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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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自由主義 / liberalism


개인의 자유평등을 추구하는 정치 사상. 자유주의란 어떤 권력자로부터 받는 부당한 지배나 억압, 차별, 방해 등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으로 권위주의와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또한, 나의 생각과 행동이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의 생각과 행동에 함부로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방종'과도 구분된다.

역사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중세의 사회원리에 대한 대항원리로서 등장하였다. 중세사회는 영주(領主)의 농노(農奴)에 대한 정치적·경제적·인격적 지배를 바탕으로, 가톨릭 교회에 의한 전(全)사회관리를 이데올로기로 삼아 그 양자의 복합체로 성립되어 있었다. 따라서 중세사회의 붕괴는 한편으로는 영주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전개와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교회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신앙형식의 전개라는 두 가지 동향(動向)의 복합에 의해서 그 계기가 주어지게되었다.

자유주의의 역사적 기원은 일반적으로 아담 스미스자유시장 이론토마스 홉스사회계약론으로부터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홉스는 자유주의의 맹아만을 제공하였을 뿐이고, 자유주의를 정말로 제대로 정초한 사상가는 존 로크존 스튜어트 밀이다. 애덤 스미스는 익히 알려진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개인들의 자유로운 거래가 공동선을 창출할 수 있음을 논증하여 개인적 자유가 가지는 사회적 유용성을 입증하였다. 또한 로크와 밀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정치적 영역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 중요성을 이론적으로 정초하였다. 밀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현대적 자유주의로 전환하는 데 시금석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힌다.

자유주의 대표 사상가

  • 아담 스미스
    •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파이프 주의 커콜디에서 아버지 애덤 스미스(이름이 같음)와 어머니 마거릿 더글러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률가이자 관리였고 상처한 뒤 1720년에 새로 얻은 아내가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였다. 아버지는 스미스가 태어나기 6개월 전 세상을 떠났다. 스미스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지만, 네 살 무렵 집시들에게 납치당했다가 구출되었다는 일화가 있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것, 어머니와의 관계가 매우 친밀했다는 것 정도다.
스미스는 1729~37년까지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좋은 초급학교들 가운데 하나인 커콜디의 버그 스쿨을 다녔다. 버그 스쿨을 마치고 14살 때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해 주로 도덕철학을 공부했고, 1740년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 벨리올 칼리지로 갔지만 옥스퍼드의 교육에 실망했다. 교수들의 열의와 수준, 학문적 개방성에서 글래스고 대학에 못 미친다고 보았던 것. 예컨대 그가 데이비드 흄의 [인성론]을 읽는 것을 대학 당국은 공공연히 금지시켰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영국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의 교수들이 그 능력과 상관없이 수입을 보장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1746년 그는 학위를 마치지 않고 옥스퍼드를 떠났다. 1748년부터 스미스는 에든버러에서 공개강연을 하면서 제법 큰 인기를 모았다. 1750년 그는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데이비드 흄과 처음 만나 두터운 교분을 쌓았다. 역사, 정치, 철학, 경제, 종교 등 다방면에서 그들은 밀접하게 지적으로 교유했다. 1751년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 논리학 담당 교수가 되었고, 이듬해 도덕철학 담당 교수가 되었다. 이후 10여 년 간 계속된 교수 생활을 스미스는 ‘가장 유익했고 행복했으며 명예로운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 홉스
    • 영국의 철학자, 정치학자. 영국 유물론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유물론 철학을 계승, 체계화시켰다. 체계화의 과정에서 그는 수학적 요소를 중시, 자연 현상을 역학적, 양적 형식으로 파악함으로써 운동을 공간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위치 변화로밖에 보지 못하였다. 결국 그의 이론은 베이컨이 물질에서 인지한 다양한 운동 형태를 부인하는 결과가 되었고, “감성이 그 화려함을 잃은”, “인간 혐오”의 유물론으로 되었다(마르크스).
정치론에서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하여 이 무질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국가가 계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국가 계약설을 폈다. 이 계약은 1회에 한한 것으로 취소할 수 없다고 하여 절대주의적 군주제의 기초가 되었는데, 그의 역점을 국가 권력의 절대성에 두어, 이것은 17세기 영국 혁명을 이룩한 여러 계급의 이해에 합치할 만한 것으로 되었다.


