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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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섭 (1911027)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18일 (목) 18:2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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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박노해의 시

전문(시)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구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ㄴ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주질 못하였다


훤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더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 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이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 상가처럼

외국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 흐르고

프로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선진조국의 종로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다가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특징

「노동의 새벽」은 박노해가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섬유·화학·금속·정비 등의 산업 현장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일상적인 노동 체험을 시적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다. 군사 정부의 아래에서 40여 년간 무권리 상태로 침묵하던 1000만 노동자를 각성시키고, 젊은 대학생들에게는 불씨가 되어 ‘시의 힘’을 현실로 보여준 사례이다.

의의

 당시 군사 정부의 금서(禁書) 조치에도 불구하고 약 100만부가 팔린 시집 『노동의 새벽』은 1980년대 민중 문학의 전환점으로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책 중의 한 권이 되었다. 그 결과 시인은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장적 구체성’, ‘체험의 진실성’, ‘최고 수준의 정치적 의식과 예술적 형상화 능력’ 등의 말로 칭송받았다.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노동 해방을 위한 싸움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노래하고 있다. 탁월한 리얼리즘적 성취와 풍부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시인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집단적 운명을 자각하고 점차 노동 해방을 위한 싸움에 나서는 영웅적인 노동자의 상을 창조했다.

참고문헌/자료

작성자

인문정보콘텐츠(2020) A반 1911027 문학문화콘텐츠트랙/디지털인문정보학트랙 권현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