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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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구한말 민족구국지였던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가 서울신문의 전신이다. 1904년 2월에 일어난 러일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던 영국인 베델이 양기탁 등 민족진영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1904년 7월 18일에 창간하였다.

《대한매일신보》는 발행인이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이었기 때문에 통감부의 검열을 받지 않고 항일 논설을 자유롭게 실을 수 있었고, 따라서 일반 민중들의 지지도가 높았으며 발행부수도 가장 많았다. 영문판의 제호는 《The Korea Daily News》였다. 주요 논설진으로는 양기탁 외에 박은식·신채호 등이 있었다. 특히 양기탁이 편집과 경영의 실질적 책임을 지고 주요 논설의 대부분을 집필하였다. 《대한매일신보》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해 애국운동을 주도했으며, 1904년 4월에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를 설치했다.

소개

서울신문은 대한민국의 10대 일간지 중 하나이며, 1904년 7월 18일에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에 뿌리를 두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신문이다.

'공익을 추구하는 공영신문', '전문성과 독창성이 있는 서울신문'이라는 비전을 갖고 활동하고있다.

국내 유일의 정부 출자신문 ,창간당시 항일논조, 항일투쟁 ,한일합방이후 일본에 매입되어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친일미화, 통치합리화) ,이승만정권을 적극지지, 박정희,전두환시절 정부운영 관영지로 정부찬양기사,지금은 민영화되어 정부와 직접적인 관련은없음

비전

1.공익을 추구하는 공영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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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우리사주조합이 각기 1, 2대 주주인 국내 유일한 공영신문으로서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특정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 언론의 자세를 지켜나가고 있다.


2.전문성과 독창성이 있는 서울신문

정부의 정책, 행정, 자치, 공무원 뉴스의 특화 지면을 제작한다.

정책을 입안 단계에서부터 소상하게 알리고 시행 과정을 감시하며 정책 수요자인 국민의 반응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정부와 시민의 메신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중앙행정부처, 전국 시·도, 지방자치단체의 다양한 소식과 함께 공무원에 관한 뉴스와 라이프를 다루는 공무원 프리미엄 매거진 ‘퍼블릭IN’ 섹션을 매주 발행하는 등 다른 신문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서울신문의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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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앞의 축약 부호(')는 신기원, 계승 압축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대한매일신보) `서울신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서울신문 앞에 대한매일신보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고 서울신문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혁

날짜 내용
1904년 6월 29일 양기탁이‘코리아 타임스(The Korea Times)’라는 이름으로 첫 영자신문 시험판을 제작
1904년 7월 19일 베델과 양기탁에 의해 한글 2면,영어 4면 총 6면으로 구성된 <대한매일신보> 창간
1908년 5월 27일 국내 최고의 신문으로 자리잡음
1910년 8월 30일 제호가 해방 후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오세창이 초대 사장으로 취임하며 <매일신보>로 바뀌고 황국신민화의 도구로 전락
1918년 우리나라 최초로 기자 공개채용 실시
1937년 시민들에게 빠르게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종로 화신백화점 옥상에 전광속보대 설치
1945년 11월 22일 <서울신문>으로 제호 변경
1946년 2월 월간 시사, 문화예술 종합지 ‘신천지'를 창간함
1948년 10월 18일 우리나라 최초 시사주간지 '주간서울' 창간
1949년 8월 15일 광복 이후 최초로 조석간제(朝夕刊制) 실시
1954년 1월 1일 ‘자유부인(정비석 작가·김영주 화백)’이 서울신문에 첫 연재를 시작
1956년 10월 18일 문어체가 아닌 본격적인 '한글판 서울신문' 발행
1968년 9월 22일 국내 최초 책자형 주간지 '선데이서울' 창간
1973년 11월 4일 고급 종합 지성 주간지 '서울평론' 창간
1975년 3월 30일 스포츠 레저 오락 주간지 '주간스포츠' 창간
1981년 7월 18일 국내 최초 주간 TV연예 잡지 'TV가이드’창간
1985년 1월 1일 국내 최초 CTS 신문 제작
1985년 6월 22일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최고 스포츠 신문 '스포츠 서울' 창간
1988년 4월 13일 서울신문 노동조합 출범
1990년 7월 여성 월간지 '' 창간
1991년 12월 31일 지령 1192호를 마지막으로 ‘선데이서울’ 휴간, 이어 1992년 1월 5일 ‘피플’이라는 뉴스 인물 주간지 창간
1995년 11월 22일 인터넷 뉴스 서비스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오픈
1998년 11월 11일 <서울신문> 제호를 <대한매일>로, 사명을 <대한매일신보사>로 변경
1999년 12월 30일 스포츠서울을 독립법인 ‘주식회사 스포츠서울21’로 분사.
2004년 1월 1일 <서울신문>으로 다시 제호 변경
2007년 4월 25일 인터넷 브랜드 뉴스 '나우뉴스' 오픈
2010년 12월 9일 서울신문 모바일 웹(m.seoul.co.kr) 오픈
2014년 4월 1일 디지털 초판 서비스 '서울신문 프리미어 에디션(Premier Edition)' 실시
2016년 7월 18일 '서울마당' 조성 및 시민에게 개방
2017년 2월 6일 공무원 프리미엄 월요 매거진 '퍼블릭 IN' 발행

