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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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엽(1514054)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28일 (일) 23: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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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정승자(김상엽 엄마)는 1955년 10월 28일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에 3남 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영암군 미암면 춘동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앞에는 서해 바다가 보이고 밀물과 썰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다.

그 아름다운 바다는 밀물이 들어왔을 때, 햇볕과 함께 반짝이는 물결이 너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집 뒷 쪽으로는 뒷동산이 있어서 친구들과 뛰어 놀기에 아주 좋았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과 같이 살았다.

3, 4살 때 또렷한 기억이 있는데 우리 동네에 감나무가 많았는데 감꽃이 필 때면 엄마의 할아버지께서 아침 일찍 감나무 밑에 하얀 감꽃이 수북이 쌓였을 때,

할아버지께서 감꽃을 주워 오셔서 실로 하나하나 꿰어서 엄마의 몫에 걸어주셨다고 한다.

첫째라서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은 우리 엄마는 그 이후에 동생들이 태어나고 저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일하러 들판에 가시면 동생들을 엎고 많이 돌봐줬다.

8살 때는 면소재지에 있는 미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그 시절에는 각기 동네마다 다 같이 학교 운동장으로 모였는데 저희 엄마 동네가 가장 커서, 학생들이 줄을 서면 제일 길게 서 있었다고 한다.

엄마 추억 속의 초등학교는 굉장히 컸는데, 결혼하고 20년 후에 엄마 친구들과 여행 겸 학교를 찾았는데 어렸을 적 컸던걸로 기억하는 학교는 아니고 아름다운 미술관 같은 학교였다.

그 학교를 오랜만에 보니 옛 추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저희 엄마는 저희 엄마의 고모님이 서울에 계셔서 서울로 올라가 서울에 있는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중 고등학교를 졸업 후 직장(회사 경리) 생활을 하시고 엄마 동생들(이모, 외삼촌)도 서울로 와서 학교를 다녔는데, 엄마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셨다고 한다.


아빠와의 만남, 두 딸 아이를 출산

그렇게 생활하다가 서울 사람인 아빠를 중매 반, 연애 반으로 만나서 1979년 엄마 25살, 아빠 30살의 나이에 서울 퇴계로 서울행복예식장에서 결혼했다.

그리고 시부모님과 아주버님, 손윗동서, 시누이들과 함께 서울 중구 회현동에서 6개월 정도 살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과수원 농사를 하기 위해, 분가하여 김포군 계양면 박촌리(현재는 인천광역시 계양구 박촌동)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엄마가 처음 박촌으로 이사갔을 때는 버스도 1시간에 1대 씩 다녔고

그 동네가 아내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사는 동네라고 소문이 났는데 그 만큼 비가 많이 오면 땅이 질어서 걷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다음 해인, 1980년 2월 첫째 아이(딸) 김지선을 출산했다.

막상 아빠께서 서울 사람이고 과수원 농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엄마는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젊은 시절에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앙고라 토끼도 키우시고 포도나무도 가꾼 적 있으며,

호박 농사를 많이 해서 부평의 깡시장 노점상에서 호박을 팔았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 1982년 2월, 둘째 아이(딸) 김지은을 낳았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는데 박촌리가 인천직할시로 편입이 되면서, 집들이 많이 들어서고 그 동안의 농촌 마을이 도시로 점점 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