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비틀즈 (The Beatlese)

1960년 영국의 리버풀에서 결성된 록 밴드.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주요멤버이다. 1962년 데뷔싱글 <러브 미 두(Love Me Do)>로 시작하여 1970년 마지막 앨범 《렛 잇 비(Let It Be)》를 남기고 해산하기까지 비틀스만의 철학과 선율이 담긴 음악 양식을 선보이며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는 잉글랜드 북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탄생했다. 밴드의 리더 격인 존 레논(John Lennon: 1940~1980)은 쿼리뱅크 고등학교에 다니며 비틀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마추어 스키플 밴드 쿼리멘(the Quarrymen)을 결성해 공연을 펼쳤고, 1957년 교회 축제행사에서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1942~ )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세계에 공감했고, 밴드 활동을 함께하는 데 동의했다. 이후 폴이 자신과 같은 학교에 다니며 음악적 교류를 쌓았던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001)을 쿼리멘에 소개했고, 이듬해인 1958년 조지 해리슨은 팀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합류했다. 존은 리버풀 미술대학에서 만난 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uart Sutcliffe)를 베이시스트로, 이후 피트 베스트(Pete Best)를 드러머로 영입하고 함부르크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스튜어트는 함부르크에서 밴드를 탈퇴했고, 폴이 그를 대신해 베이스 기타를 맡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틀즈(두산백과)

멤버소개

  • 비틀즈 멤버


  • 존 레논 (John Lennon, John Winston Ono Lennon)

출생-사망 1940년 10월 9일, 영국 - 1980년 12월 8일

가족사항- 배우자 오노 요코, 아들 줄리안 레논, 아들 션 레논

1940년 10월 9일에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태어난 존 레논(John Lennon)은, 선창가 잡역부로 근무하던 아버지와 줄리아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지만, 존 레논이 철이 들기도 전에 부모가 헤어져 숙모 밑에서 부모의 사랑과 고독과 정을 갈구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존 레논이 15살이 되면서 비틀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룹 쿼리맨(Quarryman)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비틀즈 시절에는 성격이 고집스러워 항상 그의 화제는 끊이지 않았었다. 비틀즈의 중심 인물이었던 존 레논은 음악 활동 외에도 시집을 발간하는 등, 문학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1965년 6월 12일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대영 제국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으나, 존 레논은 그것이 자신들의 레코드 악보출판 등의 매상이 영국의 수출액을 높이는 데 기여한 공로의 상일 뿐 비틀즈를 위한 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존 레논은 ‘우리 비틀즈는 예수보다도 유명하다’는 발언을 해, 한 때 내쉬빌 주변에서는 그들의 디스크와 서적을 불사르는 화형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한 성격의 소유자인 존 레논은 비틀즈가 해산되기 전인 1969년에 지브랄타에서 일본 여성이며 전위 예술가인 오노 요코와 결혼해, 냉전이 계속되던 비틀즈의 나머지 멤버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룹을 위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던 존 레논이 해괴한 일본 여성에게 빠져 해프닝을 벌이는 것이 그들의 불만이었다. 하지만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함께 자신의 밴드인 플라스틱 오노(Plastic Ono)를 만들어 1970년에 첫 솔로 앨범 「John Lennon / Plastic Ono Band」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존 레논이 발표한 앨범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 폴 메카트니 (Paul McCartney, James Paul McCartney)

출생- 1942년 6월 18일, 영국

가족사항- 낸시 쉬벨, 딸 스텔라 매카트니

영국의 작곡가·가수. 비틀즈의 멤버로서 비틀스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예스터데이》와 《헤이 주드》를 작곡했다. 솔로로서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음악 출판에도 참여했다. 기네스북에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 올려져 있으며, 영국 제일의 부호 중 한명으로 꼽힌다. 영국 잉글랜드의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맥스 재즈밴드(Jim Mac’s Jazz Band)의 리더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가족과 함께 피아노와 노래를 즐겼으며, 이것이 영감의 원천이 되어 나중에 《웬 아임 식스티포 When I’m Sixty-Four》 《허니 파이 Honey Pie》 등을 작곡했다. 1956년 존 레넌(John Lennon)의 밴드인 쿼리멘(The Quarrymen)에 가담했으며 1960년에 존 레넌,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과 함께 비틀스(The Beatles)라는 이름으로 함부르크와 리버풀의 클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비틀스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예스터데이 Yesterday》와 《헤이 주드 Hey Jude》를 작곡했다. 1979년 기네스북에는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성공적인 작곡가로 올랐으며, 영국 제일의 부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9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 ‘공연자(performers)’ 부문에 올랐다.

