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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계몽운동]]은 구한말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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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시기에는 지식인 계층의 운동과 민중운동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는데 을사조약 이후, 둘이 결합하여 계몽운동의 일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로 전문가들은 민족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였다고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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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을 상실한 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계몽운동은 당시 의병운동과 연합하여 해외의 독립군 양성교육과 같이 국내외 독립운동의 발전을 도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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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철회되고, 한국은 민족의 대중적인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일으켰다. 조선본위교육운동(朝鮮本位敎育運動)로 인해 이론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도시의 지식인 계층과 학생들은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진행된 [[농촌계몽운동]]은 일제의 [[식민교육]]에 맞서 민족성을 기반으로 한 교육에 심화시키는데 집중하였다. 또한 일제가 [[문맹정책]]과 [[우민정책]]을 통해 교육의 기회를 통제하였는데 농촌계몽운동은 이에 대항하여 농촌의 교육 환경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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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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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구호 아래 아동을 모으고 학교교육을 대신하는 [[야학]]을 실시하였으며, 문맹자를 위한 성인교육과 여성을 [[계도(啓導)]]하기 위한 여성교육을 추진했다. 또, 농촌의 생활개선과 농업의 개량, 사상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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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5일 (수) 20:42 판

정의

농촌 사회의 발전을 위해 학생과 학업에 뜻이 있는 지도층이 자발적으로 모여 농촌시민의 의식 고양과 지식 습득, 기술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 활동을 말한다.

배경

시대별 농촌계몽운동의 목적 변화
시대 목적
구한말 계몽운동
식민통치 항쟁기 독립기반 형성
광복 이후 농촌사회의 근대화

농촌계몽운동은 구한말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시기에는 지식인 계층의 운동과 민중운동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는데 을사조약 이후, 둘이 결합하여 계몽운동의 일종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로 전문가들은 민족운동의 대중화를 위한 시도였다고 보고있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한 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계몽운동은 당시 의병운동과 연합하여 해외의 독립군 양성교육과 같이 국내외 독립운동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후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철회되고, 한국은 민족의 대중적인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농촌계몽운동을 일으켰다. 조선본위교육운동(朝鮮本位敎育運動)로 인해 이론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도시의 지식인 계층과 학생들은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진행된 농촌계몽운동은 일제의 식민교육에 맞서 민족성을 기반으로 한 교육에 심화시키는데 집중하였다. 또한 일제가 문맹정책우민정책을 통해 교육의 기회를 통제하였는데 농촌계몽운동은 이에 대항하여 농촌의 교육 환경을 발전시켜 나아갔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위의 구호 아래 아동을 모으고 학교교육을 대신하는 야학을 실시하였으며, 문맹자를 위한 성인교육과 여성을 계도(啓導)하기 위한 여성교육을 추진했다. 또, 농촌의 생활개선과 농업의 개량, 사상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

내용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