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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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25년에 결성되었던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문학가들의 실천단체. 카프(KAPF)라는 약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에스페란토식 표기인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머리글자를 딴 약칭이다. 카프는 1925년 8월에 결성, 1935년 5월 20일 해체된 사회주의 문학단체이다. 계급 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운동을 목적으로 삼았다.

대표작가로 최서해,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이 있다.

배경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이른바 '문화정치' 하에서 러시아혁명 이후 세계적으로 고양된 프롤레타리아 혁명봉기를 배경으로 조선에서도 공산주의운동이 발흥하였다. 또한 1923년을 전후하여 사회의식을 강조하며 등장한 신경향파 문학도 나타났다.

이 글들은 이전의 낭만적·퇴폐적 문학에 대한 비판과 문학의 계급성에 대한 소박한 인식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인식은 염군사에 의해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염군사는 진보적 사회운동을 주로 하는 단체로서 뚜렷한 활동이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후 문학의 계급성을 인식하게 된 중견 문인들은 염군사에 영향을 받아 파스큘라라는 새로운 단체를 조직하게 된다. 하지만 이 두 단체의 활동 측면에서 서로 엇갈리는 측면이 있어 갈등을 빚게 되고, 마침 사회주의 운동계의 조직 통합을 계기로하여 1925년 8월경 조직을 통합하고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약칭 카프(KAPF)라고 명명하게 된다.

이들은 소련의 라프(RAPP), 일본의 나프(NAPF)에 영향을 받은 바 있으며, 중국의 중국좌익작가연맹과도 그 성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전개

염군사와 파스큘라가 합동한 카프의 구성원은 박영희,김기진,이호,김영팔,박용대,이적효,이상화,김온,김복진,안석영,송영,최승일,심훈,조명희,이기영,박팔양,한설야,김양 등이었다. 이렇게 결성된 카프는 파스큘라가 중심이 되어 기존의 신경향파적 문학에서 목적의식에 확실하게 기초를 두고 있는 계급문학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들은 1926년 초 준기관지인 문예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이념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또한 1926년 12월 26일, 중외일보를 통해 카프의 강령과 규약을 결정했고 위원 또한 임명되었다고 말하며 조직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이후 카프는 조직을 계속 불려가며, 1927년 11월 그들의 최초 기관지인 예술운동을 발간하게 된다. 이후 이들은 제3전선의 문단 진출과 함께 '무장한 계급의식'을 내세우고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후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의 연합, 항일민족통일전선으로서 활동하던 신간회가 해체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는 2차 러시아 혁명(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을 받고 있던 사회주의 문단 단체들을 볼셰비키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카프 또한 문학을 정치에 크게 연관시키고 '전투하는 계급의식'을 강조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발전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 문학(프로문학)과 카프는 1931년과 1934년의 일제 탄압, 자체 내분을 통해 1935년 카프의 해체를 가져오게 되었다.

문학 이론과 역사

카프가 중심에 두고 있는 이론은 카프의 결성과 함께 자라왔던 프롤레타리아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문학의 구심점이기도 한 카프가 일반적인 문학 단체와는 달리 정치성이 농후한 조직적인 단체이기 때문이다. 카프의 탄생 배경에도 깔려있는 신경향파 문학과 프로문학이 같은 사회의식에서 출발하면서 서로 구별되는 것은, 신경향파 문학은 단순하고 직설적인 가난과 반항의 문학인 데 대하여 프로문학은 조직적인 정치투쟁을 의식한 목적의식의 문학이란 점이다.