  • 링고 스타 (Ringo Starr)

출생- 1940년 7월 7일, 영국

가족- 배우자 바바라 바흐, 아들 잭 스타키

영국의 록그룹 비틀스의 멤버. 1962년 비틀스의 마지막 멤버로 합류했다. 대인관계가 유연해 멤버들의 결속 역할을 하였고, 해체 후 조지 해리슨의 《All things must pass》 등 많은 앨범에 참여했다. 《Candy》 등 영화에도 출연했고 《Born to Boogie》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비틀스에서 드럼과 하모니보컬을 담당하였으며,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Richard Starkey)이다. 1940년 7월 7일 영국 리버풀 마드린가 9번지에서 아버지 리처드스타키(Richard Starkey)와 어머니 엘시 스타키(Elsie Starkey)의 장남으로태어났다. 4살이 되기 전에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새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치레를 자주하였으나, 낙천적이고 쇼맨십도 지녔다. 비틀스의 멤버 중에서도 유머가 넘치고 대인 관계가 좋았던 링고 스타는 존레넌·조지 해리슨·폴 매카트니라는 걸출한 뮤지션들을 한 그룹에서 결속시키는역할을 하면서 비틀스의 걸작들을 연주하였다.

  •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출생-사망 1943년 2월 25일, 영국 - 2001년 11월 29일

가족- 배우자 올리비아 아리아스, 아들 다니 해리슨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 1960년대 비틀스(Beatles) 활동과 이후 솔로활동을 통해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했다. 《올 싱즈 머스트 패스(All Things Must Pass)》(1970), 《리빙 인 더 머티리얼 월드(Living In The Material World)》(1973) 등이 솔로시절 대표앨범으로 꼽힌다. 1943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중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를 만나 그의 소개로 1958년 존 레논(John Lennon)의 밴드 쿼리멘(The Quarrymen)에 가입했다. 1960년부터 비틀스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인도악기인 시타르(Sitar) 등 각종 악기의 도입이나 독창적인 기타 연주로 비틀스 사운드 확립에 공헌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비틀스의 멤버로 <택스맨(Taxman)>(1966), <와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While My Guitar Gently Weeps)>(1968), <섬싱(Something)>(1969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 <히어 컴스 더 선(Here Comes Sun)>(1969) 등 여러 대표곡을 배출하면서 작곡가로도 명성을 얻었다.1970년 팀 해산 직후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11월 앨범 《올 싱즈 머스트 패스》(1971년 미국 빌보드 앨범차트 1위)와 싱글 <마이 스위트 로드(My Sweet Lord)> (1971년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발표해 앨범과 싱글 모두 비틀스 멤버 중 처음으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1971년에는 라비 샹카르(Ravi Shankar)의 요청으로 록계 최초의 대규모 자선 콘서트 ‘방글라데시 난민 돕기 자선공연(The Concert For Bangladesh)’을 개최했다.

비틀즈의 역사

1957년 3월, 쿼리 뱅크 그래머 스쿨을 다니던 16세 존 레논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스키플 음악 그룹을 결성한다. 원래는 블랙잭스라고 밴드 이름을 정했으나, 동명의 밴드가 이미 존재했던 이유로 밴드명을 쿼리맨이라고 변경하게 된다.[3] 그해 7월 존 레논과 만나게 된 15세의 폴 매카트니는 곧 밴드에 리듬 기타로 합류하게 된다. 1958년 2월 6일, 매카트니는 리버풀의 윌슨 홀에서 열린 쿼리맨의 공연에 해리슨을 초대했다. 매카트니와 해리슨은 리버풀 인스티튜트의 학교 버스에서 만나 친해졌다. 14세의 해리슨은 존 앞에서 열성을 다해 오디션을 보았지만, 존은 조지가 밴드를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판단했다. 해리슨은 이후로 몇 달 동안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라 결국에는 쿼리맨의 리드 기타리스트로 가입했다.

