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너스를 모티브로 한 다른 작품(비너스의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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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를 모티브로 한 다른 작품(비너스의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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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작품명: 비너스의 화장 /화가: 프랑수아 부셰(1703~1770) /종류: 유화 /제작연도: 1751년 /사조: 로코코 /기법: 캔버스에 유채 /크기: 108.3 x 85.1 cm /소장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작품 소개

이 작품은 18세기 로코코 화가 프랑수아 부셰(1703~1770)에 의해 탄생했다. 비너스를 테마로 삼은 그림과 조각은 유사 이래 아름다운 여인을 최대한 매력적으로 다루는 방식의 하나였다. 비너스와 큐피드는 일차적으로는 육체적 사랑과 욕망을 의미한다. 때문에 비너스의 화장이란 육체적 사랑과 육욕에다가 ‘화장’이 뜻하는 무엇인가 매력적이고 섹시한 요소가 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다. 비너스가 지닌 ‘미’ 혹은 ‘매혹’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수많은 비너스 재현 방식 중 ‘비너스의 화장’이 가장 적절하다. 부셰의 그림을 살펴보면 비너스의 몸은 빛나는 누드이다. 사각거리는 촉감 좋은 비단 직물, 리본과 진주, 금그릇 등 호화로운 보석이 흩어져 있다. 비둘기들이 다정하게 구구거리는 가운데 장미꽃, 활과 화살을 든 아기 큐피드들이 주변에서 희롱하고 있다. 제공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감수 유정아/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00년대 미술사』(세미콜론, 2007년) 공역했으며, 서양미술사를 강의중이다.

깊이 들어가기

제작배경

프랑수아 부셰는 18세기 중반에 비너스가 단장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매력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 외에도 에르미타주 미술관(Gosudarstvenmyj Ermitazh)과 루브르 미술관(Musée du Louvre)에 소장되어 있는 것들이 유명하다. 비너스와 님프 같은 신화적 소재를 통해 화가들은 여성의 누드를 그릴 수 있었는데, 특히 ‘비너스의 화장’은 왕실의 여인들이나 귀족 부인들을 알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로 각광받았다. 이 작품의 모델 역시 유명인이었는데, 바로 루이 15세(Louis XV, 1710-74)의 공식적인 정부였던 퐁파두르 후작부인(Marquise de Pompadour, 1721-64)이다. 퐁파두르 부인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인 예술∙문화 후원을 통해서 로코코 취향을 발달시키며 베르사유를 유럽 예술의 수도로 만드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부셰는 특히 퐁파두르 부인의 총애를 받는 화가였기에, 그녀를 위한 많은 그림과 다수의 초상화를 남기고 있다. 그는 루이 15세가 퐁파두르 부인에게 선물로 준 저택 벨뷰(Bellevue)의 욕실 장식을 위해 일련의 그림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이 그 중 하나로 전해지는데, 부셰는 퐁파두르 부인을 사랑스러운 푸티(putti)들로 둘러싸인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묘사하였다. 제공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감수 유정아/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00년대 미술사』(세미콜론, 2007년) 공역했으며, 서양미술사를 강의중이다.

작품주제

화장하고 있는 비너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욕망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주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상징물은 바로 거울이다. 오랜 세월 동안 미의 여신인 비너스와 거울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왔는데, 고대 그리스의 청동거울 뒷면은 주로 비너스의 목욕이나 화장의 장면으로 장식되곤 했다. 이 그림에서도 침대 위에 거울이 세워져 있지만, 커튼에 반 이상 가려져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비너스 역시 거울을 쳐다보고 있지 않으며, 어린 천사만이 거울을 보며 여신의 머리 모양을 매만지고 있는 듯 보인다. 더욱이 부셰의 다른 작품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비너스의 화장’에 등장하는 삼미신도 보이지 않는다. 즉, 부셰는 ‘비너스의 화장’의 전통적인 표현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비너스로 분한 퐁파두르 부인의 매혹적인 자태와 높은 사회적 지위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제공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감수 유정아/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00년대 미술사』(세미콜론, 2007년) 공역했으며, 서양미술사를 강의중이다.

작품표현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채 한 팔을 괴고 침대에 앉아 있는 비너스는 아기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한창 단장 중이다. 그녀의 침실은 벨벳 커튼과 비단 침구로 치장되어 있으며, 진주와 리본, 금그릇과 은쟁반 같은 호화로운 장신구들과 꽃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배경에 보이는 대리석 기둥 역시 그녀의 사회적 위치를 부각하려는 듯 보인다. 세 명의 푸티가 비너스의 머리를 치장해 주거나 진주 목걸이를 챙기고 있고, 여신의 주위에는 하얀 비둘기들이 다정하게 모여 있다.