개최, 주최 행사

농어촌청소년대상·향토문화상·교정대상(矯正大賞)·서울문화예술평론상 등의 시상과 서울현대조각공모전·도예공모전·신춘문예·파리나무십자가소년합창단 초청공연 등의 문화예술행사
전국여자실업농구연맹전·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전국실업도로사이클선수권대회·패왕전바둑대회·전국대학바둑패왕전 등의 체육·레저행사 
를 정기적으로 개최,주관하였다

공식 페이지 주소

https://www.youtube.com/user/ThetvSeoul 서울신문 공식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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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TheSeoulShinmun/ 서울신문 공식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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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eoul.co.kr/ 서울신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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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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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언론기관

서울신문사는 1946년 1월 15일 종합잡지 《신천지(新天地)》를 창간하였다. 이후 연예오락주간지 <선데이 서울>(1968.9.22), <소년서울>(1970.4.22), <서울평론>(1973.11.4) ,<주간스포츠>(1975.3.30), 등의 잡지들을 발행하다가 모두 폐간했다. 연예 주간지 <TV가이드>(1981.7.18), 여성월간지 <퀸>(1990.7.22), 시사주간지 <뉴스피플(NewsPeople)>(1992.1.12), 스포츠연예전문지<스포츠서울>(1985.6.22)을 창간했다. 2008년에는 연예,오락 전문 온라인 뉴스컨텐츠 <나우뉴스>,<나우뉴스TV>,<서울신문NTN>를 창설하였고,2009년 10월에는 서울신문STV 개국으로 방송사업에 진출했다. 1968년 9월 22일 창간된 <선데이서울>는 언론자유화에 따라 탄생한 다른 오락잡지에게 밀려 1992년에 폐간되었다.

네트워크 그래프

상.PNG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서울신문 대한매일신보 A는 B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서울신문 노경식 A에서 B가 데뷔하였다
서울신문 주간서울 A는 B를 창간했다
서울신문 CTS 신문 A는 B를 제작했다
서울신문 퍼블릭 IN A는 B를 발행했다
오세창 서울신문 A는 B의 초대사장이었다
홍기문 서울신문 A는 B의 편집국장이었다
서울신문 패왕전바둑대회 A는 B를 개최한다
서울신문 전국여자실업농구연맹전 A는 B를 개최한다
서울신문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A는 B를 개최한다
서울신문 여성 월간지 '퀸' A는 B를 창간했다
베델 서울신문 A는 B를 만들었다
양기탁 서울신문 A는 B를 만들었다
서울신문 태평로1가 A는 B에 위치한다

참고문헌

서울신문 제호, 사진, 연혁 등

구글지도서울신문사의 위치

서울신문 성향

서울신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작성자 및 기여자

작성자:최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