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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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초기 작품에서부터 중산층의 생활양식에 대한 비판과 풍자에 주력하고 있으며, 「도시의 흉년」(1977), 「휘청거리는 오후」(1977), 「목마른 계절」(1978) 등의 장편소설에서 중산층의 가정을 무대로 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부분은 매우 폭이 넓다 사회적 단위 집단으로서의 가족구성의 원리와 그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를 그녀는 가족 내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사회‧윤리적 판단 기준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족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인 사회변동의 한 양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상적인 현실의 삶을 실재성의 원칙에 의거하여 정확하게 그려냄으로써, 한국사회의 내면적 변화의 핵심이 무엇이며, 무엇이 삶에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가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출처: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생애

박완서는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 담임교사인 월북 소설가 박노갑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다. 1970년 〈여성동아〉에 장편 〈나목〉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고 이어 〈부처님 근처〉, 〈주말농장〉, 〈겨울나들이〉등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76년 〈동아일보〉에 〈휘청거리는 오후〉를 연재했다. 수필집으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살아있는 날의 소망〉 등이 있으며〈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등의 소설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자리를 굳혔다. 40세의 늦은 나이로 출발하여 20년 동안 100편 안팎의 소설을 썼으며 많은 문제작품을 써냈다. 6·25전쟁의 아픔과 분단의 사회현실을 그대로 그려내고 개성을 잃어가는 순응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1980년 한국문학작가상, 1981년 이상문학상, 1990년 대한민국문학상, 1993년 현대문학상, 1994년 동인문학상, 1999년 만해문학상, 2000년 인촌상, 2006년 호암예술상을 받았다. 지병인 담낭암으로 투병하다 2011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세계

작품 경향은 자신의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한반도 분단의 비극을 집요하게 다루거나 소시민적 삶과 물질중심주의와 여성억압문제를 그린 내용이 많으며, 후기 작품 역시 1988년에 병사한 남편을 간호하며 쓴 간병기 형식의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을 비롯해 어린 시절과 전쟁 중 경험을 서술한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평론가 황도경은 그녀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일그러진 개개인들의 삶의 초상, 도시문명 사회의 불모성과 그 안에서의 허위적이고 물신주의적인 삶의 양태, 권태롭고 무기력한 소시민의 일상, 억눌린 여성 현실, 죽음과의 대면과 극복 등 그녀의 문학이 담아낸 세계는 실로 놀랄 만큼 다양하다"라고 언급하였다.

체험담

오빠와 남편과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겪은 개인적인 아픔이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오빠는 6.25 전쟁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와 죽었으며, 이것은 그녀에게 전쟁의 상처이자 문학을 시작한 이유가 되었다. 박완서는 문예지 〈문학의 문학〉과의 대담에서 "6.25가 없었어도 내가 글을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6.25가 안 났으면 선생님이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고, "힘든 시기를 겪고 남다른 경험을 하면서 이걸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언젠가는 이걸 쓰리라"는 생각을 했다고 언급하였다. 남편과 아들이 죽은 후에는 천주교를 믿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너무도 쓸쓸한 당신》같은 자전적 소설을 통해 삶에 대한 관조를 드러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를 "생활어법의 살아있는 문장으로 그려" 독자들과 소통하였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박완서는 "이런 글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지해서" 글을 썼다고 고백했으며, 글을 통해서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인 증언"을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문학적 성취와 문학관

박완서의 문학적 성취는 "7,80년대 민중민족문학모더니즘으로 양분된 문학계에서 간과됐던 중산층의 삶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소설가 정이현은 박완서에 대해 "인간의 오장육부에 숨겨진 위선허위의식을 한 치도 숨김없이 태양 아래 까발리고, 공감하게 하고, 그리하여 위로 받게 하던 작가"라고 평했다. 이에 대해 이귀영(2011), 박완서 소설의 일상성 연구에서는 "사회의 제도와 불합리적 모순에서 벗어나려는 것"과 "현실 세태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경향이 짙은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작품