그 당시 비틀즈의 비공식 매니저였던 앨런 윌리엄스는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 상주 밴드로 비틀즈를 계약시키려고 했으나, 드러머가 없었다. 8월 중순, 그들은 오디션을 통해 피트 베스트를 드러머로 합류시킨다. 이렇게 다섯 명이 된 멤버는 4일 후 클럽의 주인이었던 브루노 코슈미더와 약 3개월의 계약을 맺고 함부르크를 향해 떠났다.비틀즈 역사학자 마크 루이손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썼다. "그들은 8월 17일 홍등가가 생기를 되찾는 시간대인 해가 질 무렵 함부르크에 발을 내딛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스트립 클럽 두 개를 음악 클럽으로 바꾼 코슈미더는 비틀즈를 인드라 클럽에 배정했다. 두어 달이 지나는 동안 인드라에서 나오는 소음 때문에 주변 거주민의 불평이 거세지자 결국 인드라는 문을 닫았고, 그는 10월 비틀즈를 카이저스캘러로 옮겨 연주하게 했다. 자신의 라이벌 클럽인 탑 텐에 출연하려는 낌새를 눈치 챈 브루노 코슈미더는 밴드에게 1개월의 해약통지서를 발급하고는 17살의 미성년자이며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연주를 하던 조지를 경찰에 밀고했다.[18] 당국은 11월 말에 해리슨의 추방을 준비했다. 일주일 뒤 코슈미더의 밀고로 매카트니와 베스트 또한 콘크리트 복도에서 콘돔에 불을 질렀다는 방화혐의로 당국에 의해 추방됐다. 하지만 스튜어트는 음악을 그만두고 약혼녀인 아스트리드 커처 곁에 남기로 결심하여 2월 말까지 머물렀다. 커처는 비틀즈를 찍은 첫 세미프로 사진가였다.

비틀즈가 두 번째 함부르크 활동을 마친 무렵에는 머지비트 붐으로 리버풀에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으나, 동시에 매일 밤마다 같은 클럽에서의 공연을 하는 단조로운 생활에 곧 염증을 느꼈다. 1961년 11월 빈번히 캐번 클럽에서 공연하던 비틀즈는 인근에서 음반 가게를 운영하면서 음악 칼럼을 쓰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눈에 띄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난 바로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신선하고, 정직했으며, 내가 생각하는 일종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엡스타인은 몇 달 동안 밴드를 설득했고, 비틀즈는 1962년 1월 그를 매니저로 임명했다. 그렇게 매니저가 된 엡스타인은 1962년 초부터 베르트 켐페르트 프로덕션과 맺은 비틀즈의 계약상 의무를 없애려고 시도했으며, 결국에는 함부르크에서 딱 한 번 녹음 세션에 참여하는 것과 한 달 일찍 계약을 파기하는 것을 맞바꾸어 협상에 타결했다. 4월 독일로 돌아온 그들은 그 전날 섯클리프가 사망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이후 뇌출혈로 사망했음이 밝혀진다. 엡스타인은 녹음 계약을 맺기 위해 음반사와 협상을 시작했다. 영국 음반 계약을 확보하기 위해 엡스타인은 토니 셰리던의 백 밴드로 녹음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과 계약 조기 파기를 맞바꾸어 폴리도르와 협상했다. 그의 노력으로 비틀즈는 1962년 1월 1일 데카 레코드에서 오디션을 보았지만, 데카 측에서는 "기타 그룹은 한물 갔습니다, 엡스타인 씨"라고 말하며 탈락시켰다. 3개월 후 EMI의 팔로폰 레코드에서 일하는 녹음 기술자 조지 마틴이 록 밴드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찾아간 엡스타인은 비틀즈의 데모 테이프를 들려주었고, 마틴은 오디션의 기회를 주었다. 오디션을 통과한 그들은 팔로폰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위키백과 비틀즈 CCBYNCSA

the beatles 이름의 유래

1959년 후반, 존 레논은 당시 잘나가던 밴드 The Crickets(귀뚜라미)[같은 이름을 생각하다가 서트클리프가 제안한 Beetles(딱정벌레)라는 단어에서 드럼루프를 뜻하는 음악용어 비트(Beat)를 집어넣어 Beatles라는 이름으로 썼고 이게 비틀즈의 이름의 유래가 된다. 그 이름을 들은 친구는 키다리 존과 실버 비틀즈(The Long John and the Silver Beatles)]가 어떠냐고 하고 당시에는 그냥 넘겨버렸다. 이들은 래리 판스의 오디션에서 약속했던 드러머가 오지 않아서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가 래리 판스의 조수가 이름을 묻자 '실버 비틀즈'(The Silver Beatles)라는 이름을 댔고 이 이름은 1959년 남은 기간동안 그들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1959년 1월, 레논의 쿼리뱅크 학교의 초기 멤버들은 그룹을 떠났으며 존은 리버풀 예술 대학에 입학했다. 존, 폴, 조지 이렇게 세 명의 기타 연주자들은 드럼을 연주해 줄 드러머가 있을 때마다 자니 앤 더 문독[9]이라는 밴드명으로 로큰롤을 연주했다.1960년 1월, 존의 대학 친구인 스튜어트 섯클리프가 자신의 그림 하나를 팔아 산 베이스로 합류한다. 그는 밴드명을 버디 홀리와 크리켓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비탈즈(Beatals)라고 바꾸자고 제안했다. 5월부터 그 이름을 쭉 사용하다 동료 리버풀 가수 자니 잰틀과 함께 스코틀랜드 투어를 다녀온 이후인 7월 초에 더 실버 비틀즈로 바꾸었다. 이들은 1960년 8월 중순에 "The Beatles"라는 이름으로 결정을 내렸다.

