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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던 중, 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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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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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UFO를 봤다. 15년 전 동네에서 상인들과 함께 구경을 했었는데, 얼마 전 미국 국방부에서 UFO의 모습이 담긴 기록을 공개하여 다시금 떠올랐다.
  
 
==삶에 대한 의미부여==
 
==삶에 대한 의미부여==

2022년 6월 3일 (금) 01:52 판

개요

한성대학교 재학생인 최승규, 그의 아버지에 대해 기록한 문서.

대부분의 가정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 요즘의 상황, 이슈,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뿐이다.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는 단편적이고 부분적으로 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아버지의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문서에서 다룰 내용은 내가 알지 못했던 과거의 아버지이다.

  • 본 문서는 구술자인 아버지의 요청에 의해 성함은 기재되지 않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

표범에 올라탄 아버지

출생과 배경

아버지의 출생년도는 1959년 8월 19일이고 출생지는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이다. 가족 구성원은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2명, 본인, 남동생. 아버지는 공무원, 어머니는 시골 농사로 머슴을 두고 생계를 했다. 배경은 시골이었지만 동네에서는 유지라고 불릴 수준이었으니 부유층이었다.


"그렇게 못 살지도 않았고, 나름대로 동네서는 유지라고 말을 들었고, 그리고 약간 좀 부유층이지. 왜냐하면 할아버지가 공무원이셨으니까. 일꾼도 있고, 농사도 짓고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입학했을때, 시골이라 반이 하나밖에 없었고 그 한 반에 60명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 6학년까지 함께 지냈다.


"한 반이야. 반이 하나. 일학년서부터 그 한 반이 육학년까지 다녀. 한 63~4명."


같은 곳에서 중학교를 들어가는데, 중학교는 세 초등학교에서 졸업생들이 모여 세 반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우등생이었던 그는 명문인 수원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서울로!

서울에서의 공부와 군생활

더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로 고등학교를 전학갔다. 이후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여 졸업한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육군 헌병대로 군입대를 하게 된다.

아버지의 군인 시절


헌병은 모든 군인의 모범이 되어야 했기에 혹독했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했다고 한다. 용인에서 30개월간의 길었던 군생활을 했고 아직도 헌병가를 기억한다.


"차출이 돼. 헌병으로. 헌병 교육을 받고 자대를 들어가지."


"군대에서는 그래도 헌병은 모든 군인의 모범이라 병과가. 혹독하지만 열심히했어. 나중에는 뿌듯하기도 하고."


직장생활과 연애 그리고 결혼

사회초년생 아버지(왼쪽)과 동생(오른쪽)

제대 후 2개월만에 바로 취직에 성공한다. 돈을 벌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이성을 소개시켜주지만, 사회초년생인 자신은 아직 안정적이지 못했고 거듭 거절했다. 이때는 결혼생활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위치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이성을 소개받기 꺼려졌다고 한다.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 사회초년생에게 자꾸만 여자를 소개시켜준다는 것 자체가 싫었어."


하지만 친구 중 끈질기게 소개를 해주려는 사람이 있었고, 결국 소개를 받게되어 연애를 시작한다. 비슷한 공무원 집안의 사람이었고, 너무 좋은 사람이라 연애 8개월만에 부부의 연을 맺는다. 특이하게도 아버지를 소개한 아버지의 친구와 어머니를 소개한 어머니의 친구 또한 그들끼리 결혼을 한다.


"중매를 했는데, 너무 좋았어. 그래서 8개월만에 결혼을 하고."


결혼 후에 이직을 한다. 1년 정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공기업으로 옮겼다. 이후 큰 딸과, 두 살 터울의 작은 딸이 생겼다.


아버지, 첫째 딸, 어머니


직장생활 중 대학원의 필요성을 느끼고 경영지도 전공으로 대학원을 2년간 다니고 졸업한다. 이 지식이 직급이 올라갈수록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버지에게 직장생활은 그야말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의 그것이었다. 무조건 열심히해서 승진하는 것이 목표였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평일엔 일에 몰두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지내거나 애경사를 쫓아다니며 바쁜 인생을 살았다.


"직장 다닐때는 정말 앞만 보고 달리는 거니까...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지. 직장 다닐때는 무조건 열심히해서 승진해야지 그 윗자리로 올라가니까. 열심히 해야해. 열심히 안하면 뒤쳐지니까... 좀 마음에 어떤 여유라던가 이런건 없었고 오로지 회사, 일. 그러다 이제 또 가족하고 또 주말같은 경우 가족하고 생활해야지, 뭐 또 애경사 쫓아다녀야지... 뭐 정신없이 왔어."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던 중, 내가 태어났다.


특별한 경험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UFO를 봤다. 15년 전 동네에서 상인들과 함께 구경을 했었는데, 얼마 전 미국 국방부에서 UFO의 모습이 담긴 기록을 공개하여 다시금 떠올랐다.

삶에 대한 의미부여

돌아보니 정말 열심히 산 삶이었다. 친가와 외가 모두 자주 갔고, 자녀 셋을 기르니 힘도 들었지만 뿌듯한 삶이었다.


"양가를 정말.... 잘 했고, 열심히 또 너네들. 자녀 셋 기르느라고 힘도 들었지만 지금은 이제 키우고 나니까 굉장히 뿌듯해. 이런 인터뷰를 또 늦게나마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뜻 깊다는 생각이 드네."


  • 현재의 시점이지만 겉으로 볼 수 없던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내가 모르는 아버지'라고 생각되어 작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