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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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Τρωικός Πόλεμος (Troikos Polemos) / Trojan War

기원전 1194(?) ~ 기원전 1184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와 그리스와의 전쟁으로, 수많은 영웅과 신들이 자신들이 선택한 진영에서 벌인 전쟁이다.

이 이야기는 발굴 이전까지 신화로만 여겨졌으나, 1871년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의 발굴에 성공하면서 실제 있었던 전쟁임이 밝혀졌다.

원인

사건의 발단

헬라스인 호메로스가 작성한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 자세히 나와있다.

올림푸스에서는 인간의 아들 펠레우스와 티탄 족의 딸 테티스의 혼담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나 불화의 여신 에리스 만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자 화가 난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바치라는 헤스페리데스의 황금 사과를 신들의 자리에 보냈다. 이 제물을 놓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격렬한 대립이 벌였고 제우스는 이 사과가 누구에 적합한 지를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맡겼다.

세 여신은 모두 가장 아름다운 옷차림을 하고 파리스 앞에 섰다. 헤라는 세계를 지배할 힘을, 아테나는 어떠한 전쟁도 승리를 할 수 있는 힘을,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각각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파리스는 젊었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제쳐두고, 사랑을 선택하였고 아프로디테의 권유에 의해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빼앗아 갔다. 파리스의 여동생이자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 만이 이 사건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아폴론의 저주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메넬라오스는 형인 뮤케나이의 왕 아가멤논에 그 사건을 말하였고, 또한 오디세우스와 함께 트로이로 가서 헬레네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파리스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에, 아가멤논, 메넬라오스, 오디세우스는 헬레네 반환과 트로이를 징벌하기 위해 원정군을 조직했다.

페르시아 측의 주장

페르시아측에서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데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페르시아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서 지중해를 건너간 여성들은 사실 납치혼의 피해자들이었고 신화속 파리스가 헬레나를 트로이로 데려간 것도 그 납치혼의 보복이었다는 주장이다.

전설속의 여신 이오는 사실 포이니케 사람들이 헬라스의 아르고스에서 이오를 납치한 것에서 시작되었고 헬라스측도 이에 보복해 포이니케의 영토인 튀로스에서 공주 에우로페를 납치했다고 한다. 그 뒤 그리스인들이 메데이아 공주를 납치하는등 보복 납치혼으로 신경전을 일삼다가, 일리온(트로이)의 왕자 알렉산드로스(파리스)가 보복 목적으로 라케다이몬(스파르타)에서 헬레나를 납치했고 이것이 악화되어 전쟁으로 확대되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트로이가 헬레네 반환요청을 무시한 이유도 이전 납치사건에서 사과나 배상이 없었고 여성 납치문제가 국제문제로 대두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요 인물들

파리스(그리스어: Πάρις)는 트로이의 영웅으로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는 흔히 그의 타고난 이름 알렉산드로스로 불리기도 한다.

파리스는 본래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의 딸이었지만, 파리스가 트로이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산에 버렸지만 양치기에게 구출되어 양치기의 아들로 자라게 된다.

파리스의 심판 그림의 주제인 황금 사과사건으로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두고 간 황금 사과를 두고 세 여신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자, 제우스가 그 심판을 파리스에게 맡겼고, 헤라는 지상 최강대국에서의 절대권력을, 아테나는 끝없는 지혜를, 아프로디테는 지상 최고의 미인을 조건으로 각각 파리스에게 황금사과를 요구했는데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아프로디테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황금사과를 받은 대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인 헬레네를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리스군과의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였고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에 화살을 맞춰 전사시킨다. 그러나 이후 전투 중 필록테테스의 활에 맞아 죽었다. 이후 트로이는 패배하고 멸망했으니 결국 예언이 적중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일리아드에서는 파리스를 상당히 민폐적인 인물로 다룬다. 겁도 많아 메넬레오스와의 대결에서 주저앉거나, 메넬레오스와의 싸움에서 아프로디테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형제인 헥토르는 트로이군을 지휘하고 가장 앞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말이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결혼할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았을 때, 파리스도 기혼자였고 헬레네도 스파르타의 메넬레오스와 결혼한 상태였다. 또한 파리스 역시 오에논이라는 요정과 결혼한 상태였다. 하지만 헬레네 때문에 오에논은 파리스에게 버림받았고, 이후 파리스가 다쳤을 때 자신을 버렸다는 이유로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을 쓰지 않아 파리스가 죽게 된다. 이후 오에논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살을 택한다.

