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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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1666)  
 
*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1666)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사 최초의 거장으로, 자연스러운 구성과 활력 있는 초상화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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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사 최초의 거장으로, 자연스러운 구성과 활력 있는 초상화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화가이다.  
  
 
* 대담한 즉흥성과 '''경쾌한 붓 터치'''로 순간의 표정을 화폭에 담아 생생한 인물을 묘사했다.
 
* 대담한 즉흥성과 '''경쾌한 붓 터치'''로 순간의 표정을 화폭에 담아 생생한 인물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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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  
 
*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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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했다.
  
 
*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의 집단인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의 집단인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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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가 구필화랑에서 일하던 시절, 판화로 복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 고흐가 구필화랑에서 일하던 시절, 판화로 복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밀레에 대한 존경은 대단해서 밀레 사부라고 부를 정도였고 밀레의 그림을 묘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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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의 밀레에 대한 존경이 대단해서 밀레 사부라고 부를 정도였고 그림을 묘사하기도 했다.  
  
 
* 고흐 그림의 중요한 소재인 자연, 자연 속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  
 
* 고흐 그림의 중요한 소재인 자연, 자연 속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  

2018년 11월 29일 (목) 00:41 판


Vincent van Gogh

  I DREAM MY PAINTING AND I PAINT MY DREAM. 

일생

년도 or 장소 내용
1853 네덜란드 브라반트 북쪽에 위치한 그루트 준데르트(Groot Zundert)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 테오도루스 반 고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64 고흐가 11살이 되자 부모님은 그를 개신교 교사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보냈다. 그 곳에서 그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배웠다.
1866 기초교육을 마친 후 국립중학교로 진학했다. 이 학교는 당시 이례적으로 미술이 교과 과정에 하나로 도입되어 있었다. 반 고흐는 그 곳에서 네덜란드 출신으로 파리에서 명성을 쌓다 고향으로 돌아온 화가 호이스만스에게 미술 수업을 받았다.
1868 학교를 자퇴한 후 1869년 숙부가 운영하는 구필 화랑의 헤이그 지점에서 판화를 복제하여 판매하는 수습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1873 헤이그를 떠나 구필화랑 런던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영국에 머물렀으며 1875년부터는 파리지점에서 일했다.
1880 성직보다 미술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고흐는 브리셀로 떠난다.
브리셀 외삼촌이자 화가였던 안톤 모베에게 그림을 지도받았다.
뇌넨 알베르튀스 하르트소이케르라는 사람의 집에서 하숙하며 화가의 길을 모색했다. 그곳에서 보름 후 화가들이 있다는 곳을 전해듣고 니암스테르담으로 간다.
1885 아버지의 죽음 이후 창작 열정이 쇠퇴한 고흐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들라크루아의 색채론을 탐독했다.
아를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 꾼 고흐의 제안에 응한 유일한 사람인 폴 고갱과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1888 고갱과의 공동생활 시작 두달만에 고흐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켰고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랐다.
1888~1889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1890 생레미 정신병원을 퇴원한 고흐는 오베르로 떠난지 2달 만에 쇠약해진 몸과 정신을 이겨내지 못하고 권총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예술양식

화풍

  • 존경하던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묘사하면서 기교를 익혀나간 방식으로 독특한 화풍을 만들었다.
  •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린 후기 인상주의 화가이다.
  • 어두운 색조의 초기 화풍을 가졌다. (ex. 농부들을 강렬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로 묘사)
  • 임파스토 기법의 표현주의적 후기 화풍을 가졌다.
 임파스토 기법이란?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여 최대한의 질감과 입체적인 효과를 내는 기법

관련인물

렘브란트

  •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배합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사용하여 수많은 걸작을 그렸고 당대에 명성을 얻었다.

  • 인간애라는 숭고한 의식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스며들게 하였으며 종교적인 작품에서조차 이러한 특징을 유지했다.
 제라드 드 레이싱은 "그에게는 붓과 기교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했다." 라고 평가했다. 

프란스 할스

  •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0-1666)
  •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사 최초의 거장으로, 자연스러운 구성과 활력 있는 초상화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화가이다.
  • 대담한 즉흥성과 경쾌한 붓 터치로 순간의 표정을 화폭에 담아 생생한 인물을 묘사했다.

->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와 프란스 할스(Frans Hals)에게서 기본적인 고흐의 스타일인 거친 붓 스타일뚜렷한 음영 기법같은 것을 배웠다.