나무 위키 CCBYNCSA

비틀즈 앨범 소개

비틀즈 - Please Please Me 공정이용.jpg

위키백과- By 비틀즈, 팔로폰 레코드(공정 이용)

아티스트: The Beatles

장르: 팝락, 락앤롤

발매: 1963년 03.22

배급: 유니버설 뮤직

수록곡: I Saw Her Standing There/ Misery/Anna(Go to him)/ Chains 외 10곡

Please Please Me》는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의 첫 번째 정규 음반이다. 영국에서 발매되었던 동명의 싱글인 〈Please Please Me〉, 그리고 〈Love Me Do〉의 인기에 편승해 팔로폰을 통해 1963년 3월 22일 출시했다. 음반의 14곡 중 8곡이 레논-매카트니 작사·작곡했고, 크레디트는 매카트니-레논으로 표기됐다. 또한 단 하루, 겨우 세 번의 녹음 만에 완성되었다. 《롤링 스톤》은 이 음반을 "자신들 스스로 쓴 히트곡과 자신의 악기를 스스로 연주한, 자주적인 록 밴드 아이디어의 발명"이라고 불렀다.

2012년, 《Please Please Me》는 롤링 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음반 500장에서 39위에 올랐다. 이는 비틀즈의 초기 앨범 중에 가장 높은 순위이며,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evolver》, 《Rubber Soul》, 《The Beatles》, 《Abbey Road》에 이어 6번째로 높은 순위이다.


12334.jpg

위키백과-by 비틀즈,팔로폰 레코드(공정 이용)

아티스트: The Beatles

장르: 팝락, 락앤롤

발매: 1964.07.10

배급:유니버설 뮤직

A Hard Day's Night는 1964년 7월 10일 발매된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의 세 번째 정규 음반으로, 1면은 그들이 최초로 찍은 동명 영화의 사운드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음반의 미국판은 1964년 6월 26일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레코드에서 트랙 목록이 약간 다른채로 발매되었다. 처음의 두 음반과 비교해 보았을 때, 레논-매카트니가 쓴 13개 곡이 담긴 《A Hard Day's Night》은 그들의 작곡 실력이 발달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뚜렷한 오프닝 코드를 지닌 타이틀 트랙[4]과 차후 발표된 〈Can't Buy Me Love〉의 싱글은 미국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비틀즈 - Abbey Road 공정이용.jpg

위키백과-By 비틀즈, 애플레코드(공정 이용)

아티스트: The Beatles

장르: 팝락, 락앤롤

발매: 1969년 09.26

배급: 유니버설 뮤직

수록곡: Something Together 외 16곡

Abbey Road》(애비 로드)는 영국의 록 밴드 비틀즈가 발매한 11번째 스튜디오 음반이다. 이 앨범이 《Let It Be》보다 먼저 발매되긴 했지만, 실제 녹음은 나중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으로 여겨진다. 《Abbey Road》는 영국에서 1969년 9월 26일, 미국에선 같은 해 10월 1일 발매되었다. 프로듀싱은 조지 마틴이 맡았으며, 조프 이머릭이 엔지니어로, 토니 뱅크스가 테이프 오퍼레이터로 참여했다. 《Abbey Road》는 비틀즈의 앨범 중 가장 잘 짜여진 앨범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긴 멜로디 부분(B사이드)을 핑계로 이 앨범을 폄하하기도 했다. 앨범의 전체적 분위기는 밝고 낙천적이다. 이는 이 앨범을 녹음할 시기가 비틀즈 맴버들 간에 불화가 절정에 치달았을 때임을 고려해 본다면 상당히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렛잇비 표지 공적이용.jpg

