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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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범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4일 (목) 00: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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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이론을 초월하는 것에 묘미가 있다"

소개

본명은 김환기(金煥基),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수화(樹話)이고 우리나라 추상화가이다. 1913년 2월 27일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74년 7월 25일 61세의 나이로 미국 뉴욕에서 생을 마감했다.

생애

김환기(金煥基)는 대한민국의 서양화가이다.1913년 2월 27일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구 기좌면) 읍동리에서 출생하였다.1933년 동경 일본대학 예술학원 미술부 입학 후 일년 뒤 '아방가르드' 조직에 참여,후지다 쓰구지,도고 세이지에게 지도를 받았다. 1937년 제1회 개인전을 열었으며 그 해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였다.귀국 후 서울대학교 예술학부 미술과 교수로 역임하였고 유영국,이규상 등과 함께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그 해에 제 1회 '신사실파' 전시를 하였다.1951년 북한의 남침으로 부산으로 피난 후 해군종군화가가 되었다. 1952~55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와 1959~1963년까지 홍익대학교 학장을 역임하였다.이 후에는 파리에서 제 6회,제 10 회 개인전을 열어 <봄>,<하늘> 등을 출품하였다.1959년 귀국후에도 제 11회 개인전을 열어 <산원>,<달밤의 사슴>,<영원의 노래>등을 출품 하였고 제 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참가, 출품 작품<달밤의 섬>,<여름 달밤>,<운월> 등으로 회화부분 명예상을 수상하였다.1963년 뉴욕으로 출국 후 제 15,16,21,22회 개인전을 열었고 J.D록펠러재단에서 지원금을 1년간 수여 받았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하늘과 땅>,<10만개의 점> 등 대작을 출품하였고 제 22회 개인전(슈레브포트 반웰미술관,루이지애나,1974년)을 마지막으로 1974년 뉴욕에서 61년 5개월의 생을 뇌출혈로 인해 별세하게 된다.

작품세계 (활동내역)

추상주의 화가로 미술사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작품관을 갖고 있다. 작품사 초기에는 기하학적인 추상주의로 시작하여 서양에서의 오랜 유학생활에도 불구하고 동양적인 느낌을 주로 한 반추상화 작업을 하였다.이러한 화풍에만 머물지 않고 별세 직전 당시의 뉴욕 화풍을 받아 들여 완전한 추상화풍으로 전환하였다.작품을 처음 본 관람객은 다른 현대 추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처럼 규칙적인듯 불규칙적인 의도를 알 수 없는 화풍을 보고 당황한다. 이러한 추상화풍의 단순한듯 규칙이 없는 양식때문에 여러 위작이 만들어진 작가 중 한명이다.김환기의 작품세계는 그가 생활했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그가 작성한 1970년 1월 27일 일기를 보면 이른 아침 뻐구기의 규칙적인 노래 특징을 듣고 이를 일정한 크기와 반복된 점들로 작품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또한 '전면점화'는 그가 겪었던 뉴욕에서의 유학생활로 느낀 오랜 고독과 분투에서 우러나온 것이다.김환기의 화풍이 여러 유학생활 중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파리 유학 생활에서는 오히려 한국적이고 동아시아적 모티프를 반구상,반추상의 유화로 표현하는 스타일을 유지했고 내키지 않아 했던 뉴욕에서 여러 차례의 실험을 통해 완전 추상주의로 전환한 것이다.

작품 및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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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수상내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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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주어(S) 목적어(O) A는 B를 ~하다(P)

참고문헌

작성자 및 기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