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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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951년 무렵, 기생 김영한은 일제강점기에 '청암장'이라 불리던 별장을 매입하여 대원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고급요정을 운영하였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해 7000여 평의 부지와 건물 40여 동 등을 자랑하는 엄청난 규모의 요정이었다. 제3공화국, 제5공화국을 지나며 밀실정치의 대표장소로 세상에 알려졌다. 1995년, 김영한이 부지 전체를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길상사라는 이름의 사찰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요정정치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요정정치'라고 불릴 만큼 요정은 큰 영향력을 가진 곳이었다. 그중에서도 3대 요정으로 불리던 대원각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고위급 인사들과 재벌들의 비밀 회동 장소로 자주 이용됐다. 제3공화국, 제5공화국과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들을 보면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가야금 소리가 들리고 기생이 나오는 술집이 나오는데 이 배경이 대원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요정문화를 대표하는 대원각을 통해 김영한은 엄청난 부를 이뤘다.


  • 시인 고은의 시, 만인보 중 ‘요정 종업원 임도빈’에서는 ‘대연각’으로도 등장했다.

“70년대 성북동 대연각이라 우이동 삼청각이라 아니 코밑의 청진동 장원이라 거기 가면 온통 번드르르르 아리따운 연인의 치맛자락 방바닥을 쓸어가며 (...) 슬슬 졸음 오는 척하면 뒷방으로 모셔가 그 침침한 방 요 위에 눕혀져 졸음은커녕 난데없는 운우의 정이 쏟아지니”

기생관광

1970-80년대, 한국은 아시아의 유명한 기생 관광국으로 알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군, 나중에는 미 점령군을 상대로 했던 한국의 성매매는 이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을 위한 군대 성매매로, 그다음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기생관광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대원각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관광유흥음식점으로 지정하여 지방세 감면 등의 특별한 세금 혜택을 주었다. 또한 이렇게 관광 유흥음식점으로 지정되면 해당 업소 종사자는 통행금지도 면제되었기 때문에 대원각 종사자들은 많은 혜택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당시 정부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유흥음식점이라는 역할을 기대했었고 대원각은 그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는 요정이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큰 수익을 이뤄냈다.

시주

시주란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절이나 승려에게 금전, 물건 등을 베풀어주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시조(施助)라고도 하며, 신자들이 시주하는 돈이나 물건은 사찰의 운영이나 스님들의 생활 유지에 중요한 수단이 된다. 김영한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을 받아 시주를 청하였으나 법정스님은 이를 사양했다. 그 후 10년에 걸쳐 계속된 김영한의 설득에 결국 기존 건물을 보수하여 사용할 것을 원칙으로 하여 시주를 받아들였다. 길상사가 개원하던 날, 김영한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고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죄 많은 여자입니다만 …. 저는 불교를 잘 모릅니다만 … 저기 보이는 저 팔각정은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는 곳이었습니다. 저의 소원은 저곳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팔각정은 종루가 되었듯 밀실정치와 기생관광의 무대였던 대원각의 다른 건물들 역시 극락당, 지장전, 설법전 등으로 바뀌었다. 경내의 크고 작은 건물들도 스님들의 숙소나 불자들의 기도처가 됐다. 이처럼 요정이었던 대원각을 사찰로 리모델링하는 과정에서 나무 기둥에 고기와 술 냄새가 하도 진하게 배어있어, 이를 제거하려고 인부들이 기둥을 아무리 깎아도 냄새가 없어지지 않아 무척 애를 먹었다는 일화도 있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요정은 사찰이 되고 기생은 보살이 된 것이다.

변화한 모습

극락전

'금실'과 '은실'이 들어있던 메인홀 중앙신관은 현재 법당인 극락전으로 변했다. 앞 마당은 원래 주차장과 테니스장이 위치해있었다.

성북동 길상사 극락전 1.jpg


설법전

대연회장 '송실'은 현재 설법전으로 변했다.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 2층.jpg


범종각

경비실 겸 운전사 대기실로 쓰였던 출입문 옆 팔각정은 현재 범종각으로 변했다.

성북동 길상사 범종각.jpg


스님선방

물레방아가 있던 계곡 옆 별채 특실은 현재 스님들의 거처 선방으로 변했다.

성북동 길상사 육바라밀채.jpg

관계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대원각 길상사 A가 B로 재탄생했다.
대원각 김영한 A를 B가 운영했다.
대원각 법정스님 A를 B에게 시주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요정

원불교대사전 시주

권창규, 『산업으로서의 관광 속 관광기생의 존재-1970, 80년대 한국의 섹스관광(‘기생관광) 산업』, 대중서사학회, 2015, p.127-129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 : 김연정

기여자 : 변지현, 양준, 정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