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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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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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일 (일) 22:30 판



소개

정릉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덤은 한국에 5개나 있다.정릉:동음이의어

그 5개 중 이 글에서는 조선의 1대 왕 태조의 정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위치

지도를 불러오는 중...


오시는 길

  • 버스 : 162번 버스, 1014번 버스, 2115번 버스, 성북22번 버스를 통해 정릉으로 갈 수 있다.
  • 지하철 : 우이신설선 '정릉역'을 통해 정릉으로 갈 수 있다.

성북22번 버스를 타고 갈 경우 종점에서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정릉이 보인다.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였을 경우 정릉역 2번출구 기준으로 우회전 -> 쭉 직진하다 GS25에서 좌회전(두 갈래 길이지만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음) -> 길 따라 계속 가다보면 정릉이 나온다.


역사

정릉은 조선의 1대 왕 태조의 정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이다.

태조 즉위 시기

태조는 신덕왕후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는 신덕왕후의 묘를 한양도성 안에 짓고, 왕후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써 170여간(약 900k㎡) 규모에 해당하는 흥천사를 지었다. 태조는 신덕왕후 소생의 왕자인 방석(정종)을 세자로 책봉하여 다른 왕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태종 즉위 시기

태종은 신덕왕후의 지위를 왕후에서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이에 따라 정릉 역시 능에서 묘로 계급이 하락하였다. 태종은 정릉의 정자각을 없애고, 정릉을 공사하는데 쓰였던 석조물을 광통교 복원에 사용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현종 즉위 시기

1669년(현종 10년) 송시열의 상소로 인해 묘로 격하되었던 정릉이 다시 능으로 복원되고, 태종 때 사라졌던 일부 구조물들이 재구성되었다.

고종 즉위 시기

신덕왕후가 신덕고황후로 추존되고, 옛 표석을 갈아 대한신덕고황후정릉비를 세웠다.

현재

정릉은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 208호로 지정되었고, '조선왕릉'으로써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구조

정릉 역시 다른 왕릉들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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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판위 :
  • 참도 :
    • 신도 :
    • 어도 :
  • 수복방 :
  • 수라간 :
  • 비각 :
  • 소전대 :
  • 산신석 :
  • 무석인 :
  • 문석인 :
  • 석마 :
  • 장영등 :
  • 혼유석 :
  • 망주석 :
  • 석양 :
  • 석호 :
  • 곡장 :
  • 예감 :
  • 난간석 :
  • 봉분 :
  • 홍살문 :
  • 정자각 :


정릉은 다른 왕릉들에 비해 빈약한 편이다. 난간석이 없으며, 원래 두 쌍이 있어야하는 석마, 석양, 석호 등이 한 쌍밖에 배치되어있지 않다.


기타 정보

입장료

  • 만 25~ 64세 내국인 : 1000원 (10인 이상 단체일 경우 800원)
  • 만 19~ 64세 외국인 : 1000원 (10인 이상 단체일 경우 800원)
  • 만 7~ 18세 외국인 : 500원 (10인 이상 단체일 경우 400원)
  • 지역 주민일 경우 관람료 50% 할인 (단, 신분증 제시 필수)
  •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 관람 가능
  • 국빈, 외교사절단 또는 공무 수행을 목적으로 출입하는 자일 경우 무료
  • 한복을 착용하거나, 현역 군인이거나, 교육 활동/문화 관광 안내 등을 위해 입장할 경우 무료
  • 장애인 복지법상 장애 판정을 받은 사람, 국가 유공자, 기초 생활 수급자일 경우 무료


참고 자료

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B%A6%89_(%EC%8B%A0%EB%8D%95%EC%99%95%ED%9B%84)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6640278e-5443-4b43-881b-4200c75109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