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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중학교 운영위원장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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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후보에서 아쉽게 탈락하게 되었다. 탈락하고 나서 다시는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었지만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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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2018년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하여 하남시의원에 당선된다. <br/>

2020년 6월 20일 (토) 00:42 판

[인터뷰]하남시의원 김은영의 생애

이재희 기자| 입력 2020.06.18 21:30 | 수정 2020.06.18 21:30




김은영 의원은 1973년 12월 31일, 전라남도 나주에서 태어났다.
가족 관계로는 부, 모, 언니 둘, 오빠 하나, 후에 동생 한명으로, 1남 4녀중 넷째였다.
출생 당시에 집안환경은 매우 가난한 상황이었다. 언니, 오빠들에게 밀려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기도 힘들었다.
그렇지만 학교는 다녀야 했기에 서울에 사는 친척 이모네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초등학생때부터 친척집에서 집안일과 친척집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도우며 지원을 받아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재희1.jpg



중학교 진학 후 상업고등학교 졸업까지 서울에서 생활을 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군인이 되는게 꿈이었지만 신체적인 제한이 있어서 꿈을 포기하게 되었고
졸업 후에 첫 직장으로 한 자동차 부품 회사의 경리로 들어가 일하게 된다.
직장 생활을 약 1년정도 하던 중 이모네 사업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다시 직장을 옮기고 일하던 중에 집안 어른들의 소개로 맞선을 보게 되고
현재의 남편을 만나 22살에 결혼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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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에는 남편의 본가인 경기도 하남시로 이사를 왔으며 다양한 일을 했다.
두 집안 다 풍족한 형편이 아니었고 자본도 없었기에 화물차를 하나 사서 과일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판로를 파악해보기 위해 작게 시작했지만 과일을 아무리 많이 판다 하더라도
수익에 한계가 있고 재고 때문에 손해를 보는 일이 종종 생긴다는 점을 깨닫고 장사를 접게 된다.
그 이후엔 손세차장을 차려서 남편과 같이 세차 일을 시작했다.

세차장 운영이 과일장사보다는 수익이 좋았고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첫째 아이까지는 등에 업고서 어떻게 해서든 세차 일을 했지만 이어서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부터는 육아와 일을 동시에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병든 시아버지를 모시고 부업도 하면서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여러 자격증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운전면허, 요리사, 공인중개사 등등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 후 아들만 둘인 상태라 딸을 계획했는데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쌍둥이는 남녀 이란성으로 태어났다.


재희3.jpg



쌍둥이까지 태어나자 자식이 넷이나 되어 경제적으로 부담감이 더 커졌다.
결국 세차장 사업을 접고 남편과 같이 부동산 사업을 시작했다.
부동산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는 그나마 여유가 생겼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 졸업을 했다.
또 일 뿐만 아니라

경기도교육청 주민참여예산 자문위원회 위원,
광주 하남 초,중,고 학부모연합회 초대회장,
신장2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
하남시 지방재정 심의위원회 위원,
하남시 주민참여 예산위원회 위원,
남한고등학교 학부모 총회장,
하남중학교 운영위원장

등 다양한 사회활동과 봉사활동을 시작했으며, 2014년 지방선거에 시의원 출마를 도전했지만
예비후보에서 아쉽게 탈락하게 되었다. 탈락하고 나서 다시는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었지만
자식들에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2018년 지방선거에 다시 도전하여 하남시의원에 당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