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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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원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12월 1일 (일) 11: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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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정릉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덤은 5개나 있다.정릉:동음이의어

그 5개 중 이 글에서는 조선의 1대 왕 태조의 정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역사

정릉은 조선의 1대 왕 태조의 정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이다.

태조 즉위 시기

태조는 신덕왕후를 매우 사랑하였다. 그는 신덕왕후의 묘를 한양도성 안에 짓고, 왕후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써 170여간(약 900k㎡) 규모에 해당하는 흥천사를 지었다. 태조는 신덕왕후 소생의 왕자인 방석(정종)을 세자로 책봉하여 다른 왕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태종 즉위 시기

정종의 양위로 즉위한 태종은 신덕왕후를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켰다. 태종 8년(1408년) 태조가 사망하고 이듬해에는 정릉을 한양도성 밖 양주 남사아리 경좌 언덕(현재의 서울시 성북구)으로 옮기게 하였으며, 명 사신의 객관을 수리할 부재를 충당하기 위해 정릉의 정자각을 헐고, 봉분을 완전히 깎아 무덤의 흔적을 없앴다. 동왕 10년(1410년)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게 하기도 하였다.[2]

현종 10년(1669년)에 이르러 송시열의 요청으로 신덕왕후는 태조의 정비(正妃)로 인정되어 종묘에 왕후의 예로써 모셔졌으며, 정릉 역시 복원되었다. 봉분 앞의 장명등은 태조 당대의 것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나머지 석물은 모두 현종 때에 신덕왕후가 종묘에 복권되고 능침을 재조성할 때 마련된 것이다.

고종 광무 3년(1899년) 신덕왕후가 신덕고황후로 추존되고 이듬해에 옛 표석을 갈아 대한신덕고황후정릉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