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년을 살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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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문미숙씨의 삶을 아카이브한 콘텐츠

상세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현재 인생이 2막을 맞이하고 있는 그녀의 삶을 조명한다.

원하는 분리항목들

Ⅰ. 인물 소개 및 제작의도

Ⅰ. 인물 소개 및 제작의도 = 문미숙(1965~)씨는 6.25 전쟁 당시 흥남철수로 남한으로 내려온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독재정권 하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으며, 1980년대 후반 서울로 상경하여 광화문에 위치한 직장에서 근무하며 당시 민주화 시위 과정을 직접 목격하였다. 민주화가 된 이후 문 씨가 근무하던 D중공업에는 최초로 노조가 결성되었으며, 그는 노조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하다가 기업 측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기도 하였다. 1991년 혼인을 한 이후, 1995년 첫 아이를 갖자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당시 육아휴직 제도가 없었던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 인해 부당 해고를 당했다.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던 그는 전업주부의 삶을 견디기 어려워했지만, 남편은 이를 전혀 공감해주지 않았고 시댁에서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결국 자식들이 장성한 이후 이혼을 선택한 문 씨는 지금의 삶이 인생 최대의 전성기이며, ‘화양연화’라고 표현하였다. 이처럼 문 씨는 한국사회의 격동과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면으로 맞닥뜨렸던 인물이다. 필자는 어머니이면서 인생의 가장 큰 멘토인 그의 삶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망하고자 기록 콘텐츠롤 제작한다. 특히 현재 40대 여성의 경우 이혼 후 양육권을 갖게 되면 경제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혼 뒤에 오히려 행복해진 긍정적인 사례를 남기고자 한다. 따라서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삶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Ⅱ. 콘텐츠

반백년을 살아보니


1. 결혼 전의 삶 = 문 씨는 결혼 전 능력을 인정받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대학은 아들이 가야 한다.’ 라는 부모님의 뿌리 깊은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하여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하였으나, 대기업 공채로 입사하여 서울로 상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았던 기억으로 인해 성공에 대한 열망을 품었고, 건강상 무리가 오더라도 남성 직원들이 주로 맡는 격무를 모두 도맡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7년 만에 여성 직원으로서는 최초로 과장으로 승진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문 씨는 ‘돌이켜보면 그렇게 동료와 회사를 위해 희생한 세월이 있었기에 노조 업무를 맡았을 때도 해고되지 않았다.’ 라고 회상했다. 이후 노조 사무를 보는 부서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업무수행 중에 사측과 갈등을 빚었고, 이로 인해 몇 번 해고의 위기를 맞았지만 전에 만났던 상사의 중재로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2. 갑작스럽게 찾아온 결혼 = 인터뷰 전 가볍게 결혼에 대한 기억을 묻자, 문 씨는 가장 먼저 당황스러웠다는 답변을 했다. 이성에게 관심도 없었고 소개팅이며 선자리를 모두 거절한데다, 회사와 집만을 반복하는 생활패턴이었기 때문에 결혼을 할 수 있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후일 남편이 되는 임 씨는 야근하는데도 회사 앞에서 진을 칠 정도로 그를 엄청나게 쫓아다녔다고 한다. 그런 생활을 2년이나 하는 남자는 처음이라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대화를 트고 나니 고시를 준비 중인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문 씨는 힘들게 공부한다는 생각에 교재값과 교통비를 건네주었다. 몇 달 뒤 남자는 합격증을 들고 왔다. 당시 문 씨는 남동생과 언니의 학비를 대고 있었는데, 모두들 그 돈을 학비로 쓰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의 돈을 허투루 쓰지 않고 갚으러 왔다고 말하는 남자는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급속도로 마음이 갔고, 결국 4년의 열애 끝에 두 사람은 결혼했다.


3. 결혼의 시작과 끝, 이어지는 삶 = 안타깝게도 두 남녀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문 씨는 인터뷰 전 평소에도 ‘그때 그 직장을 그만두면 안됐었다.’ 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였다. 남편은 직장일이 바쁠 때나 바쁘지 않을 때나 집안일을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으며, 시댁의 무리한 요구를 방조하기도 하였다. 이에 아내인 문 씨가 이의를 제기하면, 인신공격을 하거나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에 대해 비아냥거리기도 하였다. IMF로 인해 직장에서 실직하였을 때는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점차 식어갔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이혼을 결정하게 된다.

놀랍게도 문 씨는 이혼 후의 삶이 인생에서 가장 전성기라고 말했다. 결혼 후 지속적으로 자존감이 떨어지다 보니 직장생활에도 자신감이 떨어져 기회를 놓칠 때가 많았는데, 지금은 마음의 짐으로부터 벗어나 창의적인 사고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사회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그는 최근에 ‘나는 안 될 거야’ 라는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어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알아가는 느낌을 즐거워하는 그가 인생의 2막을 찬란하게 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