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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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은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3일 (수) 01: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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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흥학회

설립취지

기호흥학회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조직된 단체로 대한제국 국권 회복의 길은 교육 진흥과 산업 발달에 있다 보고 교육진흥을 가장 중점적인 목표로 추진했다.

개설

1908년 1월 민족자강을 위한 교육계몽운동을 목적으로 한성부에서 조직되었다. 기호인사 105명이 서울 신문로의 보성소학교(普成小學校)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초대회장에 이용직(李容稙), 부회장에 지석영(池錫永), 총무에 정영택(鄭永澤)을 선출하였다. 평의원은 유성준(兪星濬) ·석진형(石鎭衡) ·이상재(李商在) ·윤효정(尹孝定) ·장헌식(張憲植) ·정교(鄭喬) ·장도(張燾) ·유근(柳瑾) ·유일선(柳一宣) ·안종화(安鍾和) 등 10명으로 출발하였다.

연원 및 변천

을사조약 후 애국계몽운동자들은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교육을 진흥시키고 산업을 발달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하여, 대한자강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를 설립하였다. 이때 활동한 애국계몽단체 가운데 대한자강회가 중심적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1907년 8월 이 단체가 강제 해산되자, 11월에 대한협회를 설립해 자강운동의 명맥을 유지해 갔다. 이 시기에 학교설립 등 교육진흥사업의 체계있는 지역적 추진을 위해 각 지역별로 여러 단체가 설립되었다. 기호흥학회는 그 중 하나이다. 이밖에도

기호흥학회 월보

《기호흥학회월보(畿湖興學會月報)》는 1908년 8월 25일자로 창간된 기호흥학회의 기관지로서 1909년 7월 통권 12호를 내고 종간되었다. 내용이 국권 회복에 관계된다 하여 제6·9·10·11호 등이 여러 번 압수되기도 하였다. 창간호에는 의친왕의 ‘咸與維新(함여유신)’이라는 친필을 실었다. 1910년 9월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판권장을 보면, 발행인 김규동(金奎東), 편집인 이해조(李海朝), 인쇄인 이기홍(李基弘), 인쇄소 우문관(右文館), 발행소 기호흥학회(황성·중부 교동 23통 1호), A5판 70면, 정가 15전이다. 문장은 거의가 한문에 토를 단 국한 혼용문이며, 전문 4호 활자로 2단 세로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