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조선왕조 제 25대 왕(재위 1849~1863).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와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다.

정의

1831(순조 31)∼1863(철종 14). 조선 제25대 왕.

소개

재위 1849∼1863.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름은 이변(李昪)이다. 초명은 이원범(李元範)이다. 자는 도승(道升), 호는 대용재(大勇齋)이다. 정조의 아우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다. 전계대원군 광(全溪大院君imagefont)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역사

휘(諱) 변(昪). 초명 원범(元範). 자 도승(道升). 호 대용재(大勇齋).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광의 셋째 아들로, 조부는 장조(장헌세자)의 아들인 은언군이다. 비(妃)는 철인왕후(哲仁王后) 김씨(金氏)이다. 1844년(헌종 10) 형 회평군(懷平君) 명(明)의 옥사(獄事)로 가족과 함께 강화(江華)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純祖妃)의 명으로 궁중에 들어와 덕완군(德完君)에 책봉되었으며, 1849년 19세로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즉위 후 대왕대비 김씨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였으며, 1851년 대왕대비의 근친인 김문근(金汶根)의 딸을 왕비를 삼았다. 문근은 국구(國舅)로서 정권을 장악,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하였다. 1852년부터 왕의 친정(親政)이 시작되었으나 정치에 어둡고, 김씨 일파의 전횡(專橫)으로 삼정(三政)의 문란이 극도에 달하여 극심한 민생고를 유발, 경상도 진주(晉州), 함경도 함흥(咸興), 전라도 전주(全州) 등지에서 대규모의 민란이 일어났다. 조정에서는 속출하는 민란을 근본적으로 수습하려는 의욕조차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같은 사회정세에서 최제우(崔濟愚)가 주창한 동학사상은 학정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놀라운 속도로 파급, 새로운 세력으로 확대되었으며,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의 사상도 일반 민중은 물론 실세(失勢)한 양반층에까지 침투되어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철종은 결국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색에 빠져 정치를 바로잡지 못한 채 병사하였다. 능(陵)은 예릉(睿陵:高陽)이다.

철종 어진

철종어진.jpg


어진 (御眞)이란 왕의 초상화로 이외에도 진용 (眞容)·진 (眞)·수용 (晬容)·성용 (聖容)·영자 (影子)·영정 (影幀)·어용 (御用)·왕상 (王像)·어영 (御影) 등 다양하다. 1713년 (숙종 39) 숙종 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 (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이이명 (李頤命)의 건의에 따라 ‘어진’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시의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영자는 왕이 지칭하는 것이므로 신하로서는 감히 칭할 수 없고, 영정은 그 뜻이 회화를 열어 펼친다는 뜻이니 족자 (簇子)로 꾸며진 것이 아니면 칭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수용이란 단순히 모습을 지칭하는 것이니 부를 바가 못 되며, 어용 역시 거칠고 투박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전신 (傳神)이란 사진 (寫眞)으로 불려왔으며, 또한 왕의 초상화를 봉안하는 처소를 진전 (眞殿)이라 하므로 왕의 화상 역시 어진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어진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어용 역시 조선 말기까지 빈번히 병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어진 제작 과정이나 진전 봉안 체제에 관한 세부적인 사실기록은 전존하고 있으나, 작품으로는 전주 경기전 (慶基殿)의 태조 어진, 국립고궁박물관의 영조 어진·철종 어진·익종 어진, 그리고 영조의 연잉군 (延礽君) 때의 도사 본만이 현존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조 25대 임금이며 1850년부터 1863년까지 재위하였던 철종 임금의 31세 당시 초상이다.


오른쪽 1/3이 소실되었지만 남아 있는 왼쪽 상단에 “予三十一歲 哲宗熙倫正極粹德純聖文顯武成獻仁英孝大王”이라고 적혀 있어 이 어진이 철종 12년 (1861)에 도사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규장각에서 펴낸 『어진도사사실 (御眞圖寫事實)』에 의하면, 이한철 (李漢喆)과 조중묵 (趙重黙)이 주관 화사를 맡았고, 김하종 (金夏鍾), 박기준 (朴基駿), 이형록 (李亨祿), 백영배 (白英培), 백은배 (白殷培), 유숙 (劉淑) 등이 도왔다고 한다. 당시 1개월여에 걸쳐 강사포본 (絳紗袍本)과 군복본 (軍服本)을 모사했으나 현재 군복본만 현전한다. <철종 어진>은 임금이 구군복 (具軍服)을 입고 있는 초상화로는 유일한 자료이다. 군복의 화려한 채색, 세련된 선염, 무늬의 정세한 표현 등에서 이한철과 조중묵 등 어진 도사에 참여한 화원 화가들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점 등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참고문헌

네이버지식백과 네이버지식백과


작성자 및 기여자

류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