헥토르는 트로이 영웅으로, 프리아모스 왕과 헤카베 왕비의 딸이다. 안드로마케와 결혼하여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낳았다. 트로이전쟁에서 트로이군의 총대장이며, 트로이군 가운데 가장 용감하여 많은 적장을 쓰러뜨렸다.

당시 헥토르는 트로이 군의 수적 열세를 가지고 아카이아 군과 10년 넘게 대립했는데, 이는 헥토르 자체가 반신인 아킬레우스를 제외하고 인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중 하나이기도 했지만, 신들의 도움이 있기도 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테티스가 아킬레우스의 활약을 드높이기 위하여 전쟁을 최대한 끌어줄 것을 제우스에게 부탁했고, 제우스는 이 말에 따라 헥토르를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폴론 또한 헥토르를 매우 아꼈고, 아킬레우스와 맡붙으려 헥토르가 기다리고 있을 때 머리에 공포심을 심어 도망치게 하거나 헥토르가 죽음을 맞을 때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는 표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렇듯 헥토르는 사실상 트로이군의 기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대신하여 출진한 파트로클로스를 죽였는데, 전열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아킬레우스는 이 소식을 듣고 친구인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위해 출진하게 된다.

이후 트로이군은 패하여 성 안으로 도망쳤으나 헥토르는 혼자 성 밖에 남아 싸우다가 아킬레우스에게 죽고 말았다. 헥토르를 죽인 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아킬레우스는 시체의 발뒤꿈치에 구멍을 뚫고 가죽끈으로 꿰어 전차에 묶은 다음 트로이 성 주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헥토르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헥토르의 시체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처참하게 훼손되었다. 헥토르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트로이는 결국 패배하였고, 트로이성은 불길에 휩싸이고 프리아모스와 헤카베는 살해당하고 안드로마케는 노예로 끌려갔다. 그리고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는 불타는 트로이 성벽 아래로 던져졌다.

아폴론 신의 사랑을 받아 예언의 능력을 얻었으나 끝내 그의 구애를 거절했고, 이에 화난 아폴론은 카산드라의 예언을 아무도 믿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카산드라는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트로이의 멸망을 그저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전쟁이 끝난 후 귀향했지만 아내인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살해된다.

그리스를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하나이다. 아테나 여신의 총애를 받은 그는 오디세우스와 힘을 합해 전쟁을 피해 숨어 있던 아킬레스를 찾아데려오고, 렘노스 섬에 머물고 있던 필록테테스를 데려 왔으며, 트로이의 안전을 지키고 있던 팔라디움을 훔쳐내옴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타카의 왕이자 페넬로페의 남편. 그리스군 제일의 전술가인 그는 아가멤논에게 징집당한다. 그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여자로변장하고 숨어 있던 아킬레스를 찾아내 데려오고, 디오메데스와 함께 팔라디움을 훔쳐오고, 지하 세계에내려가 트로이를 멸망 시킬 계략을 배워온다. 트로이의 목마를 고안해 낸 것도 오디세우스였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트로이를 멸망 시켰다는 이유로신들의 미움을 받아 10년이나 바다를 헤매다가 고향에 돌아가 아내 페넬로페의 환영을 받는다.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인간의 왕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혼열아이다. '테티스의 아들은 그의 아버지를 끌어내릴 것이다'라는 예언을 받게 되어 언제 목숨의 위협을 받을 지 몰라 테티스는 그를 저승과 이승의 사이를 흐르는 '스틱스 강'에 담근다. 하지만 발목을 잡고 담그는 바람에 발목은 유일한 약점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약점의 대명사인 '아킬레스건'의 탄생의 시초가 되었다.

훗날, 트로이전쟁이 일어나자 테티스는 아들을 전장에 보내지 않기 위해 여장을 시켜서 스키로스의 리오메데스 왕의 딸들 사이에 숨겼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에게 걸려 군대에 끌려가게 되고 헥토르와 적으로 만나게 된다. 아킬레우스의 창에 맞은 헥토르는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시체를 고국으로 보내주길 원하나, 아킬레우스는 자신들의 나라를 침범한 그들의 행동에 화가 났기에 이 부탁을 거절한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던 그는 헥토르의 시체를 마차에 달고 끌고다녔다. 이 사실을 보고 프리아모스 왕이 하는 자식 잃은 아버지의 큰 슬픔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통곡했고,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돌려보내고 장례식을 치룰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열린 헥토르의 장례식에 남몰래 참여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동생들 폴릭세네와 파리스를 만나는데, 눈물을 흘리는 폴릭세네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청혼을 한다. 폴리세네와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청혼을 받은 척하고 그의 약점을 찾아 죽이기로 한다. 그들은 아폴론에게 기도를 드려 신탁을 받음으로써 그의 약점을 알게된다. 이후, 아킬레우스는 아폴론 신전에서 결혼식 중 파리스가 던진 독화살에 약점인 발뒤꿈치를 맞아 죽게된다. 아킬레우스를 죽인것은 파리스가 아니라 파리스로 위장한 아폴론이라는 이견도 있다.