  • 로크
    • 영국의 철학자. 영국 경험론 철학의 시조. 그는 영국의 명예혁명(1688)에 의한 왕정복고기에 활동했으며, 그 투쟁에 철학자, 경제학자, 정치가로서 참가했다. 그의 인식론에서는, 모든 지식은 관념(ideas)의 복합이며, 관념은 경험에 의해 백지 상태인 마음(라틴어 tabula rasa)에 써넣어진다. 신, 실체 등 생득관념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념 속에는 물체의 연장, 형태, 고체성(固體性) 등 물체 고유의 성질에 정확히 대응하고 있는 '제1성질'의 관념과, 이것에 대해 색, 향 등 정확한 대응의 보증이 없는 주관적인 '제2성질'의 관념이 있다.
관념을 낳는 경험에는 외관(外官)의 지각인 감각과, 내관의 지각인 반성(反省)이 있는데, 지식의 진리성은 오로지 관념 상호의 직관적(我의 존재 등) 또는 논증적(論證的 : 신의 존재나 논리적 명제 등) 일치인 것이고, 이것에 비해 감각적 지식은 논리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한다. 유물론의 반영론(反映論)적 사고 방식이 아니라, 불가지론에 기울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불철저성으로부터 서로 모순하는 두 개의 길, 즉 버클리, 흄의 주관적 관념론과 프랑스 유물론이 분리되어 나왔다.
정치론에서는 영국 명예혁명의 대변자로서 제한된 왕권(王權)과 부르주아 의회의 조화를 꾀하는 입장에서 사회계약설을 제시하며, 인간의 자연 상태를 질서 있는 상호부조의 상태라고 했던 점 및 노동 투자에 의한 소유권의 성립을 자연권 속에서 열거하고 있는 점에서, 선행자인 홉스와는 달리 부르주아적 소유에 대한 옹호가 명확히 내세워지고 있으며, 또 일정 한도 내의 혁명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계몽적 영향이 크며 프랑스 인권선언이나 미국 독립선언 속에 살아 있다.


    • 밀은 『자서전』(Autobiography, 1873)에서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의 일상을 스토아적 엄격한 도덕률로 회고한다. 잡지에 글을 써서 받는 원고료 이외에는 수입이 없으면서도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았고, 스스로를 옭아매었던 규율을 자녀들에게도 적용했으며, 종교마저도 도덕적 삶의 장애로 여겼을 정도로 매사에 철저했다는 것이다. 반면 밀은 스스로를 열정적인 인물로 묘사한다.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 중에 논리학이 인생에서 가장 쓸모가 있었다고 고백했지만, 그는 그리스 철학만큼이나 로마의 역사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늘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사회적 부조리에 민감했다. 1823년 <웨스트민스터 리뷰(Westminster Review)>를 창간했을 때에도, 아내 해리엇(Harriet Taylor)과 함께 『자유론』(On Liberty, 1859)을 집필했을 때에도, 그는 언제나 자유의 실현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기에 밀의 정치사상이 1950년대까지 자유주의자들로부터 홀대를 받은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그의 개혁적 자유주의가 이념적 대결을 통해 부당하게 재단되었던 것이다. 비록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그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였다. 그리고 그는 중앙 집권뿐만 아니라 다수의 전제를 누구보다 경계했던 정치 철학자였으며, 소수의 의견이 무시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제도적 개선을 요구했던 정치가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그는 자유주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고자했던 사상가였던 것이다

자유주의의 구분

정치적 자유주의

현대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정의론'의 저자인 존 롤즈에 의해 정초되었으며, 2010년대 초 유행한 마이클 샌델이나 마이클 왈쩌로 대표되는 공동체주의와 지속적 키배를 벌이고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합당한 다원주의 사실" 속에서 안정적인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지속해나갈 것인가를 주요 기획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좋음(good)에 대한 옳음(right)의 우선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목적론적 윤리관을 거부하고 의무론적 윤리관을 채택하는 것으로써, 롤즈는 이를 칸트구성주의라고 한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핵심 내용은 합당한 교리 사이에는 입증불가능한 불일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한 정치적 진리라는 개념을 배제하고 정치적 구성주의의 입장을 택하여 중첩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문화 간의 차이가 있어도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을 테니 이것들만 모아서 윤리를 만들자는 이야기.