프로문학이 카프의 지도원리에 따라 움직이고, 1926년 기관지 문예운동을 통해 조직적인 문학운동을 전개한 것은 프로문학의 정치성을 잘 말해 준다. 또 1927년 박영희가 《문예 운동의 방향전환론》에서 "자연생장적 소설로부터 프롤레타리아의 문예운동은 계급적 혁명을 위한 목적의식을 갖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 프로문학은 계급투쟁의 한 부문이라 한 것은 프로문학이 목적의식의 문학임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프로문학이란 독자적이고 순수한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대중에게 계급의식을 계몽시키고 선전하는 정치운동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예시로 1926년 김기진이 프로문학이 너무 형식을 무시하고 정치투쟁의 개념에 몰두한 데 대한 비평을 가한 사건이 있다. 이 때 박영희는 "프로 작품은 군의 말과 같이 독립된 건축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큰 기계의 한 치륜인 것"이라고 반박을 가해 왔다. 이것이 자체 내의 제1차 카프 논쟁인데, 여기서 김기진이 패배했다는 것을 통해 당시 프로문학의 공식주의적 경향을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프로문학은 작품활동의 강조와 형식의 중요성을 반성하게 됐다. 당시 김기진과 논쟁을 벌였던 박영희도 "예술 운동이 대중을 획득하려면 작품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 하여 작품활동을 강조했고, 따라서 작품형식의 문제도 프로문학의 대중화와 관련해서 강조되었다. 이후 프로문학은 조금 더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을 목적으로 했으며, 역설적이게도 이 목적은 기존의 기계주의적/정치투쟁의 개념의 몰두한 작품의 비판에서 시작되었기에 프로문학이 사그러들게 되었다.

해체

카프의 논쟁을 통한 방향전환은 더과격한 사회운동을 카프와 기타 사회주의 단체에 요구했다.당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파시즘의 강제가 심해져 가던 시기였고, 이에 따라 일본 국내와 조선 사회 모두 사회주의가 통제받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카프는 체포사건에도 엮이게 되고, 사실상 조직의 이름은 남아있지만 활동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일본은 카프 해산을 종용하였고, 카프 내부에서도 카프를 해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 와중에 카프의 주축이었던 박영희 등이 카프를 탈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카프 해소파와 비해소파간에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1935년 임화는 자신의 손으로 카프 해산 신고서를 총독부 관할 경찰서에 제출하였다.


중심 인물

이름 개요
김기진2.jpg 김기진 1923 귀국 이후 문예단체 파스큘라 및 카프 창립에 참가한 인물
박영희2.jpg 박영희 파스큘라를 결성하고 이후 카프 결성에 참가한 인물
임화2.png 임화 다다이즘과 프롤레타리아 사상을 가진 인물로, 카프로 들어온 후 대표적인 프로문학가가 된다. 일제강점기인 20-30년대 문학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조명희2.jpg 조명희 순회 극단원이었으나 카프 결성에 참가하고 프로문학 작가로 활동하게 된 인물. 이후 시베리아로 떠나 행방불명된다
송영.jpg 송영 염군사를 조직한 인물로, 카프에 참가하여 연극 계열로 활동한 인물

작가/작품

* 강경애 : 인간문제
* 김기진 : 붉은 쥐, 젊은 이상주의자의 사
* 박영희 : 사냥개, 철야, 지옥순례
* 송영 : 일체면회를 거절하라
* 이기영 : 서화, 고향
* 이북명 : 질소비료공장
* 임화 : 네거리의 순이,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 우리 오빠와 화로
* 조명희 : 낙동강
* 한설야 : 과도기, 황혼
* 최서해 : 탈출기, 박돌의 죽음

카프의 문학사적 의의

카프는 임화가 카프 해산 신고서를 제출한 것으로 막을 내렸지만, 카프가 보여준 20-3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은 대한민국 문학계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다. 오래 지속되어오는 논쟁인 순수 예술로서의 문학과 활동/정치가 이입된 문학의 논쟁 사이에서 카프는 현실 참여적이면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외치는 참여 문학을 보여주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문인들 스스로가 나아갈 길을 찾는 데에도 본보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고, 이들의 문학은 당시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네트워크 그래프

카프 네트워크 그래프.JPG

작성자 및 기여자

이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