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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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상(李箱, 1910년 9월 23일 ~ 1937년 4월 17일)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 작가, 소설가, 수필가, 건축가로 일제 강점기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이다. 1930년대 한국 자의식 문학의 선구자로, 그의 작품에서는 근대적 도시풍경과 지식인의 내면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대표 작품은 『오감도』와 『날개』가 있다.

생애

출생 및 성장과정

이상(李箱)은 1910년 9월 23일 경성부 북부 순화방 반정동 4통 6호에서 부친 김영창(金永昌)과 모친 박세창(朴世昌)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부친 김영창은 일본 강점 이전 구한말 궁내부 활판소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된 뒤 일을 중단하고 집 근처에 이발관을 개업하여 가계를 꾸려 갔다. 형제로는 누이동생 김옥희와 남동생 김운경이 있다. 1913년 이상은 백부 김연필의 집으로 옮겨 그곳에서 성장했다. 백부 김연필은 본처와의 사이에 소생이 없어서 조카인 이상을 데려다가 친자식처럼 키우고 그 학업을 도왔다. 1917년 이상이 8세가 되던 해에 신명학교에 입학하였다. 신명학교 재학 중에 구본웅과 동기생이 되어 오랜 친구로 지냈다. 1921년 신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불교중앙교무원에서 운영하는 동광학교에 입학하였다. 1922년 동광학교가 보성고등보통학교와 합병되자 보성고보에 편입하였다. 보성고보에 다니면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화가 지망생이 되었다. 1926년 보성고보 4회 졸업생이 되고,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였다. 1928년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졸업 사진에 본명 대신 이상(李箱)이란 별명을 썼다.

취직 및 등단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자 학교의 추천으로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발령을 받았다. 이해 11월에는 조선총독부 관방회계과 영선계로 자리를 옮겼다. 조선에 진출해 있는 일본인 건축 기술자 중심의 조선건축회에 가입했고, 이 학회의 일본어 학회지 《조선과 건축》의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다.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일반에게 홍보하기 위해 발간하던 잡지 《조선》의 국문판에 1930년 2월호부터 12월호까지 9회에 걸쳐 유일한 장편 소설인 12월 12일(十二月十二日)」을 이상(李箱)'이란 필명으로 연재하였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서양화 「자상(自像)」이 입선하였다.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로 쓴 시 「이상한 가역반응」 등 20여 편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하였다. 1932년 《조선과 건축》에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제목으로 일본어 시 「AU MAGASIN DE NOUVEAUTES」, 「출판법」 등을 발표하였다. 《조선》에 단편 소설 「지도의 암실」을 비구(比久)'라는 필명으로 발표하고, 단편 소설 「휴업과 사정」을 '보산(甫山)'이라는 필명으로 잇달아 발표하였다. 《조선과 건축》의 표지 도안 현상 공모에서 가작 4석으로 입상하였다.

병고와 구인회

1931년 폐결핵 감염 사실을 진단받았다. 1933년 폐결핵으로 인해 직무 수행에 어려움을 느끼자 조선총독부 기수직을 사직하고 봄에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요양했다. 배천 온천에서 알게 된 기생 금홍을 서울로 불러올려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면서 동거하였다. 1933년 8월에 결성된 문학 단체 '구인회'의 핵심 동인인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류가 시작되었고, 정지용의 주선으로 잡지 《가톨릭청년》에 「꽃나무」, 「이런시」 등을 국문으로 발표하였다. 1934년 이태준의 도움으로 시 「오감도」를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하게 되지만 15편을 발표한 후 독자들의 항의와 비난으로 연재를 중단하였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는 동안 '하융(河戎)'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속의 삽화를 그렸다. '구인회'의 동인으로 김유정, 김환태 등과 함께 가담하였다. 1935년 금홍과 결별한 후 다방 '제비'도 경영난으로 폐업하였다. 인사동의 카페 '쓰루(鶴)'를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실패하였다. 다방 '69'를 개업 양도하고 명동에서 다방 '무기(參)'를 경영하다가 문을 닫은 후 성천, 인천 등지를 유랑하였다.