또한 이들은 시민의 정치적 평등과 자유를 가장 중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시민의 정치적 능력을 보존해주는 복지국가를 지지한다. 롤즈는 복지국가 정도가 아니라 "기초이익공여사회" 얘기를 했을 정도. 때문에 실질적으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정치철학 교과서에 현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레토릭은 급진적이지만 사회자유주의자들과 딱히 차별화되는 결론이 없다는 점이 서술될 정도. 하지만 사회자유주의는 경제에 대한 간섭 및 복지 등을 통하여 불평등으로 인하여 자유가 침식되는 걸 막음으로써 '실질적인 자유'를 이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반면에,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실천하자는 데서 나온 것이라서 그 뿌리는 다르다고 여겨진다.

문화적 자유주의

문화적 측면에서의 자유를 강조하는 일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게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아닌데, 왜 국가에 의해서 규제되고 금지되어야 하는가?" 라는 시각을 가진다. 구체적 사안으로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나 두발규제 논란, 간통 · 성매매 · 포르노 비범죄화 등이 이와 크게 연관되어 있다. 경제적 측면을 제외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자는 것으로 학교에서의 두발규제에 대해 반대하며, 동성결혼 합법화, 안락사를 택할 권리, 마리화나 비범죄화, 성매매 및 포르노 비범죄화, 간통죄 폐지, 동성동본 결혼 허용, 성별·나이·종교·인종·지역에 대한 차별 철폐 등을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주장한다. 참고로 대한민국에서는 간통죄 폐지, 동성동본 결혼 허용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또한 학생의 두발규제도 점차 없어져가는 추세에 있다.

분야별로 자유주의를 나눴을 때, 신좌파와 구체적 사안에 대한 목표를 공유하는 부분이 가장 많은 분야에 속한다. 다만 문화적으로도 자유주의는 좌우로 나뉘어서, 자유주의 좌파의 경우는 정치적 목표 이외의 실행 방법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자유주의 우파와는 사안별 목표 외에는 거의 완전히 달라서, 방법론까지 들어가면 서로의 반대자인 모습까지 보인다.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자유의 보장을 위한 국가 권력의 개입을 인정할 것인가에 있어서 크게 갈리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우파는 문화적 자유주의 레토릭을 사용할 때 대부분 피해자 없는 범죄의 비범죄화를 통한 동등한 자유를 내세운다[31]면, 자유주의 좌파는 자유주의 못지않게 도덕주의의 영향이 없지 않아서 문화적 약자의 자유 추구에 대한 보호에 가까운 스탠스를 내세운다. 그래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편이다.

경제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를 옹호하는 사상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관계가 있다.

사회적 자유주의

새자유주의(New liberalism), 현대적 자유주의 (Modern Liberalism),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미국에서 흔히 말하는 Liberalism은 미국식 자유주의를 말하며 이 역시 사회적 자유주의의 범주에 들어간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사회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 중요시하여, 시장의 자유를 지지하였으며 전반적으로 방임주의적인 경제 정책을 지지하였다. 그러한 정책들은 전반적으로 야경국가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후기의 존 스튜어트 밀, 제레미 벤덤 등의 공리주의에 기반한 수정주의적 자유주의 이론은 시장 권력도 하나의 권력으로 인정하고 견제할 방안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확립된 사회자유주의는 본래 사회주의의 것이던 사회안전망, 복지정책 등을 자유주의의 영역으로 흡수하게 된다. 사회자유주의는 20세기 대공황 이후에 큰 각광을 받게 되었으며 케인즈주의 경제 정책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미국의 사회적 자유주의는 도금시대의 폐해가 드러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즈음에 존 듀이,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 등의 진보주의 물결을 타고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되어 30년대 뉴딜정책과 함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에 사회자유주의 정책이 팽창되고 확대된다. 2차대전 이후의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등등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자유주의는 위에서 설명된 정치적 자유주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역시 정치적 자유주의가 그러하였듯이 실질적으로 사회민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게 보일 수 있다. 물론, 사회자유주의는 어디까지나 자유시장 경제하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으로 개인의 자유가 침식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실질적인 자유'를 이룩하려는 것이 목적이며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실천하자는 데서 나온 것이고, 역시 사회주의답게 지칭하는 스펙트럼이 넓다보나 자본의 공공 소유와 보편적인 평등과 같은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분파도 포함한다. 서로 비슷해보여도 뿌리는 명백히 다르다. 다만, 자유주의 우파들은 사회자유주의가 자유주의를 뿌리로 한다고 해도 개인이 배제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될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

