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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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12일 (일) 02: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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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 1930년대 김영랑 시인이 발표한 시


큰 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는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단심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르만지다.

오! 일편단심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한단 말까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

충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


깊은 겨울밤 비바람은 우루루루

피칠해논 옥창살을 들이치는데

옥 죽음한 원귀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 춘향도 혼을 잃고 몸을 버려버렸다.

밤새도록 까무러치고

해돋을 녘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


상하고 병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차고 남은 간을 젖어버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 고을까지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


믿고 바라고 눈 아프게 보고 싶던 도련님이

죽기 전에 와주셨다. 춘향이는 살았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된 춘향이 보고

이도령은 자인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정절이 자랑스러워

'우리 집이 팍 망해서 상거지가 되었노라'

틀림없는 도련님 춘향은 원망도 안 했니라!

오! 일편단심


모진 춘향이 그 밤 새벽에 또 까무러쳐선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한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조 끊기고

온몸 푸른 맥도 홱 풀려버렸을 법

출도 끝에 어사는 춘향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씨보다 더 자인 무지하여 춘향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