책 이름 출시일 페이지 출판사 비고
나목 1970년 284쪽 여성동아 장편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1972년 208쪽 한발기, 여성동아 단편
지렁이 울음소리 1973년 신동아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976년 469쪽 일지사 단편집
휘청거리는 오후 1977년 546쪽 창작과비평사 장편
목마른 계절 1978년 328쪽 수문서관 장편
욕망의 응달 1979년 320쪽 수문서관 장편
살아 있는 날의 시작 1980년 364쪽 전예원 단편
엄마의 말뚝 1982년 171쪽 일월서각 단편집
오만과 몽상 1980.12-1982.3 448쪽 한국문학 연재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3년 530쪽 세계사
그 가을의 사흘동안 1985년 426쪽 나남 장편
도시의 흉년 1979년 문학사상사 장편
미망 1990년 436쪽 문학사상사 장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년 10월 15일 294쪽 웅진닷컴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5년
2005년
324쪽
375쪽
웅진출판
아주 오래된 농담 2000년 324쪽 실천문학사
그 남자네 집 2004년 310쪽 현대문학
친절한 복희씨 2008년 302쪽 문학과지성사
세 가지 소원
작가가 아끼는 이야기 모음
2009년 176쪽 마음산책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010년 268쪽 현대문학 수필
세상에 예쁜 것 2012년 288쪽 마음산책 산문
자전거도둑 1979년 288쪽 마음산책 산문


박완서의 작품 속 성북구

  • [살아있는 날의 소망/박완서 지음/문학동네/2015]

나는 사촌들과 함께 큰 소쿠리를 가지고 몰래 집을 빠져나갔다. 그때 우리 집은 삼선교였는데 아리랑고개를 넘어 정릉까지는 걸어서 한참이었다. 더군다나 그때 정릉 숲은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전시라 지뢰가 묻혀 있을지도 모르고 공비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 [도시의 흉년2/박완서 지음/세계사/2012]

…그때 이미 나는 순정이를 따라 정릉 개천가까지 와 있었다. 가뭄이 계속되는 한여름의 개천 물은 썩은 내를 풍 기며 정지해 있었고, 비탈 동네 한가운데 드높은 장대 끝의 백기도 축 늘어진 채 정지하고 있었다.…


…나는 내 구역질이 가장 심하던 여름날, 정릉 집에서 본 기묘한 광경을 상기했다. 그때, 이 여자는 그 불구의 다리를 애처롭게 끌고, 아버지의 횡포에 가까운 무자비한 혹사에 노예처럼 순종했었다.… 나는 정릉 집에 갈 때 마다 내가 이들 모자에게 불쾌하고도 절대적인 특권을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애야,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다.”로 시작해서 이 모에게 돈 20만 원을 거저주지 않고 꾸어준 걸 뉘우쳤고, 할머니가 정릉 새 절에 가실 때마다 돈을 많이 못 드린 걸 뉘우쳤고, 수희 언니를 돈을 흠뻑 들여서라도 대학에 못 보낸 걸 후회했고,…


…내일 일찍 정릉 새 절에 다녀오시도록 해야겠다. 무당 할멈, 아니지 참 보살님께 이게 무슨 재앙인지 여쭈어봐 가지고 불공을 드리든지 살풀일 하든지 하고 나서 일을 시작해도 시작해야 할까 보다.…


…정릉 살 땐 그래도 엎으라지면 코 닿을 데 당신이 계 시겠거니 형님이 계시겠거니 그저 그거 하나만 믿고 허구 헌 날 하는 독수공방이 쓸쓸한지도 무서운지도 모르겠더니만…


  • [박완서 전집/박완서 지음/세계사/1993]

정릉 집 앞에 다다를 때 까지도 날은 밝지 않았다. 차마 그 시각에 문을 두드릴 수는 없었다. 다시 연탄재가 쌓이기 시작하는 더럽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춥고 비참한 기분으로 방황했다. 날이 밝아 오는 것과 함께 하나 둘 구멍가게들이 문을...(p97)

  • [그 남자네 집/박완서 지음/현대문학/2004]

성신여대면 돈암동에 있을 텐데? 나는 좀 놀란 소리로 물었다. 맞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동으로 나누어져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고 후배가 가르쳐 준 건 새 이름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쪽 지리에 훤했다. 위치를 자세히 물어보니 성신여대와 성북경찰서 사이였다. 내 처녀 적의 마지막 집도 성신여고와 성북경찰서 사이에 있었다.…


80년대 초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가서 센 강을 보고 애걔걔 그 유명한 센 강이 겨우 안감내만 하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내 기억 속의 안감내는 개천치고는 넓은 시냇물이었다. 집만 나서면 개천 건너로 곧바로 성북경찰서의 음흉한 뒷모습과 거기 속한 너른 마당이 바라다보였다…

박완서 작품 속 안감내.jpg


북악산 줄기인 구준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성북구 성북동과 동대문구 신설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들어 가는 하천으로서, 성북천 · 안감내 · 안암내라고도 한다. 좁게는 성북천의 하류로 안암동 지역에 와서 안암내라고 하였는데, 변하여 안감내가 되었다.

출처: 성북구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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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