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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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유치환(柳致環, 1908년 7월 14일 ~ 1967년 2월 13일)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교육가이다. 경상남도 통영 출생.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청마(靑馬). 준수(焌秀)의 8남매 중 둘째아들이며, 극작가 유치진의 동생이다.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야마[豊山]중학에서 4년간 공부하고 귀국하여 동래고보(東萊高普)를 졸업,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하였으나 1년 만에 중퇴하였다. 정지용(鄭芝溶)의 시에서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 1931년 《문예월간》지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데뷔, 그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작을 계속, 1939년 제1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간행하였다. 여기에 초기의 대표작인 〈깃발〉 · 〈그리움〉 · 〈일월〉 등 55편이 수록되었다.

광복 후에는 청년 문학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민족문학운동을 전개하였고, 6 · 25동란중에는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의 일원으로 보병3사단에 종군하기도 하였다. 《보병과 더불어》는 이 무렵의 시집이다. 1953년부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이후에는 줄곧 교직으로 일관하였고, 안의중학교(安義中學校) 교장을 시작으로 하여 경주고등학교 등 여러 학교를 거쳐 부산남여자 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 교통사고로 죽었다. 40여년에 걸친 그의 시작은 한결같이 남성적 어조로 일관하여 생활과 자연, 애련과 의지 등을 노래하고 있다.

학력

  • 경상남도 통영보통학교 졸업
  • 일본 도쿄 도요야마 중학교 수료
  • 경상남도 부산 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
  • 경성 연희전문학교 중퇴
  •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3기(1957년)

주요 활동

주요 활동
일시 활동
1908 음력 7월 14일 경남 통영시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남.
1918 외가 사숙에서 한문 공부를 하다가 10세에 통영보통학교 입학.
1922 통영보통학교4학년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풍산중학교 입학.
1923년 <토성>에 고향 문우들과 시를 발표.
1926 풍산중학교 4학년을 마치고 귀국.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 편입.
1927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 졸업.

연희전문학교 문과 입학.

1928 연희전문학교 문과 중퇴. 권재순과 결혼.
1929 귀국. 고향에서 <소제부> 라는 회람지 발간.
1931 <문예월간> 제2호에 <정적>을 발표하며 등단.
1937 통영협성상업고등학교 교사 취임.
1939 첫 시집 ≪청마시초≫ 발간.
1945 6월말 귀국. 통영문화협회를 조직, 초대 회장 역임.
1947 6월 시집 ≪생명의 서≫ 발간(시 <귀고> 외 59편 수록).
1947 6월, 시집 ≪생명의 서≫ 발간(시 <귀고> 외 59편 수록).
1947 6월, 시집 ≪생명의 서≫ 발간(시 <귀고> 외 59편 수록).
1948 9월, 시집 ≪울릉도≫ 발간(시 <동백꽃> 외 34편 수록).
1949 5월, 시집 ≪청령일기≫발간(시 <심산>외 65편 수록).
1954 시집 ≪청마시집≫ 발간.
1956 3월, 제1회 경북문화상 수상.
1967 2월13일 부산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작품

시집

  • 청마시초 1939
  • 생명의 서 1946
  • 을릉도 1948
  • 청령일기 1949
  • 보병과 더불어 1951
  • 기도가와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1954
  • 제9시집 1957
  • 시선 1958
  •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1960
  • 미루나무와 남풍 1964
  •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1965

수필집

  • 수상록 - 예루살렘의 닭 1953
  • 동방의 느티 1959
  • 나는 고독하지 않다 1963

  • 깃발
  • 산 1
  • 소리개
  • 춘신
  • 생명의 서 (1장)
  • 바위
  • 울릉도
  • 거제도 둔덕골
  • 바다
  • 낙화
  • 그리움
  • 들꽃과 같이
  •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석굴암 대불
  • 행복
  • 어시장에서
  • 솔밭에 와서
  • 바람에게
  • 노송
  • 수선화
  • 향수
  • 일월
  • 광야에 와서
  • 저녁놀
  • 원수
  • 그리움
  • 귀고歸故
  • 출생기
  • 동백꽃
  • 산엣봄
  • 낮달
  • 밤바람
  • 세월
  • 설일雪日

유치환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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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마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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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광역시 동구
    • 유치환의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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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친일파

친일파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특히 1942년 2월 6일 자 만선일보에 기고한 친일성 산문이 2007년 10월 19일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에 의해 발견되면서 기존의 애국 시인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었다.

불륜

통영여중 재직 당시 가사선생님으로 근무했던 여류시인 정운 이영도(1916년 10월 22일 ~ 1976년 3월 5일)에게 그야말로 한 눈에 반해 살아 생전 20년 동안 연애편지를 써서 보냈다. 처음 만나게 된 1947년부터 교통사고로 죽게 된 1967년까지 이룰 수 없는 짝사랑에 대한 고통과 회한, 그리고 설렘과 기쁨을 잔뜩 버무려 표현한 연애편지들 가운데 한국전쟁 이전의 것은 소실되고 남아 있던 것이 5000여통이라 한다. 그중 200통을 추려 유치환의 사망 두달 후에 《사랑했으므로 幸福하였네라》(중앙출판공사, 1967)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당시로서는 기록적인 부수인 25,000부를 찍어냈다.

문제는 유치환은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는 점. 반면 이영도는 21세에 남편을 잃고 외동딸을 홀로 키우고 있던 과부였다. 다만, 두 사람은 현실의 만남을 갖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치환 아내는 이 이야기가 퍼졌는데도 20년동안 꾹 참았다는 것이다. 참고로 이영도는 위에 나온 책 판매수익을 모두 기부했다.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유치진 유치환 A는 B ~가족이다(P)

참고문헌

[청마기념관]

유치환의 시세계와 그 변모의 양상 / 한국시문학회 / 신상철 1991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