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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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숭실중학교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연세대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 유학 후 1942년 도시샤 대학에 입학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이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가 있고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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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12. 30. 만주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출생. 아명 해환(海煥).


-1925. 4. 4. 명동 소학교에 입학. 같은학년에 고종사촌 송몽규, 당숙 윤영선, 외사촌 김정우, 문익환 등이 있었다.


-1927. 명동소학교 5학년 때에 급우들과 함께 『새 명동』이라는 등사 잡지를 만든다.


-1931. 3. 15. 명동소학교 졸업. 학교에서 졸업생 14명에게 김동환 시집 『국경의 밤』을 선물한다. 명동소학교 졸업 후 송몽규, 김정우와 함께 명동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인 소학교 화룡 헌립 제일소학교 고등과에 편입하여 1년간 수학.


-1932. 4. 용정의 기독교 학교인 은진중학교에 송몽규, 문익환과 함께 입학. 명동에서 20리 정도 떨어진 이 곳으로 통학하는 윤동주를 위해 가족 모두가 용정으로 이사한다.


-1934. 12. 24. 『초 한대』, 『삶과 죽음』, 『내일은없다』등 3편의 시를쓰다. 이는 오늘날 찾아 볼 수 있는 윤동주의 최초 작품이며, 이 때부터 자기 시 작품에 시작(詩作)날짜를 기록하고 있다.


-1935. 9. 1. 은진중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2학기로 편입.


-1935. 10. 숭실학교YMCA문예부에서 내던 『숭실활천』제15호에 『공상』이 실려 그의 시가 처음으로 활자화.


-1936. 3. 숭실학교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자퇴하고 고향 용정으로 돌아와 5년제인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에 편입.


-1936. 11.-12. 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카톨릭 소년』에 동시「병아리(11월호)」와「빗자루(12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발표.


-1937. 『카톨릭 소년』에 동시「오줌싸개지도(1월호)」, 「무얼먹고 사나(3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거짓부리(10월호)」를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각기 발표. 동주(童舟)라는 필명은 이 때 처음 사용한다.


-1937. 8. 100부 한정판으로 발행된『백석 시집 : 사슴』을 구할 길이 없자 필사하여 소장한다.


-1937. 9. 진로 문제로 문학을 희망하는 윤동주와 의학을 선택하라는 아버지 윤영석이 갈등하나, 할아버지 윤하연의 권유로 아버지가 양보하여 문학에 진학하기로 한다. 『영랑시집』을 정독하다.


-1938. 2. 17.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1938. 4. 9.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기숙사 생활 시작. 같은 해 송몽규도 윤동주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다. 외솔 최현배 선생에게 조선어를 배우고 이양하 교수에게서 영시를 배운다.


-1939.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달을 쏘다(1.23)」, 시「유언(2.6)」, 「아우의 印象畵(10. 17)」를 윤동주(尹東柱)와 윤주(尹柱)라는 이름으로 발표.


-1939. 3. 동시「산울림」을 『소년』3월호에 윤동주(尹東柱)란 이름으로 발표. 새로 연희전문에 입학한 하동 학생 정병욱(1922-1982)을 알게되어 친해진다. 정병욱과 함께 이화여전 구내 형성교회에 다니며 영어 성서반에 참석한다. 이 무렵 릴케, 발레리, 지드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탐독하며, 프랑스어를 독습한다.


-1941. 5.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에서 나와 종로구 누상동 9번지의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하기 시작. 김송과는 하숙생이 되면서 우연히 알게 된다.


-1941. 6. 5.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발행하는 『문우(文友)』지에 「우물속의 自畵像」, 「새로운 길」을 발표.


-1941. 9. 요시찰인 김송과 학생들에 대한 일본 경찰의 주목이 심하여 그곳을 나와 북아현동의 전문적인 하숙집으로 들어간다. 서정주의『화사집』을 즐겨 읽다.


-1941. 12. 27. 전시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 졸업.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작품을 모아 자선시집(自選詩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당시 흉흉한 세상을 걱정한 주변인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시집을 3부 작성하여 한 부는 자신이 가지고, 이양하 선생과 정병욱에게 1부씩 증정한다. 본래 이 자선시집의 제목은 『병원』이었으나「서시(序詩)」를 쓴 후 바꾸었다. "병원"은 병든 사회를 치유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다. 윤동주의 도일 수속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라고 창씨개명.


-1942. 1. 24. 고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 된 시 「참회록」을 쓰다.


-1942. 4. 2. 도쿄 릿쿄(立敎)대학 문학부 영문과 선과에 입학. 송몽규는 교토 제국대학 서양사학과 입학한다.


-1942. 4.-6. 「쉽게 씌어진 詩」등 이 때 쓴 시 5편을 서울의 친구에게 보내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이다. 여름방학에 마지막으로 고향에 다녀가다. 동생들에게 "우리말 인쇄물이 앞으로 사라질 것이니 무엇이나 악보까지라도 사서 모으라"고 당부하다.


-1942. 10. 1.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학과 선과에 편입.


-1943. 7. 10. 송몽규가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에 독립운동 협의로 검거된다.


-1943. 7. 14. 고향에 가려고 준비하던 윤동주도 송몽규와 같은 혐의로 검거되고 많은 책과 작품, 일기가 압수된다. 당숙 윤영춘이 교토로 윤동주를 면회하러 가서 윤동주가 일본 형사와 대좌하여 우리말 작품과 일기를 일어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1944. 3. 31. 교토 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 받다.


-1944. 4. 13. 송몽규 역시 같은 죄목으로 2년형 언도 받고 윤동주와 송몽규는 이후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다.


-1945. 2. 16.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



주요활동


시 등 저서활동

저서

  • 서시
  • 자화상
  • 소년
  • 눈오는 지도
  • 돌아와 보는 밤
  • 병 원
  • 새로운 길
  • 간판 없는 거리
  • 태초의 아침
  • 또 태초의 아침
  • 새벽이 올 때까지
  • 무서운 시간
  • 십자가
  • 바람이 불어
  • 슬픈 족속
  • 눈 감고 간다
  • 또 다른 고향
  • 별 헤는 밤
  • 흰 그림자
  • 사랑스런 추억
  • 흐르는 거리
  • 쉽게 씌어진 시
  • 참회록
  • 못 자는 밤
  • 위 로
  • 팔복
  • 산골물
  • 장미 병들어
  • 달같이
  • 고추밭
  • 코스모스
  • 아우의 인상화
  • 이적
  • 사랑의 전당
  • 비오는 밤
  • 어머니
  • 가로수
  • 유언
  • 산협의 오후
  • 비로봉
  • 바다
  • 명상
  • 비애
  • 소 낙 비
  • 그 여자
  • 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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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출처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
위키백과 윤동주
나무위키 윤동주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