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도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시 소개 및 해설'''== {|class="wikitable" |[https://www.yyg.go.kr/jihun/scent/impressions?mode=view&idx=43 지훈문학관 홈페이지]로 시를 확인 가능합니다. |}...)
 
(시인 소개)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8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
<onlyinclude>
 +
{|class="metadata" style="background:#f2f2f2; width:320px; margin: 5px 5px 5px 5px;" cellspacing="10" align="right"
 +
|-
 +
!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김광균 문학전집'''
 +
|-
 +
|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김광균 문학전집.jpg]]
 +
|-
 +
| style="width:80px; text-align:center;" |'''저자''' || 김광균(1914~1993)
 +
|-
 +
| style="text-align:center;"|'''출판사''' || 소명
 +
|-
 +
| style="text-align:center;"|'''출판년도''' || 2014년
 +
|-
 +
| style="text-align:center;"|'''쪽수''' || 714쪽
 +
|-
 +
| style="text-align:center;"|'''ISBN''' || 9788956269863
 +
|-
 +
|}
 +
</onlyinclude>
 +
 
=='''시 소개 및 해설'''==
 
=='''시 소개 및 해설'''==
 
{|class="wikitable"
 
{|class="wikitable"
|[https://www.yyg.go.kr/jihun/scent/impressions?mode=view&idx=43 지훈문학관 홈페이지]시를 확인 가능합니다.
+
|[https://archive.sb.go.kr/litmap/?work=109 성북마을발견x문학]에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
 
|}
이 작품에서 시인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풀잎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풀잎과 같은 연약한 존재이면서 한편으로는 이 넓은 세상 안에 태어나 조그만 바람결에도 흔들리고 번뇌하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교류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풀잎의 모습에서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
화자는 도시가 사막과 같은 곳이라 표현한다. 해가 지고 도시는 꽃밭이 되어 택시와 사람들은 고기떼처럼 흘러나오지만 어두운 밤 북악산엔 방향등 하나가 허상의 거리를 비출뿐 이다. 화자는 등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우리 모두 다시 돌아올 없는 정지된 시간 속으로 가기 위해 괴로운 일력을 한 장씩 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여기서 발췌한 2연에서는 김광균이 자신의 집에서 본 북악산의 밤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 소개'''==
 
=='''시인 소개'''==
 
  '''이름:김광균(金光均), 호는 우사(雨社) 또는 우두(雨杜)'''
 
  '''이름:김광균(金光均), 호는 우사(雨社) 또는 우두(雨杜)'''
 
1914년 (당시)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시인이자 기업가이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시인부락』과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6.25전쟁 이후 집안 사정으로 건설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시집 『추풍귀우』(1986), 『임진화』(1989)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시기에 간행한 것으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일부에는 성북동과 그의 집이 묘사되어 있다.
 
1914년 (당시)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시인이자 기업가이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시인부락』과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6.25전쟁 이후 집안 사정으로 건설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시집 『추풍귀우』(1986), 『임진화』(1989)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시기에 간행한 것으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일부에는 성북동과 그의 집이 묘사되어 있다.
 +
 +
또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모더니스트가 아니다. 굳이 모더니즘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시작을 한 적이 없다. 물론 나의 시에는 시각적, 회화적인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서울에서 거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이처럼 김광균은 모더니즘을 의식하고 시를 쓰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화적이고 도시적인 시를 쓰게 된 작가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미지즘의 선구자이자 모더니즘의 기수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시와 관련된 이야기'''==
 
=='''시와 관련된 이야기'''==
시인은 집에서 시내로 나갈 때 성북동에서 혜화동으로 넘어가는 언덕에 난 길을 이용해야 했는데 성터가 남아있던 그 길을 오가며 시상을 떠올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터'와 '바위'는 모두 오랜 시간이 담긴 사물이다. 이에 반해 '풀잎'과 '나'는 약한 바람에도 영향을 받는 물리적으로 연약한 대상이면서 동시에 다음 구절에서 등장하는 '태초의 생명'과 '한떨기 영혼'을 내면에 담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
도시를 사막에 비유하여 도시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광균의 시에서 고향은 그의 유년시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그리움의 공간인 반면, 도시는 삭막함, 우울함, 비애, 고독 등의 정서가 내재된 공간이다. 이 시에서도 화자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도시는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황량한 곳으로 묘사되며 그리운 그 곳을 상기시키는 공간, 고달픈 인생을 지속하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시의 평가'''==
 
