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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장손 며느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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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1996년 외할머니의 친척 소개로 아빠를 만나게 되었는데, 엄마가 기억하는 아빠의 첫 인상은 되게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열애 1년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아빠가 엄마 말을 우선으로 잘 들어주고 엄마에게 잘 맞춰주는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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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엄마는 결혼하고 난 뒤, 1년 후 저를 낳고 또 1년 뒤 동생을 낳으셨는데 그때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기억을 여쭤보니 “큰 아이 때는 너무 입덧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힘들었고, 둘째 때는 몸이 힘들어서 신우염에 걸려서 고생했습니다.”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만큼 엄마가 얼마나 저희를 낳고 고생하셨는지 알고 있는데, 저희 엄마는 저희를 낳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하러 나가셨습니다. 당시 엄마가 저희를 낳고 난 후 회사 상황 상 바로 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산후조리를 하지 못해 몸이 아픈 상태로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집에서도 바쁘셨으며, 항상 손목 보호대를 하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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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출산과 후의 상황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결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게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저희 엄마는 장손의 며느리로 사는 삶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제가 보아도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빠가 태어나 자란 동네는 씨족마을로 6.25가 터지기 전까지 많은 친척들이 모여 살았는데, 6.25 이후 서로 흩어지게 되면서 다른 성씨들도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김씨가 많은 마을로, 마을에 제실이 남아있어 1년에 한번 마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아빠는 이런 환경에서 장손으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서 엄마에게 장손의 며느리로의 책임과 의무를 항상 강조해왔습니다. 엄마는 항상 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사람들은 잘한 것보다 부족한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이런 상황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제사가 있는 날이면 항상 엄마를 걱정하게 됩니다. “혹시 앓아 눕지는 않으실까?, 오늘은 또 얼마나 속상하실까?”하고 말입니다.
  
 
===자녀 교육===
 
===자녀 교육===

2020년 6월 21일 (일) 20:16 판


소개글

  • 오수정은 1969년 09월 20일 서울시 동대문구 전농 1동 620-21번지에 위치한 성바오로병원에서 1남 3여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현재 1남 1녀의 자녀를 둔 엄마이자 가정주부로써의 삶을 살고 있다.

학력

학교 졸업여부
홍파초등학교 졸업함
해성여자중학교 졸업함
송곡여자고등학교 졸업함
신구대학교 졸업함
서울여자대학교 평생교육 수료

우리 엄마의 인생 이야기

유년시절:할머니와의 삶

유년시절.PNG

청소년시절:동생의 투병생활

학창시절.PNG

대학시절:엄마와의 갈등

대학시절.PNG

청년시절:다양한 경험

직장인.PNG

결혼과 출산:장손 며느리의 삶

며느리.jpg

엄마는 1996년 외할머니의 친척 소개로 아빠를 만나게 되었는데, 엄마가 기억하는 아빠의 첫 인상은 되게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열애 1년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빨리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아빠가 엄마 말을 우선으로 잘 들어주고 엄마에게 잘 맞춰주는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결혼하고 난 뒤, 1년 후 저를 낳고 또 1년 뒤 동생을 낳으셨는데 그때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기억을 여쭤보니 “큰 아이 때는 너무 입덧이 심해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힘들었고, 둘째 때는 몸이 힘들어서 신우염에 걸려서 고생했습니다.”라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저는 당시 상황에 대해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만큼 엄마가 얼마나 저희를 낳고 고생하셨는지 알고 있는데, 저희 엄마는 저희를 낳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을 하러 나가셨습니다. 당시 엄마가 저희를 낳고 난 후 회사 상황 상 바로 일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산후조리를 하지 못해 몸이 아픈 상태로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집에서도 바쁘셨으며, 항상 손목 보호대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결혼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출산과 후의 상황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결혼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게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저희 엄마는 장손의 며느리로 사는 삶이 가장 힘들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의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제가 보아도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빠가 태어나 자란 동네는 씨족마을로 6.25가 터지기 전까지 많은 친척들이 모여 살았는데, 6.25 이후 서로 흩어지게 되면서 다른 성씨들도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김씨가 많은 마을로, 마을에 제실이 남아있어 1년에 한번 마을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아빠는 이런 환경에서 장손으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서 엄마에게 장손의 며느리로의 책임과 의무를 항상 강조해왔습니다. 엄마는 항상 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사람들은 잘한 것보다 부족한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엄마의 이런 상황들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제사가 있는 날이면 항상 엄마를 걱정하게 됩니다. “혹시 앓아 눕지는 않으실까?, 오늘은 또 얼마나 속상하실까?”하고 말입니다.

자녀 교육

수영.PNG 교육.png

현재의 삶:중년의 이야기

모찌.jpg

엄마는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고, 저희는 성인이 되면서 이제 조금씩 엄마의 시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엄마는 요즘 엄마의 취미 생활을 즐기고 계신데,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퀼트나 뜨개질 같은 것도 좋아하시기 때문에 아는 지인과 함께 공방을 차려 작업공간이자 취미생활 공간으로 활용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엄마는 현재 동네 캣맘으로 활동하고 계신데, 엄마의 하루 일과 중 절반이 고양이 돌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엄마는 원래 고양이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고3때,저희 엄마는 아는 지인분의 공방에 다니게 되었는데, 그 공방은 공방처럼 보이지만 사실 길 고양이들을 돌봐주는 캣맘들의 이야기 공간이었습니다. 그때 한 아기 고양이가 공방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눈을 다친 상태에 엄마에게 버림받아 자라온 듯 많이 약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공방에서 돌보게 되면서, 임보를 구하게 되었는데 눈이 다친 아이여서 그런지 아이를 데려가고자 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아기고양이는 공방에서 4달을 지냈는데, 그동안 저는 수능을 준비하느라 공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아기 고양이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기 고양이는 유독 저를 많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와 아빠에게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저희 엄마는 아기고양이가 신경 쓰였던 탓인지 고민해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저희 아빠는 심하게 반대하셨습니다. 그렇게 1달을 엄마와 아빠에게 고양이는 제가 책임지고 돌보겠다고 약속을 받은 뒤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이 이후로 동네 길고양이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고, 마음이 쓰여 챙기다 보니 어느새 20마리가 넘는 아이들을 챙기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학대 받거나 아픔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유독 마음이 쓰이셨는지 집에 데리고 와서 키우시게 되면서 4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계십니다.

저희 엄마의 현재 모든 이야기는 항상 고양이로 시작해서 고양이로 끝날 만큼,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십니다. 가끔 너무 고양이 이야기만 하시고 고양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시다보니 서운할 때도 있지만, 엄마가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지금처럼 엄마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바라는 노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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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저희 엄마에게 “엄마는 노후의 삶을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 라고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저희 엄마는 “나의 노년의 삶은....나는 아직도 배우고 싶은게 너무 많아....그렇기 때문에 좀 배우고 즐기고, 그러면서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어”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예전에 “엄마는 왜 배우고 싶은게 많지?”라고 생각하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공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저희가 어렷을 때 저희가 배우고 싶은게 있다면 거의 다 하게 해주셨지만, 정작 엄마 본인이 원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셨던 것입니다. 저는 이제부터라도 저희 엄마가 바라는 노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엄마가 저희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엄마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싶습니다.

채록자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엄마이신 오수정님에 대한 구술사를 진행한 김효진(17)이라고 합니다. 아카이브와 콘텐츠 기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구술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엄마라는 한 사람의 인생사를 되돌아 볼 수 있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엄마가 아닌 오수정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게 힘들고 불편했을 수 있는데 흔쾌히 도움을 주신 저희 엄마에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