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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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현(2311210)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6월 3일 (토) 02:50 판 (수공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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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의 정의

상민은 무엇일까?

상민은 양반이 아닌 보통 백성을 이르던 말로 조선시대 상민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계층이었다.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경제권을 갖고 있어 천민과 구별되었다. 상민은 대부분 농민이었는데 상업을 낮게 여기고 농업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유교에 따라 많은 평민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상민은 자신의 땅에서 농사를 짓거나 양반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어 세금을 내기도 하였다. 또한 전쟁이나 성문의 건설 같은 일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층이었다. 상민은 양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관직에 나갈 수는 있었지만 세금을 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글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상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자신들만의 소박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상민의 종류

농민

조선시대의 상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농민이었다. 농민들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땅에서 농사지으며 농작물 중 일정한 양을 나라에 세금으로 냈다. 남의 땅을 빌린 경우에는 땅 주인에게 농작물을 바쳤으며 나라의 크고 작은 공사에 불려 나가기도 하고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역할도 하였다. 농사철이 되면 농촌에 일손이 많이 필요했어서 농민들은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농사일을 함께 하는 조직인 '두레'를 만들었다. 모를 옮겨 심는 모내기나 잡풀을 뽑는 김매기를 할 때 두레를 사용하였다. 두레를 이용해서 농사일을 할 때 한쪽에서는 농악대의 흥겨울 풍물 소리가 울리기도 하였다. 일이 끝나면 농민들은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피로를 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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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상인은 물건을 파는 역할이었는데 상인에는 나라에서 지어준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시전 상인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보부상이 있었다. 시전 상인 중에서도 비단, 무명, 모시, 생선, 종이,명주, 이렇게 여섯 가지 물건을 파는 육의전의 상인들은 왕실과 관청에 물건을 대며 특별한 권리를 누리기도 하였다.


시전 상인 사진.jpg 보부상 사진(1).jpg 보부상 사진(2).jpg

수공업자

관청에 속하여 나라에 필요한 도자기, 종이, 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을 수공업자라고 하였다. 수공업자들이 만드는 물건의 종류를 나라에서 정해 놓고 관리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백성들은 옷, 짚신과 같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써야 했다. 조선 시대 초기에는 나라에서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자유롭게 장사를 하거나 물건을 만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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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의 의생활

  • 남자: 저고리에 바지가 기본적인 옷차림
  • 여자: 저고리에 치마가 기본적인 옷차림
흰색 옷을 주로 즐겨 입어서 조선시대의 우리 민족을 일컬어 ‘백의 민족'이라고 불렀다. 고려 시대의 목화가 보급되면서 목화로 만든 무명옷을 조선 시대 상민들이 많이 입었다. 농사를 짓는 일을 했던 상민들은 양반의 옷에 비해 단순했다. 상민은 목화로 실을 만들어 천을 짜고 스스로 옷을 지어 입었는데 바느질 솜씨가 좋으면 양반의 주문을 받아 옷을 만들어 주고 돈을 벌기도 하였다. 상민이 사용하는 장신구나 신발은 양반의 것들과 차이가 있었다. 결혼한 여자가 머리를 올려 고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녀의 경우 양반은 비싼 옥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으나 상민은 놋이나 나무로 만든 비녀를 사용하였다. 신발의 경우에도 양반은 가죽이나 비단으로 장식한 신발을 신었다면 상민은 볏짚을 꼬아 만든 짚신을 주로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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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의 식생활

신분 식사
양반 쌀, 소고기나 돼지고기
상민 보리나 다른 잡곡, 꿩이나 토끼
상민의 주식은 양반과 마찬가지로 밥이었지만 양반이 주로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면 상민은 보리나 다른 잡곡을 섞어 밥을 지었다. 보리나 잡곡이 쌀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이다. 상민의 음식은 비싸게 사야 하는 재료보다는 자연에서 그대로 얻을 수 있는 채소가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겨울을 제외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자연 곳곳에서 자라는 나물을 캐고 열매를 따서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자신의 집 안이나 근처에 조그마한 텃밭을 만들어 무를 직접 길러 먹기도 하였다. 상민의 반찬의 가짓수는 그렇지 많지는 않았다. 된장이나 간장에 국과 김치, 나물 한 종류로 매우 소박하였다. 생선의 경우 해안가 지방에서는 음식의 재료로 흔히 쓰였지만 보관법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생선을 소금에 절여 쉽게 상하지 않도록 하였고 절인 생선을 쪄서 먹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 역시 가격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던 상민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꿩이나 토끼를 직접 잡아먹었다. 하지만 상민들은 주로 채식 생활을 하였고 그로 인해 건강한 식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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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민의 주생활

  • 산간지역:논을 잘 볼 수 없는 산간 지역에서는 참나무 껍질로 지붕을 얹어 굴피집을 만듦
  • 바람이 심한 지역: 주변에 많은 돌을 사용하여 담을 쌓고 지붕 위를 끈으로 엮어 맨 끝에 돌을 묶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집을 짓기도 함 ex)제주도
상민들은 집을 지을 때에도 주변에서 흔히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했다. 각 지방의 자연환경에 따라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 달랐는데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볏짚을 많이 사용하고 나무가 많이 있는 곳에서는 나무를, 돌이 많은 곳에서는 돌을 가지고 집을 지었다. 집의 지붕을 올릴 때에는 볏짚, 밀, 갈대 등이 쓰였는데 그중에 볏짚이 가장 많이 쓰였다. 쌀을 재배하여 쌀알을 털어낸 볏짚은 잘 말리면 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볏짚을 꼬아 바구니나 짚신의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하고 집을 지을 때 서까래 위에 얹어 지붕을 만들기도 하였다. 볏짚은 가벼울 뿐만 아니라 열을 잘 차단하여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였다. 하지만 식물이기 때문에 빨리 썩어서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에서 3년 만에 오래된 볏짚 지붕을 새로운 볏짚으로 갈아야 했다. 소박했던 상민의 집을 초가삼간이라고 하는데 창고나 외양간, 부엌, 방으로 이루어지거나 부엌, 방 또는 부엌, 마루, 방으로 이루어진 작은 집이었기 때문이다.

상민의 공동체 생활

상민은 이웃과 공동체의 삶을 살기도 하였다. 사는 곳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았고 같은 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사는 경우도 많아 대를 이어 이웃과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동네의 모든 집이 하나의 우물을 사용하거나 빨래터를 만들어 같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즐거운 일, 슬픈 일을 같이 하였기 때문에 ‘먼 친척보다 가까운 친척이 낫다’라는 말이 생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