한국의 자유주의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일제강점기 당시 들어온 사회주의에 밀려서 20세기엔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다. 이는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데, 당시 자유주의자들 상당수가 일제의 실력양성론에 동조한 과거로 인해 크게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자유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 중도파 인물들은 극우와 극좌의 물리적 대립에 견디지 못하고 몰락하였다. 결국 남한에 정착된 것은 서구적 의미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냉전 자유주의. 덕분에 오늘날에도 물론 정도차는 있지만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자유민주주의국가주의를 동시에 주장하는 괴이한 진풍경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또 한국의 정치인들 중에선 자유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중도 ~ 중도좌파), 바른미래당(중도우파 ~ 중도), 민주평화당(중도 ~ 중도좌파), 심지어 정의당(중도좌파~좌파)까지 분포하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군가산점 논란에서 정작 모병제의 논의는 두드러지지 않고 가산점 논쟁이 '징병제' 틀 안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것은 한국의 자유주의의 기반이 그만큼 빈약하다는 증거이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보수주의 세력과 진보주의 세력 양측으로부터 배척받는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보수주의는 규율에 의한 통제를 선호하기 때문이며, 진보주의 또한 자유주의가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보고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관계와 같은 계급 관계를 연상하며 이를 통제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의외로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사회주의적 좌파의 반감은 센 편이다.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자유에서도 그렇지만, 경제적 자유(자본주의, 시장주의)가 부각되는 경우는 더더욱.

한국 보수 중 일부 일파에서 자유주의 레토릭을 심하게 도용할 때가 많다. 가령 왜곡된 형태의 경제적 자유주의을 강조하거나 자유지상주의의 개념을 가져다 쓰면서도, 나머지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자유주의는 제대로 언급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자기들 이득이 되는 쪽으로 여론몰이를 시전하는 등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자유기업원이나 한국자유총연맹처럼 명칭 및 성격에서는 자유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실제 활동에서는 독재자, 권위주의, 매카시즘을 매우 강하게 추종하는 성격이 그 예이다. 이런 레토릭 오용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에 대항하는 신규 자유주의 세력의 세력화 자체에 의심이나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2012년 민주당계 정당의 대선 패배 후 민주화 운동가 출신의 모 원로가 "민주통합당은 중도 자유주의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지적했을 때 일부 진보 진영에서 이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일상적인 정치용어화된 학술용어는 그 학술적 성격이 훼손되는 경우가 잦은데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가 개인주의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특성을, 신좌파나 공화주의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비판하기도 한다. 다만 중도좌파에 가까운 진보주의자들은 대중화된 다른 정치세력보다는 자유주의와 비슷한 목표 실현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표현의 자유 문제라든지 성소수자 존중이라든지 군 인권 관련 개선 문제라든지 물론 이건 진보주의와 자유주의의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일뿐이라 한국에서만 특이하게 나타나는 특성은 아니다. 그냥 한국에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집단이 없어서 그게 눈에 띌 뿐. 막상 그들이 적극적으로 자유주의나 그에서 파생된 레토릭을 쓰진 않고, 실행 내용은 반대되는 경우도 많아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 있다보니 오히려 별로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말이다. 2010년대 벌어진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가 나타나자 진보학계에서 꽤 노골적인 부정적 의견을 표출한 것도 한국 보수의 자유주의 레토릭 도용과 그로 인한 좌파 특유의 자유주의 혐오 성향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들(특히 진보층) 사이에서도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물론 부정적인 의미로)의 동의어로 취급하는 경우가 꽤 많다. 다시 말해, 자유주의의 경제적 측면에서의 자본주의적인 면만 보지, 정치/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진보적인 측면을 못보는 듯하다. '타 정치이데올로기와의 관계' 항목에 후술되어있지만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는 엄밀히 말해 좀 다른 사상이다. 그러므로 경제적인 측면이 아닌 정치/사회/문화적 측면에서의 자유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개인주의 만연이나 그로 인한 공공성 약화 등을 비판의 논지로 하는 것이 이런 측면에서의 자유주의에 좀 더 옳은 비판이 될 것이다.

