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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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사리(미사동) 渼沙洞 한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모래로 이루어진 섬이라 해서 미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예전에는 당정섬과 둔지섬까지 이어지는 큰 섬의 중심부였다. 1925년 을축년대홍수 때 지형이 바뀌어 각각의 섬으로 나누어졌다고 하는데, 한강종합개발로 이마저도 사라져 옛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토양은 거의 퇴적토로 이루어져 있다. 광주 미사리 선사유적(사적 269)과 미사리 조정경기장, 카페촌 등이 있어 서울 근교의 명소로 꼽힌다. 또 이 곳에서 해마다 음력 8월 초에 대규모 미사동 성황제가 열린다.《태종실록》에 따르면, 내시별감을 보내 성황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는 기록이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조선시대 이전부터 성황제가 열린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미사리 선사유적지가 사람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9년 어느 날이었다. 모래채취장으로 사용되던 강안 충적층에서 예사롭지 않은 유물들이 얼굴을 내밀면서 오랜 삶의 자취는 다시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돌아왔다. 1980년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굴 결과 총 7개의 층위로 구성된 유적지는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원삼국시대의 삶의 자취가 시대별로 더께를 이루고 있었고, 특히 최상층에서는 백제시대 경작유구가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관심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992년 정부는 이 지역의 모래를 파내 강폭을 넓히고 홍수를 방지한다는 명분 아래 일대를 밀어내면서 대부분의 유적지를 덮어버렸다. 일부 유적지를 남겨두기는 했지만 그마저 시간이 지나면서 흔적 없이 묻혀버려 그 위치를 찾기조차 어려웠다. 그나마 근자에 들어선 표지판만이 사라진 기억을 겨우 일깨우고 서 있을 뿐이다.

지금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등으로 잘 닦인 제방 위에 서면 강 건너 덕소의 아파트 군락들이 손에 잡힐 듯 선하다. 이렇듯 선사와 현대의 거리는 단지 ‘강 건너서’일 뿐인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공연히 아득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간과 기억의 의미로 해서 선사유적지는 여전히 미사리 탐방의 인트로가 된다.


미사리 조정ㆍ카누 경기장은 86아시안게임 및 88서울올림픽 당시 조정·카누 경기를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으로, 수면을 중심으로 축구장, 농구장 등의 스포츠시설과 피크닉장, 그늘막, 음수대 등 편의시설을 갖추어 주민들의 여가전용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미사리 조정경기장 출입구는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미사동에서 들어가는 입구와 또 하나는 황산사거리에서 직진해서 들어오는 길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은 없다.

주차장은 매우 넓고 돗자리를 펴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넓다. 주차장을 따라오다보면 유니온타워가 보인다. 거기서 더 달리다보면 하남의 또다른 명소인 스타필드가 나온다.

입구에서 오른쪽 방향에는 쉼터매점이 있다. 쉼터매점에서는 2인, 4인, 6인가족용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고 간식과 음료를 판매한다. 이곳에선 조정경기장을 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구비되어 있다.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전거, 배드민턴, 연날리기, 산책 등의 이용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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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어머니와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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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리 조정경기장에서 남동생과 여동생


추가정보

미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