밀레

  •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1814-1875)
  • 독특한 시적 정감과 우수에 찬 분위기가 감도는 작풍을 확립했다.
  •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활동한 풍경화가의 집단인 바르비종파의 대표적 화가가 되었다.
  • 고흐가 구필화랑에서 일하던 시절, 판화로 복제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 고흐의 밀레에 대한 존경이 대단해서 밀레 사부라고 부를 정도였고 그림을 묘사하기도 했다.
  • 고흐 그림의 중요한 소재인 자연, 자연 속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요작품

해바라기

반고흐미술관

Sunflowers (1888)

  • 반 고흐는 고갱과 함께 지낼 프랑스 아를의 노란집을 장식할 해바라기 그림 연작을 그렸다.
  • 반 고흐는 자신이 본 것을 재현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더욱 강렬하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색채를 더욱 임의적으로 사용하였다.
  • 해바라기는 노란색에 대한 연구이다. 노랑은 햇빛과 행복을 의미하며 당시 반 고흐가 느꼈던 기쁨과 기대감을 반영하는 색이다.
  "고갱과 함께 노란 집에서 살게 될 거라 생각하니 작업실을 장식하고 싶어졌다. 오직 커다란 해바라기로만!" 

자화상

오르세미술관

Autoportrait (1889)

  • 이 작품은 반 고흐가 끊임없는 망상과 발작에 시달려왔을 때 그려진 것이다.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깨달은 반 고흐는 1889년 스스로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이 곳에서 그는 몇 달 동안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에 전념하며 6점의 자화상을 그렸는데, 가장 격렬한 감정이 표출된 것이 이 작품이다.

  • 이 그림에서 반 고흐는 얼굴을 부각시키려했다. 불안한 눈과 긴장한 표정은 보는 사람을 그의 불안한 정신세계로 끌어들인다.
  • 물결치듯 표현된 머리, 수염과 대조되는 정적인 모습은 환시효과를 주는 배경의 아라베스크 무늬와 만나 한층 두드러져 보인다.

반 고흐 특유의 소용돌이 치는 무늬는 그가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기부터 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그가 당시 겪고 있던 고통과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반 고흐의 방

시카고미술관

The Bedroom (1889)

  • 반 고흐는 그의 침실 그림을 높게 평가하여 '반 고흐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세 작품을 그렸다.

가장 오래된 버전은 1888년 10월 아를에서 그려진 것으로, 반 고흐가 요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일어난 홍수로 인해 작업실에 방치해 두었던 '반 고흐의 방' 일부가 손상되었다.

이 최초의 작품은 현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후 1889년 생레미 요양원에서 나온 반 고흐는 두 개의 작품을 더 그렸고 이 사진이 그 중 하나이다.

하나는 원본과 동일한 크기로 현재 시카고 미술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 그린 나머지 하나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반 고흐의 친구이자 화가인 에밀 베르나르(Emile Bernard)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서신집의 554번째 편지에서 그는 이 작품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오직 색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나는 현란한 색을 단순화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휴식과 편안한 잠을 연상케 하고 싶은데,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과 상상력에 달려있다."  
  • 색채의 상징주의를 이용하여 고요함을 표현하고, 방의 간결하고 단순한 모습을 부각시켰다.
  • 다양한 색조를 표현하기 위해 일본풍 채색 비단의 모티프와 판화 기법을 참고했다.

별이 빛나는 밤

뉴욕현대미술관

The Starry Night (1889)

  • '별이 빛나는 밤'은 반 고흐가 고갱과 다툰 뒤 자 신의 귀를 자른 사건 이후 생레미 요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반 고흐에게 밤하늘은 무한함을 표현하는 대상이었다.
  • 비연속적이고 동적인 터치로 그려진 하늘은 굽이치는 두꺼운 붓놀림으로 불꽃같은 사이프러스와 연결되고, 그 아래의 마을은 대조적으로 평온하고 고요하다.
  • 반 고흐는 병실 밖으로 내다보이는 밤 풍경을 기억과 상상을 결합시켜 그렸는데, 이는 자연에 대한 반 고흐의 내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구현하고 있다.
  • 수직으로 높이 뻗어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이프러스는 전통적으로 무덤이나 애도와 관련된 나무이다.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 

평가

  •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 한 명
  • 20세기 미술운동인 야수주의와 독일 표현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
 야수주의란?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 운동으로 색채를 강렬하게 추구한 화가들의 자연발생적인 그룹으로서 서로 다른 경향의 미술가들의 일시적인 결합이었다. 
 고흐는 회화를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서 비가시적인 감정이나 관념의 '표현'으로 바꾸어놓았다. 이로써 훗날 독일 표현주의 출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게 된다. 

출처 및 참고문헌

CC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