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創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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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섭1811057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6월 16일 (일) 03:04 판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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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창조(創造)는 1919년 일본 동경에서 김동인·주요한·전영택 등이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 동인 잡지. 문예잡지. 1919년 2월 도쿄에서 창간되어 2호까지 나왔고, 3·1 운동 후 국내에서 속간, 9호까지 계속되었다. 이 동인지를 통하여 시 70여 편, 소설 19편, 희곡 4편, 평론 16편, 번역시 49편이 발표되었다.

내용

창간 동인은 김동인(金東仁), 주요한(朱耀翰), 전영택(田榮澤), 김환(金煥), 최승만(崔承萬) 등 5인이다. 종간까지는 창간 동인 이외 이광수(李光洙), 이일(李一)·박석윤(朴錫胤), 김명순(金明淳), 오천석(吳天錫), 김관호(金觀鎬)·김억(金億)·김찬영(金瓚永), 임장화(林長和) 등 13인이다. 편집·인쇄 및 발행은 창간호부터 제7호까지는 동경(東京)에서, 제8호는 편집은 평양, 인쇄·발행은 서울, 제9호는 모두 서울에서 하였다. 중요 수록 작품으로는 소설 분야에서 김동인의 약한 자의 슬픔(제2호), 마음이 옅은 자여(제3호), 배따라기(제9호), 전영택의 천치(天痴) 천재(天才) 등 단편소설과 주요한의 불놀이(창간호), 별 밑에 혼자서(제9호) 등이다.

의의

창조는 뒤이어 나오는 『폐허(廢墟)』,『백조(白潮)』 등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주춧돌과 같은 구실을 담당하였다. 특히, 신문학(新文學)이라는 커다란 명제를 앞에 놓고 방황과 모색을 계속하던 당시의 문단에 불놀이, 약한 자의 슬픔같은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어느 정도 완성된 작품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광수, 최남선의 계몽적 목적문학을 반대하고 문학을 ‘도학선생(道學先生)의 대언(代言)’이나 ‘할일업슨 자(者)의 소일(消日) 거리로 보는 데 불복한다고 선언하면서 출발하였다. 또한, 그 핵심 동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동인에 의하여 근대적 소설 문체의 확립이 이루어졌고, 주요한에 의하여 자유시의 형태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다는 점도 아울러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