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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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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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범선
성별
출생 1920년 12월 30일
출생지 평안남도 안주군
가족관계 아내: 홍순보
대표작 학마을 사람들, 나의 피난기, 오발탄


생애

이범선은 1920년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5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신안주의 대지주였으며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어머니의 집안 또한 부유하여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소설과 수필들 곳곳에는 고향에 대한 묘사가 발견되며, 그곳은 이상향과 같은 공간으로 회고된다. 이범선의 ‘고향’은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 그 자체를 의미”하며, 이는 이범선의 유년기가 물질적으로 풍족했으며 정신적으로는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1933년 보통학교를, 1938년에 공립상공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평양에서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만주로 옮겨 사무직으로 일했다. 일본 대학에서 공부할 경제적 능력은 충분했지만 학도병 징병을 피하기 위해 유학을 포기했다. 1940년 척추병이 발병하여 20개월 가까이 투병 생활을 했으며, 1942년에는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1943년부터 금융조합에서 근무하다가 홍순보와 10월에 결혼했다. 일제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평안북도의 탄광에서 경리 업무를 보았으나, 현지 징용되어 해방 전까지 탄광 업무에 동원되었다.

1945년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집안의 토지는 모두 몰수당한 상태였다. 1946년 월남하여 미군정청, 전구 회사 등에 근무하다가 같은 해 동국대 문학부에 입학, 1949년에 졸업한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러 직장을 옮겨 다니며 부인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가지 못하고 인민군 점령 치하의 서울에서 체류했다. 그는 인민군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병자 행세를 했으며, 경제적인 문제는 부인이 해결했다. 19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난했으며, 백낙준의 소개로 거제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3년간 교사 생활을 했다. 1954년 서울로 돌아와 1955년 대광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이전까지 문학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으나 한국전쟁 경험 이후 소설에 뜻을 두기 시작했다. 김동리의 추천으로 문예지 <현대문학>에 〈암표〉와 〈일요일〉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1955년 대표작 〈학마을 사람들〉을 발표하고 1959년 〈나의 피난기〉와 〈오발탄〉을 발표했다. 〈오발탄〉의 “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일지도 모른다”라는 구절이 문제가 되어[1]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였던 대광고등학교를 교사를 퇴임, 한국 외국어대학교 교무주임으로 근무하다가 1961년 서라벌 예술대학, 한국외국어대학에 출강했다. 이후 평생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소설가협회 부대표위원을 지냈고,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부이사장을 역임했고, 동인문학상 후보상(1960), 월탄문학상(1970) 등을 수상했다. 1981년 3월 13일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 특징

이범선은 손창섭, 장용학, 선우휘 등과 더불어 한국 전후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학마을 사람들>(1955)과 <오발탄>(1959)을 발표하면서 한국 문단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그의 작품은 감상적 리리시즘과 사회 고발적 리얼리즘 경향으로 대별되며, 공통된 정신적 기반은 휴머니즘이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이범선의 초기 대표작인 <학마을 사람들>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여 강원도 산골의 ‘학마을’ 사람들에게 일어난 수난을 다룬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음울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면서 무기력하게 훼손되는 인간들을 부각시키고 있다.[2] 이와 같이 이상적 공간, 혹은 삶을 보여준 후 그렇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는 감상적 리리시즘의 계열이다.

한편, 고발적 리얼리즘의 계열에는 단편소설 <피해자>(1958), <오발탄>과 장편소설 <춤추는 선인장>(1966-1967) 등이 대표적이다. <오발탄>은 한국전쟁 이후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 송철호와 그의 가족들의 비극적 삶을 보여준다.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일하는 송철호를 비롯하여 북에 두고 온 고향이 그리워 늘 ‘가자, 가자’를 외치는 정신이상자 어머니, 곧 아이를 낳을 아내와 나이 어린 딸, 사회를 저주하는 남동생 영호, 미군에게 몸을 팔며 생활하는 여동생 명숙을 통해 전후의 우울한 사회상과 약자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이범선의 후기 장편소설인 <흰 까마귀의 수기>(1979)는 자전적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이범선은 월남 이후 30년에 이르는 시기의 내면의 변화를 상세하게 그려낸다. 스스로를 보통의 존재가 아닌 ‘흰 까마귀’로 인식하며 살아온 자전적 주인공은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신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수상 내역

  • 1958년 제4회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수상작 <갈매기>)
  • 1960년 제5회 동인문학상 후보상 수상 (수상작 <오발탄>)
  • 1970년 제5회 월탄문학상 수상 (수상작 <청대문집 개>)
  • 1981년 대한민국 예술상 수상

RDF

Domain Range 설명
이범선 1920년 12월 30일 태어났다
이범선 1982년 3월 13일 사망했다
이범선 평안남도 안주군 태어났다
이범선 소설가협회 부대표의원 지냈다
이범선 한국문인협회 이사 역임했다
이범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역임했다

유튜브 자료



참고자료

참고자료: ‘예술지식백과 이범선’ <문화포털>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code_value=H&vvm_seq=7855&ccm_code=H032&ccm_subcode=H132 ‘이범선’ <Digital Library of Korean Literature>

https://library.ltikorea.or.kr/node/274
  1. 같은 제목의 영화 <오발탄>(1961)으로 각색 되었으나,“반사회적인 방향으로 해석”된다는 이유로 상영 중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2. 초기의 작품 「암표」·「일요일」·「이웃」(1956)·「학마을 사람들」(1957)·「수심가(愁心歌)」(1957)·「갈매기」(1958) 등에는 그의 생활 체험이 반영된 것으로서 어두운 사회의 단면과 무기력한 인간상(人間像)이 많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