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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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신동엽(申東曄, 1930년 8월 18일 ~ 1969년 4월 7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충청남도 부여 출생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석림(石林)이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 이름

- 신동엽/ 申東曄/ 호(號)는 석림(石林)


  • 학력

- 부여국민학교 (졸업)
- 전주사범학교 (졸업)
- 단국대학교 사학과 (학사)
- 건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 경력
시기 상세내용
1958년 충남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
1961년 명성여자고등학교 국어교사
1966년 그 입술에 파인 그늘〉 국립극장 상연
1968년 오페라타 〈석가탑〉 드라마센터 상연

생애

  • 생애 초기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신연순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부여국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같은 해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김응교 시인이 쓴 민족시인 신동엽(사계절)에 따르면 신동엽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부친 신연순이었다. 성격이 차분한 아들을 보면서 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6살때부터 글을 가르쳤으며, 없는 살림이었지만 책과 붓을 마련하였다. 또한 사범학교 시절에 독서에 힘씀으로써 아나키즘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갔다.
  • 학창 시절
 그는 1948년 11월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미실시와 친일 미청산에 항의하는 동맹 휴학으로 학교에서 퇴학되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던 신동엽은 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사범학교에서 퇴학되었지만 교원자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부친은 사법 서사로 노동을 해서 버는 돈으로는 학비를 대지 못했기 때문에 밭을 내놓았다. 학문을 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한 것이었다.
  • 한국 전쟁 시기
 1950년 6.25 전쟁이 일어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였다. 전쟁으로 민중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서울에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음을 말해주었다. 1950년 7월 15일 인민군이 부여를 점령하였다. 인민군은 토지개혁과 조직사업으로써 공산주의를 실천하고 있었다. 신동엽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동엽의 지식을 조직사업에 활용하려는 인민군의 요구로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주청년동맹(민청)선전부장으로 일하였다. 그런데 이는 그가 공산주의자라서가 아니었다. 동엽은 세상을 바꿔가야 한다는 공산주의의 주장에 동의했지만 생각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무정부주의자였다. 1950년 말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1년 4월 30일 국민방위군이 해체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오다 굶주림 때문에 게를 먹는 바람에 디스토마에 감염되고 말았다.
  • 작가로서의 활동
 1953년 단국대를 졸업한 뒤 제1차 공군 학도간부 후보생에 지원, 합격을 했으나 발령은 받지 못했다. 그 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자취방을 얻었다. 그리고 친구의 도움으로 돈암동 네 거리에 헌책방을 열었다. 신동엽은 이때 이화여고 3학년이던 부인 인병선을 만났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한 뒤 고향으로 낙향했다. 이때 인병선은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부여 읍내에 양장점을 열었다. 이와 함께 신동엽 또한 충남 보령군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58년 각혈을 동반한 폐결핵을 앓게 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 돈암동 처가에 아내와 자녀를 올려 보낸 뒤 고향 부여에서 요양하며 독서와 글쓰기에 빠진다. 1959년 독서와 문학 습작에 몰두하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를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1960년 신동엽은 건강을 되찾아 서울에 있는 '교육평론사'에 취업한 뒤 성북구 동선동에 터를 잡았다. 그해 《학생혁명시집》을 집필하며 4·19 혁명에 온몸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신동엽을 가리켜 '4.19 시인'으로 평가하는 문인들이 많다. 그리고 훗날 4·19 혁명의 기억을 되살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가 나올 수 있었다. 1961년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안정된 직업을 얻게 되어 시작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64년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3년 시집 《아사녀》를 출간하고 1967년 장편서사시 《금강》을 발표했다. 1969년 4월 7일 간암이 악화되어 4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작품활동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필두로 <삼월>, <발>, <4월은 갈아엎는 달>, <주린 땅의 지도원리>, <우리가 본 하늘> 등 민주세력에 스며든 기회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통일을 노래한 여러 시를 발표하였다.

작품

  • 신동엽 (1963). 《아사녀》. 문학사.
  • 신동엽 (1975). 《신동엽 전집(증보판)(창비신서 10)》. 창작과비평사. ISBN 8936410105.
  • 신동엽; 신경림 (1988). 《꽃같이 그대 쓰러진》. 실천문학사.
  • 신동엽 (1989). 《누가하늘을보았다하는가: 신동엽詩選集》. 창작과비평사.
  • 신동엽 (1989). 《금강》. 창작과비평사. ISBN 8936428152.
  • 신동엽 (1989).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개정판)(창비시선 20)》. 창작과비평사. ISBN 8936420208.
  • 신동엽 (1989). 《錦江 창비전작시》. 창작과비평사.
  • 신동엽 (1991).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시선》. 미래사.


