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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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1월 26일 (화) 12:14 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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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시대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생애

독일 태생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교회 음악가이다. 1685년 3월 독일의 튀링엔 지방의 소도시 아이제나흐에서 바이올린 악사인 요한 암브로지우스 바흐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3월 23일에 성 게오르크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바이올린을, 사촌 큰아버지한테서 오르간을 배우고, 한편으로는 교회 부속학교에도 다니면서 성가대원으로서도 활약하였다. 9세에 양친을 잃은 바흐는 요한 파헬벨의 제자이자 큰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71-1721)와 함께 살게 되어 오르돌프 시로 옮겨가 형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작곡 기초를 배웠다. 그러다 형이 부양할 가족이 늘어나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자, 15세 때 북부독일의 뤼네부르크의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유명한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인 게오르크 뵘(Georg Bhm, 1661~1733)과 얀 아담스 라인켄(Jan Adams Reinken, 1623-1722)을 알게 되어 큰 영향을 받았다.바흐는 18살에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졸업을 한 뒤에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어 1703년 4월부터 바이마르 궁정의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일을 하게 되었고, 그 해 8월에 아른슈타트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게 되었다.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작곡가 디트리히 북스테후데(1637-1777)의 작품과 오르간 곡에 많은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아 바흐의 개성과 기초 양식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바흐의 감독자 입장인 성직회의(聖職會議)와 자주 충돌하게 되어 아르슈타트의 교회 오르가니스트를 그만두고 같은 독일의 도시인 뮐하우젠으로 가게 된다. 뮐 하우젠에 가서 교회 음악중 한 종류인 칸타타라는 장르에 힘을 쓰게 되고 제 71번, 제 106번, 제 131번 등 유명한 명작을 작곡하게 되었고 이때 바흐의 가장 유명한 곡중 하나인 <토카타와 푸가> (BWV 565)를 작곡하게 된다. 그러던 중 뮐하우젠에서 루터파 내부의 정통파와 경건파 사이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1년만에 떠나게 된다. 이후 바흐는 바이마르 궁정에 다시 들어가게 되는데 이번에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라 오르가니스트로 들어가게 된다. 1708년도부터 1717년도 사이에는 바흐의 '오르간곡의 시대'라고도 불리며, 현존하는 오르간곡의 대부분이 이 시대에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타의 불허를 추종하는 위대한 오르간 연주자로서 거듭나게 되어 그의 이름이 독일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1714년에는 궁정악단의 악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매달 1곡씩 교회 칸타타라는 장를 작곡을 하게 되었다. 바이마르 궁정에서는 기존에는 없었던 비발디와 같은 새로운 바로크 시대 음악가들의 협주곡이 즐겨 연주되었는데, 바흐는 이러한 곡들을 연구를 한 끝에 이탈리아 협주곡의 형식과 기법(技法)을 개발하게 되고 이것은 바흐의 그 후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1717년 8월, 바흐는 쾨텐 궁정에 악장으로서 취임하였다. 궁정악장은 당시의 독일에서 음악가가 꿈꿀 수 있는 가장 높은 사회적 지위이며, 음악에 대하여 관심이 많고 젊은 영주도 바흐의 재능을 높이 사서, 이례적(異例的)인 대우를 제공하였다. 쾨텐의 궁정은 칼뱅주의여서

주요 작품목록










ㅇㅅㅇ

헨델


생애

주요 작품목록

고전파시대 음악가

낭만파시대 음악가

인상주의시대 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