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지(193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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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김민정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11일 (수) 16:35 판 (새 문서: 노다지 그믐 칠야 캄캄한 밤이었다. 하늘에 별은 깨알같이 총총 박혔다. 그 덕으로 솔숲 속은 간신히 희미하였다. 험한 산중에도 우중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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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지 그믐 칠야 캄캄한 밤이었다. 하늘에 별은 깨알같이 총총 박혔다. 그 덕으로 솔숲 속은 간신히 희미하였다. 험한 산중에도 우중충하고 구석배기 외딴 곳이다. 버석만 하여도 가슴이 덜렁한다. 호랑이, 산골 호생원! 만귀는 잠잠하다. 가을은 이미 늦었다고 냉기는 모질다. 이슬을 품은 가랑잎은 바시락바시락 날아들며 얼굴을축인다. 꽁보는 바랑을 모로 베고 풀위에 꼬부리고 누웠다가 잠깐 깜박하였다. 다시 눈이 뜨였을 적에는 몸서리가 몹시 나온다. 형은 맞은편에 그저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양이다. "성님, 인제 시작해 볼라우!" "아직 멀었네, 좀 춥더라도 참참이 해야지…… ” 어둠 속에서 그 음성만 우렁차게, 그러나 가만히 들릴 뿐이다. 연모를 고치는지 마치 쇠 부딪는 소리와 아울러 부스럭거린다. 꽁보는 다시 옹송그리고 새우잠으로 눈을 감았다. 야기에 옷은 젖어 후줄근하다. 아랫도리가 척 나간 듯이 감촉을 잃고 대고 쑤실 따름이다. 그대로 버뜩 일어나 하품을 하고는 으드들 떨었다. 어디서인지 자박자박 사라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꽁보는 정신이 번쩍 나서 눈을 둥굴린다. "누가 오는게 아뉴?" "바람이겠지,즈들이 설마 알라구!" 신청부같은 그 대답에 적이 맘이 놓인다. 곁에 형만 있으면야 몇 놈쯤 오기로서니 그리 쪼일 게 없다, 적삼의 깃을 여미며 휘돌아보았다. 감때사나운 큰 바위가 반득이는 하늘을 찌를 듯이, 삐쮜 솟았다. 그 양 어깨로 자지레한 바위는 뭉글뭉글한 놈이 검은 구름 같다. 그러면 이번에는 꿈인지 호랑인지 영문 모를 그런 험상굿은 대가리가 공중에 불끈 나타나 두리번거린다. 사방은 모두 이따위 산에 둘렸다. 바람은 뻔질나게 구르며 습기와 함께 낙엽을 풍긴다. 을씨년스레 샘물은 노냥 쫄랑쫄랑 금시라도 시커먼 산 중턱에서 호랑이 불이 보일 듯싶다. 꼼짝 못할 함정에 든 듯이 소름이 쭉 돋는다. 꽁보는 너무 서먹서먹하고 허전하여 어깨를 으쪽 을린다. 몹쓸 놈의 산골도 다 많어이. 산골마다 모조리 요지경이람. 이러고 보니 몹시 무서운 기억이 눈앞으로 번쩍 지난다.