=='''시의 평가'''==
 +
도시의 상실적 정서를 애상적으로 그려낸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의 시는 도시적 정서의 모더니즘 시 중에서도, 언어의 회화적 시각적 효과를 중시했던 이미지즘의 시로 평가된다.
 +
아스팔트와 고층빌딩 등 물질문명을 함축한 도시에 대해 '존재의 소멸'을 예감했던 그는 애상이라는 농도 짙은 서정을 통해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
 +
김기림이 모더니즘의 이론을 도입했다면 그는 이것을 작품으로 구현했다. 젊은 시절의 회화적 색채의 시어가 노년에는 바람 부는 모래밭 같이 황량한 풍경으로 대치되기는 했지만 도시적 감각이 배어있는 시각적 이미지는 그가 평생 간직한 시적 본령이라고 볼 수 있다.

2021년 6월 16일 (수) 13:58 기준 최신판


시 소개 및 해설

성북마을발견x문학에서 시를 읽을 수 있습니다.

화자는 도시가 사막과 같은 곳이라 표현한다. 해가 지고 도시는 꽃밭이 되어 택시와 사람들은 고기떼처럼 흘러나오지만 어두운 밤 북악산엔 방향등 하나가 허상의 거리를 비출뿐 이다. 화자는 등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우리 모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정지된 시간 속으로 가기 위해 괴로운 일력을 한 장씩 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한다. 여기서 발췌한 2연에서는 김광균이 자신의 집에서 본 북악산의 밤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시인 소개

이름:김광균(金光均), 호는 우사(雨社) 또는 우두(雨杜)

1914년 (당시)경기도 개성 출생으로 시인이자 기업가이다. 1926년 『중외일보』에 「가신누님」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대 『시인부락』과 『자오선』의 동인으로 활동을 하였으며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가 당선되면서 문단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였다. 모더니즘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가 6.25전쟁 이후 집안 사정으로 건설 사업을 운영하였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시집 『추풍귀우』(1986), 『임진화』(1989)는 성북동에 거주했던 시기에 간행한 것으로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일부에는 성북동과 그의 집이 묘사되어 있다.

또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모더니스트가 아니다. 굳이 모더니즘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시작을 한 적이 없다. 물론 나의 시에는 시각적, 회화적인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오랫동안 서울에서 거주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이처럼 김광균은 모더니즘을 의식하고 시를 쓰기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화적이고 도시적인 시를 쓰게 된 작가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미지즘의 선구자이자 모더니즘의 기수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시와 관련된 이야기

도시를 사막에 비유하여 도시의 풍경을 회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광균의 시에서 고향은 그의 유년시절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그리움의 공간인 반면, 도시는 삭막함, 우울함, 비애, 고독 등의 정서가 내재된 공간이다. 이 시에서도 화자는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도시는 사막과 같이 메마르고 황량한 곳으로 묘사되며 그리운 그 곳을 상기시키는 공간, 고달픈 인생을 지속하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시의 평가

도시의 상실적 정서를 애상적으로 그려낸 모더니즘 시인이다. 그의 시는 도시적 정서의 모더니즘 시 중에서도, 언어의 회화적 시각적 효과를 중시했던 이미지즘의 시로 평가된다. 아스팔트와 고층빌딩 등 물질문명을 함축한 도시에 대해 '존재의 소멸'을 예감했던 그는 애상이라는 농도 짙은 서정을 통해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었다.

김기림이 모더니즘의 이론을 도입했다면 그는 이것을 작품으로 구현했다. 젊은 시절의 회화적 색채의 시어가 노년에는 바람 부는 모래밭 같이 황량한 풍경으로 대치되기는 했지만 도시적 감각이 배어있는 시각적 이미지는 그가 평생 간직한 시적 본령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