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필 풍악도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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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이 36세 때인 1711년(숙종 37) 금강산을 여행한 뒤에 남긴 화첩으로, 신묘년(辛卯年)에 그려졌다 하여 '''《신묘년 풍악도첩》'''이라고도 부른다. 비단에 엷은 채색으로 그려진 세로 26.6~37.8㎝, 가로 23~37.6㎝의 그림 13폭과 화기(畵記) 1폭 등''' 총 14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연대가 밝혀진 정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 ||
+ | -이 화첩은 정선의 벗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금강산 초입인 김화(金化)의 현감으로 부임한 다음 해인 1711년에, 겸재가 백석공(白石公)이라는 인물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 일대의 경치를 그린 것으로, 화첩으로 제작된 것은 1807년(순조 7)이다. 내금강·외금강·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담았으며, 산봉우리마다 명칭을 표시하고 길을 뚜렷이 표시하고 있어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후기의 원숙한 화풍에 비하면 미숙함이 엿보이지만, 초창기의 활력과 열의로 가득 찬 그림들로서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형성된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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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30일 (수) 20:21 판
기본정보
지정유형 | 보물 |
지정일 | 2015년 4월 22일 |
종류 | 유물 / 일반회화 / 산수화 |
시대 | 조선시대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소유(관리) | 국립중앙박물관 |
소개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이 36세 때인 1711년(숙종 37) 금강산을 여행한 뒤에 남긴 화첩으로, 신묘년(辛卯年)에 그려졌다 하여 《신묘년 풍악도첩》이라고도 부른다. 비단에 엷은 채색으로 그려진 세로 26.6~37.8㎝, 가로 23~37.6㎝의 그림 13폭과 화기(畵記) 1폭 등 총 14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까지 연대가 밝혀진 정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화첩은 정선의 벗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금강산 초입인 김화(金化)의 현감으로 부임한 다음 해인 1711년에, 겸재가 백석공(白石公)이라는 인물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 일대의 경치를 그린 것으로, 화첩으로 제작된 것은 1807년(순조 7)이다. 내금강·외금강·해금강 등 금강산의 주요 명승을 담았으며, 산봉우리마다 명칭을 표시하고 길을 뚜렷이 표시하고 있어 조선시대 지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후기의 원숙한 화풍에 비하면 미숙함이 엿보이지만, 초창기의 활력과 열의로 가득 찬 그림들로서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형성된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성자:강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