신들이 참가한 진영

그리스 진영

파리스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아 돌아섰다.

마찬가지로, 파리스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아 돌아섰다.

트로이의 선대왕 라오메돈에게 원한이 있었다. 과거 트로이에 바다괴물을 보내 나라를 막장으로 만들었고, 헤라클레스가 바다괴물을 퇴치해주지만 라오메돈이 사기를 치자 트로이에 쳐들어와 나라를 박살내놓았었고 프리아모스는 겨우 살아남아 트로이를 재건했는데, 트로이 전쟁에서도 그리스 진영을 택했다.

그리스의 장수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이자 아킬레우스를 끔직히 아끼는 이였다.

트로이 진영

황금 사과를 받은 보답으로 파리스와 헬레네를 이어주기도 했고, 트로이의 장수 아이네이아스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기도 했다.

아프로디테가 트로이 진영에 있자 참가했다. 하지만 자신의 영지 대부분이 트로이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헥토르를 아끼는 데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사제를 모욕한 일로 트로이 편을 들었다. 결별하기는 했지만 옛 애인이었던 카산드라가 트로이의 공주인 것도 있었다.

쌍둥이 남매인 아폴론이 트로이 편이기도 했고, 그리스 진영에서 제사를 지낼 때 자신에게 바쳐진 사슴을 죽인 것에 돌아섰다.

중립

가장 많이 언급되는 12주신 중 하나이지만 트로이 전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양측에서 활동을 하던 신으로, 중립 쪽에 속했지만 제우스가 신들의 싸움을 허락한 이후로는 그리스의 편을 들었다.

역시 신들 중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였지만, 전쟁 자체가 죽음과 연관되어 있어 자신의 일이기도 하고 지상에 간섭을 잘 하지 않아 중립이었다.

제우스의 힘이 올림포스에 사는 모든 주신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입장상 중립을 지켜야만 했다. 하지만 테티스를 도와주어 아킬레우스의 성장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제우스와 헤라의 아들이지만 버림받았고, 이후 테티스가 길러주어 테티스의 아들인 아킬레우스의 무장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외에 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전개

이전, 헬레네는 이미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었고, 헬렌과 결혼하길 원하는 인물들은 누가 헬렌과 결혼하던 간에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맹세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해갔고, 오디세우스아킬레우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연합하여 군을 결성했다. 이후 오디세우스는 사자의 꾐에 걸려 군으로 오게 되었고, 아킬레우스 또한 오디세우스의 꾐에 걸려 군으로 오게 되었다.

이윽고 천여척의 배가 그리스 연합군으로 조직되어 집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강한 바람이 불어 트로이로의 출항이 늦춰지고 있었다. 이유는 아가멤논메넬라우스가 아르테미스 여신의 사슴을 죽인 탓이었다. 결국 아가멤논은 미케네에 있는 자기 궁전에 사자를 보내 딸에게 아킬레스와 결혼시켜 줄 테니 빨리 오라고한 다음,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아르테미스 신께 제물로 바쳤다.

전쟁은 계속 진행되었고, 트로이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헥토르의 용맹함 아래 계속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10년 째 되던 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아폴로 신전 사제의 딸 크리세이스 때문이었다. 그녀는 포로로 잡혀왔는데, 사제가 딸을 돌려보내달라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아가멤논이 이를 거부하자 아폴로 신에게 간청하여그리스 군대에 전염병을 돌게 한 것이다. 결국 아가멤논은 예언자 칼카스의 충고에 따라 그녀를 내어 주었으나, 그 대신 아킬레우스의 소유인 브리세이스를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브리세이스를 좋아하고 있던 터라 화가 났고, 전쟁에 나가지 않고 천막에 틀어박혀 지내게 된다.

이후 트로이군의전세가 너무 유리해지자 아킬레우스의 친구인 파트로클러스는 자기가 대신 싸울 테니 갑옷을 빌려 달라고 했고,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트로이인들과 싸우게 되었다. 하지만 헥토르가 그를 일대일 전투에서 죽인 뒤 그 갑옷을 빼앗아 버리게 되자, 화가 난 아킬레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서 새 갑옷을 받아 입고 출전하여 친구를 죽인 헥토르를 살해한 다음 그 갑옷을 벗기고, 그의 시체를 전차 뒤에 매달고 트로이 성주변을 돌았다.