작품목록

작품명 일자 출판사 비고
진달래 산천(山川) 1959-03-24 조선일보
새로 열리는 땅 1959-11-02 세계일보
향(香)아 1959-11-09 조선일보
싱싱한 종자(腫子)를 위하여… 1960-01 교육평론 1월호 권두시
풍경(風景) 1960-02 현대문학 2월호
정본(正本) 문화사대계(文化史大系) 1960-06 세계 6월호
아사녀(阿斯女) 1960-07 교육평론사 학생혁명시집
그 가을 1960-10-17 조선일보
힘이 있거든 그리로 가세요 1961-04-11 서울일일신문
내 고향은 아니였었네 1961-10 약업신문
아사녀(阿斯女)의 울리는 축고(祝鼓) 1961-11 자유문학 11월호
나의 나 1962-06 신사조
이곳은 1962-08 현대문학
별밭에 1962 성원 제3집
너는 모르리라 1962 경향신문
아니오 1963 시집 아사녀
빛나는 눈동자 1963 시집 아사녀
미쳤던 1963 시집 아사녀
눈 날리는 날 1963 시집 아사녀
산사(山死) 1963 시집 아사녀
산(山)에 언덕에 1963 시집 아사녀
완충지대(緩衝地帶) 1963 시집 아사녀 ‘새로 열리는 땅’과 거의 같은 내용임
원추리 1963 시집 아사녀 원제 ‘꽃대가리'
주린 땅의 지도원리(指導原理) 1963-11 사상계 11월호
기계(機械)야 1963 시단
진이(眞伊)의 체온(體溫) 1964-12-19 동아일보 1969년 월간문학 6월호에 ‘일모(日暮) 이야기’로 재수록
1965 시단
삼월(三月) 1965-05 한국문학 5월호
초가을 1965-10 사상계 10월호
1966-03 현대문학 3월호
4월(月)은 갈아엎는 달 1966-04 조선일보
산(山)에도 분수(噴水)를 1966-11 신동아
담배 연기처럼 1966 한글문학 겨울호
껍데기는 가라 1967-01 신구문화사 52인시집
창(窓)가에서 1967-04 자유공론 4월호
종로오가(鐘路五街) 1967-06 동서춘추 6월호
봄은 1968-02-04 한국일보
달이 뜨거든/아사달•아사녀의 노래 1968 오페레타 ‘석가탑’ 제5경
수운(水雲)이 말하기를 1968-06-27 동아일보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 1968 창작과비평 여름호
보리밭 1968 창작과비평 여름호
여름 이야기 1968 창작과비평 여름호
그 사람에게 1968 창작과비평 여름호
고향(故鄕) 1968 창작과비평 여름호
여름 고개 1968 창작과비평 여름호
산문시(散文詩)〈1〉 1968-11 월간문학 창간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969-05 고대문화
조국(祖國) 1969-06 월간문학 6월호
영(影) 1969-08 현대문학 8월호
서울 1969 상황 창간호
좋은 언어(言語) 1970-04 사상계 4월호
마려운 사람들 1970-04 사상계 4월호
봄의 소식(消息) 1970 창작과 비평 봄호
너에게 1970 창작과 비평 봄호
강(江) 1970 창작과 비평 봄호
살덩이 1970 창작과 비평 봄호
만지(蠻地)의 음악(音樂) 1970 창작과 비평 봄호
단풍(丹楓)아 산천(山川) 1971-10 다리 10월호
권투선수 1971-10 다리 10월호
노래하고 있었다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來日)은 이길 것이다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새해 새 아침을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주간경향(신동엽전집)
왜 쏘아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어느 해의 유언(遺言)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불바다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둥구나무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오월(五月)의 눈동자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금강(錦江) 1967-12 을유문화사 한국현대신작전집 서정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 1959-01 조선일보 서정시
여자(女子)의 삶 1969-01 여성동아 1월호 서정시


  • 평론
작품명 일자 출판사 비고
시인정신론(詩人精神論) 1961-02 자유문학
육십년대(六十年代)의 시단(詩壇) 분포도(分布圖) 1961-03-30 조선일보
시(詩)와 사상성(思想性) 1963-12-11 동아일보
7월(月)의 문단(文壇) 1967-07-19 중앙일보
8월(月)의 문단(文壇) 1967-08 중앙일보
9월(月)의 문단(文壇) 1967-09 중앙일보
지맥(地脈) 속의 분수(噴水) 1968-06 한국일보
시인(詩人)•가인(歌人)•시업가(詩業家) 1969-03-24 대학신문
선우휘(鮮于煇)씨의 홍두깨 1969-04 월간문학
신저항시운동(新抵抗詩運動)의 가능성(可能性) 1971-10 다리
전통정신(傳統精神) 속으로 결속(結束)하라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1967년경 미발표 유고


