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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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시대

로코코 시대는 루이 14세가 죽은 1715년부터 루이 16세가 처형된 1793년까지를 일컫는다..

로코코

정확히 말하자면 로코코 시대의 ‘로코코’라는 것은 바로크 시대의 호방한 취향을 이어받아 경박함 속에 표현되는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건축의 유행을 말한다. 바로크 양식이 수정, 약화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로코코는 왕실예술이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의 예술이다. 다시 말하자면, 유희와 쾌락의 추구에 몰두해 있던 루이 14세 사후,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귀족계급이 추구한, 사치스럽고 우아한 성격 및 유희적이고 변덕스러운 매력을, 그러나 동시에 부드럽고, 내면적인 성격을 가진 사교계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귀족계급의 주거환경을 장식하기 위해 에로틱한 주제나 아늑함과 감미로움이 추구되었고 개인의 감성적 체험을 표출하는 소품위주로 제작되었다. 또한 로코코에서는 중국 양식이 많이 유행하였다.

로코코 시대상

전제 왕권사회가 시민 중심의 근대사회로 이행되어 가는 변환기이다. 이 시대의 시대상이 경박하다고 평가 되기도 하는데 귀족과 부르주아들은 풍성한 가발에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녔으며, 왕족들처럼 어떤 국가의 경영을 고민하던게 아니라 자신들의 사랑과 쾌락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박함과 동시에 지식인들이 이끄는 계몽주의의 시대로 사회가 지적으로 성장을 하던 때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많은 시민들은 스스로를 계몽해나갔고 자연과 이성을 중시여기는 합리주의가 싹뜨기도 했다.


로코코 시대 의복

남성복

재킷은 노칼라로 포켓이 달리고 앞이나 커프스에 칠보나 보석의 단추를 달고 셔츠의 앞, 소맷부리에는 레이스를 달았다. 넥타이는 레이스가 있는 스카프모양이었다. 소맷부리나 앞에 레이스 장식을 달고, 신발 앞에 버클을 달았다. 가발은 분을 칠해 하얗게 하고 양쪽 귀밑에서 웨이브를 넣어 마무리지었다. 남성복과 여성복 모두 호화로운 견작물이나 자수를 넣은 명주를 사용했다. 루이 16세의 초상화에서도 이와 같은 특징들을 찾아볼 수 있다.

루이 16세.jpg 루이 16세


여성복

여성의 실루엣은 원추형에서 조금씩 옆으로 퍼지다 중엽에는 극단적으로 옆으로 퍼지게 되었고 속에 파니에를 사용, 점점 인공적인 실루엣이 되었다. 깃트임 허리까지 V자형으로 파이고 가슴에 리본이나 보석, 자수를 넣은 와토 플리츠(화가 와토의 초상화에 자주 그려져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라는 박스 플리츠를 잡았다. 옷자락을 끌게끔 한 스커트는 앞을 A라인으로 트고 리본, 레이스, 프릴, 조화, 플리츠 등을 달아 전체를 파스텔조의 색채로 완성했다. 또 이 시대에는 아름다운 하이힐의 신발이 만들어지게 되고 목걸이에는 리본이 유행했다. 1760년경까지는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 이어서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유행의 중심이 되었다.

마리앙투아네트.png 마리앙투아네트

로코코 양식

로코코란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에 만들어진 조개껍질과 암석을 이용한 무덤을 로카유라 부른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인조석을 사용한 화려한 궁전을 많이 지었다. 바로크 시대의 장엄한 궁전건축에 비해 로코코 시대는 우아한 살롱의 발흥과 유려한 곡선 형태의 실내장식이나 가구설비에 중점을 두었다. 가구는 흐르는 듯한 곡선을 주체로 한 구성을 보인다. 의자는 캐브리올이라는 곡선각을 사용하고 팔걸이에서 등받이에 이르는 곡선구성 등 의자전체가 여체(女體)와 같이 아름다운 형태를 나타내었다. 또한 침대의 종류가 많았으며, 그외에 실내벽면을 장식하는 콘솔형탁자, 식탁, 화장테이블, 사무용 책상, 옷장 등 상류계급의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가구의 종목이 많아지게 되었다.

마리앙투아네트 침실.png 마리앙투아네트의 침실

로코코 미술

로코코 미술 특징

로코코 시대의 회화는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며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섬세하고 우아하며 여성적인 미술이고 개인생활에 적합한 감각적이고 쾌적한 미감이 드러나기도 했다. 가볍고 위트있게 현실을 드러낸 작품들이 많았다.

왕실의 미술작품

왕실의 그림들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들을 사용하였고 몽환적인, 마치 블러 처리를 한 듯한 초상화들이 특징이었다. 또한 같은 성별의 여러 사람들을 그릴 때는 찍어낸듯이 비슷한 얼굴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루이 16세 첫쨰 아들 탄생.png 프랑수아 기욤 메나조가 그린 루이 16세의 첫 째 아들의 탄생

참고문헌 및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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