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걸음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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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걸음걸이

이 소설은 5인 가족이 살았던 건평 30평의 평면도를 통해 빛 속에 드러난 삶과 죽음의 현장성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듯이 이 작품은 전편에 걸쳐서 어떤 사건 그 자체보다는 미묘한 빛의 흐름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군더더기 없이 단정하고 고요한 서술이 독자의 마음 속에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바로 ‘저 고요한 빛의 잔주름’ ‘한 자락의 바람’ ‘공기의 버성김’ ‘담을 타 넘어 가는 밤’ 같은 아주 미세한 기미들의 변화와 ‘흐름’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의미 자체를 ‘흐르게’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이 흐름을 통하여 우리는 일종의 물화된 시간이 살갗에 와 닿는 듯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1]

핵심 정리

저자 윤대녕
장르 현대소설, 단편소설
성격 실험적, 사실적
배경 1. 시간-현대

2. 공간-서울

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 빛의 흐름을 통해 바라본 삶과 죽음
출판 「문학 동네」(1997)

줄거리

요약

빛의 흐름에 따라 한 가족의 이야기를 서술한 윤대녕의 단편소설.

줄거리

우리집은 내가 열한 살 때인 1972년에 지어졌다. 거기엔 이십오 년 간 내 일가족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공존하고 있다. 가계도를 보면 현재 부모(64세, 62세)가 있고 큰딸(38세)과 막내딸(33세)이 있고 중간에 독자인 내(36세)가 있으니 모두 다섯 식구다.

처음엔 방이 세 개인 집이었으나 십 년 전 누나가 결혼을 할 당시 마당 한쪽에 약 육칠 평 정도의 문간방을 새로 들여 네 개가 되었다. 큰일을 치르다 보면 시골에서 올라온 집안 어른들이 묵고 내려갈 방이 하나쯤 필요하다는 게 아버지의 오랜 생각이었던 관계로 방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그 막사 같은 큰방이 지어짐으로 해서 우리 가족은 거기에 심어 놓았던 해바라기와 철조망 없는 닭장을 잃게 되었다.

안방엔 오늘 아침 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가 누워 있고 동쪽 건넌방에는 작년에 늦결혼을 한 여동생이 첫애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기 위해 내려와 있다. 서쪽 건넌방에는 올 2월에 이혼을 한 누나가 곁방살이를 하고 있다. 나는 어젯밤 서울에서 내려왔다. 어머니는 지난달에 외조모 상을 치르느라 무리한 탓이라 믿고 가까운 보건소에서 주사를 맞고 돌아왔지만 발열이 계속되자 평소 협심증과 위경련으로 고생하는 아버지가 자주 가던 회사 근처의 내과에 데리고 갔다. 검사 결과는 신장염이었으나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몇 년 전 늑막염으로 대학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어머니는 전저리를 치며 가지 않겠다고 생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염증 치료만 끝내고 어머니는 한의원에 들러 엉뚱한 보약을 지어 가지고 기어이 집으로 돌아왔다. 누나는 부역하는 죄수처럼 동생의 산후조리와 어머니의 병 수발을 함께 들고 있다.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 방 네 개가 모두 찼지만 분위기는 아무래도 어수선하다. 어머니가 다시금 된소리를 낸 건 누나가 안방으로 죽그릇을 들고 들어간 직후였다. 아니 된소리가 아니라 그건 차라리 상소리라고 해야 옳았다. '이 육실헌 년이!' 하고 돌연 마루에 튀어나온 소리를가 들렸다. 매양 깔끔하고 단정한 말만 골라 쓰는 양반으로 어머니는 동네에 소문이 나 있었다. 도로 죽그릇을 들고 나오는 누나의 눈자위에 눈물이 고였다. 죽을 되게 쑤어서 먹기 힘들게 만들었다고 누나에게 일갈을 했던 것이다.

누나가 맏딸이었던 때문인지, 명문 여고를 나와 명문대에 들어갔지만 가세가 기울어 이학년도 다 마치지 못하고 누나는 자퇴서를 낸 다음 공무원 시험을 봐서 여동생을 대학에 보내고 또 졸업할 때까지 묵묵히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면서도 싫다는 소리 한마디가 없었다. 그런 사람을 어머니는 왜 고약한 시어머니처럼 대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뒤란은 비받이 차양이 드리워져 있어 서늘했다. 그곳엔 연탄더미와 감나무가 있었다. 그 감나무 아래서 나는 어느 여름날에 엉거주춤 바지를 내리고 서서 첫 수음을 했고 같은 날에 첫 담배를 피우며 담벼락에 기대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눈비 내리는 밤이 오면 자정이 넘은 시각에 슬그머니 뒤꼍으로 돌아가 여전히 연탄더미 옆에 서서 수음을 하거나 감나무 밑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하다가 맥없이 흐느껴 울기도 했다. 빛 한점 없는 새까만 내가 몹시도 서글펐던 것이다.

아버지는 나른한 늦오후에 돌아오셨다. 협심증에 위경련말고도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중이염을 앓고 있었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런 소린 없었는데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신 듯했다, 몇 년 전인가 귀에서 피고름이 심하게 나와 병원에 다녀온 후 그는 평생 즐기던 술담배를 단 하루만에 끊어 버렸다. 조금 있자, 누군가 대문을 밀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아랫마을에서 두부 집을 하던 언청이 노파였다. 아무도 이름과 나이를 몰라 사람들은 그녀를 그냥 처녀 할머니로 불렀다.

