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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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재 (토론 | 기여)님의 2018년 6월 17일 (일) 14:1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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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란?

개념

친일파”라는 단어는 임종국이 1966년 출간한 《친일문학론》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이 책에서, 친일(親日)은 “일본과 친하다”라는 뜻으로 정의되었으며 친일파라는 명칭은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사회지도층 세력인 부일배 표현 대신에 사용된 것이다. 부일(附日)은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일본과 친하다라는 개념을 넘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의도를 적극적으로 도운다는 의미이다. 출간된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친일파라는 단어가 자주 쓰이게 되었다.

유의어

친일파는 일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필요성을 주장한 지일파나 학일파(學日派), 경제·문화면에서 일본으로부터의 극복을 주장한 극일파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단순히 일본 문화 전반이나 일본인을 좋아하거나 이에 친근감을 느끼는 것인 친일과도 구별된다.

외국에서 바라본 친일파

친일파라는 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재 일본에서도 당연히 쓰는 단어지만, 일본은 매국노라는 개념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친일파를 척결하자!!"라는 구호가 '한국은 곧 반일'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가 되어버린다. 사리사욕을 위해 나라를 팔고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된 친일 세력들을 척결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친일 척결'의 역사적 함의를 일본인에게 설명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보니, 이런 일본인들의 오해 아닌 오해는 고착된지 이미 오래다. 서양인의 경우 오리엔탈리즘에 빠진 경우가 많고 일본뿐만 아니라 동양이라면 다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 출장오거나 일본으로 유학 또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오게 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본 사회에서 살면서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서양인들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절절히 당해 봤겠지만, 일본인들의 백인과 동양인에 대한 대우는 정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난다.

정치적 의미

보수 진영에서 진보 진영을 향해 빨갱이라 비난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진보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을 친일몰이처럼 친일파로 몰아가서 사람들을 근거 없이 폄하할 때도 쓰인다. 그런데 노무현이 의욕적으로 친일파 청산 사업을 시도했으나, 정작 이를 적극 지지하던 진보 인물이 친일파 후손인 사례가 줄줄이 나와 유야무야된 적이 있는 걸 보면 진보 진영도 친일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유치진의 친일행위

유치진은 일제 강점기 당시 현대극장을 중심으로 한 친일 행적이 뚜렷한 편이었기 때문에 반공주의가 다른 이념이나 논리에 앞서던 1950년대에 극예술연구회 시절부터의 동료인 김광섭과 희곡 〈왜 싸워〉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등 연극계 친일 논란의 중심이었다.

1941년

1941년에는 현대극장을 새롭게 조직하여 그 대표가 되어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운영하였다. 현대극장은 일제 말기의 친일연극을 주도한 극단으로 유치진은 이 극단을 통해 <흑룡강>, <북진대>, <대추나무> 등 친일 희곡을 상연하였다. 이 가운데 친일성이 가장 농후한 것으로 알려진 <북진대>는 현재까지 그 작품이 전하지 않는다.

1991년

1991년 대한민국 문화부가 유치진을 4월의 문화 인물로 선정했지만 경상남도 충무시(현재의 경상남도 통영시)의 문화 예술인들이 유치진의 친일 행적을 문제삼는 바람에 김정호로 교체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8년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 부문에 포함되었다. 총 12편의 친일 저작물이 밝혀져,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최근에 재조명된 유치진?