바로 작년 이맘때이다. 그날도 오늘과 같이 밤을 도와 잠채를 하러 갔던 것이다. 회양 근방에도 가장 험하다는 마치 이렇게 휘하고 낯선 산골을 기어올랐다. 꽁보에 더펄이, 그리고 또 다른 동무 셋과. 초저녁부터 내리는 보슬비가 웬일인지 그칠 줄을 모른다. 붕, 하고 난데없이 이는 바람에 안기어 비는 낙엽과 함께 몸에 부딪고 또 부딪고 하였다. 모두들 입 벌릴 기력조차 잃고 대고 부들부들 떨었다. 방금 넘어을 듯이 덩치 커다란 바위는 머리를 불쑥 내 대고 길을 막고막고 한다. 그놈을 끼고 캄캄한 절벽을 돌고 나니 땀이 등줄기로 쪽 내려 흘렸다. 게다가 언제 호랑이가 내닫는지 알 수 없으매 가슴은 펄쩍 두근거린다. 그러나 하기는, 이제 말이지 용케도 해먹긴하였다. 아무렇든지 다섯 놈이 서른 길이나 넘는 암굴에 들어가서 한 시간도 채 못 되자 감(광석)을 두 포대나 실히 따올렸다마는, 제는 노느매기에 있었다. 어떻게 이놈을 나누면 서로 억울치 않을까. 꽁보는 금점에 남다른 이력이 있느니만치 제가 선뜻 맡았다. 부피를 대중하여 다섯 목에다 차례대로 메지메지 골고루 노났던 것이다. 한데 이런 우스꽝스러운 놈이 또 있을까. 이게 일터면 노눈 건가!" 두운 구석에서 어떤 놈이 이렇게 쥐어박는 소리를 하는 것이다. 제딴은 욱기를 보이느라고 가래침을 배앝는다. 그럼." 보는 하 어이없어서 그쪽을 뻔히 바라보았다. 이건 우리가 늘 하는 격식인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게정을 부릴 것이 아니다. 아니,요게 내 거야?" 그럼 누군 감벼락을 맞았단 말인가?" 아니,이 구덩이를 먼저 낸 것이 누군데 그래?" 누구고 새고 알 게 뭐 있나, 금 있으니 땄고,땄으니 노났지!" 알 게 없다? 내가 없어도 느가 왔니? 이 새끼야?" 이런 숭맥 보래,꿀돼지 제 욕심 채기로 너만 먹자는 거야?“ 로 이 말에 자식이 욱하고 들이 덤볐다. 무지한 두 손으로 꽁보의 멱살을 잔뜩 움켜쥐고, 흔들고 지랄을 한다. 꽁보가 체수가 작고 좀팽이라 쳐들고 한창 얕본 모양이다. 비를 맞아 가며 숨이 콕 막히도록 시달리니 꽁보도 화가 안 날 수 없다. 저도 모르게 어느덕 감석을 손에 잡자 놈의 골통을 패뜨렸다 하니까, 이놈이 꼭 황소같이 식, 하더니 꽁보를 피언한돌 위에다 집어 때렸다. 그리고 깔고 앉더니 대뜸 벽채를 들어 곁갈비대를 힉, 하도록 아주 몹시 조졌다. 죽질 않기만 다행이지만 지금도 이게 가끔 도지어 몸을 못 쓰는 것이다. 담에는 오니편 어깨를 된통 맞았다. 정신이 다 아찔하였다. 험하고 깊은 산속이라 그대로 죽여 버릴 작정이 분명하다. 세 번째에는 또 다시 가슴을 겨누고 내려올 제, 인제는 꼬박 죽었구나 하였다. 참으로 지긋지긋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그때 천행이랄까 대문짝처럼 크고 억센 더펄이가 비호같이 날아들었다. 잡은 참 그놈의 허리를 뒤로 두 손에 쥐어들더니 산비탈로 내던져 버렸다. 그놈은 그때 살았는지 죽었는지 이내 모른다. 꽁보는 곧바로 감석과 한꺼번에 더펄이 등에 업히어 마을로 내려왔던 것이다.