다만 21세기 들어서부턴 일부 학자와 시민들을 중심으로 서구적 맥락과 같거나 비슷한 자유주의를 자각하는 경우가 점차 생겨나고 있으며 전통적인 자유주의란 말과 함께 '리버럴'을 자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풍토나 사회문화여건상 자유주의의 기반이 빈약한 것은 사실이며, 일상생활조차도 권위주의의 잔재가 짙게 남아있다. 예를 들면 쓸데없는 예의드립이라든지 기합문화라든지. 또한 민주화 과정에서 자유주의보다는 민주주의가 더 강조된 나머지, 진보성향의 학자로 알려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원로 최장집 명예교수도 저서에서 '자유주의의 빈약'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초판에 언급. 그 이후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썼다.

한국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학자 및 칼럼니스트로는 이근식 교수, 서병훈 교수 등이 꼽힌다. 전형적인 자유주의 학자로 분류하기는 다소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상술한 최장집 명예교수도 2010년 이후로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중. 공병호, 복거일은 애매하지만 자유지상주의에 가까운 편. 공병호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 특유의 회식 문화를 깠고 복거일은 "자유주의 정당"이라는 저서에서 (원론적으로는) 모병제를 주장하는 등, 한국의 자칭 자유주의 우파가 흔히 갖는 신보수주의 스탠스라고 보기는 힘들다.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한국사회에서도 강해지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권위주의적, 집단주의적 습성을 버리지 못해 오히려 그것을 무질서적 자유로 매도하고 있어 한국사회의 정신적 미성숙함이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다시 말해 진정 자유로워야 할 분야가 권위주의, 집단주의적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 애초 권위주의적인 국가가 오히려 사회 질서를 지키는 데 무력한 경우도 많으므로 자유=무질서로 매도하는건 질서=전체주의라고 떠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또 자유를 무질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유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보다 훨씬 더 리버럴하리라'고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이른바 서구 선진국에서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 한국보다 처벌이 훨씬 큰 것이 많다. 이것은 권위주의적이라기보단 높은 자유는 높은 책임을 중시한다는 사상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 한해서 최대한의 자유를 중점으로 하기 때문. 즉, 내 자신의 자유만을 위한답시고 타인의 자유, 권리를 침해하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는 논리.


자유를 강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들 국가들도 "권위주의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얼마만큼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하느냐부터가 여전히 논쟁거리다. 피해자없는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인데, 상대적로 자유주의적이라는 저들 국가도 그런것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의 대가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존 스튜어트 밀조차도 미성년자는 어느 정도 간섭을 받아야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밀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선 판단력과 충분한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밀은 미성년자와 지적능력이 떨어지는 성인 그리고 미개국(식민지)의 사람들은 동일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지적능력이 우수한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과 동등한 투표권을 가져선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사회과학에서 특정인의 말이 도그마로 작용한다면, 이를 교조주의라고 한다. 당연히 밀이 살던 당시의 사고와 지금의 사고는 다르다.

자유주의문학의 특징

  • 한글세대론
  • 탈 혁명적 4.19 세대론
  • 문학의 비체제성, 탈제도성
  • 문학 엘리트주의
  • 문학적 다원주의
  • 감수성의 혁명

관련콘텐츠

  • 역사를 뒤바꿀 대혁명의 시작!!! (자유주의의 등장!) | 역사, 정치

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자유주의 자유 추구한다
자유주의 평등 추구한다
자유주의 권위주의 반대된다
자유주의 정치적 자유주의 구분된다
자유주의 문화적 자유주의 구분된다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구분된다
자유주의 사회적 자유주의 구분된다
아담 스미스 자유주의 학자이다
홉스 자유주의 학자이다
자유주의 학자이다
로크 자유주의 학자이다

네트워크 그래프

자유주의 네트워크 그래프.jpg

참고자료

자유주의나무위키

네이버지식백과(자유주의)

네이버지식백과(애덤스미스)

네이버지식백과(홉스)

네이버지식백과(로크)

네이버지식백과(밀)

작성자 및 기여자

이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