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

한성대학교 미디어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이름2.JPG


해당 컨텐츠는 한성대학교 <아카이브와 콘텐츠> 수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구술 인터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엄마로 태어난 여자는 없다


엄마는 승기엄마라고 불렸다. 엄마의 첫째 아들, 승기가 엄마의 이름이었다.

엄마도 이름이 있는데, 왜 엄마가 되면 자신의 이름은 잃어버리는 걸까.

우리 엄마의 이름은 누가 불러줄까. 더 이상 엄마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으로 살아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엄마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한다.


당신의 어린시절


100일 사진 돌 사진

<100일 사진과 돌기념 사진>


당신은 1970년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에서 다섯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이사와 전학이 잦아졌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어머니의 부재였다. 당시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아이들을 두고 홀로 지역 곳곳으로 일하러 갔다. 가족들이 흩어지면서 10살의 당신은 집의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도시가스가 아니고 연탄이었잖아. 그러면 연탄은 조금만 저기하면 꺼져버려. 그거 땜에 진짜 힘들었고 겨울에. 왜냐면 뜨거운 물도 마음대로 못 썼고, 지금이야 물 딱 틀면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지만, 그때 당시에는 뜨거운 물도 연탄으로 연결을 해가지고 뜨거운 물을 쓰는 거니까. 불만 꺼트리면 뜨거운 물이 없었던 거지. 그니까 빨래 하려믄 정말 힘들었지. 손으로 빨래해야 되니까." 
<1977년 수색초등학교 입학>


당신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6년 동안 총 4개의 초등학교에 다녔다. 처음 입학한 초등학교는 수색 초등학교였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야 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당신은 혼자서 기차를 타고 등교를 했다. 하교할 땐 돈을 아끼기 위해서 철도를 따라 걸어갔다. 얼마 안 있어 집이 어려워지면서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었고, 중동 초등학교, 양천 초등학교, 강서초등학교를 다니고 강서 초등학교에서 졸업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는 당신은 초등학교를 4곳이나 다녔다는 사실이 재밌기만 하다.

"어렸을 때 그래서 초등학교를 네 군데 다녔다고 얘기했지? 안 했어? 입학한 학교, 졸업한 학교, 학교를 네 군데 다녔어 6년 동안!"


살다 보니


<20살>

당신은 22살에 결혼을 하고 세 명의 자녀를 낳았다. 남들보다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많이 하지 못했다. 막내아들을 낳고 나서 질병과 산후우울증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거의 15년을 아이만 보며 살았다. 애들이 크고 나서야 당신은 자신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고 새롭게 취직을 했다. 다시 직장을 다니면서 우울을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당신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바깥 활동과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사람이 직장을 다닌다는 게 긍정적으로 되는 거 같아, 몸은 힘들지만. 그래서 사람은 집에 있으면 안 돼. 집에 있다 보면 사람이 우울해지는 거야. 사람은 사람을 접하면서 살아야지. 사람하고 대화도 하고 그래야지 긍정적인 거를 받는 거 같아.”

당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지게 된 생각은 ‘친구가 소중하다’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친구를 중요하게 여겼다. 어린 시절에는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친구와 금방 헤어지게 되었고, 전화기가 없었기 때문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일찍 하면서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다. 당신이 결혼하고 점차 줄어들던 연락이, 친구마저 결혼하자 완전히 연락이 끊긴 것이다. 친한 친구들과 연락이 끊긴 사실이 아직까지 서운하다. 특히 가장 절친했던 친구인 진옥이와의 헤어짐이 가장 마음 아프다.


소현 친구.jpg

<친구와 함께>

"친구도 중요한 것 같아. 우리 때는 솔직히 전화기 없으면 연락할 수가 없었어. 근데 전화기 없는 집이 더 많았거든. 그니까 이제 이사를 멀리 다녔기 때문에, 전화기가 없고 하니까, 친구랑 연락 학기가 어려웠거든. 그래서 친한 친구들이랑 연락이 다 끊긴 거. 진옥이라고 있었는데, 그 친구랑 연락 끊긴 게 제일 서운해."



당신이 사는 곳


석관동은 당신이 30년 동안 살아온 곳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았다. 어린 시절, 흩어졌던 가족들이 처음으로 다시 모인 곳이 석관동이었다. 비록 당신은 의정부에 있는 고모 댁에 지내게 되면서 금방 석관동을 떠나게 되지만, 결혼하면서 살게 된 곳은 또다시 석관동이었다.


결혼하고 처음엔 단칸방에서 살림을 차렸다. 이후 한화제약 앞에 있던 집으로 이사 가면서 당신의 여동생들도 함께 살았다. 막내 동생의 함을 받은 곳도 바로 그 집이었다. 동생들이 떠나고 놀이터 쪽의 한옥으로 이사를 했다. 너무 추워서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그리고 옆 골목에 있는 지하로 이사를 했다. 지하 집에 살 땐 물이 넘쳐서 집 안에 물이 두 번이나 들어왔었다. 너무나 힘든 지하 방의 생활이었지만, 그런데도 또래의 이웃들이 있어서 즐거웠다. 항상 한 사람네 모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소풍하러 가기도 했다.


"놀이터로 이사 갔는데, 한옥 집이었는데 너무 추운 거야 집이. 그래서 1년 살고, 2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나왔지. 집이 너무 추워서. 그리고 지하로 이사 가서 거기서 한 4년 살았나봐, 태희네 집 옆에 옆에. 지인이네도 거기 옆에 살았고, 지하 살면서 물이 두 번 들어온 거 알아? 물이 넘친 거야. 비가 너무 많이 와가지고. 방이 난리가 아니었지."


막내아들을 낳고 집을 샀다. 그 집에서 막내아들의 돌잔치도 하고, 아이들이 강아지나 토끼를 키우기도 하고, 시누이와 함께 살기도 했다. 집이 오래되어 새로 수리를 할지 리모델링을 할지 고민하던 차에 옆집에 살던 친구네와 앞집의 할아버지네를 설득해서 빌라를 지었다. 처음 5년만 살고 이사 가려 했는데 벌써 이 집에 산 지 18년이 되었다. 당신에게 이 집과 석관동은 친구만큼 소중한 곳이다.


석관동 338.jpg 한예종1.jpg

<2005년의 석관동><20015년의 석관동> [1]


당신의 이름은 조혜진


엄마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라서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엄마의 어린 날, 학창시절, 청춘···, 내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시간들이 궁금했다.

자식들의 엄마로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이야기들은 나를 반성하게 하고, 당신을 이해하게 하고, 엄마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


당신의 이름은 조혜진이다.


작성자

  • 참고 자료
[1] 석관동 338 (03Q88184Da9SI0), 한국예술종합학교 (05Q05806Dc5000) 사진
출처: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http://data.si.re.kr/) / 검색명: 석관동
CC-BY 라이선스



Ccl 유형2.png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