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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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현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2일 (화) 20:07 판 (새 문서: ==생애== 본명은 '''''박영종'''''이며,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번지에서 아버지 박준필과 어머니 박인재 사이의 2남 2녀 중 맏이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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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본명은 박영종이며,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번지에서 아버지 박준필과 어머니 박인재 사이의 2남 2녀 중 맏이로 출생했다. 경상북도 월성(지금의 경주) 출신. 1935년 대구의 계성중학교(啓聖中學校)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인들과 어울리다가 귀국하였다. 1946년 무렵부터 교직에 종사하여 대구 계성중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연세대학교·홍익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62년부터 한양대학교 교수로 재임하였다. 1947년 한국문필가협회 발족과 더불어 상임위원으로 문학운동에 가담, 문총(文總) 상임위원·청년문학가협회 중앙위원·한국문인협회 사무국장·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 총무·공군종군문인단 창공구락부(蒼空俱樂部) 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58년 한국시인협회 간사를 역임하였다. 1960년부터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맡아 1973년 이후까지 계속하였다. 한때 출판사 산아방(山雅房)·창조사(創造社) 등을 경영하기도 하였다. 대통령 찬가를 작사하여 권력에 아첨하는 어용시인이라는 비판도 듣고 있는 상태. 개인사적으로 박목월은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둘 정도로 다복하지만 가난했는데, 어느 날 집 앞 골목길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목월을 보고 장남이 "힘드시죠?"라고 물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이호철은 그의 이런 행적에 대해 '가난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옹호하긴 했다.

  • 학력 : 경상북도 대구 계성고등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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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본명은 "영종(泳鍾)"이나, 시를 쓸 무렵 본인의 필명을 "목월(木月)" 로 지었다. 이 때 목월의 아버지가 언짢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세인 1933년, 개벽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어린이》에 동시 「통딱딱 통짝짝」이 뽑혔고, 같은 해, 《신가정》 6월호에 그의 시 「제비맞이」가 당선되어 동시를 주로 쓰는 시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40년, 《문장》 9월호에 「가을 어스름」, 「연륜」으로 추천 완료하여 본격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당시는 일제 강점기 말엽인데, 특별한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1945년, 대구 계성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다. 1946년 6월, 목월은 조지훈, 박두진 3인과 유명한《청록집》을 발간했으며, 동시집인 『박영종동시집』도 발간한 것으로 보아 이전에도 작품활동은 꾸준히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945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는 그의 활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1948년, 목월은 한국문학가협회 중앙위원과 사무국장으로 취임하여 활동하였고,[4] 1950년 이화여자고등학교로 학교를 옮겼으나, 6월에 한국전쟁이 터지자 한국문학가협회 별동대를 조직, 1953까지 공군종군문인단의 일원이 되어 문관으로 군복무를 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목월은 홍익대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중앙대학교 등지에서 강의하였고, 1959년 4월, 한양대학교 조교수가 되어 은퇴할 때까지 한양대학교에서 후학을 키우는 일을 계속적으로 담당하였다. 목월은 1977년, 자신이 봉직한 한양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그는 자신이 출석하던 원효로 효동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고 동년 3월 24일, 새벽에 산책하고 돌아온 후, 지병인 고혈압에 걸려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시간정보 내용
초등학교 지도초등학교, 화정초등학교
중학교 예일여자중학교
고등학교 선일여자고등학교
대학교 한성대학교(재학 중)

대표작품

나그네

       박목월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지훈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성격 : 관조적,서정적,낭만적,풍류적,향토적 심상 : 시각적,후각적 심상 운율 : 3음보(민요조) 어조 : 달관의 어조 특징 : 체언 종결의 간결한 형식미 구성 : 변형된 수미 쌍관의 구성          1.향토적 배경(1연)           2.체념과 달관의 경지(2연)           3.외로운 여정(旅程)(3연)           4.향토적,풍류적 정서(4연)          5.체념과 달관의 경지(5연) 제재 : 나그네 주제 : 체념과 달관의 경지


시츄 시츄.jpg (우리집 강아지 사진은 아니다.)

작품세계.

목월의 시의 특색은 정지용이 그를 잡지 '문장'에 추천하면서 한 다음의 말에 잘 드러난다."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않어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민요풍에서 시에 발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요적(謠的) 수사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다."목월의 시세계는 민요적 가락에 향토색 짙은 서정을 노래한 '청록집' '산도화'의 시기, 생활 속의 소시민으로 소박하고 담담하게 생활과 밀착된 현실적인 시를 쓴 '난,기타' '청담'의 시기, 토속적인 시어를 구사하면서 영혼과 내면의 세계를 추구한 '경상도 가랑잎' '무순'의 시기로 나누어진다.제 1기 : 이 무렵의 시는 정형의 율조에서 오는 음악적인 효과와 토속적인 소재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이 잘 조화된 선명한 이미지에 여운이 담긴 시풍을 보인다.제 2기 : 초기시에서 볼 수 있었던 운율의 정형성을 탈피하여 서술적 이미지를 추구하였다. 현실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생활 속의 자아를 탐구한 시기로 주제는 거의 다 가정적인 문제로 한정되어 있다.제 3기 : 문명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면서 토속적인 방언의 묘미를 살려 신에 대한 경건한 자세를 표백한 시기로 지적 요소가 부각되어 있다. 1) 시풍박목월 : 민요적 가락에 짙은 향토색을 가미하여 자연에 대한 관조를 보여줌. 전통적인 정관(情觀)를 보여 줌. 2) 시정(詩情)박목월 : 향토색 짙은 정결한 산수의 서경 3) 시형과 운율박목월 : 전통적인 민요조의 율조가 혼연 일체를 이룬 연연한 비애의 가락 4) 문학사적 의의 자연의 실체 표현 : 한국의 신문학사를 통해서 한국의 자연이 실재 그 자체로서 부각된 것은 청록파의 공적이다. 이들에 의해 자연이 자연 그 자체로서 독립된 의미와 정서를 가지고 표현되었다. 시사적 맥락의 이음 : 순수한 우리말과 글의 특질을 잘 살려서 이를 통해 운율에  새로운 차원을 가져왔다는 점과 공백으로 남을 뼌했던 광복 전후의 시사적 맥락을 잇게 해준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