부셰의 <비너스의 화장> 속 여인은 한없이 우아하고 아름답지만, 창백한 그녀의 피부만큼이나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삼미신이 상징하던 신성한 사랑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오로지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가치만을 추구했던 로코코 시대 궁정의 쾌락주의적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전반에서 풍기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는 모델의 사회적 권위와 막대한 재산을 암시하며, 반짝거리는 공단과 부드러운 실크와 같은 직물 표현 역시 프랑스 궁정의 부유한 생활을 암시한다. 이처럼 <비너스의 화장>에 구사된 화사한 색채와 감각적인 질감 표현, 그리고 풍부한 세부묘사는 부셰를 비롯한 로코코 회화의 전형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제공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감수 유정아/서울대학교 강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00년대 미술사』(세미콜론, 2007년) 공역했으며, 서양미술사를 강의중이다.

유화

기름으로 갠 물감을 사용하는 회화의 한 분야.

유채화(油彩畵)라고도 하며 유화물감, 그것을 풀어쓰는 용제(溶劑), 바니스 같은 화재(畵材)를 사용하여 캔버스, 패널(板) 등에 그린 회화작품을 말한다. 유화기법의 특징은 색조나 색의 농담(濃淡)이 쉽게 얻어지고 ‘선적(線的)’ 표현도 가능하며 광택, 무광택 등의 불효과 또는 투명, 반투명한 묘법(描法) 등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외에도 두껍게 바르거나 엷게 칠하거나 하여 변화 있는 화면의 피부조절로 다양한 재질감(마티에르)의 표현이 가능하고 또한 제작 중의 색과 마른 뒤의 색 사이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은 다른 기법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특한 유화만의 특징이라 하겠다.

11~12세기 독일의 수도사 테오피루스의 기록이나 14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첸니노 ·첸니니의 그림기법 책에서도 유화기법에 대하여 서술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유화물감의 사용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구 각지에 전화되어 그때까지 성행했던 템페라화(tempera畵)를 대신하게 된 것은 묘화용(描畵用) 재료로서 대폭적인 기술개량이 이루어져 에이크 형제가 높은 예술적 수준을 실현한 15세기 이후의 일이다. 15세기 플랑드르 지방의 투명한 유채기법은 템페라화에 사용된 화재나 화법(畵法)의 연장선상 위에 성립된 것이었으나 16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파에 와서는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것이라든가 터치의 효과 등 근대적 기법과 연계되는 유화 특유의 표현법이 생겨났다. 티치아노, 틴토레토와 에스파냐의 벨라스케스 등이 이러한 전통을 이어갔다. 17세기에 이르러 루벤스는 이탈리아적인 기법과 플랑드르의 전통을 융합해서 장대한 회화세계를 창출했고 같은 시대 네덜란드의 렘브란트는 중후한 물감과 의지적인 터치로 자기의 내면을 파내려감으로써 후세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미술 아카데미에 의한 기법적 전통은 19세기의 인상주의 등에 의해서 변혁되었지만 여기에는 기계로 반죽된 물감의 출현도 무시할 수 없다. 현대에는 전통적인 처방에 의한 화재 외에도 여러 종류의 첨가물을 가지고 새로운 재질감을 창안해내는 등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회화기법으로 애호되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jpg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시에 있는 미국 최대의 미술관. 설립일: 1870년 소재지: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 주요소장품: 그레코, 렘브란트, 페르멜, 인상파와 그 이후의 작품

1866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외교관 J.제이(1817∼1894)가 파리에서 한 연설을 발단으로 설립운동이 구체화되었으며, 뉴욕 시민의 노력으로 1870년 임대건물에서 소규모로 개관하였다가 1880년 센트럴 파크의 지금 위치로 옮겼다. 유럽의 대미술관과 비교할 때 역사는 짧지만 그 동안의 기증품 ·구입품, 탐험에 의한 발굴품 등 학문적으로 귀중한 소장품이 급속도로 늘었다. 1954년 대규모 개축으로 근대식 전시장을 완비하여 오늘날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세계 굴지의 종합미술관이 되었다.

수집품은 이집트 미술, 그리스 미술, 중세미술, 유럽의 회화, 미국의 회화, 기타 극동 및 고대 중 ·근동 미술, 그리고 조각 ·공예 ·판화 ·무기류 ·코스튬 ·가구 등 선사시대 이래의 인류역사의 산물인 세계 각국의 유물 총 200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회화에는 앨그레코, 렘브란트, 페르멜, 인상파와 그 이후의 작품에 명작이 많다. 또한 수많은 장서와 정기간행물, 사진 슬라이드를 보존하고 있다.

시내 북부지역에 있는 포트 트라이언 파크에는 중세 프랑스의 성당건축(聖堂建築)을 옮겨 세운 분관(分館) 클로이스터(1938년 7월 개관)가 중세미술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 지역과 관련하여 중국실 ·일본실 ·동남아실에 이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이 한국실 설치를 위한 경비와 전문가 양성 및 프로그램 기금을 지원함에 따라 1998년 6월 한국관을 개관했으며, 400여 점의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출처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