여간 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어서 벌써 오래 전에 그녀는 두부 집을 그만두고 텃밭에 감자나 고구마를 심어 겨울을 나거나 봄여름엔 나물 따위를 뜯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쌀과 바꿔 먹었다. 안방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발작적으로 일어나 그녀를 향해 왜 벌써 왔느냐고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처녀 할머니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있었고, 어머니는 귀신을 본 듯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전엔 처녀 할머니가 우리 집에 찾아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그녀에게 새로 밥을 해 먹이고 뒤주의 쌀까지 퍼줘 보냈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구박에 상소리까지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누나에게 쌀 한바가지 줘서 빨리 내쫓으라고 했다. 누나가 부엌에서 급히 바가지를 들고 나와 마루에서 쌀을 퍼서 내미는데도 그녀는 본체 만체 했다.

어머니가 그녀가 무얼 하려는지 안다며 소리를 지를 때, 처녀 할머니가 석류나무 밑의 양귀비 모가지 하나를 똑 부러뜨려 들고 안방을 슬쩍 흘겨봤다. 어머니는 뒤틀린 목소리로 자신이 벌써 가야 하냐고 내쏘는 말투로 얘기했지만 그녀는 암만해도 대꾸가 없었다. 그러더니 누나가 엉거주춤 내밀고 있는 바가지를 한참 내려다보고 있다가 오늘밤 니 에미 입에나 넣어주라는 말을 하고는 돌아서서 대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석류나무 옆에서 뒷짐을 지고 서서 모가지가 떨어져 나간 양귀비를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있던 아버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나는 해바라기 방으로 들어와 오후의 햇살이 걸린 마당을 보며, 안방에서 들려 오는 어머니의 낯선 흐느낌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루 일을 끝낸 누나가 내방으로 왔다. 누나는 사 개월 전에 이혼을 했고 아이 둘은 전남편이 맡아 키우고 있었다. 누나에게 다시 결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누나는 부모님이나 모시면서 살 거라고 했다. 작년 봄에 누나는 많은 피를 토했다고 했다. 어느 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핏덩어리가 쏟아지더라는 것이다 그걸 하필 매형이 봤고, 매형은 누나가 폐병쟁이냐며 다음날로 이혼하자고 했다고 한다. 누나는 엄마도 한때 폐병을 앓았다고 했다. 그땐 아버지가 매일 어머니에게 주사를 놓아 주셔서 겨우 나았다고 했다. 또 누나는 엄마가 늘 누나에게만 모질게 대했지만 원망을 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속상할 때 제일 많이 기대고 싶은 맘에 그랬을 거라고 했다. 누나는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물어 봤다. 나는 일 주일 후 발리에 있는 구타로 갈 거라고 했다.

올 1월에 나는 십이 일 간 발리에 가 있었다. 서울은 너무 추웠으므로 그냥 따뜻한 곳에 가 있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수잔이란 영어 이름을 쓰고 나이는 스물 둘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빌리 서머 호텔에서 일한다. 누나는 나에게 나이를 먹어도 꿈처럼 사는 것 같다며, 둘다 상처 입지 않게 잘 하라는 당부를 했다. 자정이 지나 잠자리에 들려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아버지가 밖으로 나왔다. 다가가 보니 어머니의 신발이었다. 어머니가 가져오랬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웬일인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밤에 수잔의 꿈을 꾸고 있을 때 였다. 아버지가 내 머리맡에 와서 어깨를 흔든 건 아마 새벽 3시나 4시쯤이었다. 아버지는“갔어!”라고 말하셨다. 조용히 말해도 될 텐데 그는 굳이 외쳐 말하고 있었다. 일어나서 내가 불을 켜려고 하자 그냥 놔두고 나오라며 내 손목을 차갑게 거머쥐었다. 나는 그에게 손목이 붙들려 방밖으로 나갔다. 마루로 막 올라서려다 말고 그가 해바라기 방에서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네 에미가 갔다고!” 그제서야 나는 안방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퍼뜩 깨달았다. 이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겨우 가누고 안방으로 들어섰을 때 맨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의 머리맡에 놓여 있는 흰 고무신이었다. [2]

RDF 및 온톨로지

R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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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ain Relation Range 설명
빛의 걸음걸이 윤대녕 창작되다 A는 B에 의해 창작되다
빛의 걸음걸이 현대문학상 받다 A는 B를 받다
빛의 걸음걸이 현대소설 장르이다 A는 B의 장르이다
빛의 걸음걸이 단편소설 장르이다 A는 B의 장르이다
빛의 걸음걸이 실험적 성격이다 A는 B의 성격이다
빛의 걸음걸이 사실적 성격이다 A는 B의 성격이다
빛의 걸음걸이 현대 배경이다 A는 B가 배경이다
빛의 걸음걸이 서울 배경이다 A는 B가 배경이다
빛의 걸음걸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A는 B의 시점이다
빛의 걸음걸이 1997년 출판되다 A는 B에 출판되다
빛의 걸음걸이 문학동네 출판되다 A는 B에서 출판되다
빛의 걸음걸이 5인 가족 등장한다 A에 B가 등장한다

온톨로지

  • 온톨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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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및 기여자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