그로부터얼마 후 아킬레우스가 폴릭세네에게 반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고, 이를 보고 폴릭네세와 결탁한 파리스가 아킬레스의 몸에서 유일하게 스틱스의 강물이 묻지 않은 부분, 즉 그의 발목을 화살로 쏘아 맞추었고, 그리스군 최고의 영웅은 이 상처로 인해 죽고 말았다.

종전-트로이의 목마-

트로이의 목마.jpg

  • 신화를 토대로 재현해 낸 트로이의 목마

그리스측은 트로이 성 밖에서만 싸워서는 제대로 된 승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성 안을 공략할 계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역시 오디세우스가 계책을 내놓았는데, 병사들을 숨긴 큰 목마를 만들어 성 안에 들여 보내는 것이었다. 계략의 내용은, 먼저 그리스 군대를 모두 근처 가까운 섬에 보내 마치 전 함대가 퇴각하는 것처럼 가장한 다음, 오디세우스를 포함한 병사들이 목마에 숨어 성 안으로 들어가고, 밤이 오면 몰래 성문을 열어 그리스군들을 들어오게 함으로써 트로이 성을 함락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리스 함대가 모두 떠나고 성 밖에 거대한 목마만 서 있는 것을 본 트로이인들은 마침내 그리스인들이 전쟁을 포기하고 떠난 줄 알고 환희에 들떠 그리스 진영을 찾았다. 거기에는 오디세우스가 계략의 성공을 위해 배치해둔 시논이라는 병사가 남아 있었는데, 그는 오디세우스의 계략대로 거짓말을 통해 트로이인들을 속였다.

그리스 진영에서 팔라디움의 탈취때문에 화가 난 아테나 여신이 그리스군에게 한 사람을 희생시켜 이 죄를 정화하라고 했고, 그 제물이 바로 시논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그리스군의 퇴각 직전에 제물로 바쳐질 계획이었는데 몰래 그 곳을 빠져나와 숨어 있다가 그들이 모두 떠난 뒤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목마는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질 공물으로, 트로이인들이 그걸 성 안에 들여가 여신에게 바침으로써 아테나의 환심을 살까 봐 그리스인들이 일부러 그렇게 크게 만든 거라고 했다. 트로이인들이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 목마를 성 안에 가져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부수면 여신이 화가 나서 그들을 벌할 것이다라는 게 그리스인들의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많은 트로이군은 이 말을 믿었지만 다만 두 사람, 즉 카산드라와 사제인 라오쿤만이 거기 의문을 제시했다. 카산드라의 예언이나 직감은 아폴론의 저주로 인해 모두가 믿지 않았고, 시논의 말을 듣고 난 라오쿤이 아까 한 경고를 되풀이했을때 갑자기 바다로부터 거대한 뱀 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와 그의 두 아들을 감아 죽이고 아테나 신전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뱀은 신 중에 트로이를 가장 미워한 포세이돈 신이 보낸 것으로, 그리스 군의 계략에 도움이 되어주었다.

결국 라오쿤의 끔찍한 죽음을 목도한 트로이인들은 시논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가 아테나 신전에 안치했다. 이후 밤이 깊자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성문을 활짝 열었고, 그리스군은 시내 전체에 불을 지르고 트로이인들을 살육했다. 트로이의 장군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으며, 헥토르의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 역시 그리스 병사들에 의해 성 아래로 던져져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십 년에 걸친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은 끝이 나고 트로이는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해설

전쟁사학자인 정토웅 육군사관학교 교수는 트로이 전쟁을 그리스와 트로이아간의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분쟁으로 해석하였다.

지중해 무역에서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던 그리스와 트로이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전쟁으로 이어진 것이고, 이러한 역사를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오디세이아에서 자신의 신화적인 세계관으로 설명한 것이다.

대중문화 속의 트로이 전쟁

* 트로이(영화)
*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10권~14권까지 다룬다. 
* 트로이: 왕국의 몰락
* 카산드라(웹툰): 트로이 전쟁을 제재로 삼은 웹툰
* 트로이 무쌍: 액션 게임. 무쌍 시리즈 중 하나.
* 엠파이어 어스: 고대 그리스 캠페인에서 다룬다. 일리아스의 영웅들이 싹 다 등장하며, 이피게네이아 이야기나 목마를 사용한 전술도 등장한다.
*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아틀란티스군이 그리스 편에 서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할지 말지를 두고 논의하는 장면에서 게임이 시작되어, 시나리오의 초반부를 담당.
* 연애전사 슈라반: 내용 자체는 별 상관없지만 모티브를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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