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1호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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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남대문야경.png
서울사진아카이브CC BY 서울특별시

한양도성(나무위키)의 남쪽에 위치한 문.

숭례문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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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의 역사

600년의 역사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xke5cTEjO2Q
자료 유형 동영상
자료 설명 다시보는 숭례문 600년 역사
라이센스 CC BY 문화재청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있는 남대문은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ㆍ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영상역사관 CC BY-SA

숭례문 화재사건

  • 숭례문 방화 화재(2008.2.10)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 ~ 2월 11일 숭례문 건물이 방화로 타 무너진 사건이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훼손되었다.문화재청CC BY-NC-ND

  • 숭례문 화재사건 동영상
Internet Archive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HrbLxMFefQE
자료 유형 동영상
자료 설명 비극의 역사 현장, 숭례문 화재사건
라이센스 CC BY 서울1TV
  • 사건 경위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50분 즈음 원인 모를 불이 흰 연기와 함께 숭례문 2층에서 발생하여 소방 당국은 신고를 받고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을 현장에 출동시켰고 불씨를 제거하기 위해 일부 현판을 잘라내고 물과 소화 약제를 뿌리고 화재 진압에 총력을 다했으나 2월 11일 그래서 당시에는 '2월 11일|일본 건국 기념일에 불탔다'는 말이 돌았다. 오전 0시 25분 즈음 2층 누각 전체가 불에 휩싸이고 화재 4시간 만인 오전 0시 58분 즈음 지붕 뒷면이 붕괴 사실 전통 건축물에서 기와가 자연히 흘러내리면 사실상 붕괴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다. 기와가 흘러내린다는 것은 각재와 기와 사이가 화재로 상실되었다는 의미이고 이는 곧 건조물이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통 기와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후로부터 거의 즉시 건조물이 붕괴됨을 고려할 때, 숭례문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화재를 버틴 것이라 할 수 있다.]되기 시작했으며, 2층이 붕괴되었다. 이어 바로 1층에 불이 붙어 새벽 1시 55분 즈음에는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반만 남긴 채 모두 붕괴된 다음 5시간 만에 전소되었다. 나무위키CC BY-SA

숭례문 복원

국보 1호 숭례문 복원사업은 화재 이후부터 2008년 5월 말까지 현장 및 훼손부재 수습을 완료했고 이후 2009년 12월까지 가설덧집 건립, 각종 연구 및 고증자료 수집, 이를 통한 설계를 마쳤다. 2010년 1월 문루 해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10년 12월까지 전체 공정의 40%를 완료했다.


2011년에는 좌우 성곽의 체성(몸체) 복원을 마쳤고 문루 조립도 전체 공정의 70% 정도 진행했다. 문루 조립은 2011년 9월 하순부터 시작, 현재 상층 목공사 완료 및 하층 목공사를 진행 중이며 기와잇기는 2012년 6월 중순에 시작하여 상층 남·북측 기와잇기를 완료했다.

내 손안에 서울CC BY-NC-ND 시민리포터 김순자

숭례문 복원현장 논란 기사
문화재청은 2010년 숭례문 복구 공사를 시작하면서, 전통방식으로 복구하겠다고 강조하였고 공사 현장안에 대장간까지 만들었다. 실제로 표면 질감을 살리기 위해 대패와 정, 끌 같은 연장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문화재청은 이처럼 전통방식으로 복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면서 현대식 장비의 사용범위는 '운반'까지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이런 설명과는 달리 운반이 아닌 작업에 현대식 장비가 사용된 것으로 YTN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앞뒤 석축의 사이를 메우는 공간을 해체하면서 굴착기를 일부 사용한 것이다. 처음에 운반 이외의 작업은 모두 수작업으로 한다던 문화재청은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하였다. 사이언스올CC BY-NC-SA 사이언스TV

숭례문 관련 행사/전시

전시

  • 숭례문, 다시세우다
한양도성박물관 온라인전시
  • 박물관에서 만나는 숭례문
한양도성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행사

  • 숭례문 수문장 교대식

전소하기 전날까지 숭례문을 지키는 사람(수문장)을 교대하는 의식을 보여주는 행사를 했다. 저녁때쯤 철수했다고 한다.

  • 숭례문 복구 기념식 현장


링크 http://www.k-heritage.tv/brd/board/229/L/CATEGORY/2335/menu/378?brdType=R&bbIdx=10900
자료 유형 텍스트, 동영상
자료 설명 숭례문, 문화의 새 문이 열리다 숭례문 복구 기념식 현장을 가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 건물이면서 서울의 목조건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국보 제 1호 숭례문!
2008년 2월 갑작스런 화재로 소실됐던 숭례문이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5년에 걸친 복구공사를 마치고 숭례문 복구 기념식을 열어
그 아름다운 위용을 국민들에게 선보이게 되는데...

라이센스 CC BY-NC-ND 문화유산채널

숭례문 관련 작품

일러스트

"우리가족 역사일기" 6·25전쟁 폐허된 숭례문 주변 일러스트 정보
숭례문일러스트.jpg

현대사디지털아카이브 CC BY-NC-ND
주제분류 교육과학 / 교육, 교육과학 / 역사, 문화예술 / 문화
생산연대/시기 2010년대 / 2012
한줄설명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제작한 "우리가족 역사일기"에 실린
6·25전쟁 당시 폐허 된 숭례문 주변 일러스트이다.
키워드 우리역사보물창고, 교육,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신문

프랑스 언론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에 실린 일본군의 서울 점령
정보
일본군의 서울점령.jpg

Widener Library, CC BY
Title La guerre russo-japonaise : occupation de Seoul par l'armee japonaise
Translated Title The Russo-Japanese war : occupation of Seoul by the Japanese Army
Work Type Newspapers
Creator Crespin, Adolphe Louis Charles (1859-1944), Belgium, illustrator
Dimensions 43 x 30 cm.
Location Seoul, Korea
Topics imperialism; Russo-Japanese War, 1904-1905; soldiers
Nationality/Culture French
Note Production: Engraved by Andrieux after Ch. Crespin.
Imprint: Paris. Bouquet, imprimeur du Petit Parisien, 18 rue d'Enghien.
Related Work Part of Images of colonialism collection (Asia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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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현에 의해 창작된 문서 국보1호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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