현재 꽁보가 갖고 다니는 그 목숨은 더펄이 손에서 명줄을 받은 그때의 끄트머리다. 더펄이를 형이라 불렀고 형우제공을 깍듯이 하는 것도 까닭 없는 일은 아니었다. 이 산골도 그 녀석의 산골과 똑 헐없는 흉측스러운 낯짝을 가졌다. 한번 휘돌아 보니 몸서리치던 그 경상이 다시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꽁보는 담배를 빡빡 피우며 시름없이 앉았다. "몸 좀 녹여서 인제 시적시적 해볼까?" 더펄이도 추운지 떨리는 몸을 툭툭 털며 일어선다. 시작하도록 연모는 차비가 다 된 모양. 저편으로 가서 훔척훔척하더니 바랑에서 막걸리 병과 돼지 다리를 꺼내 들고 이리로 온다. "그래도 거냉은 해야 할 걸!" 하고 그는 병마개를 이로 뽑더니, “에이, 그냥 먹세, 언제 데워 먹겠나?” “데웁시다.” “글세, 그것도 좋구, 근데 불을 놨다가 들키면 어쩌나?” “저 바위틈에다 가리고 핍시다.” 아우는 일어서서 가랑잎을 긁어모았다. 형은 더듬어 가며 소나무 삭정이를 뚝뚝 꺾어서 한아름 안았다. 병풍과 같이 바위와 바위사이에 틈이 벌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 그들은 불을 놓았다. “커- 그어 맛 좋다이.” 형은 한잔을 쭉 켜고 거나하였다. 칼로 돼지고기를 저며 들고 쩍쩍 씹는다. “아까 술집 계집 봤나?” “왜 그류?” “어떻든가?” “…….” "아주 똑 땄데 고거 참!" 하고 그는 눈을 불빛에 꿈벅거리며 싱글싱글 웃는다. 일 년이면 열두 달 줄창 돌아만 다닌다는 신세였다. 오늘은 서로, 내일은 동으로, 조선 천지의 금점판치고 아니 집적거린 데가 없었다. 언제나 나도 그런 계집 하나 만나 살림을 좀 해보누 하면 무거운 한숨이 절로 안날 수 없다. “거, 계집 있는 게 한결 낫겠더군!” 하고 저도 열적을 만큼 시풍스러운 소리를 하니까, “글쎄요…….” 하고 꽁보는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날까지 같이 다녀야 그런 법 없더니만 왜 별안간 계집 생각이 날까, 별일이로군! 하긴, 저도 요즘으로 부쩍 그런 생각이 무륵무륵 안 나는 것도 아니지만, 가을이 늦어서 그런지 홀아비 마주 앉기만 하면 나는 건 그 생각뿐. “성님 장가들라우?” “어디 웬 계집이 있나?” “글쎄?” 하고 꽁보는 그 말을 재치다가 얼뜻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제 누이를 주면 어떨까. 지금 그 누이가 충주 근방 어느 농군에게 출가하여 자식을 둘씩이나 낳았다는 매우 반반한 얼굴을 가졌다. 이걸 준다면 형은 무척 반기겠고, 또한 목숨을 구해 준 그 은헤에 대하여 손씻이도 되리라. “성님, 내 누이를 주라우?” “누이?” “썩 이뿌우, 성님이 보면 아마 담박 반하리다.” 더펄이는 다음 말을 기다리며 다만 벙벙하였다. 불빛에 이글이글하고 검붉은 그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누이에 대하여 칭찬은 전일부터 많이 들었다. 그럴 적마다 속중으로는 슬며시 생각이 달랐으나 차마 이렇다 토설치는 못했던 터이었다. “어떻수?” “글세, 그런데 살림하는 사람을 그리 되겠나?” 하며, 뒷심은 두면서도 어정형하게 물어 보았다. 그러고들 껍쩍하고 술을 따라서 아우에게 권하다가 반이나 엎질렀다. "그야, 돌려 빼면 그만이지 누가 뭐랠 터유.“ 꽁보는 자신이 있는 듯이 이렇게 선언하였다. 더펄이는 아주 좋았다. 팔짱을 딱 지르고 눈을 감았다. 나도 인젠 계집 하나 안아 보는구나! 아마 그 누이란 썩 이쁠 것이다. 오동통하고, 아양스럽고, 이런 계집에 틀림없으리라. 그럴 필요도 없건마는 그는 벌떡 일어서서 주춤주춤하다가 다시 펄썩 앉는다, "은제 갈려나?" "가만있수, 이거 해가지구 낼 갑시다.” 오늘 일만 잘되면 낼로 곧 떠나도 좋다. 충청도라야 강원도 역경을 지나 칠팔십 리 걸으면 그만이다. 