위키백과-By 비틀즈, 애플 레코드(공정 이용)

아티스트: The Beatles (비틀스)

발매: 1970. 05. 08

장르: 팝락, 락앤롤

배급: 유니버설 뮤직

Let It Be》(렛 잇 비)는 비틀즈의 12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으로, 1970년 5월 8일, 비틀즈 소유의 애플 레코드 레이블을 달고 발매되었다. 《Let It Be》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은 《Abbey Road》보다 앞선 1969년 초에 조지 마틴의 프로듀싱 하에 녹음되었는데, 멤버들은 이 앨범에 대해 만족스러워 하지 못했고 결국 일시적으로 발매가 보류되었다. 《Let It Be》는 후에 필 스펙터에 의해 다시 프로듀스되어 1970년에 발매, 비틀즈의 마지막 앨범이 되었다. 《Let It Be》에 대한 비평 중에는 "비틀즈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앨범이다"는 것도 있지만 "비틀즈의 모든 앨범 중 최고"라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비틀즈 추천 곡

잠수함 CCBY.PNG

  • Yellow Submarine- 〈Yellow Submarine〉는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이 쓰고 링고 스타가 리드 보컬로 부른 1966년도 비틀즈 노래다. 정규 음반 《Revolver》 (1966)와 〈Eleanor Rigby〉의 뒷면에 담긴 싱글의 형태로 출시되었으며, 싱글은 주요 영국 차트에서 1위를 휩쓸며 4주간 그 자리를 지켰다. "1966년의 영국에서 그 어느 싱글보다 많은 판매고 인증을 받아" 아이버 노벨로상에서 수상한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핫 100 차트에 2위까지 올랐으며, 따라서 이것이 스타가 리드 보컬로 공헌한 비틀즈의 노래 중 가장 성공한 것이 되었다. 추후 영국의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 《옐로 서브마린》과 영화의 사운드트랙 음반의 제목으로 쓰인다. 당초 어린이를 위한 넌센스 송으로 기획되었지만, 이 곡은 당시 다양한 사회 및 정치적 해석이 제기되었다. 사진출처-플리커/저작자:FaceMePLS(CCBY)

All You Need Is Love 공정이용.jpg

  • All You Need Is Love 〈All You Need Is Love〉는 비틀즈에 의해 발표된 곡이다. 1967년 사상 최초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여 라이브로 위성중계하는 TV 프로그램 《아워 월드》에 영국 대표로 비틀즈가 출전하게 되어 존 레논이 작곡했으며, 그 해 싱글 발표되어 US 차트와 UK 차트, 모두에서 정상에 올랐다. 위키백과- By 비틀즈, 공정 이용


Sound Cloud에서 이용 가능한 비틀즈 곡

비틀즈 수상 내역 및 업적 기록

비틀즈 수상내역 출처
연도 수상명 비고
2017 제59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뮤직필름상 비고
2008 월드 뮤직 어워드 다이아몬드 상 비고
2001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기네스 월드 레코드, 약 10억
미상 역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음악가 약 1억 78000만
2004 미국으회도서관영구등재 앨범<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2004 롤링스톤이 선정한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1위 Rolling Stone(2004년 엘비스 프레슬리 데뷔 50주년 기념 로클론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아티스트 순위)
199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 위치:7080 HOLLYWOOD BLVD
1972 그래미 공로상 수상자 비고
1970 제 43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수상작 렛잇비(비틀즈)
1967 제 9회 그래미 시상식 올해의 노래 Michelle(비틀즈)
1965 제 7회 그래미 시상식 최고의 신인상 비틀즈
1965 대영 제국 훈장 비고
미상 빌보드 싱글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수 1위 Billboard
미상 빌보드 앨범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가수 1위 Billboard

