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위한 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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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작품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작품해석

 1연에서는 나를 위험한 짐승이라고 말하고 있다. 짐승은 꽃이라는 존재의 본질이나 진정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한다. 꽃에게 적당한 이름을 붙일만한 능력도 없다. 그래서 그저 짓밟아 버리거나 무의미하게 입으로 가져다가 집어 삼킬 뿐이다. 꽃에게 짐승은 무서운 대상이다. 이것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자. 여기서 등장하는 위험한 짐승은 바로 시적 화자이다. 시적화자는 어떤 대상의 본질이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그것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지만, 그런 노력이 대상의 의미를 밝히기보다는, 오히려 대상을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으로 몰아넣고 만다. 그것을 몰랐을 때는 그냥 지나치고 말 뿐이었는데, 의미를 찾겠다고 나선 순간부터 대상의 본질과 의미를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더 절실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것을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까마득한 미지의 어둠이 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2연에서는 인식의 대상이 되는 꽃이 흔들리는 가지 끝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꽃이 이름 없이 피었다 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름 없이 피고 지었다는 것은 결국 내가 대상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내가 가진 인식 능력의 한계 때문에 꽃은 늘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가지 끝에 있을 수밖에 없다.  
 3연에서는 존재의 본질과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는 슬픔이 나의 눈시울을 젖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무명의 어두움이란 대상의 본질과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의 무지의 상태를 말한다. 어떻게든 대상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이번에는 과거의 추억과 기억들을 돌아보며 이름을 붙여보고자 노력한다. 화자, 정말 애 많이 쓴다. 밤새도록 울고 있다. 그만큼 존재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고자하는 순수한 욕구가 컸던 모양이다. 
 4연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일단 ‘나의 울음’이라는 것은 3연의 연장선에서 존재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를 탐구하고자 하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망이 점차 커지고 커져서 하나의 거대한 돌개바람과 같은 강력한 열망으로 변한다.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강한 열망은 단단한 탑을 뒤흔든다. 여기서 말하는 탑이란 꽃과 같은 의미이다. 즉 내가 존재의 본질과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고 싶은 인식 대상이다. 그런데 그 인식대상은 돌개바람에도 웬만하면 흔들리지 않는 탑과 같이 단단하고 닫혀 있어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나의 강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탑을 흔들던 나는 이제 돌에 스며든다. 존재의 본질에 조금씩 다가가는 화자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그런 화자는 이내 금(金)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금이란 탑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즉 돌의 표면이 갈라진 틈새의 금이 아니라 황금(黃金)이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과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귀하고 가치가 있는 금과 같은 것이 될 것임을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5연에서 다시 안타까운 이야기를 반복한다. ‘나의 신부’는 내가 그토록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하여 애쓴 인식의 대상인데, 그 신부가 얼굴을 가리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존재의 본질과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인식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깝게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꽃을 소재로 하여 사물과 그 이름 및 의미 사이의 관계를 노래하면서, 존재의 본질과 그 정체를 밝히려는 김춘수 초기 시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이 시에서 '너'와 '신부'는 시적 자아가 끊임없이 추구해 오던 존재의 본질을 상징한다. '나'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른 채 존재 탐구를 향한 고난의 몸짓을 거듭하지만 좀처럼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물의 본질적 의미를 파악할 능력이 없는 '나'(위험한 짐승)가 '너'(꽃)를 인식하려고 시도하면 '너'는 더욱 미지의 세계로 숨어 버린다. 그리하여 꽃은 아무런 의미도 부여받지 못한 채, 불안정한 상태에서 무의미하게 존재하고 있다.

결국, 이 시의 전체적인 내용은 어떤 인식 대상(사물, 꽃)의 본질적인 의미(이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이다.

[출처] 우원호와 명시감상【27】김춘수[金春洙, 1922.11.25~2004.11.29] 시인의 꽃을 위한 서시 작품해설 □ 소개: 우원호(웹진 시인광장 발행인 겸 편집인)【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작성자 웹진 시인광장


작품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