낼 해껏 걸으면 모레 아침에는 누이 집을 들러서 다른 금점으로 가리라 예정하였다. 그런데 이놈의 금을 언제나 좀 잡아 볼는지 아득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거, 은제쯤 재수가 좀 터보나!" 꽁보는 뜯고 있던 돼지 뼈다귀를 내던지며 이렇게 한탄하였다. “염려 말게, 어떻게 되겠지! 오늘은 꼭 노다지가 터질 테니 두고보려나?” “작히 좋겠수, 그렇거든 고만 들어앉읍시다.” "이를 말인가, 이게 참 할 노릇을 하나, 이제 말이지.” 그들은 몇 번이나 이렇게 자위했는지 그 수를 모른다. 네가 노다지를 만나든 둘이 똑같이 나눠 가지고 집을 사고 계집을 얻고, 술도 먹고, 편히 살자고. 그러나 여태껏 한 번이라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으니 매양 헛소리가 되고 말았다. “닭 울 때도 되었네, 인제 슬슬 가보려나?” 더펄이는 선뜻 일어서서 바랑을 짊어 메다가 공보를 바라보았다. 몸이 또 도지는지 불 앞에서 오르르 떨고 있는 것이 퍽으나 측은하였다. “여보게 내 혼자 해가주 올게 불이나 쬐고 거기 있을려나?” “뭘, 갑시다.” 꽁보는 꼬물꼬물 일어서며 바랑을 메었다. 그들은 발로다 불을 비벼끄고는 거기를 떠났다. 산에, 골을 엇비슷이 돌아 오르는 샛길이 놓였다. 좌우로는 솔, 잣, 밤, 단풍, 이런 나무들이 울창하게 꽉 들어박혔다. 그 밑으로는 자갈, 아니면 불퉁 바위는 예제없이 마냥 뒹굴었다. 한갓 시커먼 그 암흑 속을 그들은 더듬고 기어오른다. 풀숲의 이슬로 말미암아 고의는 축축이 젖었다. 다리를 옮겨 놓을 적마다 철썩철썩 살에 붙으며 찬기운이 쭉 끼친다. 그리고 모진 바람은 뻔질 불어 내린다. 붕 하고 능글차게 낙엽이 불어 내리다는 뺑 하고 되알지게 기를 복쓴다. 꽁보는 더펄이 뒤를 따라 오르며 달달 떨었다. 이게 지랄인지 난장인지. 세상에 짜장 못 해먹을 건 금점 빼고 다시없으리라. 금이 다 무엇인지, 요 짓을 꼭 해야 한담. 게다 건뜻 하면 서로 두들겨 죽이는 것이 일. 참말이지 금쟁이치고 하나 순한 놈 못 봤다. 몸이 결릴 적마다 지겹던 과거를 또 연상하며 그는 다시금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맞은편 산 수풀에서 큰 불이 얼른 하였다. ‘호랑이!’ 이렇게 놀라고 더펄리 허리에 가 덥석 달리며, “저게 뭐유?” 하고 다르르 떨었다. “뭐?” “저거, 아니 지금은 없어졌네.” “그게 눈이 어려서 헷거지 뭐야.” 더펄이는 씸씸이 대답하고 천연스레 올라간다. 다구진 그 태도에 좀 안심이 되는 듯싶으나 그래도 썩 편치는 못하였다. 왜 이리 오늘은 대고 겁만 드는지 까닭을 모르겠다. 몸음 매시근하고 열로 인하여 입이 바짝바짝 탄다. 이것이 웬만하면 그럴 리 없으련마는, “자네 안 되겠네, 내 등에 업히게!” 하고 더펄이가 등을 내대일 제, 그는 잠자코 바랑 위로 넙죽 업혔다. 그래고 끽소리 없이 덜렁덜렁 올라가는 더펄이를 굽어보며 실팍한 그 몸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었다. 불볕 내리는복중처럼 씨근거리며 이마에 땀이 쫙 흘렀을 그때에야 비로소 더펄이는 산마루턱까지 이르렀다. 꽁보를 내려놓고 땀을 씻으며 후, 하고 숨을 돌린다. 인제 얼마 안 남았겠지. 조금 내려가면, 요 아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이 마을에 들른 것은 바로 오늘 점심때이다. 지나서 그냥 가려하닷가 뜻하지 않은 주막 주인 말에 귀가 번쩍 띄였던 것이다. 저 산 너머 금점이 있는데 금이 푹푹 쏟아지는 화수분이라고. 요즘에는 화약 허가를 내가지고 완전히 일을 하고자 하여 부득이 잠시 휴광 중이고, 머지 않아 가시 시작할게다. 그리고 금 도둑을 맞을까 하여 밤낮 구별 없이 감시하는 중이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