나무 위키 CCBYNCSA

네이버 프로필

비틀즈 추억하기

장소

에비로드 퍼블릭 도메인.png

애비 로드 스튜디오(Abbey Road Studio)는 영국 런던의 웨스터민스터에 위치한 음악 스튜디오이다. 1931년 11월에 설립되었으며 현재는 EMI 레코드 소유에 있다. 비틀즈, 클리프 리처드, 핑크 플로이드 등의 유명 가수들이 이곳에서 녹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녹음 스튜디오인 제1 스튜디오는 110인조 관현악단과 100인조 합창단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다. 영화 《스타워즈》 사운드트랙 역시 이곳에서 녹음한 것이다.[4] 비틀즈는 대부분 제2스튜디오에서 녹음 작업을 했지만 가끔은 훨씬 넓은 제1스튜디오를 썼다. 〈All You Need is Love〉를 녹음할 때와 《아워 월드》를 촬영할 때가 그런 경우였다. 제2 스튜디오는 비틀즈가 가장 많은 작품을 녹음했던 곳으로 폴 매카트니가 집 다음으로 좋다고 말할 정도로 반한 장소이기도 하다. 폴은 결국 제2스튜디오가 마음에 든다며 비슷하게 생긴 스튜디오를 자신의 집에 만들기도 했다.[4] 제2 스튜디오에 있던 챌런 피아노는 세 대의 파아노로 특이하게도 E장조 화음을 약 1분간 동시에 연주했을 때 그중 하나로 쓰였다. 1967년 2월 22일 레논, 매카트니, 스타, 로드 매니저 맬 에번스가 연주했던 그 1분간의 피아노 E장조 화음은 〈A Day in the Life〉의 엔딩이 되었다. 위키백과-By Misterweiss(퍼블릭 도메인)


인드라클럽 CCBYSA.png

함부르크 시기 비틀즈가 공연한 인드라 클럽 위키백과-BY Raymond Arritt(CCBYSA)

영상 자료

Beatles interviewed in Plymouth 저작자: YoungDaffyd


The Beatles - Moonlight bay 저작자: Kasius Klej


Beatles - Over the Ocean 저작자: hchipocov


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The Beatles♪ 저작자:Aly The Beatles'lady

관련영상 모두 CCBY 라이선스 적용되었음.


비틀즈 커버곡

140125 고래야 - 노르웨이의 숲 (비틀즈 Cover 상상마당 레이블마켓 공연 @상상마당 레이블마켓) 저작자:C Lippe


The Beatles - Get Back (acoustic cover) 저작자:John Tracey


Best Beatles Cover-Tell Me Why 저작자:Dina W

관련영상 모두 CCBY 라이선스 적용되었음.

참고 사이트

[유튜브 https://www.youtube.com/]

[사운드 클라우드 https://soundcloud.com/]

[플리커 https://www.flickr.com/]

[픽사베이 https://pixabay.com/ko/]

[위키 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D%82%A4%EB%B0%B1%EA%B3%BC]

[나무 위키 https://namu.wiki/w/%EB%82%98%EB%AC%B4%EC%9C%84%ED%82%A4:%EB%8C%80%EB%AC%B8]

[CC Search https://search.creativecommons.org]

[Let's CC http://letscc.net]


CCL

CCBYNCSA.PNG

저작자와 출처 등을 표시하면 저작물의 변경,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을 포함한 자유이용을 허락합니다. 단 영리적 이용은 허용되지 않고 2차적 저작물에는 원저작물에 적용된 라이선스와 동일한 라이선스를 적용해야 합니다.

과제 소개

주제를 비틀즈로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콘테츠를 넣기 위해서임이 가장 크다. 또한 비틀즈를 알고자하는 이용자들에게 도움이 있고자한다.

역사가 있는 락 밴드이자 오래된 밴드이기 때문에 저작권이 만료되어있거나, 공유자원 및 다양한 콘텐츠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위키백과 나무위키 등을 이용하여 텍스트 문서를 만들었고, 출처는 링크를 통해 바로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무위키,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텍스트의 저작자는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한 부분의 저작권을 갖는다.

멤버사진, 앨범표지 등은 플리커, 픽사베이, 위키백과에서 가져왔으며 플리커에서 가져온 자료를 BY뒤에 저작자를 입력하여 저작자를 알 수 있게 하였고 픽사베이는 CCO이므로 저작자를 표시할 필요는 없었다.

앨범 및 추천곡에서 음악 제목에 네이버 뮤직을 하이퍼링크처리하여 노래를 바로 구매하거나, 들을 수 있게 유도하였다.

유튜브에서 가져온 영상들은 CC SEARCH를 통하여 CCL이 부여된 영상만 가져왔다. 모두 CCBY가 적용됬으며 저작자를 표시하고 링크를 통해 바로 원저작물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하기 위하여 음원을 알아본 결과 SOUND CLOUD에서 CCL이 적용된 비틀즈 라이브 음원들을 가져올 수 있었다.

내가 CCL 중에서 CCBYNCSA를 적용한 이유는 CCBY, CCBYNC, CCBYSA 등을 포괄 할 수 있는 라이선스는 CCBYNCSA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