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 후 애국계몽운동자들은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교육을 진흥시키고 산업을 발달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하여, 대한자강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를 설립하였다. 이때 활동한 애국계몽단체 가운데 대한자강회가 중심적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1907년 8월 이 단체가 강제 해산되자, 11월에 대한협회를 설립해 자강운동의 명맥을 유지해 갔다. 이 시기에 학교설립 등 교육진흥사업의 체계있는 지역적 추진을 위해 각 지역별로 여러 단체가 설립되었다. 기호흥학회는 그 중 하나이다. 이밖에도
기호흥학회 월보
《기호흥학회월보(畿湖興學會月報)》는 1908년 8월 25일자로 창간된 기호흥학회의 기관지로서 1909년 7월 통권 12호를 내고 종간되었다. 내용이 국권 회복에 관계된다 하여 제6·9·10·11호 등이 여러 번 압수되기도 하였다. 창간호에는 의친왕의 ‘咸與維新(함여유신)’이라는 친필을 실었다. 1910년 9월 일본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판권장을 보면, 발행인 김규동(金奎東), 편집인 이해조(李海朝), 인쇄인 이기홍(李基弘), 인쇄소 우문관(右文館), 발행소 기호흥학회(황성·중부 교동 23통 1호), A5판 70면, 정가 15전이다. 문장은 거의가 한문에 토를 단 국한 혼용문이며, 전문 4호 활자로 2단 세로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