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로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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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로랭(1600~1682)

생애

1600년 프랑스 출생 - 1682 이탈리아 사망

본명 줄레(Claude Gellée). 보주 데파르트망(Department)의 샤마뉴 출생. 젊었을 때 이탈리아로 가서 나폴리와 로마에서 일하며 그림을 공부하였다. 즉 로마에서는 아고스티노타시에게 사사하고, 나폴리에서는 고프레도에게 사사하였다. 1625년 고국으로 돌아와 로렌의 화가 클로드드 뤼에 밑에서 일하다가, 약 1년 후 다시 로마로 돌아가 점차 명성을 얻기시작하고, 알렉산데르 7세, 클레멘스 9세 등 교황을 비롯하여 추기경 ·에스파냐왕등의 왕후 ·귀족 들의 애호를 받게 되어, 로마에서 많은 작품을 남기고 그 곳에서죽었다.


활동내역

17세기의 뛰어난 풍경화가. 충만한 고요함과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구성을 이상화시킨 것이 특징적이다. 그의 로마의 풍경화는 로마 시민뿐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기념품으로 인기가 있었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의 후원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는 로마유적을 담은 풍경화가 많아, N.푸생과 함께 17세기 프랑스회화를대표한다. 그의 예술은 19세기에 들어서 재평가되고, J.B.C.코로, J.M.W.터너 등의작품에서도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종종 짧게 줄여서 '클로드'라고 불렸던 클로드 로랭은 나폴리에서 고프레도 왈스로부터 처음으로 도제 수업을 받은 후, 아고스티노 타시로부터 미술을 배웠다. 로랭의 초기 양식은 이 두 화가뿐만 아니라, 그가 일 년 동안 조수로서 일을 도왔던 클로드 드뤼에, 그리고 파울 브릴의 작품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로랭이 독립 화가로서 처음으로 그린 그림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목가적인 풍경>(1629)은 새어드는 빛과 자연의 세부 묘사에서 로랭의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그는 충만한 고요함과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구성을 이상화시켰다. 이것은 그의 양식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1630년대에 로랭의 작품들은 매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는 로마와 로마를 넘어 다른 지역에서도 명성을 얻었다. 이제 교황 우르바누스 8세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도 로랭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 당시에 로마는 풍경화의 중심지였다. 로마의 풍경화는 매우 인기가 높아, 로마 시민들뿐 아니라 로마를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도 여행 기념품으로 인기가 있었다. 1640년대부터 로랭의 작품은 이탈리아풍의 고전주의로부터 받은 영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선례들에 기초를 둔 그의 그림 속 인물들에서는 라파엘로의 영향이 보인다. 또한 그의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더욱 웅장하고 더욱 형식적인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세부묘사는 줄어들었고, 그는 구약성서나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같은 신화 이야기에서 주제를 찾게 되었다.


  • 관련 영상

작가의 작품

아폴로와 뮤즈들 및 강의 신이 있는 풍경

강의신.jpg.jpg


소개 내용
아티스트 클로드 제레(클로드 로랭)
제작연도 1652년
종류 유화
기법 캔버스에 유채
등장인물 아폴론,뮤즈,강의신
크기 290*185 cm
소장처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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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사진)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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