  • 수필
작품명 일자 출판사
서둘고 싶지 않다 1962-06-05 동아일보
사족(蛇足) 1963 시집 ‘아사녀’ 후기
금강잡기(錦江雜記) 1963-10 재무
노동(勞動)과 서정(抒情)의 이성(理性) 1967 52인 시집
공예품(工藝品) 같은 현대시(現代詩) 1967-07-19 중앙일보
낯선 외래어(外來語)의 작희(作戱) 1967-08 중앙일보
확트인 이야기로 빛을 본 모국어(母國語)들 1967-09 중앙일보
시끄러움 노이로제 1968-01 국세
산(山), 잡기(雜記)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냄새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단상초(斷想抄) 1975 창작과비평사 신동엽전집


  • 기타
작품명 일자 출판사 비고
오페레타 <석가탑> 1968-05 드라마 센터에서 상연 백승동 작곡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 1966-02-26 국립극장에서 공연 최일수 연출

사후기념

수상

 2003년 은관문화훈장 서훈


무덤

​1969년 4월 9일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월롱산 기슭에 안장되었으며, 12월 14일 묘비가 세워졌다. 묘소는 1993년 11월 부여로 옮겨와 능산리 고분의 건너편 산에 자리를 잡았다

부여읍 나성터 금강 기슭


시비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뒤 ‘신동엽 시비 건립위원회’(위원장 구상)가 구성되었다. 문인, 동료, 제자 등 1백여 명이 참여하였으며, 건립비는 26만 3천 원이 들었고, 시비의 글씨는 박병규, 설계는 정건모, 조각은 최석구가 했다. 1970년 4월 18일 고향인 부여읍 동남리 백제교 옆 백마강 기슭에 시비〈산에 언덕에〉가 세워졌다.

이후 신동엽의 시비는 단국대학교(1990년), 부여초등학교(1999년), 전주교육대학교(2001년)에 세워졌다. 2019년, 신동엽 시인이 8년간 재직했던 전 명성여고, 현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개교 89회와 시인의 50주기를 맞이하여 <껍데기는 가라>가 새겨진 시비를 세웠다. 현재 신동엽 시비는 4군데에 세워져 있다.


신동엽학회

2010년 9월 10일 신동엽을 사랑하는 문인들의 모임인 신동엽학회(회장 구중서)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이민호 (서강대학교 교수), 고명철 (문학평론가), 정우영 (상임이사) 등이 참여한 이 학회에서는 2010년 신동엽이 지향하던 “온전한 인간”이라는 뜻의 전경인(全耕人)을 넣어서 《전경인 어문연구》 창간호를 냈다.

신동엽학회 카페


신동엽 문학상

1982년 그의 뜻을 기려 신동엽창작기금이 조성되어 매해 신동엽문학상을 수여한다.
'신동엽창작기금'에서 2004년 명칭이 '신동엽창작상'으로 바뀌었다. 2012년 제30회부터는 '신동엽문학상'으로 개칭했다.


신동엽 문학관

신동엽 문학관은 시인 신동엽의 문학정신을 추억하고 기리기 위해 2013년 5월 3일 개관된 문학관이다.부여읍에서 2004년부터 8개년 연속사업으로 추진해서 2011년 12월에 준공되었으며, 총 사업비 36억 6300 만원이 들었다. 유족은 문학관에 시인의 육필 원고 737 점을 비롯해 편지와 사진, 책 등 모두 2,114 점을 기증했다.

  • 위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신동엽길 12 (동남리 501-21), 신동엽 생가 뒷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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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콘텐츠

- 부여에서 신동엽 시인을 만나다


- 인물을말하다_시인 신동엽편

RDF 및 온톨로지

RDF

Domain(A) Range(B) 관계 설명
신동엽 충청남도 부여 태어났다 A는 B에서 태어났다.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창작했다 A가 B를 창작했다.
신동엽 단국대학교 졸업하다 A는 B를 졸업하다
신동엽 은관문화훈장 수상하다 A는 B를 수상하다
신동엽 인병선 결혼하다 A는 B와 결혼하다
신동엽 ‘석가탑’ 창작했다 A가 B를 창작했다.
창비 신동엽문학상 제정하다 A는 B를 제정하다
시비 부여동남리 백제교 세워지다 A는 B에 세워지다
시비 단국대학교 세워지다 A는 B에 세워지다
시비 부여초등학교 세워지다 A는 B에 세워지다
시비 전주교육대학교 세워지다 A는 B에 세워지다
시비 명성여자고등학교 세워지다 A는 B에 세워지다

온톨로지

신동엽시.png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상선. (1996). 김창완 지음 『신동엽 시 연구』, 국어국문학회, 463 - 465.

김윤태(신동엽기념사업회). (2019). 신동엽 시의 ‘하늘’과 동학사상, 창작과비평, 381 - 403

작성자

작성자: 안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