는것이고 까치교가 떠내려갔어도 까치내는

흐르고 있으닝께유 
배가 모두 절단 났어두 바다는 있지 않남유! 

농사가 흉년이 들었어도 흙덩이는 그대로 있는것이여유 아무것도 바뀐게

없는디 우리덜만 요상한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구먼유 
그라니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움직여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 하래니까유 (명구 양손에 용탈을 하나씩 높이

쳐들고 들어온다) 
[명구] 이것봐 봉필 --- 기세가 좋더니만 어째서 춘향이처럼 앉아있디야? 
[봉필] --- ? 
[명구] 어째 등신 맹이루 가만히 서 있디야. 창피하제? 니놈아! 부끄러울때는 
얼굴을 가리는게 상책이다 --- 어서 용탈이나 써! 뭔가 시작을 할려믄 신호가 
있어야되지 않것남 
두들기고 패서 박살이 나게 놀아 보더라고 --- 

여러분 그래야 되지 않것남유? 봉필 자네 내말 들리지 않는가?

[윤노인] 누구든 먼저 상쇠를 때리믄 될것이 아녀 --- 

[어부 A] (상쇠를 치며 해변을 돌기 시작한다) 자 시작하더라고 --- (동네

사람들 장구, 북 징을치며 어부 A 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페이지] 087 
[봉필] (명구에게 닥아가서 황룡을 내밀며) 이것받어 --- 

[명구] --- [봉필] 이것 받으라니께 뭐하고 있는기여?

[명구] --- 

[봉필] 앗따 이눔 정신 나갔나 뭐하고 있디야 --- ?

[명구] --- 

[봉필] 에라 싸가지 없는놈 또한차례 나한테 맞고 싶으나 [명구] (덤비며) 뭐여?

[봉필] 이단 옆치기루 팍 차버릴것이께 --- 덤벼봐 덤벼보라니께 --- 

겁이나제?

[명구] 에라 등신같은 놈아 --- 

(둘이 맞붙어 싸우려 한다)

[영숙] (고함) 워째또 이런대유 

[윤노인] (웃으며) 내싸둬 싸우게스리 --- 젊은 놈들은 싸우면서 철이 드는것이다. 실컨 싸우게 내싸둬 [봉필] 한방에 페데기를 쳐 버릴것이니께 [명구] 아이고 지랄 --- 갯벌에 머리를 박어 버릴것이다 --- (서로 코를

맞대고 노려본다) 
[봉필] 요걸 그냥 팍! 
[명구] 요걸 그냥 확! 
(동리 사람들 춤을 추면서 크게 웃는다 번개천둥 소리가 요란하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봉필] 어머머 --- 빗방울이 떨어지네--- 

[명구] 어라 --- 이게 우쩐 일이리 [페이지] 088

[어부 A] 비가온다. 비가온다! 
[일동] 비가온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명구. 봉필을 각각 선두로 쌍용의 춤이 
시작된다. 동네 사람들 두패로 갈라져 황용과 청룡의 뒷꽁무니에 길게 메달리며 
두개의 거대한 용의 자태를 만들어 낸다. 

풍악소리 점차 흥겨웁게 고조되며 절정에 이르는 쌍용의 춤은 커다란 하나의

결속과 사랑의 엮음이 되면서 새로운 시작의 열망이 꿈틀거리기 시작되며 그 
가믐을 해갈시키는 빗줄속에서 천천히 막이 내린다) 

- 끝 -

<작품 줄거리> 까치마을은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고 있는 백 세대 안팎의 전형적인 해안마을이다. 이 마을에 커다란 시련이 찾아온다. 예년에 볼 수 없었던 큰비와 태풍이 불어 닥처 어선과 방파제가 파손이 되고 곡식이 침수되어 절망의 상태에 빠지자 설상가상으로 또 다시 가뭄과 전염병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읍내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까치교 마저 부서져 외부와 고립되어가는 어려움까지 겹치게 된다. 군대에서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는 명구는 고향인 까치마을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절망과 실의와 상면하게 된다. 마치 죽음의 마을과 같은 이곳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한 상태에 빠진다. 이런 판국에 명구의 친구 봉필은 마침 서울에서 토지매입을 하러 내려온 정체불명의 원사장이라는 브로커에게 자기의 선산인 복주산과 그 산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서낭당터까지 팔아 넘기고 타지로 떠날 계획을 짜고 있다. 봉필은 동네노인들을 돈과 술로서 매수하여 승락의 중지를 얻어 낸 것이다. 어느 날 명구는 동네의 원로인 윤노인으로부터 언제부터인가 가난속으로 파묻혀 버린 이마을 고유의 용춤에 대한 유래를 듣게 되면서 새로운 착상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옛날에 이 까치마을에 흉년이나 질병이 만연하여 동네가 의기소침할 때면 마을의 해변에서 황용과 청용두마리가 겨루는 쌍용놀이를 통하여 동네가 극기와 일체감과 용기를 얻었다는 점이 명구를 감동시킨 것이다. 명구는 옛날의 쌍용놀이를 재현시킨다. 잊었던 풍악이 되살아나자 동네사람들은 하나, 둘씩 해변으로 몰려나오고 노인들로부터 시작하여 어린이에 이르기 까지 두 마리의 긴 용춤이 시작된다. 그 고유의 민속놀이 속에는 사랑과 인내가 숨어져 있고 긍지와 용기가 넘쳐 흐르며 원망과 좌절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인정과 화합의 원형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생적인 의지의 복원이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식의 꿈틀거림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작품해설> 이 작품의 주제는 근대화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새로운 것과 사라지는 것과의 갈등에 두고 있다. 까치교는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이 교차되는 상징적 다리로 설정되며 물질의 풍요 속에 정신과 정서를 상실해가며 열병을 앓는 까치마을이라는 특정지역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변혁이라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나가는 서낭당의 퇴색된 가치를 되새기며 마을 사람들이 다시 사라진 옛날의 용춤을 재현시킴으로서 흩어진 마음들을 하나로 엮어 원형의 일체성을 공감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드라마는 두개의 기둥이 되는 서낭당과 쌍용놀이를 일직선으로 긋는 그 사이에 현실의 까치마을을 설정하고 서낭당이라고 하는 마을의 정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쌍용놀이라고 하는 마을의 정서문화로 끝나게 함으로써 절망과 좌절 속에 빠진 까치마을이 두 지점을 잇는 평행선상에서 새 시대의 의식을 스스로 찾아내고 스스로 개혁할 수 있다는 민족적 복지관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서구적 발상이 아닌 민족적 그리고 지역적인 특정과 개성을 모체로 서민들의 굳은 의지를 연극화 하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