동경 유학과 사망

구본웅이 이상을 모델로 한 초상화 「친구의 초상」을 그렸다. 그 후 구본웅은 그의 부친이 운영하던 인쇄소 창문사(彰文社)에 이상의 일자리를 주선하였다. 1936년 창문사에 근무하면서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의 창간호를 편집 발간하였다. 단편 소설 「지주회시」, 「날개」를 발표하면서 평단의 관심을 받자 자기 문학에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해에 가장 많은 시와 수필을 발표하였다. 연작시 「역단(易斷)」을 발표하였으며 「위독(危篤)」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다. 6월 변동림(구본웅의 계모의 이복동생)과 결혼하여 경성 황금정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같은 해 10월 하순에 새로운 문학 세계를 향하여 일본 동경으로 떠났다. 동경에서는 주로 삼사문학의 동인 신백수, 이시우, 정현웅, 조풍연 등을 자주 만나 문학을 토론하였다. 1937년 사상 혐의(불령선인)로 동경 니시간다 경찰서에 피검되어 한 달 정도 조사를 받다가 폐결핵이 악화되어 도쿄대학교 부속 병원으로 옮겨졌다. 단편 소설 「동해」, 「종생기」를 발표하였다.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 병원에서 28세로 요절하였다. 위독하다는 급보를 듣고 일본으로 건너온 부인 변동림에 의해 유해가 화장된 후 미아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작품

  • 소설
    • 12월 12일(1930)
    • 지도의 암실(1932.3)
    • 휴업과 사정(1932.4)
    • 지팽이 역사(1934)
    • 날개(1936.9)
    • 지주회시(1936.2)
    • 봉별기(1936.12)
    • 동해(1937)
    • 종생기(1937)
    • 환시기(1938.6.유고)
    • 실화(1939.3.유고)
    • 이상한 가역반응(1931.7)
    • 파편의 가치(1931.7)
    • ▽의 유희(1931.7)
    • 수염(1931.7)
    • BOITEUX - BOITEUSE(1931.7)
    • 공복(1931.7)
    • 조감도(1931.8)
    • 삼차각설계도(1931.10)
    • 건축무한육면각체(1932.7)
    • 꽃나무(1933)
    • 이런시(1933)
    • 一九三三, 六, 一(1933)
    • 거울(1933)
    • 오감도(1934)
    • 보통기념(1934)
    • ㆍ소ㆍ영ㆍ위ㆍ제(1934)
    • 정식(1935)
    • 지비(1935)
    • 역단(1936.2)
    • 위독(1936.10)
    • I WED A TOY BRIDE(1936.10)
    • 파첩(1937.11.유고)
    • 무제(1938.10.유고)
    • 척각(1956.유고)
    • 거리(1956.유고)
    • 수인이 만든 소정원(1956.유고)
    • 육친의 장(1956.유고)
    • 내과(1956.유고)
    • 골편에 관한 무제(1956.유고)
    • 가구의 추위(1956.유고)
    • 아침(1956.유고)
    • 최후(1956.유고)
  • 수필
    • 혈서삼태(1934)
    • 산책의 가을(1934)
    • 문학을 버리고 문화를 상상할 수 없다(1935)
    • 산촌여정(1935)
    • 조춘점묘(1936.2)
    • 서망율도(1936.2)
    • 여상(1936.2)
    • 악수(1936.7)
    • EPIGRAM(1936.8)
    • 동생 옥희 보아라(1936.9)
    • 추등잡필(1936.10)
    • 19세기식(1937)
    • 공포의 기록(1937)
    • 권태(1937)
    • 슬픈이야기(1937.6.유고)
    • 문학과 정치(1938.7.유고)
    • 실낙원(1939.2.유고)
    • 병상이후(1939.5.동경)
    • 최저낙원(1939.5.동경)
    • 동경(1939.5.동경)
  • 미술
    • 자상(1931.6)
    •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재 삽화(1934)
  • 편집

