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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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제국이 식민지 조선에 설치한 통치 기관.

1910년에 설치되어 1945년 미군정시기에 미국에게 행정권이 이양되었다. 이곳에서 대한민국 1공화국 정부가 수립되기도했고, 이후 대한민국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조선 총독부 또는 조선총독부의 청사 건물을 가리키기도 함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 기념식을 맞아 철거하는 행사를 치른 후, 1996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관련 홈페이지

조선총독부기록물

산하 행정기관

나무위키 3번 참고

정책

1890년대

경부철도 부설권, 동학난 진압 등의 이권 침탈 (총독부가 없던 시절)

1900년대

1905년 러일 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확실시로 이토 히로부미의 외교권 간섭(총독부가 없던 시절)

1910년대(무단통치)

1910년대 한일합방, 토지조사사업과 무단통치(데라우치 시절) 1919년 3·1 운동 진압. (하세가와 시절)

1920년대(문화통치)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과 문화통치(사이토 시절) 1929년 독립 운동 탄압으로 인한 문화통치의 종료 (2차 사이토 시절)

1930년대

1930년대 일본의 전체주의화와 만주사변, 조선의 병참기지화. (우가키 시절) 1936년 중일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의 병참기지화 가속, 창씨개명 시행 (미나미 시절)

1940년대

1942년 태평양 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의 병참기지화 가속, 조선인 대거 동원 (구이소 시절) 1944년 태평양 전쟁의 방어전을 수행 및 종전 후 식민지 처리(아베 시절)

조선총독부가 위치했던 곳

현재 경복궁의 안쪽 즉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바로 뒤쪽에 세워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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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철거

맨 처음에 해체가 논의된 것은 6.25 전쟁 중이었던 1.4 후퇴 이후에 막 서울을 수복한 직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의 상징을 서울의 심장부에 둔다는 것이 말이 되냐면서 철거를 지시하면서였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해체에 대한 논의는 없다가 그 후 노태우 대통령 시절 중앙청 철거를 지시했었으나 비서진이 바뀌면서 또 다시 무마되었다. 그 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 해체 계획이 입안되었다.

1995년 3월 1일 오전 10시에 정부는 구총독부 앞 광장에서 '광복 50주년 3.1절 기념 문화축제'를 열어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옛 총독부 건물을 헐어낸다고 선포했다. 8월 15일 광복절 9시 21분, 기중기가 첨탑에 구멍을 뚫어 만든 고리에 1인치 굵기의 쇠밧줄 다섯 개를 걸고 서서히 첨탑을 들어올렸다.

첨탐 철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들은 지하보관소로 옮겼다가 중앙청 바로 옆에 있는 구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관 건물로 이전되었다. 이후 1996년 초부터 차근차근 기계식으로 절단해서 해체하는 과정을 통해 철거해 나가 그해 말에는 완전히 해체했다. 한편 잘린 첨탑은 1995년 8월 말까지 구총독부 앞 마당에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가 이후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졌다.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조선총독부 유치진 도와주다

참고 문헌

나무위키

구글

작성자 밎 기여자

작성자 이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