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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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본명 이원록(李源祿)·이원삼(李源三). 필명 이활(李活)·이육사(二六四)·이육사(李戮史)·이육사(李肉瀉)·이육사(李陸史). 자 태경(台卿). 안동 도산면 원천리 881번지. 아호 육사(陸史)는 대구형무소 수감번호 ‘이육사(二六四)’에서 취음한 것이다.

시인(1904~1944). 본명은 원록(源祿)ㆍ활(活). 자는 태경(台卿). 1937년 윤곤강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子午線)≫을 발간하였다. 상징주의적이고도 웅혼한 시풍으로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비극과 의지를 노래하였다. 민족 운동과 관련된 혐의로 체포되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작품에 시집 ≪청포도≫, 유고집 ≪육사 시집≫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 시집 ≪청포도≫는 1937년에 이육사가 쓴 시집인데 이육사 한국 위키피디아 문서의 '육사는 살아 생전 시집을 출간하지는 못하였고 순국 후, 당대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인 둘째 동생 이원조가 형인 육사의 시를 모아 1946년 유고시집인 육사시집을 출간하였다.'와 내용이 상충된다.


생애


이육사의 원천동 생가 (공공누리 제3유형(출처표시 + 변경금지))
지도를 불러오는 중...
이육사는 
1927년 장진홍의거에 연루되어 붙잡혔다가 풀려남.
1931년 1월 대구격문사건으로 붙잡혔다가 3월에 풀려남.
1932년 중국으로 가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朝鮮革命軍事政治幹部學校) 1기생으로 입교.
1933년 4월 20일 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7월 서울로 잠입.
1934년 3월 20일 군사간부학교 출신이란 것이 드러나 붙잡혔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남.
1943년 다시 독립운동에 나서 북경으로 갔고, 잠시 귀국한 틈에 붙잡혀 북경으로 끌려가 북경 동창호동(東廠胡同) 1호에 있던 일본총영사관 감옥(일본헌병대 감옥)에서 1944년 1월 16일 새벽 순국.
1990년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참고】 「신원카드」, 『독립운동사』 8권, 『이육사 평전』,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 30집·31집


이육사의 생가 (CC-BY-NC-ND)












주요활동


독립운동

  • 대구격문사건
  • 의열단 무장투쟁
  •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 등 저서활동

  • 청포도
  • 광인의 태양
  • 광야
  • 계절의 오행


업적


  • 광주학생항일투쟁
  •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졸업
  • 의열단 활동


저서


  • 광야

  • 청포도
  • 절정

외 30여 작품
작품 목록

제목 발표년도(서기) 비고
1930 첫 발표 시
春愁三題 1935 춘수삼제
黃昏 1935 황혼
失題 1936 실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1936
海朝詞 1937 해조사
路程記 1937 노정기
草家 1938 초가
江 건너간 노래 1938 강 건너간 노래
小 公 園 1938 소 공 원
鴉片 1938 아편
年譜 1939 연보
南漢山城 1939 남한산성
湖水 1939 호수
靑葡萄 1939 청포도
絶頂 1940 절정
班描 1940 반묘
狂人의 太陽 1940 광인의 태양
日蝕 1940 일식
喬木 1940 교목
西風 1940 서풍
獨白 1941 독백
娥眉 1941 아미
子夜曲 1941 자야곡
芭蕉 1941 파초
謹賀 石庭先生 六旬 1943 근가 석정선생 육순/이후 한시
晩登東山 1943 만등동산
酒暖興餘 1943 주난흥여
曠野 1945 광야/유시
1945 유시
소년에게 1946 유고시집《육사시집(陸史詩集)》
나의뮤즈 1946 유고시집《육사시집(陸史詩集)》
邂逅 1946 해후
바다의 마음  ?
蝙蝠  ? 편복

시 목록은 CC-BY

수필


  • 계절의 오행
  • 은하수
  • 창공에 그리는 마음

외 10여 작품

참고자료


이육사 한국 위키피디아 문서
이육사 문학관 홈페이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_이육사
이육사 위키문헌 문서
이육사 생가 위치(구글맵)
국가보훈처

생가(집터)

이육사 집터.jpg

출처:주거지[1]

성북로 28길 60.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