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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background:#3ca9a9; color:#ffffff; font-size:130%; text-align:center;" | '''삼군부 총무당(三軍府 淸憲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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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text-align:center;" | [[파일:청헌당 정면.jpg|40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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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7일 (월) 05:30 판


개요

1973년에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말기의삼군부청사(三軍府廳舍) 건물로 삼군부는 조선 초기의 군무를 통할하는 관청인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를 말한다. 1865년(고종2)에 삼군부 청사를 지금의 세종로정부종합청사(政府綜合廳舍) 자리에 세웠으며 1967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1977년에 보수하였다. 청헌당은 총무당(總武堂), 덕의당(德義堂)과 함께 1868년에지었는데 건물의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초익공계 단층 팔작지붕으로 조선말기의 서울 관아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다.

삼군부는 조선 태종 때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 삼군진무소(三軍鎭撫所) 등으로 개칭하였으며 그뒤에도 여러 차례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興宣大阮君)이 집권한 뒤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신영(新營) · 남영(南營) · 마병소(馬兵所)를 합병하여 다시 삼군(三軍)이라 하고 지금의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삼군부의 청사를 세웠다. 흥선대원군은 모든 군사권을삼군부가 맡게 하였으나 그가 몰락한 뒤 1880년에 삼군부를 폐지하고, 그 직무를새로 설치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에 이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이 건물은 통리기무아문의 청사가 되었고, 1894년 갑오개혁 이후로는시위대(侍衛隊) 청사를 거쳐 1910년 국권피탈 뒤부터 1926년 순종 황제가 창덕궁에서 죽을 때까지 조선보병대 사령부로 사용되었다. 그뒤 덕의당은 없어졌고, 총무당은 일제강점기에 성북구 돈암동으로 옮겼으며 청헌당은 1967년에 지금의공릉동 육군사관학교 교정으로 옮겨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군부청헌당 [三軍府淸憲堂]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