작품 세계

모더니즘

이상은 국내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대표작 '오감도'에서 상처와 불안만 남은 자신, 혼란, 정신 분열 등 자학적인 면모를 문법적 파괴, 언어체계 무시 등과 같은 방식을 활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체로 드러냈다. '오감도'는 연재 당시 독자들의 반발로 연재 중단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재평가 되었고, 지금도 세련된 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 역시 '오감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자학적인 면모로 자아의 정신적 갈등을 심화하고, 보이지 않는 무의식의 세계를 환각적 이미지로 가시화한다. 이상은 주로 부정적인 것들을 이미지로 묘사하려 하였다. 새로운 창조를 위하여 형식을 파괴하고, 작품 안에서 갈등하고 분열한다. 불안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현실을 넘어선 자아의 내면 세계를 보여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심리소설

이상은 자신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강조하였다. 입체적 구성으로 인물의 심리를 분석해 자의식의 세계를 추구하였고, 여기서 의식의 흐름 기법이 강조되었다. 대표작인 '날개'에서 이러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회의와 그로부터 탈출하고픈 욕망을 형상화하였는데, 아무런 희망 없는 무기력한 주인공이 좁은 방으로 표현되는 삶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소설의 주제를 형성한다. 작품에서 주인공은 하늘로 비상하는 것을 꿈 꾼다. 비상의 욕망이 '날개'로서 상징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근대 문인 중 대표적인 심리소설 작가이다.

기타

2차창작

이상의 생애와 작품은 2차 창작되어 공연, 도서, 매체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상(2차 창작) 페이지에서 관련 내용을 볼 수 있다.

이상의 집

이상이 3살부터 약 20여년 간 머물렀던 집터의 일부이며,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으로 10시부터 18시까지(점심시간 13시~14시 제외) 자유롭게 드나들며 도서를 자유롭게 읽을 수도 있다. 그곳에 비치된 도서는 모두 이상과 관련된 도서이다. 또한, 이상에게 헌정된 공간인 '이상의 방'이 있다.

RDF 및 네트워크 그래프

RDF

주어(S) 목적어(O) S는 O를 ~하다
김연필 이상 입양했다
이상 구본웅 친숙했다
이상 금홍 사랑했다
이상 구인회 속했다
이상 이효석 친숙했다
이상 김유정 친숙했다
이상 구인회 속했다
김유정 구인회 속했다
이효석 구인회 속했다
김유정 이효석 친숙했다
이상 변동림 결혼했다
이상 서울특별시 태어났다
이상 신명학교 재학했다
이상 보성고등보통학교 재학했다
이상 경성고등공업학교 재학했다
이상 배천온천 요양했다
이상 다방제비 창업했다
이상 동경 유학했다
이상 동경 니시간다 경찰서 체포됐다
이상 도쿄대학교 부속병원 사망했다
이상 조선총독부 근무했다
이상 창문사 근무했다
이상 조선중앙일보 연재했다
이상 조광 연재했다
이상 날개 창작했다
이상 위독 창작했다
이상 오감도 창작했다
이상 권태 창작했다
이상 이런시 창작했다
이상 역단 창작했다
이상 지주회시 창작했다
이상 조감도 창작했다
이상 무제 창작했다
이상 이상한가역반응 창작했다
이상 심리소설 추구했다
이상 의식의 흐름 추구했다
이상 모더니즘 추구했다
이상 초현실주의 추구했다

네트워크 그래프

이상의 인간관계


장소와 사건


이상의 소속

작품세계

참고자료

단행본

「故 이상의 추억」, 김기림, 1937.6, 313쪽 
「이상 문학의 비밀 13」, 권영민, 민음사, 2012
「이상 평전」, 김민수, 그린비, 2012
「한국문학사」, 김윤식, 김현. 민음사. 1973

학술논문

김종회.(2017). 이상의「날개」와 연구의 방향성. 비평문학, 64, 53-73.
김준교, 이고은. (2013). 이상 시에 나타난 초현실주의적 표현의 환각이미지 -오감도 중 ‘시 제11호’와 ‘시 제 13호’를 중심으로-. 한국디자인포럼, 39, 7-16.

기여자

4222

이름 학번
박수빈 2111199
이경남 2111181
장성현 2111110
최민우 179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