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요약)
25번째 줄: 25번째 줄:
  
 
='''요약'''=
 
='''요약'''=
조선 제 19대 , 조선왕조 역대 임금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긴 왕이다. [[사도세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서, 1724년부터 1776년까지 52년간 왕위를 지켰던 그는 손자 정조와 함께 18세기 조선을 중흥기로 이끌었다. 그 자신 콤플렉스와 개인사적 불행을 안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탕평책을 통해 과열된 붕당 간의 경쟁을 완화했으며 이전의 그 어느 왕보다도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펴나가 조선 시대 몇 안 되는 성군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평가받고 있다.
+
조선의 제19대 왕. [[현종]](顯宗)과 [[명성황후]](明聖王后) 외아들로, 휘는 이순(李焞)이고, 자는 명보(明普)이며, 아명은 용상(龍祥)이다.
  
조선의 제19대 왕. [[현종]](顯宗)과 [[명성황후]](明聖王后) 외아들로, 휘는 이순(李焞)이고, 자는 명보(明普)이며,
+
[[숙종]]1661년 10월 7일에 경덕궁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674년 만 12세의 나이로 창덕궁인정전(仁政殿)에서 즉위해, 그 당시 가장 긴 기간의 재위 46년 되던 해 1720년 7월 12일 경덕궁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하였다.
 
 
그는 1661년 8월 15일 경덕궁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674년 8월 23일 13세의 나이로 창덕궁 인정전(仁政殿)에서 즉위해, 그때까지 가장 긴 기간인 46년 동안 재위한 끝에 1720년 6월 8일 경덕궁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했다. 명릉(明陵.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소재)에 모셔져 있다.
 
  
 
숙종은 인경(仁敬)왕후·인현(仁顯)왕후·인원(仁元)왕후로 이어지는 세 왕비를 두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왕자를 얻지 못했고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에게서 각각 경종과 영조가 되는 왕자를 낳았다. 그 치세의 한 특징인 궁중의 복잡한 갈등은 이런 객관적 조건과 밀접히 관련된 결과였다.
 
숙종은 인경(仁敬)왕후·인현(仁顯)왕후·인원(仁元)왕후로 이어지는 세 왕비를 두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왕자를 얻지 못했고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에게서 각각 경종과 영조가 되는 왕자를 낳았다. 그 치세의 한 특징인 궁중의 복잡한 갈등은 이런 객관적 조건과 밀접히 관련된 결과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숙종 [肅宗] - 환국 정치의 명암 (인물한국사)
+
시호는 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이고, 묘호는 [[숙종]](肅宗)이다. 능호는 [[명릉]](明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의 서오릉(西五陵)에 있다.
  
 
='''생애'''=
 
='''생애'''=
 
=='''즉위 전'''==
 
=='''즉위 전'''==
 
1699년(숙종 25)연잉군(延礽君)에
 
1699년(숙종 25)연잉군(延礽君)에

2018년 12월 17일 (월) 22:38 판


요약

조선의 제19대 왕. 현종(顯宗)과 명성황후(明聖王后) 외아들로, 휘는 이순(李焞)이고, 자는 명보(明普)이며, 아명은 용상(龍祥)이다.

숙종은 1661년 10월 7일에 경덕궁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나 1667년 정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 1674년 만 12세의 나이로 창덕궁인정전(仁政殿)에서 즉위해, 그 당시 가장 긴 기간의 재위 46년 되던 해 1720년 7월 12일 경덕궁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하였다.

숙종은 인경(仁敬)왕후·인현(仁顯)왕후·인원(仁元)왕후로 이어지는 세 왕비를 두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왕자를 얻지 못했고 희빈 장씨와 숙빈 최씨에게서 각각 경종과 영조가 되는 왕자를 낳았다. 그 치세의 한 특징인 궁중의 복잡한 갈등은 이런 객관적 조건과 밀접히 관련된 결과였다.

시호는 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이고, 묘호는 숙종(肅宗)이다. 능호는 명릉(明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신도읍 용두리의 서오릉(西五陵)에 있다.

생애

즉위 전

1699년(숙종 25)연잉군(延礽君)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